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강우가 말했다.
“내가 너보다 약하다는 말이야?”
“전 세계에 퍼져있는 무투 클랜들 중 일본지점장이 바로 나야. 당연히 너보다 세지.”
“그래? 그럴까…?”
강우는 쿠라마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나도 너한테 관심 없거든?”
쿠라마는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럼 이제 수다는 그만 떨고 빨리 올라가자.”
“수다의 시작은 네가 이것저것 물어봐서 그랬던 거잖아.”
쿠라마는 강우를 약 올리듯 양손을 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게 진짜….”
“빨리 가자고.”
쿠라마가 걸음을 더욱 빨리했고, 강우는 뒤를 따랐다.
이태민과 이형철, 사카모토가 고개를 돌렸다. 뒤에서 발소리를 낸 것은 다른 클랜원들이었다. 이형철이 옅은 미소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 놀랐잖아.”
클랜원 중 하나가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저희가 놀라게 했나요?”
사카모토가 말했다.
“지금 여기서는 쥐새끼 한 마리가 내는 소리에도 긴장해야 될 판이니까.”
다른 클랜원이 물었다.
“그런데 여기 뭐 좀 있었나요? 화산구 근처에서는 뭐하고 계신 거예요?”
이형철이 말했다.
“화산구 안쪽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이상한 일이요? 대체 무슨…….”
클랜원이 말을 끝마치기 전이었다.
“크오오오오옹!”
절벽을 타고 올라온 쿠마가 이태민의 뒤로 튀어올랐다. 이형철과 사카모토가 뒤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이었다.
쉭, 팡!
이태민이 몸을 돌려 쿠마의 몸통을 발로 걷어찼다. 쿠마는 그대로 다시 화산구로 떨어졌다.
“크오오오…….”
이태민은 화산구로 떨어지는 쿠마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높은 절벽을 올라왔으니 배가 고프기야 했겠다만…. 사냥감을 잘못 골랐어.”
이형철이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태민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단 기다려야지.”
사카모토가 주저앉은 이태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태민이 고개를 들어 사타모토와 눈을 마주쳤다.
“우선 너네 클랜장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걔랑 얘기해보고 정할게.”
사카모토는 잠시 이태민을 내려다보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형철도 천천히 바닥에 앉았다. 다른 클랜원들은 어찌할 바 모른 채 가만히 서있었다. 이태민이 미소를 지으며 클랜원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태민은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너희들도 앉아. 쉴 땐 푹 쉬어야지.”
클랜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주춤거렸다.
이형철이 말했다.
“클랜장님이 쉬라고 하면 쉬는 거다. 앉아라.”
클랜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았다.
강우와 쿠라마는 정상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던 중 쿠라마가 입을 열었다.
“나는 더 강해지기 위해 예거로 활동한다. 그리고 몬스터들을 죽이기 위해 활동한다.”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강우가 말했다.
“그래?”
쿠라마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렇다. 나처럼 몬스터를 죽이는 능력자들은 많이 필요해. 그래야 이 사회가 굴러갈 테니까. 나는 더 많은 몬스터를 죽여야 된다. 더욱 강해져야 돼.”
“몬스터를 죽이겠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계속 강함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데? 충분히 강하잖아? 네가 못 잡는 몬스터들을 사냥할 능력자들은 또 있고.”
쿠라마는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일본에서 사성 하급 몬스터가 출현했던 거 아나?”
“아니, 잘 모르는데.”
“너한테야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니 무리도 아니지. 11년 전이었다. 내가 아직 능력자로서 각성하기 전이었지…….”
쿠라마는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놨다.
쿠라마가 18살 때였다. 도쿄 도심 한복판에 사성 하급 몬스터가 나타났다. 키가 15m 이상인 거대한 몬스터였다. 거대한 몬스터는 도심을 활보하며 모두 부수고 다녔다. 몬스터가 양팔을 휘두를 때마다 건물이 쓰러졌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짓밟혔다.
몬스터는 입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품은 브레스를 뿜었다. 몬스터가 뿜어낸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간혹 내구력이 좋은 몇몇 건물이나 물건들은 재를 남겼다. 삼성급의 예거들조차 몬스터의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으면 단 한 번으로 생명을 잃을 정도였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쿠라마는 하교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몬스터의 등장으로 비상대피소로 이동해 몸을 숨겼다.
그 당시 일본에는 사성급 이상의 몬스터가 등장한 전례가 없었다. 반면에 해외에는 다양하고 강한 몬스터들이 등장하던 시기였고, 많은 예거들과 능력자들은 해외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몬스터를 제압할 무력이 일본에게 없었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몬스터는 한참을 도시를 헤집다가 도쿄만으로 향했다. 몬스터는 도쿄만에 몸을 숨기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일본의 피해는 막심했다. 피해복구를 위해 많은 자원을 쏟아야만 했다. 몬스터가 부순 지역은 방사능 수치검사가 끝난 후에야 통제가 풀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몬스터의 브레스에 방사능과 같은 피해는 없었다.
일단 몬스터는 사라진 상태,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이 사라졌음에, 가족들마저 잃었기에 절규하고 절망해야만 했다.
쿠라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쿠라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낯설었다. 자신이 알던 길, 건물들은 모두 부서져있었다. 쿠라마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쿠라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의 양손에 얼굴을 묻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고, 부모님과 동생까지, 연락이 닿는 가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쿠라마는 18살의 나이에 혼자가 됐다.
쿠라마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슬픔보다는 분노를 불태웠다.
“세상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모조리 죽이고 말 거다. 아주 씨를 말릴 거야.”
“뭐, 확실히 죽여야 될 몬스터들이 많긴 하지.”
쿠라마가 날카로운 눈으로 강우를 노려봤다.
“많은 게 아니야! 모조리! 몬스터는 전부 죽여야 돼!”
“그래, 알았어. 뭘 그렇게 눈을 부라리고 그래.”
쿠라마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말했다.
“미안하다. 이쪽 얘기만 나오면 좀 흥분해서….”
쿠라마는 눈을 번뜩 뜨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체가 몬스터보호협회야. 몬스터들과 다 묶어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 녀석들은 몰라. 몬스터에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강우는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를 쳤다.
‘내가 몬스터보호협회 일을 도왔던 걸 알면 나도 죽이려 들라나? 거참….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만…. 하긴, 나도 몬스터를 보호하자는 것에 그리 찬성하는 편은 아니지.’
강우는 핫도그를 떠올렸다.
‘그나저나 우리 핫도그는 잘 있으려나? 한국이야 삼성 하급 이상의 능력자들이 거의 없어서 괜찮기야 하겠지만…. 숨어있는 핫도그를 누가 발견할 리도 없을 거고. 그래도 만일을 위해 녀석도 단련을 좀 시켜줘야지.’
강우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얘는 왜 나한테 이런 얘기들을 하는 거야?’
쿠라마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얘기들을 하는지 모르겠네….”
강우는 쿠라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게 말이야.’
쿠라마가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곧 정상이다.”
“몬스터도 더 안 나오는 거 같은데, 이제 뛰지?”
“그래.”
강우와 쿠라마는 정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 치이익.
강우와 쿠라마가 정상에 도착했다. 쿠라마가 반대편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 가장 높은 지점이야. 아마 클랜 사람들이 모여 있을 거다.”
강우와 쿠라마는 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민, 이형철, 사카모토 등 클랜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카모토가 가장 먼저 앞서나와 쿠라마를 맞이했다.
“클랜장님, 오셨습니까.”
쿠라마는 사카모토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그래.”라고 말했다. 강우는 쿠라마를 보며 말했다.
“오…. 제법 클랜장 같은데. 그냥 수다쟁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쿠라마는 강우를 향해 눈을 흘겼다.
“시끄러워.”
쿠라마는 곧장 몸을 돌려 이태민에게로 향했다.
“정상은 어때?”
이태민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일이 꽤 재밌게 돌아가는 거 같아.”
이태민은 쿠마가 화산구 절벽을 타고 기어 올라왔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쿠라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화산구 근처로 걸음을 옮겨 안쪽을 살폈다. 쿠라마는 이태민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글쎄…. 같이 고민 좀 해보자고.”
이형철이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여기까지 오셨군요.”
강우는 이형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 네.”
“같이 조를 짰던 이현지는 어떻게 됐습니까?”
강우는 이현지가 부상을 입어 다시 하산하게 된 얘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배의 부상이 작진 않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
쿠라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희 클랜장에게도 말했지만, 그 조그만 계집은 내가 내려 보냈어.”
“아, 네. 방금 집행자 씨에게 들었습니다. 부상을 입었다고…….”
“뭐, 다른 내용도 있지만, 더 자세한 건 너네 클랜장에게 들어.”
이형철은 이태민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사카모토가 쿠라마에게 다가왔다. 사카모토는 강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쿠라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날 걱정할 위치냐? 네 몸 간수나 잘해.”
사카모토는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죄송합니다.”
사카모토는 고개를 들며 강우와 눈을 마주친 뒤, 다시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이 남자는 뭡니까?”
사카모토의 검지는 강우를 가리키고 있었다. 강우는 사카모토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새끼는 뭐야?’
강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사카모토를 쳐다봤다. 사카모토가 강우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 표정은 뭔가? 뭔가 불만 있나? 그나저나 세상 좋아졌어. 그런 이상한 걸 뒤집어써도 표정이 드러나고 말이야….”
사카모토가 검지로 강우의 가슴팍을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넌 뭐지? 뭔데 우리 클랜장님이랑……. 앙? 아까는 반말로 뭐라고 그랬더라?”
강우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사카모토를 노려봤다.
‘이 새끼를 그냥 확…….’
강우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고 있는 사카모토의 검지를 움켜쥐려 손을 올리기 직전이었다.
“사카모토!”
쿠라마가 매서운 눈으로 사카모토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카모토는 곧바로 차렷 자세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네, 클랜장님.”
“이분은 한국지점에서 용병으로 오신 분이다. 네놈이 무슨 자격으로 이분한테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거지?”
“아니, 저는 그냥 이 남자가 아까 너무 건방지게 굴길래…….”
쿠라마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이 남자는 그럴 자격이 있어.”
사카모토가 고개를 들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만큼 강하다는 거다. 적어도 네놈보다는 훨씬 강할 거다.”
사카모토는 못마땅하다는 듯, 미덥지 못하다는 듯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이죽거리며 말했다.
“너네 클랜장 말 못 들었냐? 눈깔아.”
쿠라마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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