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강우가 누른 게시물에만 댓글들이 수백 개 이상 달려있었다.
-저는 이훈석에게 한 표.
-난 집행자한테 2천 갑니다.
-집행자로 탑승.
-이훈석은 저번에도 그랬고, 의외로 신체능력이 센 놈들한테 약함.
-이훈석은 너무 자신의 파워와 스피드에 의존해. 좀 더 기술적인 면을 살려야 된다.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활용을 못해. 저번에 김태호한테 졌을 때도 그랬고 말이야. 뭐, 김태호야 급이 좀 다르지만.
-이 글 쓴 새끼 집행자 빠네.
-집행자는 오타쿠계의 신성이다. 강력한 오타쿠.
-집행자가 총알을 막아냈을 땐 충격이었지. 그건 일반 총알도 아니고, 안똔의 힘이 들어간 총알이었는데 말이야.
-안똔 그 새끼는 항상 무기빨이었어. 어차피 금방 떨어질 별이었지.
-안똔이 언제부터 별이었냐? 그 새끼 경기는 항상 재미도 없었음.
-집행자는 아마 마법이나 이능력을 쓰는 놈이 잘 잡을 듯.
-다들 집행자가 퍼플 헤드 클랜이랑 레드 헤드 클랜 잡은 놈인 걸 모르나보네. 이미 이 새끼가 이성 중급으로 표시된 것부터 잘못된 거임. 혼자서 이성 중급 클랜을 털었는데, 아직도 이성 중급인 게 말이 됨?
-신준혁은 이성 하급 상위랑 별 다를 것도 없는 중급이었어. 지들 클랜에서나 빨아줘서 그렇지, 이성 상급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집행자가 이성 중급치고는 세다는 거 인정하는데, 그렇다고 이성 상급은 아님.
-저번에 집행자랑 안똔 붙는 거 보니까 집행자 여유 넘치던데? 이성 상급은 충분히 될 듯.
-그게 여유가 넘쳤다고? 까딱하면 나이프 맞아서 뒈졌겠구만.
-난 집행자가 이긴다고 본다.
-이훈석 전적이 있는데, 그렇게 쉽게 안 질 걸?
-3분대 집행자 승리에 간다.
강우는 댓글들을 훑어보곤, 휴대폰과 지갑 등을 락커에 넣었다. 강우는 몸을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했다.
‘별로 어려울 거 같지는 않네.’
이근수가 대기실에 들어왔다. 이근수는 강우를 보자마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누구야! 우리 집행자 아닌가!”
이근수는 강우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이야… 이런 건 어디서 난 거야? 박력 죽이는데?”
이근수는 웃음을 터트리며 강우의 어깨를 탁탁 쳤다.
“이 친구, 비즈니스를 알아! 사람들은 이런 거에 열광하지. 오늘 경기가 기대되는구만!”
강우는 이근수가 식당에서 통화하던 것을 들었기에 짜증이 치솟았다.
‘능구렁이 같은 새끼.’
강우는 속마음을 숨긴 채 씩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돈을 싹 쓸어담아야죠!”
“그래그래! 화끈하게 이겨버리라고!”
“오늘은 제 대전료가 얼마나 나올 거 같습니까?”
이근수는 팔짱을 끼며 오른손으로는 턱을 어루만졌다.
“글쎄… 경기 시작 직전까지 돈을 걸 수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 아마 자네 겉모습 때문에 배팅액이 더 늘어날 거야.”
“저도 걸 수 있습니까?”
“응?”
“저도 제 자신한테 배팅을 할 수 있냐고요.”
이근수는 입술을 살짝 내밀며 털털하게 말했다.
“그냥은 안 되지. 하지만 아무리 보안을 철저히 해도 빌미가 있으면 언젠가는 덜미를 잡히는 법이거든. 자네나 내가 직접 배팅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조작경기를 했다고 순식간에 난리가 날 거야. F.N.C는 그대로 망하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이근수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본인이 아니라, 대리인을 통해서 배팅을 해야지. 사실 굉장히 간단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해야 돼.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 있어?”
강우는 잠시 사람들을 떠올렸다. 강우에게 떠오르는 사람이라곤 한소영뿐이었다. 한소영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강우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득실관계로 묶여 강우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주는 한소영에게 맡겼을 때 위험성이 적은 정도였다.
‘고민 좀 해봐야겠네.’
강우가 말했다.
“그건 생각 좀 해봐야겠네요.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근수는 씩 웃었다.
“응, 뭐든지 물어보라고.”
“배팅은 그럼 어떤 형식으로 이뤄집니까?”
이근수는 F.N.C 도박에 관해 설명했다.
배팅의 방법은 세밀화 돼있었다. 우선 배팅은 F.N.C 경기장에 와서 직접 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강원카지노 사이트를 통하거나 ARS로 하는 것도 가능했다.
배팅에서 가장 간단한 것은 ‘승무패’였다. 말 그대로 누가 이기고, 질 것인지에 대해 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 아무리 큰 경기여도 배당률이 엄청나게 낮거나, 없다시피 했고, 여러 경기들을 묶어서 거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한 경기에만 배팅을 할 때는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서 걸었다. 예를 들어 A와 B가 시합을 할 때 ‘1분 안에 A의 승리’ ‘3분대에 B가 A를 죽인다’ ‘A가 5분대에 B를 전투불능으로 만든다’ 등 다양한 조건에 맞췄다.
또한 ‘처음으로 쓰러지는 것은 A’ ‘먼저 팔이 부러지는 것은 B’와 같은 조건들도 있었고, 선수들의 특성에 따라, 특기에 따라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이 조건으로 붙을 때도 있었다.
이근수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박도 보통이 아니지? 어때, 답변이 좀 됐나? 조건들은 그날그날 경기에 따라 달라져.”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네요. 그래서는 대부분 돈을 잃겠는데요?”
이근수가 함박미소를 머금으며 이를 드러냈다. 번쩍이는 금니에 눈이 부시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도박 아니겠어? 그게 바로 도박이야.”
이근수가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
“그럼 난 경기진행 준비하러 가야겠어. 방송 나오면 나오라고!”
“네, 이따 보죠.”
이근수는 무릎을 굽히고, 주먹을 꽉 쥐어 보이며 소리쳤다.
“화이팅!”
이근수는 웃으면서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강우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앉아 시합 시작을 기다렸다.
대기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집행자와 이훈석 선수의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양 선수는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훈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가시죠.”
강우는 이성훈의 뒤를 따라나섰다. 강우는 복도를 지나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강우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이근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화려한 데뷔전! 안똔, 그건 시작이었을 뿐이다! 다른 모습으로, 더 강해져서 온 집행자 선수의 등장입니다!”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집행자! 집행자! 집행자! 집행자!”
강우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투명케이지 안으로 들어섰다. 이근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12전 11승 1패의 빛나는 전적! 이제 더 이상의 패배는 없다! 열한 경기의 승리는 모두 2분 안에 상대선수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어 승리를 거머쥔! 핵펀치의 사나이! 이훈석 선수의 등장입니다!”
이훈석이 경기장에 들어섰다. 이훈석을 관중들의 함성을 맞으며 투명케이지 안으로 들어섰다. 이훈석은 파란색 트렁크만을 입고 있었다. 이훈석의 피부는 잘 익은 훈제계란의 빛깔을 띠고 있었고, 전신에는 날이 선 듯 했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더욱 몸이 커보였고, 격투를 위해 단련해왔음이 느껴졌다.
강우와 이훈석은 케이지 양 끝에 서서 서로를 노려봤다.
이근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오늘 경기 정말 기대가 됩니다! 김태호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근수 옆에 앉아있는 남자 해설위원, 김태호가 말했다.
“둘 다 성장세에 있는 선수들이지만, 이훈석 선수의 경우 베테랑입니다. 반면에 집행자 선수는 이제 F.N.C에 뛰어든 신인이고요. 신인의 투지냐, 베테랑의 노련미냐, 그런 부분에 관중 포인트가 있겠죠.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둘 모두 주특기가 주먹이기에 화끈한 경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근수가 크게 소리쳤다.
“네! 그렇습니다! 양 선수에게 화끈한 경기 기대합니다!”
투명케이지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훈석이 강우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강우는 양 주먹을 꽉 쥐며 자세를 취했다. 이훈석이 강우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강우는 이훈석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응? 아….’
강우도 주먹을 슬쩍 내밀었다. 강우의 주먹과 이훈석의 주먹이 맞닿았다. 이훈석은 자세를 취하며 매서운 눈으로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도 양 주먹을 꽉 쥐고 이훈석을 노려봤다.
이훈석은 곧바로 공격해오지 않았다. 강우도 조금씩 움직이며 이훈석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약 20초.
관중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근수는 이를 만회하려는 듯 말했다.
“두 선수의 탐색전이 긴데요?”
김태호가 말했다.
“아마 곧 시작될 겁니다.”
김태호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훈석이 몸을 숙이며 강우에게로 바짝 붙었다. 강우는 주먹을 치켜들어 이훈석을 향해 내리찍었다.
쉭.
이훈석은 몸을 한 번 더 숙이며 강우에게로 파고들었다. 강우의 주먹은 이훈석의 등 위로 지나갔다. 강우에게 바짝 붙은 이훈석은 왼쪽 주먹을 꽉 쥐었다.
퍼억.
이훈석이 강우의 오른쪽 옆구리를 갈겼다.
“크윽!”
이근수의 신이 난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훈석 선수의 간장치기 작렬!”
강우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이훈석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훈석은 강우의 왼쪽으로 몸을 틀어 파고들었다.
펑!
이훈석이 오른쪽 주먹으로 강우의 왼쪽 턱을 때렸다. 강우는 해머로 얻어맞은 듯 얼굴이 홱 돌아갔다. 이훈석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훈석의 몸에서 주황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훈석은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왼쪽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이훈석의 훅이 강우의 안면에 직격했다.
쾅! 텅!
강우는 주먹에 맞고 뒤로 넘어지며 뒤통수부터 땅에 꽂혔다. 강우는 그대로 바닥에서 굴러 이훈석과 떨어져 몸을 일으켰다. 강우는 오른손으로 뒷목을 잡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 씨발새끼가….”
이훈석이 강우에게 다시 다가섰다. 강우는 오른쪽 주먹을 크게 치켜들었다.
“뒈져!”
강우가 이훈석의 안면을 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이훈석은 날아오는 강우의 주먹을 피해내며 오른쪽 주먹으로 강우의 팔 안쪽을 후려쳤다.
터엉.
강우의 팔의 궤도가 틀어지며 튕겨나갔다. 강우의 오른쪽은 완전히 비어있었다. 이훈석은 왼쪽 주먹으로 강우의 안면을 노렸다.
팡!
강우는 날아오는 이훈석의 주먹을 왼손으로 쳐내버렸다. 강우는 일순 당황한 이훈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쾅!
하지만 이훈석은 곧바로 오른쪽 주먹을 올려쳤다. 이훈석의 어퍼컷이 강우의 턱에 정확히 꽂혔다. 순간적으로 강우의 양발이 지면에서 떠올랐다.
강우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아, 이 새끼 존나 짜증…….’
이훈석의 왼쪽 주먹이 옆에서 날아들었다.
콰앙!
강우는 오른쪽 얼굴에 이훈석의 주먹을 맞고 옆으로 넘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강우는 투명케이지 끝에 뒤집어진 채 처박혔다. 관중석에서 몇몇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우는 벌떡 몸을 일으켜 이훈석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씨발놈이 진짜!”
강우는 좀 더 속도를 높여 이훈석에게 주먹을 날렸다.
투두두두두두두!
강우의 주먹질은 기관총과 같았다. 주먹 한 번, 한 번이 바람소리를 내며 날카롭게 이훈석을 노렸다.
쉭, 쉬쉬쉭, 탁, 파팡!
이훈석은 강우의 주먹을 모두 *위빙으로 피해내고, 마지막에는 양 주먹으로 강우의 팔을 쳐내버렸다. 강우의 양팔이 떠버렸다. 강우는 마치 항복을 선언하듯 양손을 든 꼴이 돼있었다.
콰아아아앙!
이훈석의 주먹이 강우의 안면에 꽂혔다. 강우는 뒤로 날아가 또다시 투명케이지 끝에 처박혀버렸다.
“이 씨팔!”
강우는 벌떡 일어났다. 이훈석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훈석은 “그걸 맞고도 멀쩡하게 일어나?”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관중들 역시 이훈석에게 얻어맞은 강우를 비웃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강우의 말도 안 되는 맷집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관중들은 강우를 향해 환호성을 보냈다.
“와아아아아아아!”
“집행자! 집행자! 집행자! 집행자!”
“탱크네 탱크!”
강우는 고개를 까딱여 몸을 풀며 이훈석에게로 다가갔다.
*위빙 : [복싱] 머리나 상체를 움직여 상대의 타격, 주로 스트레이트 공격을 좌우 번갈아가며 슬리핑이나 더킹으로 피하고 동시에 공격의 기회를 노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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