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강우는 칼자루에 있는 버튼에 엄지를 가져다 대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걸 누르면 됐던가?”
안똔이 해설자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항…….”
찰칵, 탕!
“아아아악!”
안똔이 항복 선언을 하기 전에 강우가 버튼을 눌렀고, 칼자루의 밑동에서 총알이 발사됐다. 총알은 안똔의 왼쪽 쇄골에 박혔다. 안똔은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목소리를 냈다.
“허억… 항…… 커헉.”
강우는 칼자루를 안똔의 입에 처박아버렸다. 칼자루는 안똔의 앞니들이 부수고, 목구멍까지 처박혔다. 안똔은 부러진 양 손목에 팔을 축 늘어트린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강우는 신경질적으로 안똔의 다리를 걷어찼다. 안똔은 걷어차인 방향으로 몸이 휙 돌아갔다. 안똔의 몸이 180도 돌아갔다. 안똔은 옆머리로 바닥을 쓸며 널브러졌다. 강우가 이근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집행자 선수의 승리! 3전 무패였던 안똔을 완전히 격파! 새로운 스타의 탄생입니다!”
관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몇몇은 자리에 앉은 채 한숨을 내쉬고, 욕을 하고, 머리를 쥐어뜯고, 심지어 울기도 했다. 안똔에게 돈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이번 경기에서 강우에게 배팅을 한 관중보다는 안똔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금전적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한 경기에서 돈을 잃었다고 징징댈 필요가 없었다. 강우의 승리에 괴로워하는 이들은 이미 막다른 길에 몰렸거나 그저 성질이 더러울 뿐이었다.
안똔은 들 것에 실려 갔고, 강우는 이성훈의 안내에 따라 다시 대기실로 향했다. 강우가 대기실로 향하는 중 흰 가운을 걸친 남자가 강우의 옆에 따라붙었다.
“어디 이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요? 총에 맞았는데?”
“괜찮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정말 힘을 가진 당신들은 축복 받았군요. 혹시라도 이상이 있다 싶으면 호출하세요. 의료팀이 대기 중이니까.”
남자는 다시 되돌아갔고, 강우는 대기실에 들어갔다.
강우는 대기실에 들어서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돼서 이근수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집행자! 오, 나의 집행자!”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이근수를 쳐다봤다. 이근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정말 끝내줬어! 상대방의 역량을 모두 끌어내면서! 승리 또한 완벽하게! 퍼포먼스도 끝내줬고 말이야!”
“퍼포먼스요?”
“그래! 퍼포먼스! 쇼맨십! 넌 안똔이 항복을 외치려는 걸 못하게 막고, 끝까지 마무리를 지었잖아!”
강우는 양손 깍지를 끼며 물었다.
“죽었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양쪽 손목뼈도 재활이 필요하긴 하지만, 다시 멀쩡해질 거고.”
강우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근수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넌 타고났어! 마치 F.N.C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이야! 다음번에는 아마 이성 중급 치고는 세고! 상급에는 조금 못 미치는! 그런 놈으로다가 붙여줄게! 오늘 네 실력으로 봤을 땐 아마 어렵지 않을 거야!”
“이기는 경기를 잡아주겠다는 건가요?”
“그렇지!”
강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조작경기를 하라는 건가요?”
이근수는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말했다.
“조작은 아니지! 상대방이 너에게 일부러 지지는 않을 테니까! 상대방도 널 이길 생각으로 올라올 거야. 다음에 네 상대로 지목될 선수들은 두 명 정도인데, 분명히 네가 이길 거야.”
“제가 질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이근수는 양손바닥을 쫙 펼쳐 보이며 말했다.
“난 이 바닥에서 구른지 벌써 10년이 넘었어. 내 눈은 절대 틀리지 않아. 넌 최소 삼성급이야.”
“삼성이요?”
“그래, 삼성.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하여튼 앞으로 적어도 세 경기… 아니, 네 경기 이상은 질 일이 없다고 봐!”
강우는 팔짱을 낀 채 시큰둥하게 말했다.
“종종 시간이 되면 시합을 뛰도록 하던지 하죠, 뭐… 그래서 오늘 제 대전료는 얼맙니까?”
이근수는 얼굴에 능글거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강우에게 건넸다. 강우는 봉투를 열어보곤 이근수와 봉투를 몇 번이나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이거 얼맙니까?”
이근수는 씩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피고 말했다.
“큰 거 세 장.”
“세 장이면….”
이근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삼천 만이야! 삼천 만! 너한테 돌아가는 돈만 삼천 만이라고!”
강우가 말했다.
“저야 많이 받아서 좋기는 한데… 어떻게 삼천 만이나….”
이근수는 F.N.C의 대전료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우선 F.N.C의 대전료는 선수의 인기도에 따라 달라졌다. 강우의 경우 퍼플 헤드 클랜과 레드 헤드 클랜을 무너트린 것이 높게 평가돼 첫 대전료치곤 높은 500만 겔드를 기본으로 받았다. 여기서 승리수당은 자신의 대전료의 100퍼센트로 강우의 경우 500만 겔드를 더 챙기게 됐다.
그 다음은 배팅금액이었다. 도박에 참가한 사람들의 배당금의 0.1%가 선수에게 돌아갔다. 예를 들어 강우나 상대방에게 걸린 배팅금액은 중요치 않았다. 강우가 이겼을 때, 강우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 받을 배당금이 중요했다. 강우에게 돈을 건 사람들이 돌려받을 총액이 100만 겔드라고 가정했을 때 강우에게 돌아가는 돈은 1,000겔드였다. 배당금의 0.9%는 F.N.C 단체의 운영비로 돌아갔다. 99%는 도박에 이긴 사람들이 모조리 가져갔다.
또 다른 것으로는 후원 제도였다. 해당 선수가 마음에 드는 이들은 지원 또는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순수하게 보너스처럼 선수에게 지급할 수도 있었고, 일종의 주식처럼 투자도 가능했다. 투자의 경우 투자 받은 선수의 상승세, 전적, 경기를 치르는 빈도에 따라 변했다. 사실상 투자의 경우 경기마다 배팅을 하는 것보다 위험성이 더 크고, 어려웠기에 후원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간혹 돈을 불리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으로는 순수한 보너스였다. 얼마나 멋진 KO를 보여주는지에 따른 것이었다. 관중들이 가장 열광하는 것으로는 생각지 못한 방법의 살인이 인기가 많았다. 꼭 승리한 선수가 아니더라도 큰 부상을 입어가면서까지 멋진 경기를 치르면 보너스를 받기도 했다.
이근수가 말했다.
“너는 오늘 모든 걸 다 챙겼어. 정확히는 2981만 겔드인데, 내가 19만 겔드는 개인적으로 얹어준 거야.”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강우는 봉투 속의 돈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근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푹 쉬라고. 몸도 좀 풀어주고. 내가 또 끝내주는 경기를 잡아줄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뭐, 지금도 나중에 봐서 시합을 하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물론 시합을 하고 안 하고는 네 자유야. 하지만 네가 이런 기회를 놓칠 멍청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없이 이근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근수는 씩 웃으며 강우의 손을 맞잡고 힘 있게 악수를 했다.
강우는 사물함에서 배낭과 지갑, 휴대폰을 챙기며 말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아, 참! 이거 받고.”
이근수는 강우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근수의 명함에는 ‘F.N.C 프로모터 이근수’라는 글씨와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명함은 책받침 같은 재질이었고, 전체에 금을 코팅해 번쩍거렸다.
이금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얼른 들어가서 푹 쉬라고.”
강우는 명함을 받아들어 지갑에 넣으며 말했다.
“네, 다음에 보죠.”
강우는 강원카지노를 빠져나왔다.
강우는 잔뜩 들뜬 마음으로 서울을 향해 달렸다. 강우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오후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강우가 실제로 시합을 치르는데 걸린 시간은 10분 내외였다.
‘왔다 갔다 했던 시간이랑 대기한 시간 빼면 이건 뭐… 약 10분 만에 3,000만 겔드라니….’
강우는 집 근처에 다다라 인적이 드문 곳에서 복면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강우는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가 집이 있는 골목에 들어설 때였다. 정장 차림의 남자 여럿이 강우의 앞을 막아섰다. 강우는 남자들을 피해 가려했지만, 남자들은 걸음을 옮겨 강우의 앞을 완전히 막아섰다. 강우는 고개를 돌렸다. 뒤에도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강우를 둘러싸고 있었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들 뭐야?”
남자들 사이에서 귀에 익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러들 나라. 오해하겠다.”
남자들이 뒤로 물러났고, 그 사이로는 강우가 아는 사람이 걸어왔다.
강우의 앞에 나타난 남자는 김현태였다. 강우는 순간 흠칫 놀랐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김현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또 보는구만.”
강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네? 누구신지… 저는 그쪽 분 처음 뵙는데요.”
“모른다니? 이거 섭섭하구만.”
“아니요, 저는 정말 그쪽 분을 처음…….”
김현태가 강우의 말허리를 잘랐다.
“왜 이러시나… 집행자 친구.”
강우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뭐지? 어떻게 알았지?’
김현태는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말했다.
“자네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내 경호로 고용했을 거라 생각한 건가? 애초에 내가 자네 계좌로 돈을 입금했을 때부터 이상하지 않았나? 내가 이미 자네를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 안 해봤어?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떻게 자네 계좌에 돈을 입금 했겠나?”
강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런 씨발, 병신 같이 돈 500만 들어온 거에 신나서 그런 생각도 못했다니….“
김현태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뭐야? 진짜 몰랐던 거야? 이거야 원…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그렇게 허술해서 되겠나?”
“무슨 말입니까? 딱히 감추려 한 적 없습니다.”
김현태가 눈썹이 올라가도록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래?”
김현태가 한 남자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남자가 태블릿 피시를 김현태에게 건넸다. 김현태는 태블릿 피시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대충 확인된 것만 해도… 보자… 일명 고양이 사냥, 스밀로돈 무리를 잡을 때 활약했고, 퍼플 헤드 클랜과 레드 헤드 클랜을 단신으로 격파… 그런데 예거 등록은 겨우 일성 하급… 그리고 활동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하고….”
김현태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얘기가 더 필요한가?”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뭡니까?”
김현태는 진정하라는 듯 양손을 내보이며 말했다.
“오해하지 말라고. 나는 그저 어제 생명의 은인한테 대우를 제대로 못해준 것 같아서 보답을 하려고 온 거니까.”
“뭔데요?”
“거참… 그렇게 공격적일 거 없다니까? 자네, 활동을 하면서 정체는 숨기고 싶은 거 아닌가?”
강우는 주변의 남자들을 둘러봤다. 김현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최측근들이니까. 내가 한마디만 하면, 평생 자네에 대해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갈 거야. 더불어 한 명 빼고는 모두 일반인이고.”
강우는 자신의 정면을 막아섰던 남자를 한 번 쳐다봤다. 남자 역시 강우와 두 눈을 마주쳤다.
‘아마… 저 남자가 예거….“
강우는 김현태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김현태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완벽하게 신상정보가 보호되는 계좌를 만들어줄 수 있어. 그 중간에 내가 끼어드는 것도 아니야. 나는 처음 거래를 트는데 귀찮은 것들을 보다 간소하게 줄여주는 것뿐이지. 계좌를 한 번 개설하기만 하면, 그때부터 계좌의 거래내역은 자네와 거래하는 은행만이 알아. 세계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스위스은행이니 믿어도 될 거야. 애초에 그곳마저 믿지 못한다면 거래할 곳이 하나도 없겠지.”
강우는 김현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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