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투명케이지 안으로 의료진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김명훈은 들것에 실렸다. 의식은 또렷했다. 때문에 고통은 더했다. 김명훈은 자꾸만 “내 손…. 내 손….”이라고 말했다. 의료진 중 하나가 김명훈을 향해 “더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 지금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명훈은 입을 쉬지 않았다.
강우는 실려 나가는 김명훈을 슬쩍 쳐다본 뒤, 유유히 투명케이지를 빠져나왔다.
관중들은 강우를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김명훈에게 돈을 걸었던 몇몇 이들은 머리를 쥐어짜며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강우가 투명케이지를 빠져나오자 이성훈이 안내를 했다. 강우는 귀, 귓속의 고막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관중들의 함성을 맞으며 이성훈의 뒤를 따라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성훈을 대기실 앞에 멈춰 서서 말했다.
“소지품 챙겨서 나오시면 되겠습니다.”
“다른 데로 가야 돼?”
“네, 그렇습니다.”
강우는 대기실에 들어가 휴대폰과 지갑을 챙겼다. 강우는 이성훈의 뒤를 따라 또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성훈이 걸음을 멈췄다. 이성훈은 옆에 있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여기가 어딘데?”
“회장실입니다.”
강우가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근수와 김태호가 앉아있었다. 강우가 들어서자 이근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서와. 수고 많았어. 여기 앉아.”
강우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 상금과 배당금은 어딨죠?”
이근수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 친구, 성격 급하기는! 다 준비해놨지.”
이근수가 손가락을 튕겼고, 딱, 소리가 울렸다. 이성훈이 하드케이스로 된 007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이성훈은 강우의 앞에 가방을 놓았다. 이성훈이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10만 겔드권 지폐가 가득 차있었다.
이근수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우승상금 1억 겔드에 배당금 8천213만 겔드네. 7만 겔드 더 넣어서 총 1억8천220만 겔드야.”
강우는 돈다발을 한 번 넘겨보며 확인한 뒤, 가방을 닫았다. 강우는 가방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수고했습니다.”
이근수가 말했다.
“거,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 잠깐 앉아봐.”
강우는 다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근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음 시합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
“글쎄요.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요.”
“자네도 알다시피 다음 대전 상대는 옆에 앉아있는 김태호 선수야.”
강우는 김태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강우는 무덤덤했고, 김태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가 넘쳤다.
이근수가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김태호 선수는 현재 국내 F.N.C 해설위원이자 챔피언이야. 국내에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고, 그 상대는 원나잇 토너먼트 ‘루키를 찾아라’의 우승자와 붙을 예정이었지. 자네가 원나잇 토너먼트의 우승자는 자네고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 있는 김태호 씨와 붙어라?”
“그렇지. 그리고 자네는 김태호 선수를 이기기만 하면 곧바로 국내 챔피언이 되는 거야. 기본 대전료 3,000만 겔드, 이겼을 시에는 승리수당이 붙어서 6,000만 겔드야. 게다가 이건 김태호 선수의 마지막 국내경기이자 챔피언 방어전이야.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 것이니 배당액은 말할 것도 없겠지.”
강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만큼 위험부담도 큰 거 아닙니까….”
강우는 김태호를 한 번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
“져줄 것도 아니고 말이죠.”
“아니, 그래도….”
강우가 이근수의 말허리를 끊었다.
“사실 그렇잖습니까. 내가 몇 경기나 했다고 벌써 챔피언하고 붙어야 되고…. 저야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과 좀 더 싸우다가 올라가도 되는 건데 말이죠. 아니, 저 이전에 다른 선수들 중 챔피언에게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가 않아. 국내 F.N.C 선수층은 굉장히 얇아. 실력 있는 선수들은 모두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고…. 이쪽 바닥도 몬스터를 잡는 쪽과 다를 거 없어.”
강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근수는 국내 F.N.C와 몬스터 사냥 등에 대한 능력자들의 동태에 대해 설명했다.
국내 F.N.C는 그 규모가 굉장히 작았다. 얇은 선수층은 물론, 모든 능력자들이 F.N.C에 뛰어들지도 않았고, 그나마 강한 선수들은 모두 해외에서 활동하기 때문이었다. 이근수 역시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에서의 선수 양성에 더욱 투자를 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국내선수들 중 80퍼센트 이상은 나를 통해 활동하고 있어. 개중에는 프리로 뛰거나 블랙마켓, 또는 해외에서만 계약을 맺고 뛰는 경우도 있지만…. 하여튼…….”
이근수가 말을 이었다.
몬스터 사냥 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에 있는 예거들이 모자라서는 아니었다. 한국의 경우 능력자 인구수에 비례해 우수한 인재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활동하는 능력자들은 일성 하급부터 이성 상급이 대부분이었다. 삼성 이상인 경우는 예거 파티에 소속된 예거들이 국내와 해외를 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국내에 나타나는 몬스터들 때문이었다. 몬스터가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 출현한 몬스터들 중 가장 강했던 것은 삼성 중급이었다. 이마저도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다. 결국 국내에 나타나는 삼성 이상의 몬스터들은 예거 파티에 소속된 예거들 선에서 모두 처리가 가능했다.
따라서 삼성 이상의 힘을 지닌 능력자들은 모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더 보수가 높은 강한 몬스터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F.N.C도 마찬가지로 삼성 이상의 힘을 지닌 선수들은 더 강한 상대를 찾아 해외로 떠났다.
이근수가 말했다.
“국내 실정이 이렇다네. 하긴, 몰랐을 테지. 삼성급이 되지 않으면 들을 일이 없는 얘기들이니까. 일부러 뉴스기사들을 찾아보지 않는 한 모를 수도 있어. 뭐, 자네도 곧 알게 됐겠지만 말이지.”
“그건 무슨 말입니까?”
“이전에 말했듯 내가 볼 땐 자네도 1년 안에는 삼성급이 될 거라고 봐. 만약 자네가 예거로서 활동했다면, 지금 벌써 이성 랭커에 가까워져있었을 거라고.”
강우가 물었다.
“제가 이성 랭커에 가깝다고요?”
“그래, 예거로 활동하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6개월 안에는 10위권에 들겠지.”
강우는 김태호를 슬쩍 쳐다본 뒤 말했다.
“아까 했던 얘기들을 다 종합해보고 하는 말인데….”
“뭔가? 말해보게.”
“그럼 국내에서 마지막 경기를 가진 다음, 해외로 나갈 거라는 김태호 씨는 이미 삼성급에 다다랐다는 말 아닙니까?”
이근수는 약간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지.”
“이성 상급 랭킹 1위라 하더라도 웬만한 삼성 하급보다 약하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는 이성 상급 랭킹에도 못 드는 실력으로 삼성급인 김태호 씨하고 붙으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이근수가 말했다.
“그래도 그만큼 조건이 좋고, 이길 수도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질 거라 생각하고 싸우는 건가? 그리고 자네의 몸값은 큰 폭으로 오를 거야! F.N.C뿐만 아니라, 몬스터 사냥할 때도 분명히 적용이 될 거란 말이야.”
“그렇다고 목숨을 내놓는 건 아니죠.”
강우는 김태호와 붙어서 질 거란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단지 더 좋은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간을 보고 있었다.
이근수가 말했다.
“김태호 선수를 제외하고, 지금 국내에 있는 F.N.C 선수 중에 자네보다 강한 사람은 없어. 이번 토너먼트는 루키를 찾는 것이 목표기도 했지만, 그만큼 선수가 없어서기도 했다고. 자네가 아니면 김태호 선수의 은퇴경기를 치러줄 만한 선수가 없는 상황이야.”
“그럼 해외선수를 섭외하면 되지 않습니까?”
김태호가 강우를 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실제로 나와 붙은 선수들 중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나는 최대한 선의의 경쟁, 깔끔한 경기를 하고 싶어. 서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런 경기 말이야.”
강우가 김태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새끼가… 당연히 지가 이긴다는 듯이 말하네?’
강우는 이근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생명수당으로 1억 겔드를 더 얹어주시면 생각해보죠.”
이근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뭐? 1억? 그건 안 돼! 자네가 김태호 선수를 이겼을 때 받는 대전료보다도 높잖아!”
강우가 고개를 돌려버리며 말했다.
“그럼 전 할 생각 없습니다.”
강우는 슬쩍 시선을 이근수에게로 옮겼다. 이근수는 테이블 위로 시선을 둔 채 고심하고 있었다. 이근수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5,000만. 그 이상은 안 돼. 그럼 자네가 지더라도, 기본적으로 받는 금액이 8,000만 겔드야. 이겼을 경우에는 승리수당을 더해 1억1천만 겔드. 배당금까지 붙고 말이야.”
강우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생명수당 5,000만. 방금 말한 조건으로 경기를 진행하죠.”
강우는 왼손에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근수에게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근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김태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우에게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좋은 경기하자고.”
강우는 김태호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그러죠. 부상 없이 말입니다.”
강우는 이근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경기는 언제입니까?”
“아직 정확한 일정은 잡히지 않았어. 빠르면 일주일, 아무리 늦어도 한 달 내로는 치러질 거야.”
“알겠습니다. 연락하죠. 그럼 가보겠습니다.”
강우가 회장실을 나섰고, 이성훈이 안내를 했다.
이근수는 닫힌 회의실 문에 여전히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자네…. 이길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10초, 아니, 5초면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근수가 김태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절대 지면 안 돼. 명심해.”
“저도 국내 F.N.C 은퇴경기에서 지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질 수 없죠. 해외무대에 서는데도 걸림돌이 될 테니까요.”
이근수는 양손을 주머니에 꽂으며 말했다.
“같이 식사나 하지?”
“그러죠.”
이근수와 김태호는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강우는 이성호의 안내를 받아 강원카지노의 밖으로 나왔다. 이성훈은 90도로 몸을 숙여 인사를 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강우는 이성훈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곤 걸음을 옮겼다. 강원카지노 주변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강우를 알아봤다. 이전처럼 강우를 몬스터로 오인하는 경우는 없었다. 한 남자가 강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집행자! 경기 잘 봤어!”
남자는 얼굴에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덕분에 두둑이 챙겼다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됐네요.”
“사진 한 장 같이 찍어주겠어?”
“그러죠.”
강우는 남자와 기념촬영을 했다. 강우는 걸음을 옮기는 동안 몇 번이나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대로는 내일이 돼도 서울에 도착을….’
강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1시였다.
‘아, 한소영한테도 연락을 해봐야지.’
강우는 빠르게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인적이 드문 곳에 멈춰 서서 한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두 번이 채 울리기도 전, 한소영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금 그쪽으로 갈까하는데 괜찮나?”
“그럼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얼마나 걸리죠?”
“한 시간 안에 가지.”
한소영이 놀라며 물었다.
“지금 강원도카지노 쪽 아니에요?”
“맞아.”
“거기서 여기까지 한 시간 안에 온다고요?”
“어. 늦어도 한 시간 반이면 될 거야. 이따 보자고.”
강우는 전화를 끊고, 경기도 가평 쪽에 있는 블랙마켓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응원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저의 다른 소설 'Masterpiece : 7개의 조각'도 많이 읽어주세요!
예거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소설입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