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44화 (44/195)

44화

한소영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도 이성 중급 정도의 일들은 가져올 수 있어요. 이성 중급 일들을 몇 번 처리하면 상급, 그 위까지도 가능해지겠죠.”

“그런데?”

“문제는 일을 해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아직 제대로 오픈도 안 했으니 당연한 거지만, 거래를 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강우… 아니, 집행자, 당신이 일을 좀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연결해줄 수 있는 일도 많아지고, 몬스터 관련 물품 거래를 하려는 사람들도, 일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죠. 당신은 지금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몸값이 올라갈 거예요.”

강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핫! 지금 나랑 같이 일을 하자는 거야?”

한소영은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상부상조하자는 거죠. 잘 생각해봐요. 어차피 당신도 블랙마켓에서 거래를 할 거 아니에요. 이제 막 이 바닥에 들어온 당신한테 좋은 조건에 일을 잡아주지도 않았을 거고, 아마 신경도 많이 써주지 않았을 거예요.”

강우는 이부선이 F.N.C 일을 잡아줄 때 대전 상대에 대해서도 제대로 말을 안 해줬던 것을 떠올렸다. 한소영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제 말이 맞죠?”

“그때와 지금은 달라. 내가 퍼플 헤드 클랜뿐만 아니라, 레드 헤드 클랜까지 잡았다는 걸 알면 대우가 다를 걸? 난 일을 어디서 구해도 상관없어. 내가 굳이 너하고 일해야 되는 이유가 있나?”

“당연히 다른 업자들하고 다르게 대우를 해드리죠.”

강우는 거만하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어떻게?”

“업자들은 일을 연결시켜주면서 수수료를 떼죠. 보통 그 수수료는 당신이 받을 돈의 25퍼센트에요. 저는 수수료를 20%만 떼겠어요.”

“겨우 5퍼센트 차이잖아? 5퍼센트라….”

강우는 한소영을 향해 오른손을 쫙 펼쳐 보이며 말했다.

“5퍼센트. 좋네. 수수료를 5퍼센트만 떼.”

“네? 그건 말도 안 돼요.”

“싫으면 관두던가.”

한소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한소영이 눈을 뜨고, 강우를 보면서 말했다.

“15퍼센트.”

강우는 양손 깍지를 끼고 몸을 숙이며 말했다.

“10퍼센트.”

한소영은 두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요. 대신에 조건이 있어요.”

“무슨 조건?”

“일은 저희하고만 하는 거예요. 제가 당신하고 독점계약을 하겠다는 거죠. 일은 넘치게 가져다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요.”

“그건 곤란하지. 네가 물어다 줄 수 없는 일도 있고 말이야. 대신 네가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면, 최우선으로 처리하겠어. 내 입장에서도 수수료를 적게 떼는 게 좋으니까. 네가 좋은 일을 가져다주면, 부르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이쪽 일만 하려고 하겠지.”

한소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당신 같이 좋은 조건으로 블랙마켓에서 일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것도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죠.”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럼요. 얼굴 가죽이 다 벗겨진 상태로도 당신에게 입금할 돈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었다고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상태에서도 당신이 해준 복수에 대해서 고마워하며 돈을 입금했고요.”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법 믿음이 가지만… 그래도 널 믿지는 못해. 애초에 네가 김민지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피곤해지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왜 진실생명보험 측에서 당신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한 거죠?”

“그건 알 거 없어. 내가 그쪽과 연관됐다는 사실 자체도 잊는 게 좋을 거야. 뭐, 어차피 다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일이지만….”

한소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실 관심도 별로 없었어요.”

강우는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을 가리킨 뒤, 손가락 끝을 한소영에게로 향하며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 두고 보겠어.”

강우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중에 연락하지. 괜찮은 일거리가 있으면 먼저 연락주고.”

“잠시만요.”

강우는 한소영에게로 다시 몸을 돌렸다. 한소영이 구형 휴대폰을 강우에게 건넸다. 강우는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강우는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건 뭐지?”

“블랙마켓 거래용으로 쓰라고요. 충전식이라 달마다 무인기나 휴대폰 대리점에 가서 돈을 충전해서 쓰면 돼요. 망가지면 말해요. 얼마든지 내줄 수 있으니까.”

강우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알았어. 잘 쓰도록 하지.”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돈은 꼭 현금으로 보관하고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별걸 다 챙겨주네… 일이나 구해둬.”

“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당신은 예거 쪽에서 최고가, 나는 업자 중에서 최고가 되는 거예요.”

강우는 아무 대답도 않은 채 몸을 돌렸다.

‘다른 블랙마켓이랑 비교해봐야겠어. 정말 제대로 돈을 쳐준다면야….’

한소영은 강우의 뒤에 대고 말했다.

“연락드릴게요.”

강우는 팔을 들어 뒤로 손등을 보인 뒤, 한소영의 블랙마켓을 빠져나갔다.

강우는 건물에서 빠져나와 한소영의 마켓을 뒤돌아봤다.

‘처음엔 설마했는데 진짜로 블랙마켓을 차렸을 줄이야….’

강우는 몸을 돌리며 한소영이 건넨 휴대폰을 확인했다. 휴대폰에는 한소영의 번호만이 저장돼있었다. 강우는 블랙마켓용 휴대폰 번호를 자신의 휴대폰에 입력해뒀다. 강우는 휴대폰들을 양 주머니에 넣은 뒤, 가평 블랙마켓을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네가 집행자냐?”

세 명의 남자가 강우의 앞을 막아섰다. 강우는 가만히 서서 남자들을 바라봤다.

‘이 새끼들은 또 뭐지?’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껄렁거리며 강우에게 다가왔다.

“네가 집행자냐고 묻잖아. 모른 척하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아? 그런 병신 같은 복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건 너밖에 없어.”

뒤에 서있던 덩치가 큰 남자가 이마에 주름이 잔뜩 가도록 눈을 희번득 뜨고 있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마른 남자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낄낄거렸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들 뭐야?”

마른 남자가 말했다.

“너… 재밌는 짓을 해놨더군.”

“무슨 소리야?”

“네가 병신을 만들어놓은 신준혁이는 내 후배야.”

덩치 큰 남자가 강우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덩치 큰 남자는 위협적으로 강우를 내리깔아보며 말했다.

“신준섭이야 옛날부터 덜 떨어진 놈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서 언젠간 그런 꼴을 당할 줄 알고 있었지.”

강우는 양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말했다.

“그래서 뭐? 그렇게 될 놈이었으면 상관없겠네.”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말했다.

“신준혁은 얘기가 다르지….”

마른 남자가 강우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어디 조용한 곳으로 자리 좀 옮길까?”

마른 남자는 주변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보는 눈도 많고, 블랙마켓에서는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되거든.”

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너희를 따라가야 되지?”

“그럼 여기서 평생 살 건가? 어차피 네가 여기를 벗어날 때 우린 따라갈 거니까 피차 시간낭비하지 말자고.”

강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있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강우와 남자들에게 고정돼있었다. 강우는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앞장서.”

남자 둘이 앞장섰고, 덩치 큰 남자가 강우의 뒤로 붙었다. 강우는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넌 왜 내 뒤에 붙냐?”

“네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도망칠 이유가 있냐?”

덩치 큰 남자는 인상을 잔뜩 쓰며 강우를 노려봤다. 덩치 큰 남자는 얼굴이 붉게 상기돼 이마에까지 핏대가 섰다. 마른 남자가 말했다.

“조금만 참아라.”

덩치 큰 남자는 씩씩거리며 강우를 노려보기만 했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못 건드리나보네? 병신새끼.”

덩치 큰 남자는 양 주먹을 꽉 쥐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강우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덩치 큰 남자는 당장이라도 강우의 뒤통수를 후려쳐 두개골을 부시고 싶어 했지만, 숨을 크게 쉬며 화를 억눌렀다.

남자들이 인적이 드문 산 중턱에 멈춰 섰다. 강우는 여전히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고개를 까딱였다.

“뭐, 이제 어쩌자고.”

마른 남자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자넬 해치려는 마음이 없어.”

“뭐?”

“나는 제안을 하려고 온 거야.”

강우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덩치 큰 남자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돼지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은데?”

덩치 큰 남자가 주먹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 이 개자식….”

마른 남자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멈춰!”

덩치 큰 남자는 곧장 손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른 남자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저 제안을 하러 온 거야.”

“무슨 제안?”

“신준혁과 나는 같이 사업을 하고 있었어. 게다가 이번에 큰일을 하나 앞두고 있었지. 그런데 누구 덕분에 강제로 은퇴를 했지 뭐야… 녀석은 이제 일은커녕, 밥도 혼자 못 먹는 처지가 됐다고.”

강우는 짜증난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서 요점이 뭔데? 나 바쁜 사람이니까 용건만 간단히 해.”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말했다.

“저 녀석 그냥 죽여버리면 안 됩니까?”

마른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입 다물어.”

마른 남자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같이 사업을 좀 하자는 거지. 다음 주에 우리는 어떤 곳을 칠 거야. 그런데 인원이 좀 모자란단 말이지. 레드 헤드 클랜 녀석들 중 절반 이상이 다신 이쪽 일을 안 할 거라더군. 약해빠진 놈들이지… 게다가 중요한 멤버 중 하나였던 신준혁이 일을 못하게 됐고….”

“내가 말했지. 요점만 간단히 하라고.”

수염을 기른 남자와 덩치 큰 남자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인상을 찌푸렸다. 마른 남자는 강우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같이 일을 해볼 생각이 없냐는 거야. 난 옛정을 운운하고, 손해를 보는 그런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야. 득실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 난 네가 우리와 같이 일을 해줬으면 해. 네가 함께 해도 인원이 모자라는 건 여전히 마찬가지지만, 레드 헤드 클랜을 혼자 무너트릴 정도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강우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고, 페이를 말해야지.”

“쉽게 말하자면 강도질과 비슷한 거지. 하지만 불법은 아니야. 그리고 보수는 1,500만 겔드야. 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을 거야. 일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소요시간도 1시간 내외로 보고 있어. 어떤가?”

강우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강우는 마른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싫어.”

“뭐?”

“싫다고. 지금 그 정도 조건이 되는 일들은 널렸어. 그런 상황에서 내가 굳이 찝찝한 일을 할 필요는 없잖아?”

마른 남자는 타이르듯 말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게 어때? 이번 기회에 좋은 관계를 맺고, 앞으로 큰돈이 될 기회도 많이 잡을 수 있을 거야.”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에 말했다.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희하고 같이 일하면서 큰돈은 못 벌 것 같아. 너도 거울만 봐도 알지 않냐? 관상이 딱 그래. 빈곤하게 생겨가지고….”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소리쳤다.

“너 이 새끼 진짜 죽고 싶어?”

마른 남자는 콧수염을 기른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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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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