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이소아는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는… 2단계에서 3단계 사이랄까요? 가능하면 몬스터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사람을 해치는 몬스터들은 어쩔 수 없으니까요. 몬스터 가드들은 대부분 2단계에서 3단계 사이에 속한다고 보시면 돼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저한테 몬스터 보호 협회에 들라는 건가요?”
이소아는 강우의 예상을 깨는 답변을 했다.
“아니요.”
이소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강우를 보며 말했다.
“저는 그저 몬스터를 죽일 대상, 돈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측면으로도, 조금이라도 생각해주시길 바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해요. 강우 씨는 예거로서 활동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몬스터를 보호하는 사람도, 몬스터의 끝을 정해줘야 하는 사람도 필요하니까요.”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의도시라면 분명하게 전해졌네요.”
“부담 안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부담은요. 전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것저것 한 번에 말씀을 드리느라 정신없었는데, 나중에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다 설명해드릴게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이소아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식사도 다 했는데 나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요?”
“그러죠.”
강우와 이소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강우가 계산을 하려고 할 때, 이소아가 종업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강우가 당황하며 말했다.
“제가 살게요.”
이소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제가 불러냈는데 제가 사야죠.”
이소아는 완고했고, 강우는 하는 수없이 지갑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럼 커피는 제가 살게요. 그래도 돈을 너무 많이 쓰시는데….”
“비싼 커피 얻어 마실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강우와 이소아는 삼겹살집을 빠져나와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강우와 이소아는 커피를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소아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다음에 같이 나가볼래요?”
“어디로요?”
“하운드 잡으러요. 아, 물론 죽이지 않고요. 보수도 있어요.”
강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이소아의 눈치를 살폈다. 강우에게 하운드는 동네 똥개나 다름없었다. 돈도 별로 안 될 것이 뻔했고, 죽이지 않고 잡는 것은, 더군다나 보호 협회에서 하는 일이니 최대한 상처 없이 잡는 일이란 강우에게는 더욱 귀찮은 일이었다. 강우는 거절하려 했다. 강우가 입을 열려는 찰나, 활짝 웃는 이소아와 눈이 마주쳤다. 강우는 마음에 있는 말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그러죠 뭐. 하운드라면 몇 번 잡아보기도 했고….”
“정말요? 잘됐다! 좋은 일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까 더 보람찰 거예요. 시간도 그리 오래 안 걸릴 거고요. 제법 재미도 있어요.”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수락해버렸네… 뭐, 데이트라고 생각하자.’
강우는 이소아를 바라봤다. 이소아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소아는 강우의 마음을 아는 듯 말했다.
“하운드 잡는 건 몇 시간이면 끝날 거예요. 일이 끝나면 같이 밥 먹어요.”
“그래요. 좋죠.”
이소아가 시간을 확인한 뒤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이소아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미안한 듯이 말했다.
“이거 어쩌죠? 제가 들어가 봐야 될 거 같네요. 시간이 이렇게 된 줄도 몰랐네요.”
강우는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
“많이 늦었네요. 오늘은 이만 들어가죠.”
이소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얘기 잘하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미안해요.”
강우는 일어나서 의자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미안하긴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했네요.”
“그러게요.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저도 그렇네요. 일단 나가시죠.”
강우와 이소아는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강우와 이소아는 서로 얼굴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던 중 이소아가 걸음을 멈추고, 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가면 돼요.”
“제가 바래다줄게요.”
이소아는 오른쪽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이쪽으로 가면 금방이에요.”
“그래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다음에 봐요.”
“네, 하운드 잡으러 가는 일은 확실히 날짜가 잡히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그래요. 연락줘요.”
이소아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이소아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쳐다봤다. 강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이소아와 즐겁게 만났던 여운을 느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강우가 선릉역 부근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아아아악!”
“이런 씨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한 건물의 위로 올라갔다. 강우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쪽을 찾았다. 사람들 십여 명이 동시에 뛰어다니는 곳이 보였다. 뒤로는 커다랗고 시커먼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몬스터로군.’
강우는 T.C.C에 손을 가져갔다. 강우의 전신에 검은 홀로그램이 덮이기 시작했다. 엉겨 붙는 어둠은 강우를 끈적하게 집어삼켰다. 양팔에는 뱀처럼 굵은 혈관들이 솟아올랐고, 양다리는 가죽과 근육, 그것을 지탱하는 뼈만 남은 듯 쩍쩍 갈라졌다. 상어의 것과 같은 이빨은 뭐든지 잘게 찢어버릴 모습이었다. 선분홍색 잇몸과 부분적으로 드러난 붉은 속살은 금방이라도 피를 뚝뚝 흘릴 것 같았다. 칠흑 같은 두 눈은 전신의 검은 몸보다도 더, 밤하늘보다 어두웠다.
T.C.C는 강우의 두꺼운 옷에 맞춰 변형했다. 옷의 부피에 맞춰 강우가 집에서 반팔 티셔츠 위로 사용했을 때보다 더 크게 만들어져있었다.
강우는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파카라도 입고 사용하면 헐크되겠네 아주….’
강우는 사람들과 몬스터가 뛰어다니는 곳을 향해 뛰어내렸다. 강우는 유성처럼 지면을 향해 날아갔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가장 뒤에서 뛰고 있던 남자에게 몬스터 하나가 근접했다.
“찌지익!”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아!”
쥐와 흡사한 모습을 한 몬스터가 튀어 올랐다.
콰아아아앙!
도망을 치던 남자가 충격으로 날아갔다.
“으악!”
남자는 앞으로 날아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앞서서 도망치던 사람들은 뒤에서 들려온 굉음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충격에 날아간 남자는 “으으….”하고 신음을 하며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렸다. 뒤로 쫓아오던 몬스터는 보이지 않고, 흙먼지가 잔뜩 일어나고 있었다. 흙먼지 뒤로는 거뭇거뭇한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보였다.
흙먼지가 걷히고, 강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으아아아악! 또 다른 몬스터야!”
“으… 으… 괴, 괴물이다!”
“저건 또 뭐야… 오늘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사람들은 강우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강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도망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별 수 없나….”
강우는 발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시칸’의 시체 한 가운데 서있었다. 시칸은 몸통 중앙이 터져 큰 구멍이 나있었고, 강우가 그 가운데 서있었다. 주변으론 터져나간 시칸의 피와 내장으로 바닥이 더럽혀져있었다. 강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시칸의 시체 가운데서 빠져나왔다.
뭉클.
강우가 시칸의 시체 일부분을 밟았다. 강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발바닥을 바닥에 직직 그으며 투덜거렸다.
“에이, 더러워. 이 씨팔놈의 쥐새끼들….”
강우의 뒤로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에는 최소 스무 마리 이상의 시칸들이 몰려와있었다.
시칸은 일성 하급에서 상급까지 넘나드는 몬스터였다. 회색 혹은 검은색 빛깔이었고, 크기는 1m부터 3m이상 되는 것들까지 다양했다. 시칸들 중 이성 하급까지 올라가는 것도 있었다. 이성 하급인 시칸들은 하얀색 털에 파란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크기는 평균 2m정도로, 꼬리는 털뭉치처럼 짧았고, 커다란 발톱이 달린 두 앞발과 날카로운 앞니를 가지고 있었다.
강우의 앞에 나타난 시칸들은 대부분 일성 하급에서 중급이었고, 두 마리만이 일성 상급으로 커다란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강우는 시칸들, 그리고 주변을 훑어봤다. 다친 사람이나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시칸들은 서로가 대화를 하듯 “찌직” “찍찍”거리며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쥐새끼들을 맨손으로 잡기엔 좀… 쥐새끼들 어차피 돈도 안 될 텐데….”
강우는 사람들이 도망쳐간 길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얻는 것도 없는데, 왜 구해주려고 이 지랄을 떨었지? 더군다나 구해준 은인한테 괴물이라고 하면서 도망치는 놈들한테…….”
시칸들은 강우에게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시칸들은 작전을 짜듯 반 부채꼴로 진영을 짠 다음 숨을 죽였다.
강우는 시칸들을 보며 고민했다.
‘어떻게 죽여야 할까….“
강우는 옆에 있는 가로등으로 시선을 옮기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 좋은 게 있었구만.”
강우는 오른손으로 가로등을 움켜쥐었다.
우그그그그.
강우는 말랑한 지점토를 잡듯 가로등을 집어 들었다. 강우는 오른손에 든 가로등을 치켜 들며 말했다.
“모두 죽어라.”
강우는 시칸들을 향해 가로등을 휘둘렀다.
후웅, 콰앙!
가로등이 시칸들 위를 덮쳤다.
“끼익!”
“찍!”
가로등에 찍힌 시칸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로등을 거세게 휘둘렀다. 또다시 가로등에 맞은 시칸은 한 번에 즉사했다.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가로등을 치켜들고 중얼거렸다.
“평소 같으면 힘 조졸 연습이라도 했겠지만, 너희들은 역겨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
쾅! 콰앙! 쾅, 쾅, 쾅, 쾅!
강우가 가로등을 내리칠 때마다 깔린 시칸이 즉사하거나 이미 죽어있는 시칸들이 바닥 위로 튀어 올랐다. 강우는 가로등을 빠르게 휘둘러댔고, 남은 시칸들은 일성 하급 두 마리, 일성 중급 다섯 마리, 일성 상급으로 가장 커다란 두 마리뿐이었다.
강우는 가로등을 여전히 손에 든 채 죽은 시칸들을 보며 말했다.
“오, 제법 힘 조절이 잘 됐잖아?”
강우가 가로등으로 내리쳐 죽인 시칸들은 모두 일격에 즉사했지만, 시체의 훼손 정도가 심하지 않았다. 대부분 머리가 깨지거나 등뼈의 박살, 내장이 터지긴 했지만, 강우가 힘 조절에 완전히 실패했을 때처럼, 강우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인 시칸처럼 완전히 터져버린 놈은 하나도 없었다.
강우는 손에 들고 있는 가로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무기 하나 써야겠는데? 오히려 힘 조절이 쉬운 거 같아. 가로등이라도 하나씩 뽑아서 들고 다닐까?”
시칸들은 강우에게 마구 죽으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가장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일성 상급 시칸 두 마리가 찍찍거렸고, 나머지 시칸들은 명령을 듣듯 다시 진형을 갖췄다.
“찌이익!”
시칸들이 강우에게 동시에 뛰어들었다.
후우웅, 퍼, 퍼, 퍼퍼퍼퍼, 퍼어억!
강우가 손에 들고 있던 가로등으로 바닥을 쓸 듯이 휘둘렀다. 강우에게로 달려오던 시칸들이 한 번에 쓸려버렸다. 가로등에 맞은 시칸들은 빗자루에 쓸린 쥐새끼마냥 쓰레기처럼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어느새 강우의 앞쪽으로는 터진 쓰레기봉투에서 흐르는 오물처럼 시칸들의 검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제가 새로 연재하는 'Masterpiece : 7개의 조각'도 읽어주세요.
'예거'와는 다른 매력을 가진 소설입니다. ^^
다시 한 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