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강우가 여자를 향해 돌아봤다. 여자가 말했다.
“저기….”
“뭐요? 말씀하세요.”
여자는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조심히 다녀요. 요즘 이상한 놈들 많으니까.”
강우는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한 발짝 떼는 순간, 여자가 말했다.
“저기요.”
강우는 다시 몸을 돌렸다.
“왜 그러세요?”
여자는 수줍게 명함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감사해서…. 다음에 제가 밥이라도 살게요.”
강우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아, 네.”
강우는 그제야 여자를 꼼꼼히 뜯어봤다. 두꺼운 쌍꺼풀에 큰 눈, 처진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키는 175cm 내외로 큰 편이었고, 흰 피부에 마른 체형이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지금 일이 있어서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네, 연락주세요.”
강우는 몸을 돌려 바삐 걸음을 옮겼다. 시간은 12시 50분, 약속시간까진 10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서둘러야겠는걸.’
강우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역을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서 건물의 벽을 타고 올랐다.
탁, 타탁.
벽에 대고, 단 세 번의 발돋움, 그것만으로 강우는 옥상에 올라섰다. 강우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어 다녔다.
턱.
강우는 한 건물의 옥상에서 멈췄다. 목적지로 향하려면 8차선 도로가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흠…….”
시간은 오후 12시 55분. 약속시간까지는 5분이었다.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조금 늦는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우는 이소아와의 약속에 늦고 싶지 않았다. 강우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타타탁, 후우웅-
날았다. 강우는 8차선도로를 지나야 있는 건물을 향해 뛰었다. 발밑으로는 차들이 지나다니고, 사람들이 오갔다.
턱.
가볍고도 완벽한 착지.
탁, 타타타타타타타탁.
강우는 벽면을 사선으로 뛰어 지상으로 향했다.
타탁.
12시 56분, 강우는 지상에서 걸음을 옮겼다. 공원까지는 100m. 여유로웠다.
이소아가 공원 입구에서 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소아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강우 씨!”
강우는 이소아에게로 다가갔다. 둘은 갓 연애를 시작한 풋풋한 연인처럼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눴다. 아직은 어색함이 묻어있는, 그래서 더욱 애틋해 보이는, 그런 두 명의 남녀였다. 둘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둘의 대화내용은 달달하지만은 않았다. 바로 시작되는 비즈니스 이야기, 이소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무슨 일인데요?”
이소아가 밝은 표정으로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큰 눈이 깜빡이며 강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먼저 소개드릴 친구가 있어요.”
“친구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소아가 어디론가 뛰어갔다. 강우는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
‘진짜 괜찮은 여자 같아….’
3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이소아가 손을 들어 보이며 돌아오고 있었다.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려는 찰나였다. 이소아의 뒤로 하운드가 보였다. 강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강우는 곧바로 양 주먹을 쥐며, 곧바로 튀어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면서 소리쳤다.
“소아 씨! 숙여요! 뒤에 하운드!”
이소아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소아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괜찮아요! 잠깐만…….”
이소아의 뒤로 따라오던 하운드가 뛰어올랐다. 강우가 이소아를 향해 뛰며 소리쳤다.
“안 돼!”
강우가 이소아의 뒤로 뛰어드는 하운드에게로 뛰어들려는 순간이었다. 하운드의 양 앞발이 이소아의 어깨에 얹어졌다. 강우는 하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강우의 손끝에 작은 검은색 기운이 피어올랐다. 강우의 시선은 검은색 기운에 고정됐다.
‘어? 뭐지?’
시선은 다시 이소아에게로 향했다. 하운드가 이소아의 왼쪽 뺨으로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강우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색 기운이 조금 더 커지며 요동쳤다. 강우의 시선은 이소아의 얼굴로 향했다. 이소아는 놀란 듯 두 눈이 커졌고, 하운드가 주둥이를 들이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운드의 혓바닥이 이소아의 콧등부터 이마까지 핥았다. 이소아는 웃음을 터트리며 양손으로 하운드의 얼굴을 붙잡으며 말했다.
“간지러워!”
강우의 손끝에 피어올랐던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
이소아는 하운드의 양 뺨을 잡고 마구 문질렀다. 하운드는 개가 ‘앉아’를 하듯 이소아의 어깨에서 양 앞발을 내리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채 손길을 느꼈다. 심지어 꼬리까지 쳐댔다. 이소아는 하운드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마구 쓰다듬어줬다. 이소아는 하운드를 쓰다듬으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개해줄 친구예요!”
강우는 검지를 세워 하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녀석이요?”
이소아는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 씨도 만져 봐요.”
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운드는 헥헥-거리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하운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소아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져 봐요. 괜찮아요.”
강우는 천천히 하운드의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하운드는 귀를 뒤로 젖히며 강우의 손을 기다렸다. 강우는 천천히 하운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주 부드럽지는 않지만, 싸구려 카펫 정도의 느낌이었다. 냄새는 제법 좋았다. 섬유유연제 같은 냄새.
강우는 하운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소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체…. 이게 어떻게…….”
이소아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말했었죠? 몬스터도 동물이랑 다를 게 없다고요. 개중에선 이렇게 교감이 이뤄지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강우의 입가에도 미세하게 미소가 머금어져있었다.
“신기하네요….”
강우는 하운드와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숨통을 노리는 들개,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죽여야 할 대상, 돈도 안 되는 일성 하급의 몬스터일 뿐이었다.
강우는 하운드를 쓰다듬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안 났다.
‘이건 무슨…. 그냥 완전 개잖아.’
강우는 하운드를 만지는 것을 멈췄다. 이소아가 강우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계속 쓰다듬어주세요. 아무래도 강우 씨가 마음에 든 모양이에요.”
하운드의 시선은 강우를 향해있었다. 꼬리는 기분이 좋다는 듯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목에 둘러진 목걸이가 우습게 느껴졌다.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진짜 개네…. 개목걸이라니….’
강우는 다시 하운드를 쓰다듬었다. 이소아는 하운드의 콧잔등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귀엽죠? 덩치만 컸지…. 그냥 강아지들하고 똑같아요. 애교도 많고요.”
“그럼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많은 몬스터들이 이렇게 길들일 수 있나요?”
“아직 많은 종류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은 몬스터들이 교감이 돼요.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들의 종류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고, 일성 하급 몬스터들뿐이지만요.”
강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시 알아요? 후에는 일성 중급, 상급, 더 높은 몬스터들까지 될지도 모르잖아요.”
이소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저도 사람들과 몬스터들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몬스터가드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 거고요.”
“그렇군요…. 꼭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요.”
“고마워요. 강우 씨는 참 상냥한 거 같아요.”
강우는 멋쩍음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소아가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좀 걸으면서 얘기해요. 오늘 일도 하러 오신 거니까.”
“네, 그래요.”
둘은 걸음을 옮겼다. 하운드는 이소아의 오른쪽에 바짝 붙어 속도를 맞춰 걸었다. 다른 개들과 다를 바 없이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호기심을 보였다.
이소아는 오늘 할 일에 대해 얘기를 늘어놨다.
일은 이소아와 다른 몬스터가드 한 명 그리고 강우 셋이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일은 다름 아닌 하운드 포획이었다. 일성 하급 몬스터인 하운드를 사냥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소 까다로웠다. 하운드를 상처 하나 없이 잡아야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포획해야 하는 하운드들의 숫자도 열 마리 이상이라 더욱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강우가 말했다.
“어떻게 잡죠? 아무래도 녀석들은 죽어라 덤벼들 텐데….”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다른 몬스터가드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거기 도구도 있고 하니까 그때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제 친구니까 일도 편하게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떻게 잡는 거지? 그나저나 친구라고? 소아 씨 친구는 어떤 사람이려나…. 친구끼리 둘 다 능력을 지니고, 몬스터가드라니…. 생각해보니까 페이도 안 물어봤네. 지금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강우는 하운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고, 마치 개와 산책하는 것 같았다. 강우는 이소아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그런데 몬스터랑 같이 다니다보면 오해 많이 받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놀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좀 그런 편이에요. 저거 보이시죠?”
이소아가 가리킨 것은 하운드 목에 둘러진 목걸이였다. 목걸이에는 큼지막한 펜던트가 달려있었다. 펜던트는 초록색 바탕에 금색으로 크게 ‘G’가 새겨져있었다.
“저 펜던트가 달린 몬스터들은 저희 몬스터가드들의 검증을 거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몬스터들이에요. 하지만 저희가 아무리 홍보를 해도 사람들은 잘 몰라요. 일성 하급에조차 끼기 어려운 작고 약한 몬스터들은 괜찮지만, 하운드는 현재 교감이 가능한 몬스터들 중 가장 몸집이 커요. 외형도 좀 위협적인 면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자주 놀라곤 하죠.”
이소아는 쓸쓸한 눈빛으로 하운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같이 가고 있는 아이도 저와 산책을 하다가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어요. 길에서 마주친 예거가 다짜고짜 공격을 했었거든요. 다행히 오해를 풀 수 있었지만요.”
무거워진 분위기에 강우도 덩달아 나지막이 말했다.
“그랬군요….”
강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주변엔 사람들이 없네요?”
“지금 이곳은 통제되고 있어요. 하운드들이 있거든요.”
“지금 여기에요?”
이소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네,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이소아는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호기심을 보이는 하운드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 아이와 대낮에 공원에서 산책도 가능한 거죠.”
강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다른 하운드들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하운드들은 생각보다 공격적인 성향이 아니에요. 먹을 것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쓸데없이 사람을 해치거나 하지 않아요. 몬스터 보호 협회 측에서 이쪽에 많은 동물들의 고기를 여기저기 뿌려놨어요. 하운드들은 현재 이 공원을 자신들의 거처로 삼고 있는 셈이죠.”
“지금 우리는 녀석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이소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하운드는 일반 개들, 동물들과 달리 자신의 영역에 큰 집착을 보이지 않아요. 하운드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너무 가까이 접근해오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새로운 사실이네요.”
“몬스터들도 이해만 하면 돼요. 아직 사람들은, 우리들은 그들의 습성을 모르고 있을 뿐이에요. 많은 시간과 노력, 자금까지도 필요하겠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도 동의가 되는 부분들이 꽤 있네요. 그럼 지금 하운드들이 몰려있는 곳은 어딘가요?”
“제 친구가 있는 곳에서 가까워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릴 때였다. 약 100m 떨어진 곳에 한 남자가 서있었다. 이소아는 남자를 보고 “어?”하며 살짝 놀란 눈치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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