36화
선글라스 아래로 쌍꺼풀 수술을 한지 얼마 안 됐는지 퉁퉁 부은 눈이 드러났다. 이근수가 물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왔단 말이야?”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근수는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짓밟아 비벼 끄면서 말했다.
“이부선이가 말 안 해줬어?”
“안 했습니다.”
이근수는 다시 선글라스를 쓴 뒤,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이 쌍년… 그저 소개비 챙길 생각만 하고, 일은 똑바로 안 하네… 수전노 같은 년….”
이근수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다음부터 F.N.C에 출전할 때는 나를 통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경기도 고를 수 있다고.”
이근수는 강우에게 명함을 건넸다. 이근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것도 오늘 이겨야 가능한 얘기지만… 뭐, 지더라도 경기가 재밌고, 몸만 멀쩡하면 또 부를 테지만.”
“그래서 오늘 저랑 붙을 사람은 누굽니까?”
“러시아 스페츠나츠 출신인 녀석인데 별거 아닐 거야. 이성 중급 정도고, 이름은 안똔. 지금 당장은 이 정도밖에 못 알려줘. 다음부터 시합을 뛰기 전에는 붙을 녀석의 경기를 보면서 상대의 전력을 가늠하고, 고르는 것도 전략이지.”
강우는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외국인입니까?”
“응. 외국인하고 붙는 경우 많아. 국내에서 해외로 원정 경기를 뛰러 가는 경우도 많지. 하여튼 여기서 몸 풀고 있어. 이따 시간되면 호출도 올 거고, 직원 하나가 데리러 올 거야. 이따 보자고.”
이근수가 대기실에서 빠져나갔다. 강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경기까지는 약 30분이 남아있었다. 강우는 의자에 걸터앉아 시간을 죽였다.
경기시간 5분 전, 대기실에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집행자와 안똔 선수의 경기가 있겠습니다. 양 선수는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강우는 여전히 앉은 채로 “들어오세요.”라고 말했다. 한 남자가 들어와 꾸벅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집행자님을 안내할 이성훈이라고 합니다.”
이성훈은 사물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경기에 필요한 물품을 제외하고, 휴대폰이나 지갑 등 모든 소지품은 저기에 보관해주시면 됩니다. 비밀번호 설정을 하셔야 되니까 비밀번호 잊지 않게 유의해주시고요.”
강우는 휴대폰과 지갑, 배낭을 사물함에 넣었다. 이성훈이 물었다.
“무기는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성훈이 대기실 문을 열면서 말했다.
“그럼 따라오시죠.”
강우는 이성훈의 뒤를 따라 나섰다.
강우는 긴 복도를 지나 한 출구로 나가게 됐다. 이성훈은 출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나가시면 곧바로 시합을 뛰게 됩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강우가 출구를 나서자 환한 조명이 비췄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강우의 양옆으로 몇몇 남자들이 다가왔다. 그 중 한 남자가 말했다.
“대충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면서 저희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남자들이 앞장섰고, 강우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돔 형태로 이뤄진 경기장은 수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정 가운데는 특수 방탄유리로 제작된 케이지가 있었고, 벽 여기저기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있었다.
강우는 걸음을 옮기며 계속 두리번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네….’
강우가 케이지 앞에 다다르자 한 남자가 케이지의 입구를 열었다. 입구 역시 특수 방탄유리로 이뤄져있었다. 케이지의 입구는 서로 반대되는 지점에 한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문 두 개가 전부였다. 강우는 계단을 올라 케이지로 들어섰고, 곧바로 문이 닫혔다. 강우가 들어서자 크게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번 이 첫 출전! 집행자 선수의 등장입니다!”
방송의 목소리는 강우에게 익숙했다. 이근수의 목소리였다. 강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관중석 앞쪽에 마련된 해설자 자리에 이근수가 앉아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근수의 오른쪽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프로모터라더니 해설까지 겸하는 건가?’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우는 조금은 어색하지만 손을 들어보였다. 강우의 손짓에 사람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전적 3승 0패에 빛나는 루키! 안똔 선수의 등장입니다! 여태까지 붙었던 상대들을 모조리 재기불능으로 만든 무시무시한 선수죠! 이번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강우의 반대편에 있는 입구로 안똔이 케이지에 들어섰다. 안똔은 군복을 입고 있었다. 안똔이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똔은 케이지에 들어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안똔을 노려봤다.
이근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부터 집행자 선수와 안똔 선수의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알다시피 이 시합에 룰은 없습니다. 패배는 항복 선언 또는 전투불능 상태 그리고 죽음에 이렀을 때입니다. 이제 양 선수는….”
이근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안똔이 몸에 사선으로 메고 있던 끈을 휙 돌렸다. 안똔의 양손에는 소총이 들려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안똔은 곧바로 강우에게 총을 난사했다. 강우는 곧바로 몸을 숙이고 옆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탄환들을 피해냈다.
파파파파파팡.
총알들은 특수 방탄유리로 된 벽에 박혔다.
이근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그렇죠. 케이지 안은 전장입니다. 안똔 선수는 군인답게 곧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하는군요!”
강우는 총알을 피하면서 눈썹을 찡그렸다.
‘씨발… 갖다 붙이기는….’
두두두두두두두!
안똔은 계속해서 총을 난사했다. 강우는 총알을 한 발도 맞지 않고 피해냈다. 소총의 총알이 떨어졌다. 강우는 그 틈을 타 안똔에게 접근했다. 안똔은 탄창을 갈려고 하지 않았다. 안똔은 곧바로 소총을 강우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졌다. 강우는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소총을 왼손으로 후려쳤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소총은 엿가락처럼 구부러지고, 일부분이 부서졌다.
안똔은 소총을 한 번 쳐다보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강우는 “언제까지 웃나 보자.”라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강우와 안똔의 거리는 약 3m. 강우는 안똔에게 뛰어들어 주먹을 날릴 심산이었다.
철컥.
안똔이 권총을 빼들어 강우를 겨눴다.
타앙!
안똔의 손에 들린 총구에서 노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노란색 빛을 품은 탄환이 강우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강우는 곧바로 치켜들었던 주먹을 얼굴 앞으로 가져와 손바닥을 폈다. 강우는 손바닥으로 노란색 탄환을 막아냈지만, 충격으로 손등이 이마에 붙고, 머리가 뒤로 젖혀질 정도였다.
강우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안똔을 노려봤다. 안똔은 어느새 양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고, 총구는 강우를 향하고 있었다. 안똔이 나지막이 말했다.
“총알을 손으로 막는 놈은 처음이군.”
타타타타타탕!
강우는 옆으로 몸을 날렸다. 안똔은 강우와 똑같은 방향으로 몸을 날리며 총을 쏴댔다. 노란빛을 품은 탄환들이 강우의 이마, 뺨, 양쪽 어깨, 복부에 세 방, 왼쪽 허벅지에 맞았다. 강우는 그대로 뒤로 밀려나 벽에 처박혔다.
강우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신준혁의 음파가 더 매웠어. 이 정도는 뭐….’
타타타타타탕!
안똔이 권총을 다시 연사했다. 강우는 양팔을 들어 얼굴만을 가린 채 탄환들을 몸으로 받아냈다. 안똔은 총이 안 먹히자 권총을 내던진 뒤, 오른손에 나이프를 거꾸로 치켜들었다.
강우는 얼굴을 어루만지며 안똔을 노려봤다.
“이 새끼 짜증나게….”
강우는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을 멈췄다. 아까 뺨에 맞았던 탄환이 복면의 일부분을 찢고 나갔다. 강우는 손에 느껴지는 드러난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 개새끼가 진짜….”
강우는 순간 억제하던 힘을 다소 풀어버렸다. 강우가 순식간에 안똔의 코앞에 다가섰다. 안똔은 강우가 코앞에 다가오고 나서야 반응을 했다. 안똔은 몸을 뒤로 빼며 손에 든 나이프를 휘둘렀다.
강우는 왼손으로 안똔의 오른쪽 손목을 잡았다.
‘순간 한 방에 죽여버릴 뻔 했네… 넌 편하게는 안 끝낸다.’
강우는 오른쪽 주먹으로 안똔의 복부를 강타했다. 안똔은 새우처럼 허리가 잔뜩 구부러지며 “커허억….”하고 소리를 냈다. 강우는 주먹을 안똔의 복부에 대고 있었다. 안똔의 몸은 강우의 주먹에 들려있었다.
강우가 주먹을 내렸다. 안똔은 이미 두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려 했다. 강우는 안똔이 주저앉기 전에 다시 오른쪽 주먹으로 안똔의 복부를 끊어 쳤다. 안똔의 허리가 크게 구부러지며 두 발이 지면에서 붕 떴다.
텅, 텅, 텅, 텅, 텅, 텅, 텅, 텅.
강우가 연속해서 안똔의 복부에 주먹을 날렸다. 안똔의 두 발은 바닥에 닿기 전, 다시 공중에 떠버렸다.
“우웨에에에에엑!”
안똔이 피가 섞인 토사물을 뱉어냈다. 강우는 얼른 팔을 치워 피했다. 강우는 여전히 안똔이 나이프를 쥐고 있는 오른쪽 손목을 움켜쥔 채 치켜들고 있었다. 안똔은 마치 강우의 손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온 몸을 축 늘어트렸다. 안똔의 입에서는 피가 섞인 토사물이 줄줄 흘러 턱과 목을 타고 내려가 옷에도 잔뜩 묻어있었다.
강우는 왼손에 쥐고 있는 안똔의 손목 움직임을 느꼈다. 강우가 안똔의 오른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똔이 손에 쥐고 있는 나이프의 끝은 정확히 강우의 왼쪽 눈을 향하고 있었다.
퓽!
안똔이 손에 쥐고 있는 나이프의 칼날이 발사됐다. 강우는 오른손을 뻗어 날아오는 칼날의 옆면을 쳐내버렸다. 강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이 새끼가….”
안똔은 왼손에도 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안똔이 왼손에 든 나이프를 강우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강우는 안똔의 손목을 놓으며 몸을 뒤로 젖혀 피해냈다.
안똔은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안똔은 서있기도 힘든 듯 다리는 굽혀져 있었고, 몸 또한 숙이고 있었다.
이근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행자 선수! 대단합니다! 안똔 선수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습니다. 안똔 선수의 공격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네요!”
이근수의 옆에 앉아있는 남자가 차분히 말했다.
“안똔 선수에게 남아있는 카드가 뭔지 지켜봐야겠네요. 지금 상황을 뒤집기는 힘들어 보이지만요. 집행자 선수가 예상 외로 선전, 아니, 선전 정도가 아니라 압도해주네요.”
강우는 성큼성큼 안똔을 향해 다가갔다. 안똔은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내던지듯 강우에게 달려들었다. 안똔이 왼손에 든 나이프를 강우의 목을 노리고 찔렀다. 강우는 고개를 옆으로 젖혀 간단히 피해냈다. 안똔은 오른손에 칼 손잡이를 쥔 채 치켜들었다. 강우는 왼손을 뻗어 안똔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대로 부셔… 어?”
찰칵, 탕!
안똔의 손에 들린 칼자루 아래에서 총알이 발사됐다. 총알은 강우의 이두근 부위에 맞았다. 하지만 총알은 옷을 조금 찢었을 뿐, 강우의 피부를 관통하지 못한 채 찌그러졌다. 안똔은 왼손에 든 나이프를 아래서부터 강우의 복부를 노리고 찔렀다. 강우는 몸을 돌려 나이프를 피해냈다. 안똔은 왼손에 쥐고 있는 나이프를 바꿔들어 칼끝을 강우의 옆구리에 향하게 했다.
퓽!
나이프가 강우의 옆구리를 향해 발사됐다.
탁.
강우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나이프 날을 낚아채버렸다.
우지직.
강우는 나이프를 맨손으로 으스러트렸다. 부서진 나이프 조각들이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안똔은 왼손에 든 칼자루 밑동을 강우에게로 돌렸다. 안똔은 칼자루 위쪽에 있는 버튼을 눌러 또다시 총알을 발사하려 했다.
턱.
강우가 오른손을 뻗어 안똔의 손과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안똔은 손을 붙잡혀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우드드드득!
“크아악!”
강우는 왼손에 쥐고 있던 안똔의 오른쪽 손목을 으스러트렸다. 강우는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안똔의 왼손을 옮겼다. 강우는 칼자루의 밑동이 안똔의 왼쪽 쇄골에 닿게 했다. 안똔은 압도적인 힘 차이로 강우의 손아귀에서 어떠한 반항도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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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는 금일 내로 올리겠습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읽으시다가 의문점이 생기시는 점은 곧 풀어드리겠습니다.
맥거핀을 제외한 모든 떡밥들은 회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