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강우의 블랙마켓용 휴대폰에는 한소영에게 문자메시지가 와있었다.
-이제 곧 업무를 제대로 개시하려고 해요. 일 몇 개 잡아둔 게 있는데, 만나서 얘기 좀 하죠. 확인하면 연락주세요.-강우는 블랙마켓용 휴대폰으로 우선 이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근수는 강우인 것을 알자마자 몹시 반가워했다.
“오! 집행자! 어떻게 된 거야? 번호 바꿨어?”
“이전 휴대폰 고장 나서 해지하려고요. 앞으로 이 번호로 연락주세요.”
“그래? 그럼 내 연락 못 받았겠네?”
강우는 이근수의 연락을 못 받은 척 했다.
“연락했었어요?”
“응, 연락했거든. 내 연락을 못 받았는데 이렇게 딱 맞춰서 연락한 거야? 우린 뭔가 통하는 게 있나봐! 안 그래? 하하하하!”
“무슨 일로 연락했었는데요?”
“아, 내일 경기 뛸 수 있나 해서 연락했지.”
강우와 이근수는 경기 조건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강우와 붙게 될 상대는 이성 상급 정도의 능력을 갖춘 남자였다. 이근수의 설명으로는 이제 갓 이성 상급 수준에 올랐기 때문에 쉬운 상대일 거라고 했다.
“자네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야. 자네처럼 맨손으로 싸우는 선수기도 하고, 인기가 많아서 대전료도 꽤 높을 거라고. 어때? 할 텐가?”
“물론이죠. 돈이나 두둑이 챙길 수 있게 해줘요.”
“그래! 물론이지! 나랑 같이 돈방석에 앉아보자고! 그럼 내일 오후 9시까지 강원카지노로 오라고.”
“네, 그럼 내일 보죠.”
강우가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이근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 잠깐잠깐!”
“왜 그러시죠?”
“이부선이한테도 전화 한 번 해봐. 자네한테 일거리가 있다는 거 같던데.”
“네, 그럴게요. 그럼 내일 봐요.”
강우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이부선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텔레마케팅 직원도 아니고… 바쁘구만.’
강우는 이근수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부선에게도 블랙마켓용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이부선이 연락한 이유는 이성 상급의 일거리가 있어서였다.
“이번에는 다른 프리랜서들하고 같이 일하게 될 거야. 보수는 900만 겔드. 어때?”
“생각해보고 연락할게.”
“내일까지는 연락해야 될 거야.”
강우는 이부선과 전화를 끊었다.
강우는 한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소영이 가져온 일거리는 어떤지 확인 좀 해볼까….’
한소영은 강우의 전화에 조금 당황한 듯 했다. 한소영은 현재 강우가 할 만한 일들이 네 가지 정도 있다고 했다. 강우가 물었다.
“보수부터 물어보자.”
“보수가 제일 낮은 일이 1,200만 겔드에요. 자세한 얘기는 직접 오셔서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러지. 내일 갈게.”
“네, 아무 때나 오세요.”
강우는 한소영과 전화를 끊고,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샤워를 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봤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강우는 샤워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이었다. 강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한 식사 후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강우는 T.C.C를 키고, 한소영을 만나러 가평으로 달렸다.
강우는 가평 블랫마켓까지 가는데 30분정도밖에 소요하지 않았다. 전속력으로 달리면 이보다 훨씬 빠르게도 가능했다.
강우는 곧장 한소영의 가게 문을 두드렸다. 한소영은 문을 열지 않았다. 강우는 문을 두드리며 “이봐, 나야. 문 열어.”라고 말했다. 그때 문 옆쪽에서 한소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금방 열어드릴게요.”
한소영이 문을 열었다. 한소영은 강우를 보며 말했다.
“몬스터인지 뭔지 확인이 안 돼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네요.”
강우는 한소영의 허리춤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소영은 쌍권총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겉모습에 변화를 좀 줬지.”
한소영은 강우에게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한소영의 가게 안에는 드문드문 몬스터 관련 물품들이 늘어나있었다. 강우는 물건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물건들이 좀 생겼네?”
한소영은 테이블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강우는 의자에 앉았다. 한소영은 커피 한 잔을 강우 앞에 놓으며 말했다.
“거래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죠. 거래만 하러 오면 일단 대부분 매입해버렸어요. 그 정도 자금력이 있고, 거래가 쉽게 가능하단 걸 알려야 하니까….”
강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그렇군.”
한소영은 자신의 커피를 가지고 와서 강우의 건너편에 앉았다. 한소영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먹을 때도 그 상태로 먹나요?”
“어.”
“이곳은 안전하기도 하고, 저는 어차피 알고 있는데 그냥 벗고 마시세요.”
강우는 “이건 홀로그램이야. 나한테는 이러나저러나 똑같아.”라고 말한 뒤, 커피를 홀짝였다. 한소영은 강우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알겠어요. 먼 길 오셨는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한소영은 서류 네 장을 강우에게 내밀었다. 서류들은 이번에 준비된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한소영은 서류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일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 일은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하는 일이었다. 미노타우로스는 이성 중급에서 상급 사이를 오가는 몬스터였다. 타우로스의 상위 몬스터였지만, 그 강함과 지능 면에서 비교가 불가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무기를 사용했다.
“미노타우로스 건은 1,400만 겔드. 일은 강우 씨를 포함해 다른 프리랜서 예거 한 명, 블랙마켓에서 활동하는 사람 한 명까지 세 명이서 하게 될 거예요. 지역은 양평.”
두 번째 일은 ‘헬 하운드’와 하운드들을 사냥하는 일이었다. 헬 하운드는 하운드의 상위 종으로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커다란 개였다. 헬 하운드 역시 이성 중급에서 상급을 오가는 몬스터였다.
“헬 하운드 건은 클랜하고 같이 일을 하게 돼요. 보수는 1,200만 겔드. 지역은 영등포.”
세 번째 일은 멧시가를 사냥하는 일이었다. 멧시가는 삼성 하급 몬스터로 호전적이며, 사냥하기 까다로운 몬스터로 유명했다. 삼성 중급의 예거들도 멧시가는 혼자서 사냥하는 것을 꺼려했다.
“멧시가 건 역시 클랜하고 같이 일을 해요. 보수는 2,500만 겔드. 지역은 남산입니다.”
네 번째 일은 블랙마켓이 관련된 F.N.C 일이었다. 내일 모레인 일요일 저녁에 경기를 뛰는 것이었다. 붙게 될 상대는 이성 상급의 크로아티아 출신의 남자였다.
“F.N.C 건은 정해진 보수가 없어요. 경기마다 대전료가 달라지니까요. 당신이라면 꽤 높은 금액을 받을 거라 생각돼요. 다만, 저의 경우 당신에게 다른 블랙마켓보다 좋은 대우를 약속했잖아요? F.N.C 일을 맡으시면 제가 받을 수수료의 절반을 드리죠.”
강우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F.N.C… 60퍼센트 줘.”
“이 돈은 당신이 버는 거에서 떼는 게 아니에요. 제가 받을 수수료를 당신에게 주는 거라고요. 절반이나 드린다는데도 만족을 못해요?”
“먼저 얘기를 꺼낸 건 너잖아. 좀 더 후한 대우를 해줘도 괜찮을 거 같은데.”
한소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했다.
“55퍼센트. 그 이상은 안 돼요.”
“좋아.”
“그럼 F.N.C 프로모터에게 연락할까요?”
강우는 남은 커피를 모두 들이킨 뒤 말했다.
“그 프로모터란 사람이 혹시 이근수인가?”
한소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네? 어떻게 알고 계셨죠?”
강우는 얼마 전에 경기를 뛰었던 걸 설명했다. 강우의 얘기를 듣던 한소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직접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남겨줬단 얘기죠? 오늘 저녁에도 경기가 있고?”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소영은 강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 사람하고 같이 일을 하는 건 괜찮아요. 어차피 국내 블랙마켓 F.N.C는 그 사람이 프로모터면서도 회장인 셈이니까. 다만, 앞으로는 저를 통해서 경기에 출전하세요. 오늘 있을 경기를 포함해서요.”
“어째서지?”
“블랙마켓 관련이기 때문에 저 같은 업체를 매니저 겸해서 스케줄 조정을 전적으로 맡기면, 수수료를 경기마다 받을 수 있어요. 보통 F.N.C에 출전하는 사람들이야 블랙마켓 측에게 받는 돈도 없고, 직접 연락해서 그 정도 선택하는 건 어렵지도 않으니 이근수와 직접 연락을 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한소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이근수의 입장에서야 블랙마켓에 줄 수수료를 아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 같은데, 당신의 입장은 다르잖아요. 제 수수료에서 돈을 떼어가니까요. 그러니까 경기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계약금이 생기는 거예요. 단점은 이럴 경우 펑크를 냈을 때 위약금이 있긴 하지만, 출전만 하면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F.N.C에 출전하는 걸 너에게 전적으로 맡기라는 건가? 그러면 네가 이근수와 스케줄을 조정하겠다?”
“그렇죠. 당신은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보너스를 받을 테고요. 대신 오늘 받을 수수료와 다음에 받을 수수료만 55퍼센트를 드리고, 그 다음부터는 50퍼센트만 드리겠어요.”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좋아.”
강우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오늘의 경우 이미 출전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수수료를 받아내려고?”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한소영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한소영은 강우에게도 들리도록 스피커폰을 켜둔 채 이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근수는 한참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소영이 세 번이나 더 전화를 걸었을 때, 이근수가 잠이 덜 깬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뭐야, 아침부터….”
한소영은 이근수에게 강우가 오늘 경기부터 매니저를 낀다는 내용을 알렸다. 이근수는 이에 난색을 표했지만, 하는 수 없다는 듯 동의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이미 출전하기로 했던 거니까 수수료를 줄 수 없어.”
“오늘 경기는 집행자 씨가 혼자서 출전한다고 했던 거라, 그냥 출전을 안 해도 피해가 없잖아요? 하지만 회장님 입장에서는 또 선수를 구해야 돼서 귀찮아지시지 않겠어요?”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대체 누가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협박이 아니에요. 다만, 수수료는 큰 금액도 아니고, 집행자 씨는 분명히 흥행을 보증하는 선수라는 거죠. 그러니까 더 좋은 대우를 원해요.”
이근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게 어째서 집행자 선수한테 더 좋은 대우라는 거지? 너만 공짜로 수수료를 한 번 더 챙기겠다는 얘기 같은데.”
“저는 제가 회장님에게 받을 수수료에서 일정 금액을 집행자 씨에게 지불할 거예요.”
“그게 정말인가?”
“정말이에요. 그리고 오늘 경기와 내일 모레에 있을 경기도 반드시 출전한다고 약속드리죠.”
이근수는 잠시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하지만 오늘 수수료는 평소에 받을 수수료의 80퍼센트만 보내겠어. 그리고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서 내일 모레 붙을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둬. 상대가 세지면 그 만큼 대전료도, 수수료도 높아지니 손해는 아닐 거야.”
한소영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어때요. 하시겠어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소영은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좋아요.”
“돈은 5분 내로 입금될 거야. 그럼 난 좀 더 자야겠어. 끊지.”
이근수가 전화를 끊었다.
한소영이 강우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수술 후유증으로 완벽하게 미소를 짓지는 못했지만, 전과 비교하면 입꼬리가 많이 올라갔다.
강우가 물었다.
“그럼 내가 받을 수수료는 얼마지?”
“지금 바로 드릴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한소영이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에 한소영이 강우에게 돈봉투를 내밀었다.
“420만 겔드에요.”
강우는 돈봉투를 받아들며 말했다.
“괜찮군. 그나저나 이해가 안 되네. 이근수는 뭐하려고 블랙마켓에도 이렇게 돈을 많이 떼어주는 거야?”
“상도덕이라고 봐야죠. 저희가 전부 사라지면 F.N.C 측에선 선수를 구하는 게 힘들어져요. 선수들의 대부분은 블랙마켓들이 연결해주는 거니까요.”
“전에 나한테 일을 연결해주던 블랙마켓 업자는 오늘 F.N.C 경기에 내가 출전하는 건데도 별말 없던데? 이근수와 따로 연락을 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지.”
한소영은 의자에 기대앉아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아마 이근수가 속였을 거예요. 당신하고 직접 연락을 했었다면서요. 아마 오늘 저를 만나지 않고, 그쪽으로 갔으면 이근수가 당신을 보자마자 다른 블랙마켓 업체 쪽에는 말하지 말고, 계속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자고 했겠죠.”
“내가 그런 수수료에 대해서 알게 됐을 때는?”
“보통 선수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아도 말하지는 않죠. 블랙마켓 쪽에서 수수료를 받는다고, 선수에게 좋은 건 없으니까요. 대부분 일부러 남이 돈 벌게끔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게다가 이근수 입장에서 수수료를 아끼게 해주면, 오히려 자신의 대우가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죠. 이근수도 분명히 그런 식으로 돈을 더 얹어주는 것처럼 할 테고요. 물론 예외도 있긴 해요. 가끔 사이가 좋은 업자와 선수들은 돕는 경우도 있고, 저희처럼 업자가 선수에게 일부분 액수를 떼어주는 경우도 있긴 할 거예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그럼 다 된 건가?”
“네, F.N.C 건은 마무리 됐네요.”
“나머지 일들은 어떡할 거지?”
“다른 사람들을 구하면, 그 사람들이 일을 할 거고… 아니면, 당신이 할 수도 있죠. 그전에 다른 업체가 인력을 투입할 수도 있고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보지.”
“꼭….”
“꼭 뭐?”
“오늘 꼭 출전하셔야 돼요. 안 그러면 수수료를 받는 게 아니라, 위자료를 내야 될 테니까요.”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갈 거야. 경기 끝나고 연락하지.”
강우는 몸을 돌렸다.
“이기고, 다치지 마세요.”
강우는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네, 그래야 돼요. 내일 모레 경기가 또 있으니까요.”
강우는 몸을 돌려 한소영의 가게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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