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강우는 한참 자고난 다음에야 눈을 떴다. 최무훈이 냉장고 안을 뒤적거리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어났어?”
“어… 배고프네.”
최무훈은 냉장고를 뒤적이며 말했다.
“별건 없네.”
최무훈은 냉장고에서 빵, 음료수, 과자, 포장도 뜯지 않은 햄, 통조림, 견과류 등을 가져왔다. 최무훈은 바닥에 먹을 것들을 놓으며 말했다.
“먹자.”
“시합할 사람한테 주는 음식이 겨우 이거야?”
“내가 네 엄마냐? 그냥 주는 대로 먹어.”
강우는 투덜거리면서도 뱃가죽이 등에 붙을 듯 배고팠기에 허겁지겁 먹어댔다. 강우는 햄의 포장을 뜯어 통째로 뜯어먹었다. 최무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처먹을 때라도 그 T.C.C인지 뭔지 좀 끄면 안 되냐? 몬스터랑 겸상하는 거 같아서 기분 더럽네 거참.”
“지금 끌 거면 애초에 키질 않았지.”
“에라이… 마음대로 해라.”
최무훈은 참치 통조림과 골뱅이 통조림에 소주를 병째 마셨다.
강우는 시장기가 좀 가시고 나서야 말문을 뗐다.
“그나저나 아저씨는 여기 왜 있는 거야?”
“나? 도박빚 때문에.”
“얼마나 빚졌는데?”
“나도 내 빚이 얼마인지 까먹었다. 수십억은 될 걸?”
강우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뭐? 수십억?”
“그럴 거야. 사채도 끌어다 썼었고.”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이근수가 빚 탕감해주고, 사채업자들 돈까지 전부 갚아주는 대신 노예계약 한 거지.”
강우는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킨 다음 말했다.
“노예계약?”
“F.N.C 선수들 트레이닝해주고 사는 거야. 월급도 꽤 짭짤하게 주고, 병신 같은 놈들 오면 두들겨 패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바로 위가 도박장이니 도박도 신나게 하고. 꿀 빨면서 사는 거지.”
강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지하방에 처박혀서 사는 게 꿀 빠는 거라고.”
“미쳤냐! 이런 곳에서 살게! 내가 사는 지하 1층은 시설이 꽤 좋다고. 뭐 진짜 아무 능력도 없이 빚만 진 새끼들은 골방 같은 곳에 처박아놓는데, 난 빚 탕감 조건으로 상주하면서 일하는 거니까 대우가 다르지.”
“그런 조건이면 왜 위층에 안 살고, 지하에 살아? 지하는 빚쟁이들 모아놓는 곳이라며.”
“나도 처음엔 빚쟁이라 저기 들어간 건데, 조건들을 붙이면서 방을 싹 개조해준 거지.”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지하를 개조해? 위로 가지.”
“햇빛 알러지(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런다 임마. 그리고 내가 위에 살던 지하에 살던 너랑 뭔 상관이야?”
“그것도 그렇네. 평생 두더지처럼 사쇼.”
최무훈이 당장이라도 강우의 머리를 내리칠 듯 손바닥을 치켜들었다.
“아, 그 새끼 어린 게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하면서 말하는 싸가지 보소.”
“아저씨, 또 칠라 그러네? 우리 트레이닝 끝났다?”
최무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렸다. 최무훈은 새우과자 하나를 입에 던지듯 넣고 아작아작 씹으며 말했다.
“에라이… 더러워서 원… 힘만 세면 다냐? 씨벌….”
“그리고 처음에 반말하다가 갑자기 존대하면 그거도 이상하잖아?”
강우는 과자를 하나 집어먹은 뒤 말했다.
“아, 그거 좀 물어봅시다.”
“뭘 또 물어봐. 궁금한 것도 많네.”
“김태호 알아?”
최무훈은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킨 뒤 말했다.
“당연히 알지. 그 새끼도 내가 가르쳤으니까.”
“정말?”
“그럼 구라겠냐.”
강우가 물었다.
“그놈 세?”
“세지. 걔도 너처럼 기본기 하나도 안 된 상태에서 배웠는데, 하루도 안 돼서 다 배우더라. 너랑 다른 점이라면 그놈은 빛을 이용한 능력을 잘 사용하지.”
“어떤 능력인데?”
최무훈은 골뱅이를 하나 집어먹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몰라. 노란색 빛 잠깐 본 거 말곤 제대로 능력을 본 게 없으니까. 뭐, 어차피 그놈이나 너나 신체능력 기반으로 싸우는 건 비슷하지. 그런데 그놈은 왜? 넌 신인 토너먼트에 나가는 거 아니었어?”
“이번에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 김태호랑 붙는다더군.”
최무훈이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
“그럼 진짜지, 이런 걸로 구라치겠어?”
최무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새끼, 아까 내가 한마디 했다고 곧바로 써먹네. 하여튼 뭐… 네가 걱정 있냐?”
“무슨 말이야?”
“너 전력을 다하면 신체능력만으로 삼성 하급에서 중급은 될 거라니까? 김태호 그놈은 잘 쳐줘야 이성 상급에서 삼성 하급 사이야. 게임이 안 되지.”
강우가 햄을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그래?”
“뭐, 그놈이 나한테 배운지가 1년이 넘긴 했는데… 그래봐야 삼성 하급 정도니 너랑 비슷하겠네.”
“그럼 힘을 더 써야겠네?”
“응, 네놈이 전력을 다한 거보다 조금 못한 수준이려나? 애매하네. 붙어보면 알겠지.”
강우는 양손을 뒤로 뻗어 바닥을 짚었다.
“뭐… 질 것 같지는 않아.”
“넌 아직 몰라.”
“뭐를?”
“너를 정말 높게 쳐줘야 삼성 중급이거든? 근데 그것도 삼성 중급의 바닥 중의 바닥이야. 위로 올라갈수록 같은 등급 내에서도 격차가 엄청 크다고.”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물었다.
“얼마나 나는데?”
“삼성 중급에서 좀 약한 놈이랑 삼성 중급에서 중간쯤 가는 놈이랑 붙었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 둘이 붙으면 어떨 거 같냐?”
“예전 같았으면, 똑같은 삼성 중급끼리니까 비슷하다고 했겠지만… 차이가 많이 나니까 그렇게 물어보겠지?”
“그래, 근데 그 차이가 심해. 삼성 중급에서 하급에 가까운 놈들 열 명이 덤벼도 중간쯤 가는 놈 하나 못 이겨.”
강우가 최무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게나 차이가 난다고?”
“그래.”
최무훈은 씁쓸한 표정으로 남은 소주를 전부 들이킨 뒤 말했다.
“나도 한때는 삼성, 사성 언젠가는 오성까지도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었지. 하지만 벽에 부딪쳤어. 격이란 게 다르더라고. 내 실력으론 삼성 하급도 올라갈 수 없었지.”
최무훈은 “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무훈은 꿈을 저버린 옛 기억의 씁쓸함을 냉장고 안에서 차갑게 식혀져 있는 소주로 쓸어내렸다.
최무훈은 소주를 벌컥벌컥 마신 뒤 강우를 보며 말했다.
“뭐, 지금이야 이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면서 살고 있지만 말이지.”
최무훈은 침구류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무훈은 침구류 위로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F.N.C 쪽에서 데리러 올 거야. 토너먼트를 위해 몸 좀 풀어두라고.”
“그래. 하여튼… 고마웠어.”
최무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황당한 표정으로 멍하니 강우를 쳐다봤다. 최무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어쨌든 내 제자니까 지지 말라고.”
“이런 기본기는 누구한테든 배울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빨리 몸에 박아 넣어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 난 잠이나 자야겠다.”
강우는 허리를 틀어 몸을 풀면서 말했다.
“알았어. 그나저나 비밀은 지켜줘.”
“무슨 비밀?”
“내가 힘을 전부 쓰지 않고 있는 거 말이야.”
“내가 그거 말해서 무슨 이득을 얻는다고? 그리고 어디에 말하냐? 내가 그거 말한다고 신경 쓸 사람은 김태호 하나 있겠네. 뭐, 말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을 거다. 결정적으로 너랑 김태호는 거기서 거기일 거라니까. 어차피 토너먼트 지나고 나면 전부 보여주게 될 거다.”
“그런가….”
최무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다니까!”
강우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몸을 풀었다.
‘뭐, 잘됐네.’
최무훈은 모포를 몸에 덮으며 잠을 청했다. 강우는 몸을 이리저리 풀면서 F.N.C 측에서 올 사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무훈은 시끄럽다는 듯 모포를 뒤집어썼다. 강우는 열리는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은 누구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동으로 열렸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것은 이성훈이었다.
“트레이닝은 잘 마치셨나요?”
“뭐, 그럭저럭.”
“그럼 가시죠.”
강우는 곧장 이성훈을 따라 나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지금 급한 거 아니지?”
이성훈은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한 다음 말했다.
“아직 토너먼트 시작까진 시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럼 잠깐만.”
강우는 발걸음을 돌려 최무훈에게로 다가갔다.
“아저씨, 아저씨.”
최무훈은 모포를 내리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아, 왜?”
“나 간다?”
“알고 있어. 가.”
강우는 몸을 숙여 최무훈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최무훈은 고개를 뒤로 빼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뭐하는 거야?”
강우가 목소리를 낮추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저씨, 나한테 돈 걸어. 무조건 따게 해줄 테니까.”
최무훈이 코웃음을 쳤다.
“핫, 내가 왜 돈을 거냐?”
“왜 안 걸어? 앉아서 돈 버는 건데. 내가 질 거 같아? 거는 김에 내 돈까지 대신 걸어줘. 딴 돈에서 떼줄 테니까. 수수료까지 쳐줄게.”
“내가 돈 때문에 도박을 하는 줄 알아?”
강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뭐 때문에 하는데?”
“처음엔 돈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도박 자체가 재밌는 거란 말이야. 그냥 쉽게 버는 건 재미가 없지. 승패를 알 수 없는, 도박장 특유의 분위기, 돈을 잃은 놈들의 눈물로 축축한 의자에 앉아 긴장감으로 바싹 마르는 입안을 혀로 훑는 그 맛… 난 그거 때문에 도박을 하는 거라고.”
“아니, 그 도박도 하려면 돈이 있어야 되잖아. 내 경기에 돈을 걸어서 따놓으면 나중에 더 편할 거 아니야.”
최무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달라. 난 지금 가진 돈으로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고, 그걸로 충분해.”
“거참… 이해 안 가는 사람일세….”
최무훈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어쨌든 일없다. 그 얼굴 좀 치워라. 괴물딱지 같은 면상 들이밀지 말고.”
강우는 허리를 피고, 최무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돈 대신 걸어주는 것도 할 생각 없어?”
“없다. 그리고 대리인 세워서 돈 걸고 그런 거 하지 마라.”
“왜?”
“하지 말라면 그냥 하지 마. 스승으로서 마지막으로 가르쳐주는 거다.”
강우가 구시렁거렸다.
“스승은 개뿔… 격투기 기본기나 좀 가르친 거 가지고….”
“야!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가!”
“또 볼일은 없겠지?”
“그럴 거다.”
“알았어. 아저씨, 나 간다. 잘 살아.”
강우가 몸을 돌렸다. 최무훈이 손을 짚어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야.”
강우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최무훈이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능력을 타고나면 돈 벌기가 참 쉬워. 일성 하급조차도 좀만 빡세게 구르면 금방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을 정도지.”
“그래서?”
“아마 너도 금방 돈에는 흥미를 잃게 될 거야. 뭐, 끝없이 돈 모으는 재미로 사는 놈들도 있기야 하겠다만, 능력을 가지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거든.”
강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면, 능력자들이 왜 계속 활동을 하는 거야?”
“뭐, 그건 나중에 가면 알게 될 거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도 하나 물어보자. 넌 왜 몬스터마냥 이상한 거 뒤집어쓰고 다니냐?
“처음엔… 튀지 않으려고, 개인생활보호 좀 하려고 그랬지.”
최무훈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냐? 프라이버시는 개뿔… 에라이! 차라리 적이 생겨도 아무 때나 널 습격할 수 없다고 해라. 그게 훨씬 그럴듯하다.”
“뭐, 그것도 그렇고. 어쨌든… 난 간다.”
“가라! 난 좀 자야겠다.”
최무훈이 바닥에 드러누워 모포를 덮었다. 최무훈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강우는 잠시 최무훈을 쳐다보다가 이성훈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가지.”
“네, 따라오시죠.”
강우와 이성훈이 방을 빠져나갔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강우와 이성훈이 나자가 문이 닫혔다. 최무훈이 고개를 들어 닫힌 문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새끼… 나쁜 놈 같지는 않던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최무훈은 모포더미에 손을 집어넣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최무훈은 F.N.C에 전화를 걸었다. 최무훈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문은 왜 닫아 새끼들아! 나 아직 안 나갔는데! 난 저거 못 열어! 빨리 문 열어! 오늘 느낌이 좋단 말이야! 기분도 꿀꿀한데 오늘 한판 땡겨야겠어! 아, 그리고 기집년도 잘 빠진 애로다가 하나 대기시켜놔. 간만에 물 좀 뺄라니까.”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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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