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콧수염을 기른 남자는 씩씩거리며 강우를 노려봤다. 마른 남자가 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후회 없겠나?”
“후회할 리가 없잖아.”
“후회할 텐데….”
강우는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으며 말했다.
“더 할 말 없으면 난 간다?”
덩치 큰 남자가 강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딜 가려고?”
마른 남자가 말했다.
“놔줘라.”
“하지만 형님….”
“그냥 놔줘.”
강우는 양손 깍지를 껴 뒤통수에 가져다 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른 남자가 강우의 뒤에 대고 말했다.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강우는 뒤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럴 일 없다니까. 그리고 한마디만 더 하면 그냥 지금 죽여버린다?”
콧수염을 기른 남자와 덩치 큰 남자가 크게 소리치려는 듯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마른 남자가 손을 들어 보였고, 나머지 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마른 남자는 말 없이 눈을 가늘게 뜨고 강우를 쳐다볼 뿐이었다. 강우는 남자들을 뒤로한 채 자리를 떴다.
강우는 걸음을 옮기며 남자들이 뒤를 쫓아오는지 고개를 돌렸다. 강우의 뒤를 쫓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갈수록 적만 늘어나는 느낌이네.’
강우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강우는 소아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메일로 연락드렸던 사람입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고 싶은 건지 궁금하네요. 그럼 시간 될 때 한 번 뵙도록 하죠.-강우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강우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장롱 안을 확인했다. 가방은 강우가 놓고 갔을 때 그대로 잘 있었다.
‘얼른 이사도 하고, 금고도 하나 들여놔야겠어.’
강우는 복면을 벗고, 지갑을 집어 들었다.
‘아니지. 일단 계좌 안에 든 돈은 놔두자. 이건 생활비로 계속 쓰고, 앞으로 블랙마켓 쪽에서 들어오는 돈은 따로 보관하고….’
강우는 가방 안에서 돈과 함께 받은 검은색 케이스를 꺼내들었다.
‘한 번 볼까….’
강우가 케이스를 열려고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강우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소아란 닉네임을 쓰는 유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성격 급한 사람인가보네….’
강우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닉네임이 좀 여성스럽긴 했지만, 진짜 여자일 줄이야.’
소아란 닉네임의 유저가 말했다.
“연락주셔서 고마워요. 바로 전화를 드린 게 실례가 안 됐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소아란 닉네임의 유저는 자신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는 이소아라고 해요. 괜찮으시면 한 번 뵐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절대 다단계나 이상한 종교단체 권유하는 거 아니에요. 안심하셔도 돼요. 아, 만약 다단계를 하시거나 특정 종교에 다니신다면 죄송해요, 그러니까….”
이소아가 횡설수설 말을 버벅거렸고, 강우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나서 얘기하죠.”
“아, 그럴까요? 그럼 언제 만나죠?”
“편하신 시간 정해서 연락주세요.”
“음… 그럼 오늘 어떠세요?”
“오늘요?”
이소아의 목소리는 약간 들뜬 듯 밝았다.
“네,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같이 식사나 해요.”
“아, 네. 그러죠 뭐.”
“그럼 제가 이따 연락드릴게요.”
이소아가 전화를 끊었다. 강우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피식 웃었다.
‘특이한 여자네.’
강우는 벗어둔 복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우는 복면을 집어 들어 들여다봤다. 뺨에 난 구멍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소리도 여전히 변조돼서 나오고, 찢어진 부분만 어떻게 수선하면 될 거 같긴 한데….’
강우는 검은색 케이스를 집어 들어 귀에다 대고 흔들었다. 케이스는 아주 가벼웠고, 안에서 무언가 흔들리긴 했지만 아주 가벼웠다.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강우는 천천히 케이스를 열었다. 케이스 안에는 신축성이 있고, 길이 조절도 가능한 검은색 밴드 하나가 들어있었다. 밴드의 한쪽에는 터치가 되는 전자종이가 코팅돼 붙어있었다. 전자종이의 양옆으론 티타늄으로 된 조그만 버튼들이 달려있었다.
강우는 밴드를 들여다봤다.
‘이게 뭐야?’
밴드 옆에는 설명서가 있었다. 강우는 설명서를 들여다봤다. 제품의 이름은 ‘T.T.C(Touch it, Then Change you)’였다. 제품의 사용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밴드를 목걸이처럼 착용한 다음 자신의 기준으로 전자종이를 길게 터치하며 오른쪽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됐다. 반대로 사용을 멈추고 싶을 때는 전자종이를 길게 터치하며 왼쪽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됐다.
T.T.C는 전신에 홀로그램을 입혀주는 제품이었다. 옷을 벗고 있어도, 옷을 입고 있어도 그에 알맞게 홀로그램으로 겉모습을 바꿨다. T.T.C는 특수강화코팅이 돼있어 큰 충격이나 화기, 방수 모두에 강하다고 돼있었다. 강우의 눈을 끄는 문구가 있었다.
-사용자가 죽더라도 변신 모습은 끝까지 유지시켜드릴 것입니다.-T.T.C에는 겉모습을 바꾸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자종이 부분을 조정해 큰 폭의 온도는 아니지만, 냉난방도 가능했다.
강우는 설명서와 T.T.C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대로라면… 최곤데? 나한테 꼭 필요했던 거잖아. 나를 위한 제품이나 다름없어. 그런데 김현태 그놈은 이런 걸 어디서 난 거야?’
강우는 T.T.C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혹시 함정 아니야? 목에 두르면 점점 조여들어서 목이 잘려나간다거나… 아니면 최소 gps 추적기 같은 게 붙어있다거나….’
강우는 컴퓨터를 켜서 T.T.C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T.T.C는 실제로 있는 제품이 맞았다. 김현태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T.T.C는 미국의 한 회사에서 개발한 제품이었고, 출시 당시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제조사에서는 큰 버그를 잡아내지 못한 채 발매했다. 그것은 사용자에 따라 다르게 구현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모습이었다.
강우는 아직 해외에 소수 마니아층이 T.T.C를 사용한 모습들을 이미지로 볼 수 있었다. T.T.C 사용한 사람들의 모습들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은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예거가 T.T.C를 착용 중인 사람을 몬스터로 오인해 죽인 사건도 있었다. 과거 영화촬영 때문에 특수 분장을 했던 배우, 괴물 코스프레를 한 사람 등이 죽었을 때만큼 안타까운 일이었다.
T.T.C는 태양열 및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전까지 되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하지만 일관되지 못한, 선택이 불가능한, 그리고 끔찍한 디자인과 몬스터로 오인이 가능한 위험성 때문에 미국 내에서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몇몇 주(states)에서는 판매가 금지됐고, 소비자들 또한 거의 구매를 하지 않아 사라져버린 비운의 제품이었다.
현재는 소수 마니아층이 보유 중이고, 일부 비싼 값에 거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찾으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적었다. 그리고 구입해도 집에서 혼자 착용해 즐기는 것 말고는 의미도 적었다. 코스프레에 사용하기엔 특정 캐릭터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 또한 목소리 역시 특정 목소리로 고정되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강우는 T.C.C의 이미지들을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봤다. 사용자의 몸에 맞춰져서 홀로그램이 입혀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영장류의 모습은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 부분은 개, 고양이, 원숭이, 도마뱀, 공룡, 해골 등 다양한 모습을 띠었다. 머리를 중심으로 몸 역시 영장류에서는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이뤄졌다. 파충류는 몸에 비늘을 가졌고, 해골에는 몸 역시 뼈가 드러나는 등 다양했다.
강우는 손에 들린 T.C.C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기능은 마음에 드는데… 이거 뭐, 완전 괴물 코스프레네.’
강우는 밴드를 양손으로 집어 들었다.
‘뭐, 한 번 해볼까?’
강우는 밴드를 머리 위로 쓰고, 목에 딱 맞게 길이를 조절했다. 강우는 터치를 하는 곳에 손을 가져갔다. 그때 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소영에게서 받은 휴대폰이었다. 강우는 휴대폰으로 손을 옮겼다. 강우는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뭐야, 벌써 일 잡았어?”
“아, 네. 잡긴 했는데, 꼭 그거 때문에만 전화한 건 아니고요.”
“그럼 또 뭐가 있는데?”
“지금 뉴스 한 번 봐보세요.”
“뉴스? 뭔 뉴스? 말을 똑바로 해야 알지.”
“보시면 알 거예요.”
강우는 컴퓨터 앞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알았어. 잠깐만.”
강우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컴퓨터로 실시간뉴스를 보려고 인터넷을 켰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비행기 추락’이 떠있었다. 강우는 실시간 검색어들을 훑어봤다. 1위 비행기추락, 2위, 김현태, 3위 진실생명보험, 4위 김현태 사망, 5위 비행기 폭발 원인 순으로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강우는 검색어들을 보고, 뉴스기사를 눌러보며 말했다.
“이게 다 뭐야? 김현태가 죽었어?”
한소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현태 말고도 전부…….”
“이따 내가 다시 전화할게. 일단 끊어.”
강우는 기사들을 들여다봤다.
메인 헤드라인은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발하면서 추락한 것이다. 비행기에 탑승해있던 사람들 중 실명이 밝혀져 있는 건 김현태 뿐이었다. 그 외에 안석훈과 김민지, 측근들 십여 명이 탑승해있었다고 밝혀져 있었다.
비행기의 목적지는 강우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이었다.
‘나한테는 스위스라고 했었는데… 어차피 내가 바로 같이 못 갈 것을 알고, 곧바로 함께 스위스로 가자는 척 이빨만 털었던 건가.’
비행기는 태평양을 횡단하던 중 원인불명의 폭발사고가 일어났고, 바다로 추락했다. 시신의 수습은커녕, 비행기를 건져 올리는 것조차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강우는 컴퓨터 앞에서 벗어나 침대에 걸터앉으며 생각했다.
‘어쨌든… 다 죽었구만.’
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코웃음을 쳤다.
‘뭔가 허무하네. 앞으로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고민이었는데… 어쨌든 나한테는 잘 된 일이지. 더 이상 고민할 일도 없겠군.’
강우는 한소영이 건넨 폰을 손에 쥔 채 생각했다.
‘이 년 입만 잘 단속하면 되는데… 사실 여러 가지로 조건도 좋고, 잘만 하면 내가 얻을 게 많을 거 같단 말이지… 은근히 믿음도 가고.’
강우는 한소영과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강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한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소영은 울다가 받은 듯 훌쩍거렸다. 강우는 덤덤하게 통화를 했다.
“그래서?”
“아마 시신도 못 찾을 거예요. 태평양에서 어떻게 찾겠어요. 민지랑 평생 연락을 안 할 것처럼 굴었는데… 그렇게 가버렸다고 하니….”
“그거야 그렇겠지… 나하고 좋은 사이들은 아니었지만, 싹 다 그렇게 죽어버렸다니까 괜히 찝찝하고 그렇네.”
한소영은 비행기 추락 사실을 알리기도 하고, 이번 주 중으로 일이 잡힐 것 같아 연락을 했다고 했다. 한소영은 일에 관해선 확실해지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강우는 전화를 끊고 양손 깍지를 껴 뒤통수에 가져다 댔다.
‘어쨌든… 깔끔하게 됐네. 스위스은행 계좌는 날아갔지만, 앞으로 금고에 보관하면 되니까….’
강우의 원래 휴대폰에는 문자가 와있었다. 이소아에게서 온 문자였다. 이소아는 오후 7시에 강남역 부근에서 만나자고 했다. 강우는 그렇게 하자고 답장을 했다. 강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강우는 목에 차고 있는 T.T.C로 손을 가져갔다.
‘이거나 사용해볼까… 어떨지 궁금하네.’
강우는 거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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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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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는 곧 올리도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