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강우는 성큼성큼 이훈석에게로 다가갔다. 이훈석은 두 눈을 매섭게 뜨며 양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이고, 양 주먹을 들며 자세를 취했다. 이훈석의 몸에서 주황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둘 모두 서로의 간격 안에 들어섰다.
강우가 먼저 오른쪽 주먹을 날렸다. 이훈석은 고개를 옆으로 까딱이며 가볍게 피해냈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잡았다.”
강우는 이훈석의 목 뒤로 손을 폈다. 강우의 오른손은 갈고리처럼 이훈석의 뒷목을 잡았다. 강우는 이훈석을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이훈석은 강우가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오히려 전진했다. 순식간에 이훈석은 강우의 가슴팍까지 몸을 붙였다.
텅.
이훈석이 왼쪽 어깨로 강우의 명치를 밀쳤다. 강우와 이훈석 사이에 10cm 남짓의 틈이 생겼다.
쾅!
이훈석은 몸을 돌리며 오른쪽 주먹을 올려쳤다. 이훈석의 어퍼컷은 강우의 턱에 직격했다. 강우는 어퍼컷을 정통으로 맞고도 물러섬이 없었다. 강우의 오른손은 여전히 이훈석의 뒷목에 걸쳐져있었다. 강우는 그대로 이훈석의 뒷목을 움켜쥐려 손에 힘을 줬다.
텅.
이훈석은 이마로 강우의 쇄골에 박치기를 했다.
치이익.
이훈석은 이마를 강우의 몸에 붙인 채 고개를 확 숙였다. 이훈석은 이마로 강우의 몸을 타고 내린 다음 뒤로 몸을 날려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이훈석의 뒷목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강우의 손끝이 스쳐 생긴 상처였다. 이훈석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강우의 손에 목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운이 좋아도 뒷목의 살가죽이 통째로 날아갈 것은 분명했다.
이훈석은 목뒤를 타고 흐르는 피를 손으로 훔쳐내며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손에 묻은 피를 바라보다가 이훈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손을 한 번 털어낸 뒤, 이훈석에게 달려들었다. 이훈석은 다가오는 강우를 향해 왼쪽 주먹을 뻗었다. 이훈석이 날린 *잽이 강우의 안면에 적중했다.
팍, 파파팍.
강우는 이훈석의 잽을 안면으로 받아내며 오른손을 뻗었다. 이훈석은 오른쪽 주먹으로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펑!
강우는 안면에 이훈석의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강우의 오른손이 이훈석의 가슴팍에 닿아있었다. 이훈석은 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쫘아아악.
강우는 멱살을 잡듯 이훈석의 가슴팍을 쥐었다. 이훈석이 급히 뒤로 물러나긴 했지만, 강우의 손에 잡힌 가슴팍의 살가죽이 뜯겨나갔다. 이훈석의 가슴 중앙은 살이 전부 뜯겨나가 피를 머금은 시뻘건 속살이 드러났다.
강우의 잡아뜯어낸 이훈석의 살가죽을 너덜너덜한 걸레처럼 들고 있었다. 강우는 손에 든 살가죽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던져진 살가죽은 투명케이지에 들러붙어 천천히 미끄러져 내렸다.
강우는 양손을 들며 자세를 취했다. 강우는 양손으로 언제든지 이훈석을 잡을 수 있도록 손끝을 구부리고 있었다. 이훈석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우를 노려봤다.
김태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행자 선수가 전략을 바꿨군요. 저렇게 되면 이훈석 선수 입장에서 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들어지죠. 지금까지는 평소와는 달리, 적극적인 인파이팅보다는 노련함을 앞세워 기술적인 면을 보여줬습니다만, 온 힘을 실은 펀치가 아닌 이상 집행자 선수를 KO시킬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훈석은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이훈석의 전신에서 주황색 빛이 활활 타오르듯 치솟았다.
이훈석이 왼발을 크게 내딛으며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훈석이 뒤로 크게 치켜든 오른쪽 주먹을 중심으로 주황색 빛이 모여들어 농구공 크기의 불덩어리처럼 타올랐다.
후우우우우웅.
이훈석이 강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어어엉!
주황색 빛이 폭발하며 투명케이지 안을 가득 채웠다. 투명케이지 안으로 주황색 불꽃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고, 강우와 이훈석의 모습이 가려졌다.
이근수가 크게 소리쳤다.
“이훈석 선수! 회심의 일격!”
주황색 빛이 걷히고, 강우와 이훈석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훈석의 두 눈은 커질 대로 커져있었다.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우는 왼손으로 이훈석의 주먹을 맞잡아버렸다. 강우에게는 어떠한 피해도 없었다. 이훈석은 급하게 왼쪽 주먹을 날렸다.
빠악!
이훈석의 왼쪽 주먹은 강우의 안면에 직격했다. 강우의 입가에서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와드드드드드득!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강우는 손에 잡고 있는 이훈석의 주먹을 으스러트렸다. 이훈석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무릎을 굽히고 몸을 움츠렸다.
강우가 손을 폈다. 이훈석의 주먹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의 주먹만큼 작아져있었다. 살가죽 밖으로 부서진 뼈가 튀어나와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피를 머금은 뼈와 고기가 뒤엉킨 고기완자 같았다. 붉은 피 그리고 잘게 부서진 뼛조각과 으스러진 뼛가루가 바닥에 투툭 투툭, 떨어졌다.
강우가 손날을 세워 높이 치켜들었다. 강우는 그대로 이훈석의 쇄골을 손날로 내리쳤다.
빠악!
강우가 내리친 부분이 승모근부터 위쪽 가슴까지 움푹 들어갔다. 이훈석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강우는 오른손으로 이훈석의 안면을 움켜쥐었다.
이훈석이 작게 읊조렸다.
“사, 살려줘….”
강우는 이훈석의 안면을 잡은 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이훈석은 죽은 토끼처럼 몸을 축 늘어트렸다. 강우는 이훈석의 안면을 잡고 한쪽 벽으로 집어던졌다.
텅.
이훈석은 벽에 처박힌 채 일어나지 못했다.
김태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훈석 선수, 일어나지 못합니다! 집행자 선수의 승리!”
관중들의 환호가 울려 퍼졌다. 이성훈이 투명케이지 입구로 와있었고, 강우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강우는 대기실에서 이근수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근수가 들어섰다. 이근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봐, 오늘 경기 대단했어.”
강우는 이근수의 눈치를 살폈다. 이근수는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속사정을 아는 강우에게 이근수의 미소는 억지인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근수는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이훈석이를 그렇게까지 박살내버릴 줄이야. 정말 놀랐다고.”
“대전료는요?”
“아, 줘야지. 당연히 이번에도 현금으로 말이야!”
이근수는 돈봉투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4,700만 겔드야.”
강우는 돈봉투 속을 확인하며 말했다.
“생각보다는 적네요?”
“이번에는 멋진 KO에 대한 보너스도 없고, 자네에게 돈을 건 사람들 중 실제로 돈을 딴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었거든.”
“그게 무슨 말이죠?”
“배팅 조건에 대해 기억하지? 옵션 붙이는 거. 이번에 자네가 타격계열로 마무리를 할 거라고 돈을 건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거든. 그런데 마지막에 자네가 이훈석을 집어던졌잖아? 그게 마무리 공격으로 인정됐고, 덕분에 돈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지. 그 외의 옵션들도 꽤 있었고.”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서 저에게 들어올 돈이 적어진 건가요?”
“그렇지. 이건 당연한 거야. 우리 룰이라고. 반대로 자네가 그런 마무리를 할 것에 대해 사람들이 돈을 걸었다면, 돈이 더 늘어났겠지. 그래도 실망하지 마. 첫 번째 경기도 그랬고, 오늘 경기도 그렇고, 두 경기 만에 이렇게 많이 챙겨가는 건 자네가 거의 처음이니까.”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락커를 열어 소지품을 챙겼다.
“어쨌든 수고했어요. 내일 모레 보죠. 상대선수에 대한 건 문자로 좀 부탁합니다.”
이근수가 강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잠깐!”
강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아무래도 말이야… 내일 모레 경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단 말이지.”
“무슨 말입니까?”
이근수는 사정에 대해 설명했다.
강우는 이훈석과의 경기에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초반에는 강우가 열세에 밀리는 듯 했으나, 이훈석은 실질적인 타격은 전혀 주지 못했다.
이훈석은 이제 갓 진입하긴 했지만 엄연히 이성 상급. 강우는 이성 상급을 너무도 간단하게 제압해버린 것이다.
내일 모레 강우의 대전 상대 역시 이성 상급이었다. 그는 이훈석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오늘 강우와 이훈석의 경기를 관람한 뒤, 시합포기를 알려왔다. 강우가 무서워 도망친 것이다.
이근수가 말했다.
“너하고 붙을만한 선수가 현재 없어. 내일 모레 경기는 취소야. 하지만 다음 주중에는 경기가 잡힐 거야. 다만, 그도 이제 갓 이성 상급을 단 선수들 중에는 없어. 모두 이성 상급에서도 중위권에는 속하는 선수들이지.”
“그래서요?”
“좋은 소식은 대전료가 확 뛸 거야. 같은 이성 상급이어도 하위권과 중위권, 그리고 상위권은 실력의 격차가 엄청나거든.”
강우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쁜 소식도 있겠군요.”
“나쁘다고 하기까진 뭐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실력의 격차가 엄청나다는 거야. 사실 이제 겨우 두 경기를 치른 자네한테 이성 상급에서 중위권 선수와 붙으라는 건 조금 불합리하거든. 사실 그러면 도박 자체가 성립이 안 될 거고. 자네한테 돈을 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란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이근수는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펼쳤다.
“3일 뒤, 일요일! 원나잇 토너먼트에 나가볼 생각은 없나?”
“토너먼트요?”
“그래! 이번 토너먼트 주제는 '신성을 찾아라'거든!”
이근수는 일요일에 펼쳐질 원나잇 토너먼트에 대해 설명했다.
이근수가 일요일에 준비하는 F.N.C 원나잇 토너먼트는 신인선수들을 위한 경기였다. 현재 정해진 선수들은 총 열여섯 명이었다. 대부분 한 번도 경기를 치르지 않았거나, 한두 경기를 치른 선수들이었다. 모두 F.N.C 선수로써 전업을 위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들 중 F.N.C 원나잇 토너먼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앞으로 치를 경기에서 좋은 조건에 높은 대전료,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토너먼트 당일에도 사람들은 배팅을 하고, 선수들에게도 수익이 있었다.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는 상금도 있었다.
이근수가 말했다.
“원나잇 토너먼트는 기본 대전료도 없고 이겼을 경우 하룻밤에 여러 명과 붙어야 되는 부담이 있지만, 수익에 상금에 앞으로 얻을 인기까지 생각하면 아주 괜찮은 조건이지.”
“나는 F.N.C 전업 선수를 할 생각이 없는데요? 게다가 열여섯 명이 정해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끼면 열일곱이라 대전 상대가 맞지 않을 텐데요. 아니면 한 명 더 섭외를 할 겁니까?”
이근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두 경기만으로 실력이 검증됐어.”
“그래서요?”
“경기는 여덟 명씩 A조와 B조로 나뉘어서 경기를 할 거야. 자네는 B조에 부전승으로 올라가있을 거고. 그럼 B조에서 2승을 거둔 선수와 붙게 되는 거지.”
“그거야말로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 아닙니까?”
이근수가 검지를 까딱이며 말했다.
“A조가 B조보다 우수한 선수들로 채워질 거야. 관중들도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지. 때문에 B조에서는 큰돈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네가 낀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뭐, 그때도 자네한테 대부분 쏠려서 도박 자체는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럼 그만큼 나한테 돌아오는 돈도 적거나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내가 토너먼트를 할 이유가 없죠.”
이근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만약, 만약에! 도박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내가 2,000만 겔드를 대전료로 지급하겠네.”
“그래도 제 입장에선 그냥 경기를 뛰는 게 더 많이 버는데요?”
이근수는 또다시 고민을 하다가 강우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늘어놨다.
*잽(Jab) : 상대편 안면을 향해 빠르고 곧은 펀치를 뻗는 것. 오른손잡이 복서의 경우 주로 왼손으로, 왼손잡이의 경우 주로 오른손으로 잽을 날린다.
복싱 타격 기술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스피드와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며, 크게 자세를 바꾸지 않고 허리의 짧고 급속한 회전에 의해 가격한다. 이 공격은 상대방을 현혹시켜 견제하며, 히트했을 경우는 상대의 균형을 잃게 하여 다음 번의 유효한 타격을 준비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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