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39화 (39/195)

39화

강우가 말했다.

“그럼 정확히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간단해. 안 실장이 볼일을 보는 동안 주의만 끌면 되네. 그건 자네가 편한 방법으로 하게나. 일은 밤에 치러질 거니까 무단침입을 하든 뭘 좀 부수든 발가벗고 돌아다니든 알아서 하면 되네.”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고작 그걸 하는데 5,000만에 스위스은행 계좌, 그리고 뭐 복면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주겠다는 겁니까?”

“그렇네.”

“아니, 고작 그 정도의 일이라면 부하직원 몇 명 굴리면 되지 않습니까?”

김현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가능하면 내가 자네한테 일을 맡기겠나? 거기 경비들은 일단 예거의 능력을 가진 자들일세. 뭐 기껏해야 일성 하급이나 중급 정도라고 들었으니 자네한테 별 문제는 안 될 걸세. 하지만 일반인들은 10초도 안 돼서 제압되겠지. 게다가 자네의 경우 예거들끼리의 다툼으로 법적 제재가 전혀 가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고 말이야.”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5,000만 겔드라… 뭔가 찝찝하지 말입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가?”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너무 달콤한 제안은 독을 품고 있는 법이죠.”

“걱정하지 말게. 그냥 주는 게 아니니까. 자네의 역할이 쉽게 느껴져도, 결코 간단하지 않네. 그리고 중요하네. 자네가 실패를 한다면… 굳이 말 안 해도 알 거라 생각하네.”

강우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제 역할은 완벽하게 해낼 겁니다. 다만, 이대로는 진행 못합니다.”

“무슨 뜻인가?”

“각서 하나 써주셔야겠습니다.”

김현태는 책상 서랍에서 서류 두 장을 내밀며 말했다.

“그 정도 준비도 안 해놨을 거라 생각했나? 나 역시 자네의 각서가 필요하네. 읽어보게나. 각자의 보관용으로 두 장의 내용은 같네.”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현태의 건너편에 섰다. 강우는 각서를 눈으로 읽어내렸다.

각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강우와 김현태 둘 모두 함구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강우는 이번 일에 대해 독단적으로 행하는 것이며, 진실생명보험 측과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명시했다. 김현태 및 임직원들은 강우가 집행자라는 사실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않음을 명시했다. 또한 강우에게 5,000만 겔드를 지급하고, 스위스은행 계좌를 만들어준다는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어느 쪽이든 이 사항을 위반할 시 어떠한 손해배상도 감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각서를 읽은 강우는 김현태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 복면과 복장을 해결할 수 있다는 부분은 없는데요?”

“그거야 내가 선물… 보너스처럼 주는 건데 굳이 써야 되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뭐, 그거야 그렇다치고… 어떠한 손해배상도 감수한다는 내용… 좀 더 구체적으로 가죠?”

“어떻게 말인가?”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100억.”

옆에서 얘기를 듣던 안 실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너 따위 놈의 정체가 100억 겔드란 가치가 있을 것 같아? 1만 겔드도 아까워!”

김현태가 손을 들어보였고, 안 실장은 입을 닫았다. 김현태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지. 우리 쪽에서 자네의 정체를 발설하면 100억 겔드를 지급하겠네.”

안 실장이 말했다.

“회장님….”

김현태는 안 실장의 말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할 건가? 자네한테는 100억 겔드란 돈이 없지 않은가?”

“그런 일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100억 겔드를 갚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김현태는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하긴, 예거라면 어떻게든 돈을 뽑아낼 수 있겠지.”

“제가 계약 사항을 어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단지 저를 위해 이런 계약 조건을 거는 거죠.”

안 실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장님… 고작 저런 놈한테 맞춰줄 필요 없습니다. 사실 이번 일도 저 혼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저 친구가 도우면 좀 더 쉬워지는 게 사실 아닌가? 나는 일을 최대한 조용히, 아무런 탈 없이 빠르게 끝내고 싶네. 그리고 저 친구의 말대로 발설하는 일이 없으면 되는 걸세. 왜, 자네는 누군가에게 저 친구가 집행자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건가? 나를 곤란하게 하려고?”

“아닙니다.”

“다들 입단속 잘 시켜. 저 친구의 일도 그렇고… 이번 일은 여기 있는 셋만 아는 거야. 어디에도 얘기가 흘러나가선 안 돼.”

안 실장은 고개를 꾸벅이며 “네. 명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김현태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김현태는 각서에 손해배상에 관한 부분에 100억 겔드 지급이라는 내용을 추가한 뒤, 각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여기 사인과… 도장 안 갖고 왔지? 지장을 찍게. 나는 사인과 직인을 찍지.”

김현태와 강우는 서명을 한 다음 각서를 한 장씩 가져갔다.

김현태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자, 그럼 오늘 잘들 부탁하네. 이따 밤에 우리 안 실장한테서 연락이 갈 거야. 꽤 늦은 밤에 일이 진행될 거니까 기다리고 있게.”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 실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름이 뭡니까?”

“내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한 번뿐이겠지만, 같이 일을 하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야죠.”

“그냥 안 실장이라고 불러.”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새끼, 되게 붙임성 없네….”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강우는 김현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이따 연락주시죠.”

“그러지. 가봐.”

강우는 회장실에서 빠져나왔다.

회장실 앞 데스크에는 김민지가 무언가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다. 강우는 김민지를 노려봤다. 김민지는 강우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강우는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네 년은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한다.’

강우는 진실생명보험 건물을 빠져나왔다.

강우는 곧바로 한소영이 입원해있는 삼미의료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휴대폰을 들었다. 강우는 한소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강우는 속도를 더 높여 삼미의료원으로 향했다. 강우는 복면을 쓴 채로 병원에 들어섰다. 한소영이 입원해있던 병실, 한소영이 누워있던 침대에는 다른 사람이 입원해있었다. 강우는 한소영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한소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우는 삼미의료원을 빠져나왔다.

‘잠수를 탄 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네… 대체 왜….’

강우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각서를 들여다봤다.

‘그래도 조건이 나쁘지 않아.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지.’

강우는 집에서 안 실장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날따라 강우는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입맛이 없었다.

오후 11시.

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안 실장의 연락이었다. 안 실장은 자정까지 공덕역으로 나오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강우는 나갈 채비를 마치고, 공덕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공덕역에 다다르기 전, 안 실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공덕역 8번 출구 쪽에 있는 빌딩 옥상으로 와. 이 문자는 확인하면 삭제하도록.-강우는 안 실장이 일러준 곳으로 향했다.

강우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른 11시 40분쯤 빌딩의 옥상에 올라섰다. 안 실장이 난간 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우가 다가서자 안 실장이 고개를 돌렸다.

“왔나?”

“바로 들어갑니까?”

안 실장은 강우에게 가방 하나를 건넸다.

“거기 들어있는 걸로 갈아입어.”

강우는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초록색 재킷과 청바지, 흰 운동화, 검은색 모자와 알에 옅게 색이 들어간 뿔테 안경과 검은색 마스크가 들어있었다.

“이게 뭡니까?”

“집행자의 이름으로 이 일을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강우는 말없이 안 실장이 건넨 옷들로 갈아입었다. 강우는 마스크럴 턱 아래로 걸쳐놓으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말이 짧은데, 나랑 친해요? 왜 자꾸 반말입니까?”

“그게 불만이면 너도 반말해.”

“뭐, 이런… 그럽시다, 그럼.”

안 실장은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작전은 새벽 1시에 진행됐다. 강우의 역할은 안심생명보험 본사의 정문으로 들어가 최대한 많은 인원의 시선을 끌고, 시간만 끌면 됐다. 그 사이 안 실장이 자신의 일을 마치겠다고 했다.

강우가 물었다.

“그럼 나는 언제 빠져나와?”

“신호를 보낼 거다.

“어떤 신호? 말을 해줘야 알지.”

“모를 수가 없을 테니까, 신호가 가면 도망치면 된다. 그리고 내일 오후 1시까지 회장실로 오면 된다.”

“뭔지 말해주면 덧나나… 알았어.”

안 실장은 강우가 짜증난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리고 너… 반말하지 마라.”

“반말하라며?”

“내가 너보다 10살은 많아. 그러니까 반말하지 마.”

“이랬다 저랬다 아주… 기집년도 아니고 존나게 변덕스럽네.”

안 실장은 이를 악 물며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뭐, 어쩔 건데? 일을 망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안 실장은 고개를 돌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안 실장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다른 곳에 가있을 거다. 새벽 1시다. 실수하지 마라.”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당신 볼일이나 잘 봐.”

“새벽 1시다.”

안 실장은 말을 마치자마자 옥상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강우는 난간 밖으로 고개를 빼며 눈으로 안 실장을 쫓았다. 안 실장은 떨어지는 도중 건물의 벽에 발을 내딛었다. 안 실장은 사선으로 지면을 향해 벽을 타고 뛰었다. 안 실장이 달리던 도중 뛰어올랐다. 안 실장은 낮은 건물의 옥상에 착지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 새끼… 보통 놈이 아니군.’

강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까진 아직 시간이 꽤 남아있었다.

새벽 1시까지 5분.

강우는 옥상에서 내려갔다.

강우는 천천히 안심생명보험 본사의 건물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심생명보험 본사 건물은 담벼락이 둘러져 있었다. 차가 드나드는 정문 입구 쪽은 커다란 철문이 막고 있었다.

새벽 1시까지 2분.

강우는 철문 앞에 섰다. 철문의 창살 틈으로는 건물의 정문이 보였고, 주차된 차들이 보였다. 철문 옆에 있는 경비실에서 경비원이 나왔다. 경비원은 강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거기, 뭐하는 거요?”

강우는 아무 대답도 않은 채 철문을 바라봤다.

새벽 1시까지 30초.

경비원이 손전등으로 강우를 비췄다.

“거기! 무슨 말 좀 해봐요! 뭐하는 겁니까?”

강우는 경비원을 슬쩍 쳐다봤다. 강우는 다시 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1시까지 5초.

새벽 1시 정각.

강우가 철문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경비원이 크게 소리쳤다.

“어이! 거기! 뭐하는 거냐고!”

강우는 그대로 철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쩌엉! 쾅! 콰쾅, 우지직.

철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날아갔다. 날아간 두 철문을 주차된 차 몇 대를 덮쳤다. 차들이 부서지고, 몇몇 차들의 경보가 크게 울렸다.

강우는 뒷목을 긁적였다.

‘힘 조절 잘못했네… 두꺼운 철문이라 이 정도는 해야 될 줄 알았는데….’

파괴되며 난 소리에 승용차들의 경보소리, 강우는 이목을 끄는 데 넘치도록 성공했다. 경비원은 무전기에 대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 비상! 비상! 위급상황! 어서!”

당황한 경비원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안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미친… 누가 저렇게까지 하랬나… 어쨌든 일은 더 쉬워지겠어.”

안 실장은 어디론가 이동했다.

안심생명보험 본사에 있던 대부분의 경비원, 보안요원들이 주차장으로 뛰쳐나왔다. 순식간에 강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강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려나… 방어만 해야 되나?’

경비원들과 보안요원들은 강우를 둘러싼 채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한 경호원이 무전기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여기는 안심생명보험 본사 주차장 부근, 능력자로 추정되는 남자가 있다! 여기 있는 인원들로는 막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원요청 바란다! 이상!”

경비원들과 보안요원들은 맨손, 또는 삼단봉을 든 채 천천히 강우와 거리를 좁혔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우려, 의문 등을 제기하시는 부분들은 일부분 38화 댓글에 달았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보다 나은 글로 보답드리겠습니다.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몇 자 안 되는 욕설부터 긴 비난 혹은 비판, 응원의 댓글까지 모두 읽고 있습니다.

너무 원색적인 비난만 조금 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마음이 아프거든요. ㅎㅎ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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