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이근수가 말했다.
“시합은 곧바로 이어집니다. 집행자 선수는 그대로 투명케이지 안에서 대기하시다가 시합을 치러도 될 겁니다. 김명훈 선수는 5분 내로 투명케이지 안으로 들어설 예정입니다.”
강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이근수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근수는 강우가 쳐다보는 것을 모른다는 듯 딴청을 부렸다.
‘쉬는 시간도 없어?’
강우는 고개를 돌리던 중 관중석에 앉아있는 이현지와 눈이 마주쳤다. 이현지는 강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 년은 뭘 저렇게 쳐다봐?’
강우가 이래저래 속으로 불만을 토해내고 있을 때였다.
이근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김명훈 선수가 입장합니다.”
강우는 반대편 입구로 시선을 옮겼다. 김명훈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관중들은 김명훈을 향해 환호를 보냈다. 김명훈은 강우를 노려보며 투명케이지로 향했다.
텅!
한 남자가 어디선가 날아와 김명훈의 앞에 착지했다.
“네놈은 좀 심했었다.”
김명훈의 앞에 있는 남자는 타카야였다. 타카야는 일본도를 든 채 당장이라도 김명훈의 목을 내리칠 듯 노려봤다.
“너는 왜! 죽이지 않아도 될 사람을 죽이고! 크게 다치지 않게 해도 이길 수 있는 사람한테 그렇게 한 거냐!”
타카야는 일본도를 김명훈에게로 향했다. 일본도의 날카로운 끝은 김명훈의 목젖 바로 앞에 가있었다. 김명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잔잔한 호수와 같은 여유로움, 김명훈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 실력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건데….”
김명훈이 안색을 바꾸고, 두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칼을 들이대고도 무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타카야는 입에 굳게 다물고 김명훈을 노려봤다. 꿀꺽, 타카야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근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관중 여러분! 이건 의도된 상황이 아님을 밝힙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김태호가 말했다.
“제가 말려도 되겠지만…. 재밌으니 놔둬보죠. 프로레슬링 같기도 한 게 흥미롭네요. 어차피 타카야 선수의 실력으로 김명훈 선수한테 부상을 입히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
관중들은 타카야와 김명훈을 향해 소리쳤다.
“싸워! 죽여!”
“김명훈! 난 너한테 걸었단 말이야! 괜히 힘 빼지 마라!”
“쪽바리 새끼야! 방해하지 말고 꺼져!”
“칼은 무 썰려고 꺼냈냐? 빼들었으면 얼른 화끈한 걸 보여주라고!”
두 사람을 향한 외침은 제각각이었다. 강우는 투명케이지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김명훈이 코웃음을 쳤다.
“참나…. 말 한마디에 그렇게 긴장할 거면서 내 앞을 가로막은 거였나?”
김명훈이 투명케이지 안에 있는 강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은? 아까 초록색 빛을 뿜어내던 놈을 아주 병신으로 만들어놨던데. 나한테 덤빈 다음은, 저 녀석한테 덤빌 건가?”
김명훈은 타카야의 일본도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놈은 칼을 휘두르면서 이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장난하나…. 네가 얼음여자하고 싸울 때, 처음에 몸을 두 동강냈잖아? 만약에 그게 얼음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거라고. 지금 이러는 저의가 뭐야?”
타카야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닥쳐라! 너와 나는 다르다! 난 상대를 봐줄 만큼 실력차이가 나지 않았다! 상대에게 예를 갖추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너만큼 강했다면 분명…….”
타카야가 말을 끝마치기 전, 김명훈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대체 뭐라는 거야?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너 혹시 아까 그 얼음여자한테 꽂힌 거냐?”
타카야는 김명훈을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명훈이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맞구만? 이제야 정리가 되네. 애초에 내가 첫 대전 상대를 죽였을 땐 덤벼들지도 않았고….”
김명훈은 투명케이지 안에 있는 강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이 초록빛 녀석을 반 죽여 놨을 때도 가만히 있었고 말이야.”
“진수 선수는 이미 회복되고 있다. 그의 능력으로 30퍼센트 이상 회복했다.”
김명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말고…. 나 참…. 별 병신 같은 게….”
타카야가 일본도를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닥쳐라!”
김명훈이 타카야에게 손을 뻗었다.
퍼엉!
타카야의 양손과 일본도에 남색 불꽃이 타올랐다. 타카야가 “아아아악!”하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김명훈이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
“병신….”
불길이 치솟아 일본도까지 감쌌다. 타카야는 고통에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도 손을 내리지 않았다.
“하압!”
타카야가 김명훈을 향해 수직으로 일본도를 휘둘렀다.
후웅!
타카야의 검은 김명훈에게 스치지도 못했다. 김명훈이 일으킨 남색 불꽃에 일본도가 녹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타카야의 양손이 타들어가며 오징어를 태우는 듯한 냄새가 퍼졌다.
펑.
김명훈이 불꽃을 거뒀다.
탱그랑.
일본도의 손잡이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타카야는 무릎을 꿇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타카야의 양손은 새까맣게 타있었다.
김명훈은 타카야의 옆을 지나쳐 투명케이지로 향했다.
이근수가 소리쳤다.
“해프닝은 끝입니다! 타카야 선수! 사랑 때문이었나요! 아아! 국경을 초월한 사랑! 자신의 힘도 넘어선 사랑! 화상도 나누는 사랑! 꼭 이뤄지길 바라며…. 이제! 진짜 본 게임으로 들어갑니다!”
강우는 투명케이지 안에 들어서는 김명훈을 보고 있었다. 강우의 시선이 무릎을 꿇고 있는 타카야에게로 옮겨졌다.
‘저 새끼는 왜 사서 손 병신이 되는 건지….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구나.’
김명훈이 투명케이지 안에 들어서서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양 주먹을 꽉 쥐며 김명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근수가 소리쳤다.
“원나잇 토너먼트! 루키를 찾아라! 결승전이 시작됩니다!”
김태호가 말했다.
“기대가 되는 경기입니다. 그리고 우승자는 저의 다음 대전 상대가 되겠죠.”
김명훈이 전신에서 남색 빛을 뿜어냈다.
화르륵.
김명훈의 전신에서 남색 불꽃이 타올랐다. 강우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였다. 김명훈이 강우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남색 불꽃이 강우를 향해 덮쳐왔다.
탁, 타탁!
강우가 빠르게 움직여 불꽃을 피해냈다. 김명훈이 강우를 향해 왼손을 휘둘렀다.
후우욱!
김명훈이 휘두른 방향으로 불꽃이 사선으로 뻗어나갔다. 강우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또다시 불꽃을 피해냈다. 강우가 김명훈의 코앞에 다가섰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둘의 거리는 1m도 채 되지 않았다.
펑!
강우의 리버 블로우(간장치기)가 작렬했다. 김명훈은 “커헉!”거리며 몸을 수그렸다. 강우가 오른쪽 주먹으로 김명훈의 왼쪽 옆구리를 갈겼다.
터엉!
김명훈의 허리가 크게 틀어졌다. 김명훈은 맞으면서도 시선은 끝까지 강우에게 고정돼있었다. 김명훈이 강우를 향해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화르륵, 펑!
김명훈의 손에서 남색 불꽃이 뻗어나갔다. 불꽃은 강우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우는 고개를 재빨리 숙였다.
화르르륵.
김명훈의 왼손이 아래서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후우우욱!
김명훈의 왼손에서 뿜어진 불꽃이 강우의 얼굴 정면으로 향했다. 강우는 재빨리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퍼어어어어엉!
불꽃이 강우의 쇄골 위 전부를 집어삼켰다. 강우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강우는 뒤통수부터 바닥에 떨어지는 자세였지만, 턱을 몸에 붙이며 등으로 떨어졌다. 강우는 바닥에 떨어지며 그대로 굴러 몸을 세웠다.
타탁, 타탁, 강우의 몸에는 여전히 불꽃이 타올랐다. 강우가 양팔을 들고, 양옆으로 세게 저었다.
후우웅!
강우의 몸에 붙어있던 남색 불꽃이 꺼졌다. 강우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김명호를 노려봤다.
‘트레이닝 하는 사이에 몸에 완전히 붙어버려서 굳이 할 필요도 없는데 낙법을 치게 되네. 그나저나…….’
김명훈이 양손에 커다란 남색 불꽃을 모았다. 위로 치솟는 불꽃은 그 높이가 1m 가까이 됐다. 김명훈이 강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장난은 끝이다.”
김명훈이 양팔을 교차하며 ‘X’자로 휘둘렀다. 높이가 2m도 넘는 불꽃이 ‘X’자로 교차된 채 강우를 향해 날아왔다. 강우에게 불꽃이 닿기도 전이었다. 김명훈은 바닥을 향해 불꽃을 내뿜었다. 불꽃은 바다 위로 헤엄을 치는 돌고래처럼 강우를 향해 뻗어나갔다.
‘X’자 불꽃이 먼저 강우에게 닿으며 폭발했다.
퍼어어엉!
연이어 돌고래처럼 나아가는 불꽃이 강우에게 닿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앙!
투명케이지의 천장까지 닿는 불꽃이 치솟았다. 김명훈은 승리를 확신하는 듯 여유가 가득한 표정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봤다.
후우웅, 후우웅.
강우가 타오르는 불꽃을 헤치며 멀쩡히 걸어 나왔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따뜻하구만….”
김명훈이 “으아아아아아!”하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김명훈의 전신에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김명훈이 강우에게 양손을 뻗었다. 덤프트럭과 비슷한 크기의 푸른 불꽃이 강우를 향해 뻗어나갔다.
퍼어어어어엉!
후웅, 후우웅.
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휘저어 불꽃을 털어내며 김명훈에게로 다가갔다.
“네 불은 뜨겁지가 않아. 그 정도로 오징어는 구워먹겠냐? 올 겨울 난방은 되겠어?”
김명훈은 분노에 찬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죽여주마! 살점 하나! 뼛조각 하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태워주겠어!”
“아니, 글쎄…. 네 불꽃은 하나도 안 먹힌다니까…. 차라리 하운드랑 싸우는 게 너랑 싸우는 거보다 긴장감 있겠다.”
“입 닥쳐-!”
김명훈이 전신에서 남색 불꽃을 강하게 뿜어냈다. 여태까지 김명훈이 보였던 불꽃 중 가장 커다란 크기였다. 김명훈이 두 눈을 번뜩이며 양 주먹을 꽉 쥐었다. 남색 불꽃이 차츰 줄어들며 김명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강우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너 어째 힘이 빠진 거 같다?”
김명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살려달라고 빌게 만들어주지.”
펑!
김명훈이 강우에게로 뛰어들었다. 발바닥에서는 남색 불꽃이 터져 나와 추진력을 가했다. 김명훈은 오른쪽 주먹을 치켜든 채 로켓처럼 강우에게로 튀어 나갔다.
후웅!
김명훈이 강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강우는 왼손을 들어 김명훈이 휘두른 주먹을 잡았다.
턱, 퍼어어어엉!
강우의 손바닥에 김명훈의 주먹이 닿자 폭발을 일으켰다. 강우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건 뭐…….”
김명훈의 왼쪽 주먹이 강우에게로 날아들었다. 강우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가볍게 피해냈다. 김명훈이 씩 웃었다. 김명훈은 뻗었던 주먹을 쫙 폈다. 김명훈이 손바닥에서 강우의 뒤통수로 불꽃을 쐈다.
퍼어엉! 화륵, 화르륵.
강우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이런 거 안 통한다니…….”
강우가 말을 끝마치기 전이었다. 김명훈이 입을 쩍 벌렸다. 김명훈의 입에서 남색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퍼어엉!
불꽃이 강우의 얼굴을 감쌌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김명훈이 주저앉았다. 강우가 왼손으로 잡고 있던 김명훈의 오른쪽 주먹을 으스러트렸기 때문이었다.
강우의 얼굴은 여전히 불꽃에 휩싸여있었다. 강우는 후우우, 강하게 입김을 불었다. 강우의 얼굴에서 타고 있던 불꽃이 입김에 딸려 날아갔다.
강우는 김명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장난은 이제 끝이다.”
우득, 우드득!
강우가 김명훈의 오른쪽 주먹을 완전히 으스러트렸다. 강우의 손아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강우는 김명훈의 오른손을 놓지 않았다.
빠악!
강우가 오른쪽 주먹을 김명훈의 안면에 꽂아 넣었다.
빡! 퍼억! 퍽퍽! 빠악! 뻑! 빡!
강우는 오른쪽 주먹으로 연속해서 김명훈의 안면을 후려쳤다. 강우가 주먹을 날리는 방향으로 김명훈의 고개가 홱홱 돌아갔다. 강우가 김명훈의 손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한 방에 뒤로 날아갔을 것이다.
김명훈은 몸을 축 늘어트려 강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강우는 여전히 김명훈의 오른쪽 주먹을 잡고 있었다. 강우가 김명훈을 들어 올려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더 할래?”
김명훈은 곧 죽을 사람처럼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져, 졌어….”
강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졌어요…. 그만…….”
강우는 씩 웃으며 쥐고 있던 김명훈의 주먹을 놓았다. 김명훈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오른쪽 주먹은 완전히 으스러져 원래 크기의 절반도 안 됐다. 손가락과 손등뼈는 모두 부러져 여기저기로 살갗을 뚫고 튀어나와있었다.
이근수가 크게 소리쳤다.
“집행자 선수의 스- 응- 리- 이-!”
김태호가 말했다.
“집행자 선수. 굉장했습니다. 김명훈 선수의 불꽃 공격이 전혀 먹히지가 않았네요. 굉장한 방어력입니다.”
이근수는 흥분이 잔뜩 섞인 목소리를 높였다.
“원나잇! 토너먼트! 루키를 찾아라! 우승자! 집행자! 집행자 선수에게는 상금 1억 겔드와 배당금! 그리고 해설위원이자 현 국내챔피언! 김태호 선수에게 도전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응원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다음 화부터는 또 새로운 내용이 진행됩니다!
저의 다른 소설 'Masterpiece : 7개의 조각'도 많이 읽어주세요!
예거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재밌는 글입니다! ^^Masterpiece : 7개의 조각도 금일 업로드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