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사카모토가 강우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사카모토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쿠라마가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사카모토는 입을 다문 채 슬쩍슬쩍 강우를 노려보기만 했다.
이태민이 말했다.
“그럼 더 이상 시간지체하지 말고 갑시다.”
이태민은 커다란 구멍 앞에 서며 말했다.
“다들 몸에서 빛 좀 강하게 뿜어주시고.”
강우 일행은 천천히 구멍으로 들어섰다.
구멍은 내리막길로 이뤄진 터널이었고, 나선형으로 길을 이어나갔다. 한참을 걸어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길은 상당히 넓었기에 강우 일행은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겼다. 강우 일행의 걸음이 멈췄다.
하이퍼타우로스가 엎드려 있었다.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하이퍼타우로스의 상태가 이상했다. 하이퍼타우로스의 커다란 두 뿔은 부러져서 보이지 않았고, 얼굴 여기저기는 상처투성이였다. 부릅뜨고 있는 두 눈 역시 초점이 없었고, 호흡도 없었다.
이형철이 하이퍼타우로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쿠라마가 몸에서 뿜어내던 빛을 강화했다. 하이퍼타우로스는 엎드린 채 죽어있었다. 갈비뼈 아래로는 핏자국만 남아있었다. 바닥에 말라붙은 피로 미루어봤을 때 죽은 지 꽤 된 것으로 보였다.
사카모토가 말했다.
“누가 죽인 걸까요?”
쿠라마는 하이퍼타우로스의 시체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글쎄….”
강우는 하이퍼타우로스의 시체 뒤로 쭉 이어진 핏자국을 가리켰다.
“하반신이 잘려나간 채로 기어온 거 같은데?”
이형철은 멀리까지 이어진 핏자국을 보며 말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친 것 같은 모습이네요.”
쿠라마는 하이퍼타우로스의 뜯겨나간 몸을 보며 말했다.
“이건 사람이 한 게 아니야. 아마 다른 몬스터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커.”
이태민이 물었다.
“만약 사람이 한 거라면?”
쿠라마는 하이퍼타우로스의 뜯겨나간 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아마 지독하게 끔찍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겠지.”
이태민은 하이퍼타우로스의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이어진 핏자국으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이걸 따라 가보자.”
강우 일행은 핏자국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하이퍼타우로스의 핏자국은 길게 이어졌다. 마치 강우 일행을 안내하는 이정표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핏자국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중 강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기….”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옮겨졌다. 강우는 뒤를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일행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 밝아진 거 같지 않아?”
강우의 말에 일행들은 몸에서 뿜어내는 빛을 조금씩 감소시켰다. 터널 안은 빛을 뿜지 않아도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간이 될 정도로 밝아져있었다.
쿠라마는 다시 빛을 뿜어내며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좀 더 빨리 이동하자.”
강우 일행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김에 따라 터널 안은 점점 환해졌다. 하이퍼타우로스의 핏자국이 끊겼고, 터널 안은 빛을 뿜어내지 않아도 될 만큼 밝아져있었다.
빛은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바닥은 노란빛을 머금고 있었고, 발광했다. 사카모토는 손으로 바닥을 만져보며 말했다.
“대체 무슨 빛이지?”
쿠라마는 바닥을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이건…. 우리의 것과 비슷해.”
항상 웃음을 머금고, 여유를 갖던 이태민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이게 왜 바닥에서 뿜어지고 있지?”
이형철이 말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군요….”
일행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했다. 하지만 답을 내릴 순 없었다.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그저 생각에 잠겨있었다. 정적을 깬 것은 강우였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앞으로 가보면 알게 되겠지.”
강우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행들은 잠시 멍하니 강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일행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이 돌아온 듯 눈을 번뜩 뜨며 입을 연 것은 쿠라마였다.
“어디 가는 거야?”
강우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검지를 세워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터널 따라 가는 거지.”
“앞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확인하러 가는 거잖아.”
강우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는 “하여튼…. 대책 없는 녀석이야.”라고 중얼거리며 강우의 뒤를 따라나섰다.
사카모토가 쿠라마의 뒤에다 대고 말했다.
“지금 그냥 이 길을 따라가겠다는 겁니까? 지금 이거 심상치가 않습니다. 빨리 밖에 이 상황을 모두 알리고, 최대한 많은 능력자들과 함께 와야 됩니다.”
이태민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걸음을 옮겼다.
“나도 가볼래.”
이형철이 이태민을 따랐다.
“저도 가겠습니다.”
쿠라마는 사카모토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너는 올라가서 이 상황을 알려. 난 수색을 할 테니까.”
사카모토가 인상을 찌푸리며 걸음을 옮겼다.
“아니요! 저도 갑니다!”
사카모토는 걸음을 빠르게 옮겨 강우의 옆으로 갔다. 강우는 자신의 옆에서 함께 걷는 사카모토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야, 넌 올라가는 거 아니었어?”
“웃기지 마.”
사카모토는 걸음을 더욱 빨리해 선두에 섰다. 강우 일행은 터널을 따라 계속 걸었다.
강우 일행은 사카모토만 빼고,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가 사카모토의 등뒤에 대고 말했다.
“고집부리지 말고 뒤로 와.”
“됐습니다.”
“왜 그러는 건데?”
사카모토는 걸음을 멈추고 강우를 노려본 뒤,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저런 새끼가 날 무시하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죠.”
강우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널 언제 무시했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비는 네가 먼저 걸고, 열도 너 혼자 받았지.”
사카모토는 이를 악 물고, 눈에 핏발을 세우며 강우를 노려봤다. 사카모토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다시 앞으로 몸을 돌렸다.
쿠라마가 말했다.
“그냥 같이 가자고. 피곤하게 구네 진짜….”
사카모토가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클랜장님에게 더 서운합니다! 제 의견은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처음 만난, 생각도 없이 행동하는 남자의 의견에 따르지 않았습니까?”
이태민은 지겹다는 듯 졸린 눈으로 사카모토를 보며 말했다.
“뭐야, 질투하는 거야?”
이형철은 사카모토를 조롱하듯 말했다.
“짝사랑 때문이었군요. 어리군…. 어려.”
강우가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말했다.
“그런 거였어? 난 몰랐지. 이러면 더 열 받으려나?”
강우는 쿠라마의 등 뒤로 손을 뻗어 어깨를 감쌌다. 쿠라마는 강우의 팔을 쳐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손 치워. 뭐하는 거야?”
쿠라마는 사카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똑바로 작전 수행해.”
콰앙!
사카모토는 바닥에 발을 세게 구른 뒤, 목소리를 높였다.
“이젠 어린애 취급입니까! 저도 무투 클랜 일본지점의 부클랜장입니다!”
“내가 언제 그랬어? 자꾸 이럴 건가? 이제 명령이야. 함께 움직인다.”
“이럴 때 직권을 내세워 그러지 마십시오!”
강우는 팔짱을 낀 채 사카모토를 보며 중얼거렸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네…. 넌 상담 좀 받아봐야 될 거 같다.”
사카모토는 씩씩거리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죽고 싶은가!”
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죽을 리가 없잖아.”
쿠라마는 강우를 째려보며 말했다.
“넌 좀 조용히 하고 있어.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쿠라마는 사카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너 진짜 왜 이래? 원래 다혈질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미쳤어?”
사카모토는 양 주먹을 꽉 쥐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카모토의 두 눈에는 광기만이 가득했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숨은 거칠게 몰아쉬었다. 사카모토는 입에서 침마저 뚝뚝 흘렸다.
이형철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요.”
사카모토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됐고, 지렁이를 심어놓은 듯한 핏줄이 목과 이마까지 올라왔다.
이태민은 표정을 굳힌 채 주위를 둘러봤다. 이태민의 시선이 천장의 한 곳에 머물렀다. 이태민은 “이런 젠장!”하며 튀어올랐다.
퍼억!
이태민이 천장의 한 곳에 왼쪽 주먹을 휘둘렀고, 누런색 액체가 사방으로 팍 튀었다. 무언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카씽’이었다. 카씽은 성인남자의 손바닥 크기의 몬스터였다. 생긴 것은 해삼과 비슷했는데, 몸의 빛깔은 상아색이었다. 카씽은 눈이나 코와 같은 기관이 하나도 없었다. 배 쪽에는 빨판이 있어 어디든 붙어서 기어 다닐 수 있었다. 입 대신에는 다른 생물체에게 기생할 수 있게끔 삐죽한 가시가 달려있었다.
카씽이 몬스터로서 받는 등급은 이성 상급이었다. 카씽은 일반인도 맨손으로 죽일 수 있을 만큼 연약했다. 이런 카씽이 이성 상급이란 등급을 받는 것은 이성 상급의 예거에게 기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카씽은 기생할 수 있는 조건이 정해진 듯 이성 상급에서 랭커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능력자들이나 이성 중급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몬스터에겐 기생하지 못했다. 기생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래로는 머리에 달린 가시를 찔러 파고드는 순간 기생이 시작됐고, 숙주를 자신의 통제했다.
카씽이 숙주의 몸을 완전히 파고들고 난 다음 향하는 곳은 뇌였다. 숙주의 몸속으로 들어간 카씽은 가느다래지며 몸이 물렁해진다. 그리고 숙주의 뇌에 다다를 쯤엔 가느다란 실만큼 가늘어진다. 실처럼 가늘어진 카씽은 숙주의 뇌 주름 사이사이를 훑고 다니다가 이윽고 이리저리 꿰뚫기 시작한다. 카씽이 숙주의 뇌를 꿰뚫는 순간에는 끝이다. 그 숙주는 카씽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카씽이 가장 성가신 점은 숙주를 완전히 지배했을 때였다. 카씽은 숙주와 하나가 되는 순간, 훨씬 강해졌다. 예를 들어 본래 숙주가 이성 하급이라면, 카씽에게 완전히 지배당할 쯤엔 이성 중급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강우 일행은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약 열 마리 이상의 카씽들이 붙어있었다. 이태민이 이형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넌…….”
이형철의 머리 위로 카씽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형철이 말했다.
“네?”
퍼엉! 팡!
이태민이 뛰어올라 이형철의 위로 떨어지는 카씽을 발로 걷어차 터트렸다. 쿠라마가 천장에 있는 카씽 하나를 손으로 후려쳐 죽였다. 강우는 천장에 꾸물거리는 카씽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쿠라마가 강우를 보며 소리쳤다.
“뭐하고 있어? 얼른 카씽을 죽여!”
“어차피 우리 중에 카씽이 기생할 사람은 없는 거 아냐? 방심만 하지 않으면 저런 기생충이 들러붙게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강우는 사카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저거부터 어떻게 해야 될 거 같은데….”
사카모토는 강우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마음에…. 안 드는……. 죽인…. 다.”
강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지경이 돼서도 나한테 지랄이네….”
사카모토의 이마와 목에 잔뜩 올라왔던 핏줄이 잦아들고 있었다. 사카모토의 목 옆쪽에는 카씽의 꽁지부분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이태민이 카씽을 때려잡으며 소리쳤다.
“저걸 얼른 잡아서 빼야 돼!”
이형철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카씽을 손으로 낚아채 터트리며 말했다.
“카씽들은 제가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사카모토를 구해주십시오!”
쿠라마가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골치 아프게 됐어.”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왜?”
쿠라마는 사카모토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카모토는…….”
파앙!
쿠라마가 말을 잇기 전, 사카모토가 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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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웃는 일 가득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