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76화 (76/195)

76화

이현지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네가 이렇게 했다고?”

“그렇다니까?”

이현지는 주위를 둘러봤다. 누군가가 온 흔적을 찾기는 힘들었다. 이현지는 강우가 미노타우로스를 처참하게 부순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기껏해야 이성 상급 아니었나? 그런데 혼자서 미노타우로스를 잡아놓고 저렇게 멀쩡해?’

이현지는 미노타우로스를 쳐다보다가 다시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이렇게 만들면 어떡해? 완전 걸레짝이 됐잖아!”

“어?”

“이렇게까지 걸레를 만들어 놓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잖아.”

이현지는 발걸음을 옮겨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양손으로 잡았다. 이현지는 하나 남은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뽑아든 뒤 강우를 돌아봤다. 이현지는 손에 든 뿔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이거 하나 남았어. 이거 말고는 그냥 쓰레기야. 뭐, 미노타우로스에게서 얻을 거라곤 뿔이나 도끼 그리고 머리 정도밖에 없지만.”

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끼는 네가 먼저 부러트렸잖아.”

“나는 도끼날 하나 부러트린 거고, 너는 뿔 하나 남겨두고 걸레짝을 만들었잖아.”

“죽을 뻔 했던 걸 살려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이현지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죽을 뻔 하긴 누가 죽을 뻔 해? 내 능력은 방어라고! 고작 저런 소 한 마리가 날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강우는 더 이상 말싸움을 하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 한 발 물러섰다.

“그래, 알았다. 어쨌든 빨리 올라가기나 하자고.”

이현지는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손에 든 채 앞장섰다. 이현지는 올라가다가 멈춰 서서 강우를 향해 돌아봤다. 강우가 멈춰 서서 말했다.

“왜, 또 뭐?”

이현지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싸늘하게 말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말없이 이현지의 뒤를 쫓아갔다.

‘기절해있었으면서 안 죽기는 무슨…. 나 아니면 넌 그렇게 떠들 입도 사라졌을 거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어휴, 답답해.’

강우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때 발현됐던 검은 점에 대해 떠올렸다.

‘능력은 분명히 자연스럽게 아는 거라고 했는데…. 사람이 걸을 줄 아는 것처럼 당연하게 아는 거라고 했어. 그런데 왜 난 내 능력을 컨트롤 못하지?’

강우는 양 주먹을 꽉 쥐고 들여다봤다. 아까처럼 검은색 기운이 올라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현지가 강우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뭐하고 있어?”

“어? 가고 있어.”

“오긴 뭘 와? 멍 때리고 있었잖아.”

“간다고.”

이현지가 다시 몸을 돌려 걸었고, 강우는 인상을 쓴 채 뒤를 따랐다.

이태민과 이형철은 벌써 후지산 중턱을 오르고 있었다. 앞으로 남자 하나가 걸어가고 있었다. 이형철이 말했다.

“클랜장님, 앞에 일본지점 부클랜장 같은데요?”

“맞네.”

이태민은 남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사카모토!”

사카모토가 걸음을 멈췄다. 사카모토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이태민과 이형철을 향해 돌아섰다. 이태민과 이형철은 사카모토 앞에 멈춰 섰다.

사카모토는 180cm의 키에 큰 체격은 아니었지만,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는 장발이었고, 굳게 다문 입과 매서운 눈초리는 항상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사카모토가 말했다.

“몬스터들에게 우리가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하시지 그래….”

이태민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컸나?”

이형철이 말했다.

“사카모토, 오랜만이군?”

이형철이 사카모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카모토는 이형철을 싸늘하게 내리깔아보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나보다 약한 녀석과 손을 맞잡을 수는 없다.”

사카모토는 팔짱을 낀 채 몸을 돌려버렸다. 사카모토는 곁눈질로 이형철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을 이었다.

“뭐,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양손으로 악수를 청한다면 받아주지.”

이형철이 손을 뒤로 빼며 인상을 찌푸렸다.

“됐어! 나도 안 해! 에라이….”

이형철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사카모토를 노려봤다.

“그런데 네가 언제부터 나보다 강했어?”

사카모토는 팔짱을 낀 채 비아냥거렸다.

“난 이제 삼성 하급이야. 넌 아직 이성 상급 아니던가? 이성 쩌리 같으니…. 나랑 말 섞지 마. 질 떨어지니까.”

착, 착.

이형철과 사카모토가 이태민을 가운데 두고, 나란히 서며 앞을 똑바로 쳐다봤다. 이형철과 사카모토가 나란히 선 것은 그들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둘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태민이 몸을 돌려버린 것이다. 이태민은 웃으면서 두 사내의 등을 손바닥을 쳤다.

“자, 수다들은 그만 떨고, 이제 가자.”

이형철은 얼굴에 웃음기가 섞인 채 이태민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역시 우리 클랜장님이야.’

사카모토는 잔뜩 긴장한 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이태민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내 몸이 돌아갈 때까지도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전 세계에 있는 무투 클랜들 중 최약체로 꼽히는 한국조차 클랜장 만큼은 엄청나군. 우리 클랜장과 비슷…. 아니, 그 이상일지도…….

팡!

이태민이 두 사내의 등짝을 때렸다.

“무슨 생각들을 그렇게 해? 얼른 가자고.”

이태민과 이영철, 사카모토는 후지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우와 이현지는 후지산 중턱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도망가!”

콰앙!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굉음이 들려왔다. 강우와 이현지의 고개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강우가 이현지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사이였다. 이현지는 이미 소리가 난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강우는 이현지의 뒤를 따라 달렸다.

“제기랄! 아무 공격도 먹히지 않아!”

“아아아악! 살려줘!”

비명소리가 가까워져갔다. 빽빽이 서있는 나무들 바로 너머였다. 강우는 나무들을 뛰어넘을 심산이었다.

이현지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이현지의 전신에서 노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현지는 땅 위를 지나다니는 유성처럼 보였다.

콰, 콰, 빠직, 콰, 쾅, 쿵, 우직, 우지직, 빠지직!

이현지는 나무들을 전부 몸으로 부딪치며 달렸다. 나무들이 전부 쓰러지며 길이 생겼다.

퍽, 퍼퍽, 팍!

싸우는 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콰앙!

이현지가 나무를 뚫고 튀어나갔다.

앞에는 곰처럼 생긴 몬스터가 한국지점 클랜원 하나의 왼쪽 어깨를 물고 있었다. 물려 있는 클랜원은 어깨가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오른손을 몬스터의 주둥이 위에 걸치고 있었다. 주위로는 한국지점 클랜원들과 일본지점 클랜원들이 몬스터와 대치 중이었다.

클랜원들은 물론, 몬스터까지 이현지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이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강우도 이현지 뒤를 따라 사태를 파악했다.

클랜원의 어깨를 물어뜯고 있는 몬스터는 이성 상급인 쿠마였다. 쿠마는 얼핏 보면 곰과 흡사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달랐다. 우선 그 크기부터 남달랐는데, 몸길이만 6m 이상에 몸무게는 1톤이 넘었다. 그 외에 전체적인 모습은 여느 곰들과 비슷했지만, 일반 곰들에 비해 유난히 턱과 이빨이 발달했다. 몸 전체를 덮고 있는 털은 붉은빛을 띠는 갈색이었다. 검은색 발톱은 하나하나가 성인남자의 손만큼 커다랬다.

쿠마는 입에 물고 있던 클랜원을 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쿠마의 시선은 이현지에게로 고정돼있었다. 쿠마는 나무들을 부수고 튀어나온 이현지에게 흥미를 느낀 것이었다.

어깨를 물렸던 클랜원은 “으아아아아.”하고 소리를 내며 엉금엉금 기었다. 이현지가 크게 소리쳤다.

“안 돼!”

쿠마의 시선이 기어가는 클랜원의 등 위로 오른쪽 앞발을 휘둘렀다.

콰앙!

쿠마가 앞발을 치웠고, 클랜원은 납작하게 엎드려있었다. 코와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고, 몸통의 뼈는 모두 부서져 장기들을 찔렀다. 일부 장기들은 쿠마가 내리치는 순간 터져버렸다. 클랜원은 허억, 마지막 숨을 내뱉곤 그대로 죽었다.

쿠마는 이현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새끼가!”

다른 여자 클랜원의 목소리였다. 소리를 친 여자는 방금 죽은 남자의 연인이었다. 여자는 양손에 톤파를 쥐고 있었다.

타타타타탁.

여자는 두 눈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전신에서는 붉은빛을 뿜어내며 쿠마에게로 달려들었다. 쿠마의 시선은 여전히 이현지에게로 고정돼있었다. 이현지는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멍청한 짓 하지 마!”

여자는 양팔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죽여버리겠어!”

퍼억!

쿠마는 이현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왼쪽 앞발을 바깥쪽으로 휘둘러 여자를 쳐냈다. 쿠마의 앞발이 여자의 복부를 후려쳤고, 여자는 멀리 날아갔다.

이현지는 걱정스러운 듯 날아간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여자는 약간의 객혈이 있긴 했지만, 기침을 하며 숨이 붙어있음을 확인시켜줬다. 이현지가 남아있는 클랜원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이성 상급 이상 없지?”

모든 클랜원들은 서로의 눈치만을 살폈다.

이현지는 쿠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른 몬스터라면 협공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이 녀석에겐 이성 중급의 힘으론 공격 자체가 먹히지 않아. 특히 우리처럼 무투파인 경우엔 더욱.”

클랜원들은 이현지의 눈치를 살피고, 쿠마의 눈치를 살피며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이현지가 크게 소리쳤다.

“뭣들 해! 부상자를 데리고 얼른 도망가!”

이현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쿠마가 “크오오오오오옹!”하고 포효했다. 클랜원들은 쓰러진 여자를 부축해 도망갔다. 여자는 실려가면서도 “안 돼! 저기 아직 있잖아! 내 남…….”하고 소리를 치다가 정신을 잃었다.

이현지는 죽은 남자의 시체를 한 번 쳐다보곤 중얼거렸다.

“복수는 해줄게.”

이현지는 매서운 눈으로 쿠마와 두 눈을 마주쳤다. 이현지는 강우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넌 나서지 마. 내가 처리할 테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게 하라면 해. 그리고 이 녀석은 미노타우로스보다 등급으로 치면 한참 낮지만, 방어력만큼은 더 세.”

강우가 말했다.

“넌 방어력 타입 아니었어? 그럼 차라리 내가…….”

이현지는 나서려는 강우를 향해 멈추라는 듯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이런 녀석들의 약점은 내가 더 잘 알지.”

쿠마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이현지를 노려봤다. 이현지는 양발을 바닥에 쿵! 소리가 나도록 찍으며 자세를 잡았다.

“넌 봐주지 않는다.”

강우는 죽은 남자와 이현지를 번갈아봤다.

‘이 녀석…. 원래 이렇게 정의감이 넘치는 녀석인가? 같은 클랜원이 죽어서 저렇게 열이 받은 건가? 뭐, 어쨌든…. 나서지 말라고 했으니, 구경이나 해볼까. 위험하다 싶으면 나서지 뭐.’

강우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양반다리를 했다. 이현지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지금 뭐하는 거야?”

“나서지 말라며? 그래서 구경하려고 그러지.”

“너 진짜…….”

강우가 쿠마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앞에!”

이현지가 쿠마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쿵, 쿵, 쿠, 쿠, 쿠, 쿵!

쿠마가 네 발로 이현지를 향해 달려왔다. 쿠마는 입을 크게 쩍 벌리고 이현지의 머리를 노렸다. 이현지는 앞으로 내밀고 있는 왼발을 축으로 삼아 오른쪽으로 빙그르 돌았다. 쿠마의 입은 허공을 지나쳤다. 이현지는 그대로 한 바퀴 더 돌아 어느새 쿠마의 측면에 가있었다. 이현지의 양손에 노란색 빛이 모여들었다.

터엉!

이현지가 양쪽 손바닥을 모아 쿠마의 옆구리를 밀어 쳤다. 1톤이 넘는 쿠마의 몸이 붕 떠오르며 옆으로 날아갔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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