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쿠라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한 거 아냐? 동료의 목숨은 나의 목숨과도 같다. 넌 네 목숨을 중히 여기지 않는가?”
“당연히 내 목숨 중요하지.”
“그래, 그래서 그런 거다.”
강우는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내 목숨이랑 남 목숨이랑 같냐…. 비교를 해도…….’
강우는 산을 오르는 중 쿠라마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나도 능력을 갖고 있지만, 능력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이 여자가 최소 삼성 하급이라는 거 아니야? 아까 쿠마도 한 번에 죽이고….’
강우와 쿠라마의 눈이 마주쳤다. 쿠라마가 걸음을 멈췄다.
“왜 그렇게 쳐다봐?”
“같이 가고 있어서 그냥 본 거지.”
쿠라마는 콧방귀를 뀌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몇 미터 가지 않아서였다. 쿠라마가 걸음을 멈췄다. 강우는 쿠라마를 따라 걸음을 멈추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또?”
쿠라마는 왼손의 검지를 세워 자신의 코끝과 입 위에 가져다 댔다. 오른손은 조용히 있으라는 듯 강우를 향해 뻗었다. 강우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왜 그러는데?”
쿠라마는 날카로운 눈매로 주위를 살폈다. 쿠라마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말했다.
“뭔가 있어.”
강우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
쿠라마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니, 분명히 있어. 적어도 둘 이상.”
“뭐가 있다는 거야?”
쿠라마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분명히 가까이 있어. 분명히 가까이….”
쿠라마가 말을 끝마치기 전이었다.
콰콰콰콰!
쿠라마와 강우 사이, 발밑이었다. 땅에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쿠라마는 강우의 가슴팍을 밀치며 뒤로 몸을 날렸다.
쿵!
땅에서 고동색 털이 무성한 기둥과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기둥의 끝에는 독수리의 발톱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땅 밑에서 튀어나온 것은 이성 중급에서 상급을 오가는 몬스터 ‘아퀴몰’이었다.
아퀴몰은 두더지처럼 땅속에서 활동하는 몬스터였다. 입은 퇴화돼 어린아이의 주먹이 겨우 오갈 정도로 작은 입이 달려있었고, 이빨은 아예 없었다. 뒷다리 역시 퇴화돼 작은 혹처럼 살짝 튀어나와있을 뿐이었다. 눈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안와가 있는 부분이 움푹 들어가 눈이 있을 부위임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아퀴몰은 대신 돼지의 것처럼 생긴 코가 굉장히 발달돼 후각이 뛰어났고, 가장 발달한 것은 두 앞다리와 발이었다. 두 앞다리는 고릴라의 것처럼 굵고 길었다. 양발은 땅을 파기 좋도록 포크레인처럼 생겼고, 아주 짧은 발가락 네 개 끝에는 갈고리처럼 생긴 커다란 검은색 발톱이 있었다.
아퀴몰의 발은 다시 땅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쿠라마는 주위 땅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아퀴몰이야!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발밑을 조심해!”
강우와 쿠라마는 발밑을 쳐다보며 바닥을 경계했다.
두두두두두두.
발밑으로 아퀴몰이 지나다니는 진동이 느껴졌다.
쿠쿠쿠쿠쿠쿠, 쾅!
쿠라마의 뒤쪽으로 아퀴몰의 앞발이 튀어나왔다. 아퀴몰의 앞다리는 쿠라마의 키보다도 컸다. 아퀴몰의 앞발이 쿠라마의 머리를 향했다.
터턱.
쿠라마가 양손으로 아퀴몰의 앞다리를 움켜쥐었다.
콰아아앙!
쿠라마는 그대로 무를 뽑듯이 아퀴몰을 땅에서 뽑아내버렸다.
아퀴몰의 2m 이상 되는 몸집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반으로 잘라 붙여놓은 듯한 커다란 양팔이 드러났다. 쿠라마는 “퀴오옹.”하고 매우 낮은 음으로 기묘한 소리를 냈다. 비교적 낮고 차분한 소리와는 달리, 왼쪽 앞발은 매우 빠른 속도로 쿠라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투퉁!
쿠라마는 왼손으로 아퀴몰의 오른쪽 앞다리를 움켜쥔 채 오른손으로 날아든 앞발을 쳐냈다. 쿠라마는 곧바로 아퀴몰의 오른쪽 앞다리를 손을 옮겼다.
쿠우우웅!
쿠라마는 한팔 업어치기로 아퀴몰을 바닥에 쓰러트렸다.
“하앗!”
쿠라마가 주황색 빛을 머금은 주먹으로 아퀴몰의 머리를 내리쳤다.
퍼억.
아퀴몰의 머리는 썩은 호박처럼 뭉개져버렸다. 쿠라마는 손을 털어내며 숙였던 허리를 피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두두두두두.
강우가 쿠라마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비켜!”
쿠라마는 이유도 묻지 않고, 강우의 말을 듣자마자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뛰어올랐던 강우는 오른쪽 주먹을 바닥에 대고 휘둘렀다. 아니, 바닥에 오른쪽 주먹으로 착지한 수준이었다. 주변 지면이 갈라지며 강우의 몸집보다 큰 파편들이 튀어올랐다. 파편들 아래로는 땅속에 있던 아퀴몰의 모습이 드러났다.
“퀴오오옹.”
아퀴몰이 강우를 향해 양 앞발을 일자로 뻗었다.
빠악! 빠지지직!
강우가 몸을 돌려 오른발로 아퀴몰의 두 앞다리를 걷어찼고, 완전히 부러져 뼈가 가죽을 뚫고 튀어나왔다.
“퀴오옹.”
강우는 다시 몸을 돌려 오른쪽 주먹을 아퀴몰의 안면에 꽂았다.
떵!
아퀴몰의 얼굴뼈가 안전히 부서지며 강우의 주먹 모양대로 푹 들어갔다. 아퀴몰은 그대로 쓰러졌다.
강우는 부서진 지면 아래, 아퀴몰이 파놓은 터널에서 다시 지면으로 올라왔다. 쿠라마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우를 쳐다봤다.
“너 대체 뭐야?”
“뭐가?”
“절대 이성 상급의 능력이 아니야. 공격력에 모두 치중돼있다고 치더라도, 최소 삼성 하급은 되겠어. 네가 싸우는 걸 보니 미노타우로스를 잡은 것도 납득이 가.”
강우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가지?”
“그래. 잠깐만.”
쿠라마는 아퀴몰의 발톱을 모두 뽑아서 모은뒤, 강우의 옆으로 다가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는 발톱들을 허리춤에 차며 “이것도 얼마 안 돼. 이래서 아퀴몰은 수지가 안 맞아.”라고 말했다.
강우와 쿠라마는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강우가 물었다.
“뛰면 더 빠르지 않아?”
“그랬다간 몬스터들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까. 지그재그로 달리면서 샅샅이 훑어도 되긴 하지만,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건 다른 클랜원들이 할 테니까.”
“우리는 현재 정상을 향하고 있는 거 맞지?”
쿠라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런 식으로 다양한 몬스터들이 한 곳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어. 뭔가 이상해.”
“그럼 위에 뭐가 있을 거란 말이야? 몬스터가 나오는 구멍이라도 있나?”
“이상한 농담은 접어둬. 뭐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강우는 정상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 가보면 알겠지.”
강우가 보폭을 좀 더 크게 했고, 쿠라마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태민과 이형철, 사카모토는 정상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사카모토가 말했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몬스터들이 안 보이는군.”
이형철이 말했다.
“그러게. 올라가는 게 의미가 있나?”
이태민은 양손 깍지를 껴 뒤통수에 댄 채 말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일단 가보자고.”
셋은 정상을 향했다.
셋이 정상에 다다를 동안 특별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형철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특별한 것은 안 보이네요.”
사카모토가 말했다.
“하이퍼타우로스나 찾으러 다시 내려가죠.”
이태민은 팔짱을 낀 채 주위를 둘러봤다.
“흠…. 저기나 한 번 봐볼까?”
이태민이 화산구 쪽으로 몸을 틀었을 때였다.
“크오오오오오오오오오…….”
화산구에서 몬스터의 것으로 추정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셋은 빠르게 화산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태민이 가장 먼저 화산구에 도착했다. 이태민은 두 눈을 크게 뜨고 화산구 안쪽을 들여다봤다. 뒤이어 온 이형철과 사카모토 역시 멈춰 서서 화산구 안쪽을 들여다봤다.
화산구 안쪽 절벽을 타고 오르는 몬스터 두 마리가 있었다. 절벽을 타고 오르는 몬스터들은 쿠마였다. 좀 더 앞서고 있는 쿠마는 상태가 괜찮았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다리 하나가 잘려나가 있었고, 몸 여기저기가 상처투성이였다. 쿠마 두 마리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해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사카모토가 절벽을 오르는 쿠마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이형철이 말했다.
“마치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아. 대체 뭐지?”
사카모토가 말했다.
“무엇보다 저것들이 왜 저 아래서 기어 올라오고 있는 거야?”
이형철이 이태민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무슨 상황일까요?”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밖에 말 못하지.”
그 순간이었다.
“크오오오…….”
부상을 심하게 입은 쿠마 한 마리가 떨어졌다. 쿠마는 짧은 포효만을 남기고, 밑이 보이지도 않는 화산구로 추락했다.
이형철이 화산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기가 몬스터들이 나오는 구멍이라도 되는 걸까요?”
이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몬스터는 전 세계 어디서든 불규칙하게 나오니까.”
사카모토가 말했다.
“그럼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이태민은 화산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글쎄…. 그보다 나는 저 흉폭한 쿠마녀석들이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는지가 궁금해지는데?”
이태민은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쿠마를 보면서 말했다.
“저 녀석한테 물어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셋의 시선은 화산구를, 절벽을 타고 오르는 쿠마에게로 집중됐다.
터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셋의 시선이 동시에 뒤로 돌아갔다.
강우와 쿠라마는 여전히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던 중 침묵을 지키던 쿠라마가 물었다.
“넌 예거로 등록이 안 되어있나?”
“그건 왜 물어봐?”
“물어보면 안 되는 건가?”
강우가 말했다.
“돼있지. 단지 주 활동무대가 블랙마켓이라 예거로서의 등급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져서 말이지.”
“왜 블랙마켓에서 활동을 하지?”
“그야 돈도 더 되는 편이고, 일거리도 다양하잖아.”
쿠라마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너 정도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디서 활동하든 돈은 충분히 벌 수 있잖아.”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그러는 거지.”
“이미 먹고살기에는 넘칠 정도로 벌지 않나?”
강우는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핫도그를 떠올린 뒤 말했다.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있어서 말이야.”
“식구들이 그렇게 많아? 그리고 네가 그 식구들을 다 먹여 살려야 하는 건가?”
“뭐, 비슷하지. 엄청나게 먹어대거든.”
강우는 핫도그가 겜칵을 자신의 식사로 삼는 것을 떠올렸다.
‘뭐, 식비가 생각보다는 덜 들 수도 있겠다만…. 어쨌든 집도 지어줘야 하니까.’
쿠라마가 강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대체 그 이상한 건 왜 뒤집어쓰고 다니는 거지?”
“처음엔 나름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냥 이러고 싶네. 뭐, 간단하게 말해서 내 전투복 같은 거랄까.”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엔 그렇게 공격적이더니, 갑자기 왜 그렇게 이것저것 물어봐?”
“그냥 너에게 흥미가 생겼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강한 녀석들에겐 흥미를 가져. 어떤 녀석인지, 뭐하는 녀석인지, 아군일지 적일지 등등…. 더군다나 너는 무투파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난 또….”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면서 비아냥거리는 듯 한쪽 입꼬리만을 올리며 말했다.
“뭐야, 설마 흥미라는 게 내가 너를 남자로 봤다거나, 그런 걸 말한 건 아니겠지?”
“흥미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았지.”
“웃기지 마. 나는 나보다 약한 남자는 절대 남자로 보지 않으니까.”
쿠라마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오타쿠처럼 그런 코스튬을 입는 남자라면 더욱 그렇지.”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쿠라마를 쳐다봤다.
============================ 작품 후기 ============================
조금 늦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편부터는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게끔 할 생각입니다.
독자님들께서 읽으시는데 맥이 끊기지 않도록, 흥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