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쿠라마가 말했다.
“그렇다고 네가 사카모토에게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건 아니야. 넌 나한테도 그러더니 시종일관 시비로군.”
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한테 뭐라고 그러기 전에 너희들이 처음에 나한테 했던 행동을 생각해봐라.”
강우는 사카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특히 너. 너네 클랜장이 아니었으면 이미 네 손가락을 잘라서 영영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던져버렸을 거야.”
사카모토가 분노에 찬 두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뭐라고 했어!”
누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이태민이 히죽거리고 있었다. 옆에는 이형철이 따라붙어있었다. 사카모토는 화를 삭이듯 이를 악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태민은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아까 얘기한 대로 하자.”
쿠라마는 팔짱을 낀 채로 대답했다.
“그래, 그게 가장 나은 방법 같아.”
이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카모토가 말했다.
“어떻게 하신다는 겁니까?”
강우가 말했다.
“어이…. 나도 같이 있는데 대화에 좀 껴주지 그래?”
이태민은 모여 있는 클랜원들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모두에게 설명해야 되니까 기다려.”
이태민은 이형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중턱 아래에 있는 수색조 말고는 더 올라올 사람 없지? 대충 설명한 다음에 다들 이쪽으로 좀 모이게 해봐.”
이형철은 고개를 끄덕인 뒤, 클랜원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이형철은 클랜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한 곳에 모았다. 이태민과 사카모토, 이형철이 클랜원들 앞에 섰다. 쿠라마는 이태민의 옆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강우에게 “넌 저쪽으로 가있어.”라고 말했다. 쿠라마는 이태민의 옆에 섰고, 강우는 클랜원들이 모여 있는 곳 옆으로 갔다.
이태민이 강우와 클랜원들을 향해 말했다.
“얘기들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겠지? 지금부터 계획을 말할 테니 잘 들어.”
이태민은 작전에 대해 얘기했다.
작전은 단순했다. 화산구 안쪽으로 진입해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안쪽에 무엇이 있을지는 몰랐다. 이러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에 화산구 안쪽으로 진입하는 멤버는 최소 이성 상급 이상만 지원이 가능했다. 그 중에서도 골라낼 것이었지만.
이태민, 쿠라마, 이형철, 사카모토는 화산구 안쪽으로 들어가는 확정 멤버였다. 그 외의 멤버들은 지원을 받기로 했다.
화산구로 진입을 하지 않는 멤버들 중 이성 중급 이상 열 명은 화산구 주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다른 몬스터의 등장에 대비가 아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화산구 안으로 들어간 멤버들을 돕기 위함이었다.
그 외의 멤버들은 모두 하산해 후지산에 남아있는 몬스터가 도심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주변을 경계하고, 이 같은 상황을 일본의 예거 파티 측에 알리기로 했다.
쿠라마가 말했다.
“이번 임무는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다.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굳이 무리해서 지원할 필요는 없다. 사냥도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탐색이 주목적인 임무다.”
얘기를 들은 클랜원들 중 대부분은 손을 들며 화산구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지원했다. 쿠라마가 사카모토에게 눈짓을 했다.
이태민은 이형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몇 명만 뽑아. 이런 일은 많이 가는 것보다 소수정예가 낫다.”
“알겠습니다.”
이형철과 사카모토는 지원자들 중 두 명만을 뽑았다. 확정된 멤버는 이태민과 쿠라마, 이형철, 사카모토, 한국지점의 클랜원 하나, 일본지점의 클랜원 하나였다.
이형철이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집행자 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분명 함께 해주신다면 전력에 큰 보탬이 될 겁니다. 보수는 예정된 것보다 훨씬 많이 받게 되실 겁니다.”
“그래요? 그럼 가야죠.”
사카모토가 말했다.
“저 녀석도 간다고? 우리 클랜도 아니잖아.”
이형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사카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번 임무에서만큼은 우리 클랜이나 다름없어.”
이태민이 말했다.
“실력만 확실하다면 괜찮지.”
쿠라마가 말했다.
“저 남자의 실력은 내가 보증하지.”
이태민이 놀랐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이태민은 쿠라마에게서 시선을 떼고, 강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쿠라마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상당한가본데? 그럼 얼른 출발하자.”
화산구에 진입할 멤버들과 화산구 주변에서 대기할 클랜원들만 남고, 다른 클랜원들은 모두 하산하기 시작했다.
이태민은 화산구 안으로 들어갈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미리 연락할 곳이 있으면 해두라고. 진짜 죽을지도 모르니까. 뭐, 이쪽 일이 언제나 죽을 수 있는 거긴 하지만.”
이태민은 언제나 죽음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쿠라마는 손가락이 드러나는 검은색 가죽 반장갑을 끼며 말했다.
“식량이랑 물은 사카모토가 가진 것이 전부야. 거의 없다고 보면 돼. 가능한 빠르게, 길어도 24시간 안에 일을 마친다.”
이태민이 화산구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가보자고.”
화산구에 들어갈 멤버들이 걸음을 옮겼다.
화산구 안쪽은 아찔할 정도로 높았다. 깊숙한 안쪽은 보이지 않았고, 어떤 모습일지 예상조차 불가능했다. 이형철이 화산구 안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내려가죠?”
사카모토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화산구 안쪽 벽면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면 될 것 같네. 넌 눈이 없냐?”
이형철은 심기가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사카모토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않았다. 사카모토가 가리킨 곳은 경사가 져있었다. 절벽과 크게 다를 것이 없긴 했지만, 발을 디딜 공간은 있었다.
이태민과 쿠라마가 앞장섰고, 그 뒤에는 클랜원 두 명, 그 뒤로는 이형철과 사카모토, 맨 끝에 강우 순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내려가도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강우 일행은 날이 밝아도 빛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깊은 곳을 내려가고 있었다. 강우를 제외한 이들이 모두 몸에서 빛을 뿜어 그 빛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간 뒤였다. 분명히 더 깊어야 할 화산이 막혀있었다. 바닥은 울퉁불퉁했다. 쿠라마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이태민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화산이…. 막혔네?”
쿠라마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 거니까 뭔가 다른 걸 말해봐.”
“내가 어떻게 알겠어? 화산 속으로 들어온 것도 태어나서 처음인데.”
이형철이 말했다.
“일단 주위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카모토가 발걸음을 옮기며 클랜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모두가 발걸음을 옮겨 수색을 시작했다. 몸에서 빛을 뿜어내지 못하는 강우는 쿠라마와 함께 다녔다.
쿠라마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나?”
강우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
“그런 거 같은데?”
“주머니에서 손 빼고, 제대로 좀 봐봐.”
강우가 검지로 바닥을 가리켰다.
“저기.”
쿠라마는 강우가 가리킨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쿠라마는 쪼그려 앉아 핏자국을 들여다봤다.
“몬스터가 흘린 피인가?”
강우도 쿠라마의 옆에 서서 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용했다. 강우 일행이 조사를 하면서 내는 발걸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와보세요!”
일본지점 클랜원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일본지점 클랜원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일본지점 클랜원이 쿠마의 시체를 발견했다. 쿠마의 시체는 다리가 잘려나가 있었다. 절벽을 오르다가 떨어진 쿠마였다.
한국지점 클랜원이 말했다.
“이쪽에도 있습니다.”
한국지점 클랜원이 있는 곳에는 이태민이 발로 걷어차서 떨어져 죽은 쿠마가 있었다. 이태민이 말했다.
“일단 여기가 바닥은 맞는데…….”
쿠라마가 말했다.
“더 샅샅이 살펴봐.”
강우와 쿠라마가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가 강우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런데 넌 왜 자꾸 내 옆에 붙어 다녀?”
“나는 빛을 못 뿜어.”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강우는 쿠라마가 내뿜는 빛에 의지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냥 빛을 못 뿜어.”
쿠라마는 강우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강우가 전방을 가리켰다.
“엇! 저기!”
쿠라마는 강우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왜 갑자기 호들갑…….”
쿠라마와 강우는 멈춰 서서 한 곳을 응시했다. 강우와 쿠라마가 멈춰서있자 이태민이 다가왔다.
“뭔가 발견했어?”
이태민 역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태민은 전신에서 붉은색 빛을 강하게 뿜어내며 다른 클랜원들도 모두 오라고 했다.
강우를 제외한 모두가 몸에서 강한 빛을 뿜어냈다. 강우가 발견한 것은 커다란 구멍이었다. 강우를 제외한 모두가 몸에서 빛을 발산했다. 강우 일행이 있는 곳이 환해졌고, 커다란 구멍이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구멍의 직경은 30m 이상이었고, 터널처럼 사선으로 이어졌다.
이태민이 구멍을 보며 말했다.
“어떡하지?”
쿠라마는 오른쪽 주먹을 왼쪽 손바닥에 부딪치며 말했다.
“여기까지 온 거, 가봐야지.”
이태민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이형철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괜찮을까요? 뭐가 있을지 모르는데…….”
사카모토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겁쟁이 녀석.”
이형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가 겁쟁이라는 거냐?”
“지금 네가 겁쟁이처럼 말했잖아.”
“단지 신중을 기한 것뿐이야!”
쿠라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들은 초등학생이냐? 시끄러우니까 입 좀 다물어.”
쿠라마의 말에 이형철과 사카모토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쿠라마가 이태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기는 우리끼리만 들어가지?”
“그게 나으려나?”
이형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사카모토가 말했다.
“저도 갑니다.”
이태민은 이형철과 사카모토를 바라보다가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라고 하는데?”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린 채 이형철과 사카모토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어디까지나 보조다.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놔. 알겠나?”
이형철과 사카모토는 동시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른 두 클랜원이 말했다.
“저희도 가겠습니다.”
이태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냐, 너희들은 여기까지 온 걸로 충분해. 화산구 입구로 올라가서 지금 여기 상황을 전하도록 해.”
두 클랜원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화산구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태민, 쿠라마, 이형철, 사카모토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쏠렸다. 이태민은 강우와 두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어떡할래요? 갈래요?”
사카모토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저희끼리 가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저런 녀석은 같이 가봐야 짐밖에 안 될 겁니다.”
쿠라마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사카모토, 그 입 한 번만 더 놀렸다간 당분간 빨대로 밥 먹게 될 줄 알아.”
사카모토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형철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 함께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보수를 드리는 것이긴 하지만, 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건 정말 목숨을 내놓았던 것이니까요. 사냥할 몬스터가 무엇인지 알고 하는 일과는 분명히 다르죠. 정말 감사합니다.”
“뭐, 그렇게까지…….”
이형철의 깍듯한 태도에 강우는 어찌할 바 몰랐다.
‘처음에 봤을 때도 그렇고,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란 말야…. 그나저나 어쩔까나…. 같이 가볼까?’
쿠라마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어쩔 거냐? 같이 가도 괜찮을 거 같긴 한데.”
모두의 시선이 쿠라마에게로 쏠렸다. 이태민은 쿠라마를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뭐야, 같이 가고 싶은 거 같은데?”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가 같이 가고 싶대.”
이형철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볼 때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하신 걸로 들렸는데요?”
쿠라마가 이형철에게 눈을 흘겼다.
“시끄러워….”
이형철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태민이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떡할래요?”
강우는 쿠라마와 눈을 마주쳤다. 쿠라마는 “가든지 말든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며 혼자 구시렁거렸다. 강우는 이태민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가도록 하죠.”
강우는 사카모토를 슬쩍 한 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런 놈도 가는데, 제가 못 갈 이유가 없잖습니까?”
사카모토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강우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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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