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51화 (51/195)

51화

경기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아있었다. 강우는 T.C.C를 끄고, 가평 버스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시간도 한참 남는데 천천히 가자.’

강우는 식사를 하고, 휴대폰으로 웹서핑이나 하면서 여유롭게 강원도로 갈 심산이었다. 강우가 걸음을 옮기던 중 문자메시지가 왔다. 노예빈에게서 온 문자메시지였다.

‘완전 까먹고 살았네… 갑자기 웬일이지?’

강우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오빠, 나 임신한 것 같아. 원래 혼자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아무튼 문자 확인하면 답장해.- 강우는 뒤통수를 해머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강우는 한참동안이나 가만히 서서 노예빈에게 온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뭐지? 이게 무슨 개소리야?“

강우는 노예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예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우는 몇 번이나 전화를 더 걸었지만, 노예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노예빈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지금 전화 받기 좀 힘들어. 문자로 얘기해.-

-진짜 임신한 거 맞아?-

노예빈은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사진은 줄이 가있는 임신테스트기였다. 강우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씨발….”

강우는 미간을 확 찌푸린 채 계속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내 애라는 법이 없잖아. 걸레 같은 년인데 나하고만 잤겠어? 내가 어지간히도 호구로 보였나보다….’

강우는 답장을 보냈다.

-그게 내 애라는 확신이 있어?--어떻게 말을 그렇게 할 수 있어? 오빠 애인 거 확실해!--그걸 어떻게 알아? 그리고 지금 보니까 우리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임신테스트를 했다고? 말이 되냐? 잘 쳐줘야 처음으로 한 번 생리를 안 했거나 늦어졌겠는데, 임신테스트를 했다고? 말이 되냐?--아, 진짜 오빠 때메 임신한 거 맞다고. 여자는 그냥 알 수 있어. 몸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테스트한 거야.- 강우는 노예빈의 문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까고 있네… 씨벌년….”

강우는 다시 노예빈이 보낸 임신테스트기 사진을 들여다봤다.

“미친년이 지 오줌 싸갈긴 걸 찍어서 보내고 지랄이야 지랄이… 어?”

강우는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이거 설마….”

강우는 인터넷으로 다른 임신테스트기 사진들을 검색해 노예빈이 보낸 것과 비교했다. 강우는 노예빈이 보낸 사진을 들여다보며 헛웃음을 쳤다.

“하, 하하! 미친년이 진짜….”

강우는 노예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미친년아 임신테스트기에 볼펜으로 그어서 보내면 재밌냐? 지랄도 가지가지다 씨발 진짜… 개좆같은 년아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노예빈에게 답장이 왔다.

-오빠, 미안해. 사실 지금 돈이 너무 급해서… 그러려고 그러던 건 아닌데… 나중에 일 해결되면 돈 갚으면서 사실대로 말하려고 했었어.- 강우는 조소를 띠며 문자를 보냈다.

-지랄하네 걸레 같은 년.-

강우는 휴대폰에서 노예빈에게서 온 문자메시지와 통화기록마저 모두 삭제했다. 노예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강우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야, 전화하지 마라. 어차피 수신거부할 거니까 이제 연락도 안 될 거다. 그리고 길 가다가 마주치지 마라 씨발… 진짜 재수 털릴라니까 너 같은 년이 다 있냐… 끊는다.”

“오빠, 오빠. 끊지 마봐. 내 말 좀 들어봐. 우리 일단 만나자. 만나서 얘기하자.”

“난 너랑 할 얘기 없다.”

강우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노예빈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강우는 전화를 받자마자 욕을 한 번 더 해줄 심산으로 받았다.

“난 너랑 할 얘기 없…….”

“미친새끼야 다신 연락하지 마! 이제 네 목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려! 다신 연락하지 마!”

노예빈은 저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우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이런 씨발… 뭐야 대체? 약을 처먹었나 씨발년이….”라고 중얼거렸다. 강우는 이를 악 문 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가평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강원도행 표를 구입했다. 버스 출발은 30분 후였다. 강우는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강우의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5분 정도 남았을 때였다. 서울에서 도착한 버스 한 대가 섰고, 사람들이 내렸다. 강우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가평에 도착한 버스에서는 노예빈이 내렸다. 노예빈은 뒤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뒤에는 20대 중후반의 남자가 버스에서 내리며 노예빈의 어깨를 감쌌다. 둘은 가볍게 뽀뽀를 하고, 행복해 죽겠다는 듯 웃었다. 노예빈과 함께 온 남자가 버스 짐칸에서 큰 가방을 꺼냈다. 남자가 가방을 짊어지고, 노예빈은 껌딱지처럼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강우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노예빈은 남자에게 팔짱을 낀 채 웃다가 고개를 돌렸고, 강우와 두 눈이 마주쳤다. 노예빈은 표정이 싹 굳으며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남자는 노예빈과 강우를 번갈아 쳐다봤다. 남자가 노예빈에게 물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노예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오빠.”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반응이 이상한데… 저 새끼 뭔데? 설마… 저 새끼가 그 새끼야?”

강우가 탈 강원도행 버스가 대기 중이었다.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더러운 쓰레기를 쳐다보듯 노예빈을 한 번 째려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노예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마.”

남자는 노예빈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됐어. 가만있어봐.”

남자가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강우는 무시한 채 버스 계단에 발을 걸쳤다. 남자가 강우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강우가 고개를 돌려 남자와 두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뭐야?”

“너야말로 뭐야?”

강우는 어깨에 얹어진 남자의 손을 한 번 쳐다보곤, 다시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지금 날 잡아 세운 건 넌데, 나한테 뭐냐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해야 되냐? 손이나 좀 치우지?”

남자는 강우의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대충 들었다. 아까 전화한 것도 너였다며? 예빈이가 너한테 시달리는 전화 받느라 나도 자다가 깼었다. 사내새끼가 차였다고 여자한테 스토킹하고 욕하고 그 지랄이나 떨고 있냐? 이젠 여기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어? 나 때문에 도망가는 거냐? 왜, 후달려?”

강우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남자는 강우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이를 악 물고 위협적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너도 예거라며? 예거면 몬스터나 범죄자들을 잡아야지… 일반인… 그것도 여자가 공포를 느끼게 해서 되겠냐? 난 국내 예거 일성 랭킹 7위 현준영이야… 여자나 협박하는 찌질이인 걸로 봐서는 겨우 예거 등록이나 한 새끼 같은데… 아니, 예거 등록한 것도 여자 앞이라고 허세 떤 거지? 그러고 다니다가 진짜 좆되는 수가 있어.”

강우는 버스에 걸쳤던 발을 내리고, 현준영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강우는 현준영의 손을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현준영은 온 힘을 다해 강우의 어깨로 다시 손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강우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현준영의 손은 강우가 이끄는 대로 옮겨졌다.

현준영이 인상을 잔뜩 쓰며 말했다.

“하… 힘 좀 쓴다 이거지?”

그때 버스기사가 강우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 탈 거예요 말 거예요?”

강우는 버스기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5분만 기다려주실 수 없을까요?”

“다른 사람들 기다리는데 어떻게 손님 하나 기다리자고 시간을 지체합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안 타실 거면 출발합니다.”

치이이익.

버스 문이 닫혔다. 버스는 강우를 내버려둔 채 떠나버렸다. 강우는 현준영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너 때문에 버스 놓쳤으니까 버스비는 네가 줘야겠다.”

현준영은 강우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넌 오늘 앰뷸런스 타야 될 거니까.”

노예빈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오빠, 그냥 가자.”

현준영은 여전히 강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가만 있어봐. 이 새끼 버릇 좀 고쳐줘야겠어.”

노예빈은 강우의 눈치를 살폈다. 강우는 싸늘한 눈으로 노예빈을 한 번 쳐다본 뒤, 현준영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현준영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여긴 일반인들도 많고 하니까… 따라와라.”

강우는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현준영의 뒤를 따라갔다. 노예빈은 어쩔 줄 몰라하며 뒤를 따랐다.

현준영은 걸음을 멈추고, 노예빈의 양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현준영은 노예빈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노예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빨리 와야 돼.”

“금방 올게.”

현준영은 강우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강렬하게 노려봤다. 강우는 조소를 띠며 말했다.

“지랄로 쌈을 싸먹어라.”

“따라와.”

현준영이 다시 걸음을 옮겼고, 강우가 뒤를 따랐다. 현준영은 인적이 드문 곳에 멈춰 섰다. 현준영이 강우 쪽으로 몸을 돌리고, 노려보면서 말했다.

“사내새끼가… 예거인 놈이 저런 연약한 여자나 괴롭히고… 잘못도 인정 안 하고… 오늘 내가 버릇 좀 고쳐줄게.”

강우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나도 호구짓 많이 하면서 살아왔다만… 너도 참 답이 없다.”

현준영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냐?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적당히 버릇이 고쳐질 정도로만 조져줄 테니까.”

현준영은 오른쪽 주먹은 왼쪽 손바닥에 가져다 댄 채 목을 좌우로 까딱이며 몸을 풀었다. 강우는 여전히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나 참 진짜….”

현준영이 강우에게 다가서며 오른쪽 주먹을 날렸다. 강우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여 피해냈다. 현준영은 오른쪽 주먹을 다시 당기고, 곧바로 왼쪽 주먹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강우는 한 걸음 물러나 어퍼컷도 간단히 피해냈다. 현준영은 다시 오른쪽 주먹을 크게 휘둘러 훅을 날렸지만, 그마저도 강우는 몸을 뒤로 젖히며 간단히 피해냈다.

“이 새끼가!”

현준영의 양 주먹을 붉은빛이 휘감았다. 현준영의 양 팔꿈치 아래로 붉은빛이 형체를 이뤘다. 현준영은 마치 붉은빛으로 이뤄진 커다란 장갑을 낀 것 같았다. 붉은빛으로 된 손은 사람의 머리통보다 컸고, 팔뚝 부분의 두께는 웬만한 사람의 종아리보다 두꺼웠다. 붉은빛의 손으로 리치가 길어져 늘어트린 양팔의 손끝은 무릎 아래로 떨어져있었다.

현준영은 붉은빛의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적당히 하려고 했더니 안 되겠어.”

현준영이 양 주먹을 꽉 쥐며 자세를 취했다. 현준영이 강우에게 튀어와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강우는 몸을 뒤로 날려 주먹을 피해냈다. 현준영이 양팔을 넓게 벌렸다. 현준영은 날파리를 잡듯 양손바닥으로 강우를 향해 박수를 쳤다.

파앙!

강우는 가볍게 뛰어올라 현준영의 공격을 피했다. 현준영이 씩 웃으며 강우를 올려다봤다.

“잡았다!”

현준영이 강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강우는 현준영이 뻗은 손에 발을 한 번 디딘 뒤, 바닥에 착지했다. 현준영이 강우를 향해 뛰어오르며 양 주먹을 치켜들었다. 현준영은 양 주먹 밑동으로 강우를 향해 내리쳤다.

콰아아앙!

현준영은 맨바닥을 내리쳤다. 현준영이 내려친 부분은 움푹 패여 부서져있었다. 현준영은 자신이 내려친 부분을 보고 있었다.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재미없다.”

현준영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확 돌렸다. 강우는 어느새 현준영의 옆에 서있었다. 강우가 주먹으로 현준영의 옆구리를 끊어 쳤다.

터엉.

“커헉!”

현준영의 몸이 심하게 옆으로 꺾이며 날아갔고, 그와 동시에 양손에 감싸져 있던 붉은빛의 손이 사라졌다. 현준영은 약 7m이상을 날아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현준영은 고통스러운 듯 양손을 강우에게 맞은 부위로 가져가 몸을 웅크린 채 일어서지 못했다.

“커헉… 허억, 허억… 크흐윽….”

강우는 천천히 현준영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현준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호구새끼….”

현준영은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강우를 올려다봤다. 현준영의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더럽게 진짜….”

강우는 쪼그려 앉아 현준영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뺐다. 강우는 현준영의 지갑에서 2만 겔드를 꺼냈다.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지폐를 흔들며 말했다.

“버스비만 가져간다.”

강우는 지갑을 현준영의 얼굴에 툭 던지고는 몸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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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piece : 7개의 조각'도 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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