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사카모토는 전신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후웅-
강우가 몸을 틀어 회피했고, 사카모토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그 틈을 타서 쿠라마가 사카모토의 목 옆으로 나와 있는 카씽을 노렸다.
츗, 츄츗.
사카모토는 주먹을 휘두르고 있어 체중이 앞으로 쏠렸는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쿠라마와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났다.
쿠라마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저 녀석 능력이 스피드에 집중돼있거든. 게다가 카씽이 목에 붙어있어서 조심하느라 더 힘들어. 잘못했다간 사카모토 목을 공격하는 꼴이 되니까….”
카씽의 꽁지는 엄지와 검지로 집어내야 될 정도로 조금만을 남겨두고 사카모토의 목 옆으로 파고들어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카모토에게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피해를 주지 않고, 카씽만을 뽑아내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꽁지를 잡더라도 힘 조절을 잘못했다가는 카씽의 몸이 뜯어질 염려도 있었다. 그랬다간 나머지 부분은 사카모토의 목을 가르지 않는 이상 빼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카씽은 완전히 숙주의 몸에 파고드는 순간 빠른 속도로 뇌를 향하기 때문에 목을 갈라도 꺼낼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목을 가른다면 사카모토의 죽음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의미가 없었지만.
쿠라마나 이태민은 사카모토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했지만, 목을 파고드는 카씽을 뽑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쿠라마나 이태민보다 더 강한 능력자였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 걸맞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타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퍼, 퍼퍽!
이형철은 카씽들을 거의 다 처리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형철은 강우와 쿠라마, 이태민을 향해 소리쳤다.
“금방 가겠습니다!”
사카모토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이태민은 쿠라마를 보며 말했다.
“내가 녀석을 붙들게. 그럼 네가 목에서 카씽을 뽑아내.”
쿠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민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당신도 사카모토를 붙드는 걸 좀 도와주세요.”
이태민은 사카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사카모토는 씩씩거리며 강우만을 쳐다봤다. 시뻘겋게 출혈됐던 사카모토의 두 눈은 어느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강우는 사카모토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눈이 좀 괜찮아졌는데?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 아니야?”
이태민이 사카모토에게로 튀어나갔다. 쿠라마는 “더 나빠지고 있는 거야!”라며 사카모토를 향해 뛰었다. 그 순간에도 사카모토에게 붙은 카씽은 사과를 갉아먹으며 파고드는 애벌레처럼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쉭.
이태민이 사카모토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사카모토는 손끝으로 이태민의 안면을 노렸다. 사카모토의 손끝은 마치 창처럼 이태민의 왼쪽 눈을 향했다. 이태민은 고개를 틀어 사카모토의 공격을 피했다. 이태민은 사카모토가 뻗은 오른팔을 양팔로 감쌌다. 이태민은 그대로 사카모토의 팔을 꺾어 바닥에 엎드리게 할 심산이었다.
우두둑!
이태민의 두 눈이 커졌다. 사카모토는 이태민이 꺾는 방향으로 오히려 몸을 더 틀었다. 스스로 어깨 관절을 빼버린 셈이었다.
쿠라마가 사카모토의 목에 있는 카씽을 노렸다. 사카모토는 쿠라마의 안면을 향해 왼팔을 크게 휘둘렀다.
빠악!
쿠라마는 사카모토의 공격을 안면으로 받아냈다. 쿠라마의 고개가 홱 돌아갈 정도로 강렬한 타격이었다. 쿠라마는 공격을 맞은 상태에서도 사카모토의 목에 있는 카씽에 집중했다. 쿠라마는 카씽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쉭, 쉬쉭.
사카모토는 어깨관절이 빠져서 헐렁거리는 팔을 이태민에게서 빼내며, 뒤로 물러났다.
뚜두둑!
사카모토는 빠졌던 관절을 스스로 다시 끼웠다. 사카모토는 꽤나 안정돼보였다. 오히려 카씽에게 당했을 때보다도 더욱 냉정해보였다. 카씽의 꽁지는 불과 1cm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태민이 말했다.
“시작된 모양이야.”
쿠라마는 사카모토를 향해 뻗었던 팔을 거두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응, 강해졌어. 원래보다 더 빨라.”
이태민과 쿠라마는 전신에서 주황색 빛을 뿜어냈다. 사카모토는 입을 굳게 다물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강우 일행을 노려봤다. 사카모토의 전신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태민이 말했다.
“마지막 기회야.”
쿠라마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세를 취했다. 이태민과 쿠라마가 사카모토에게 뛰어들기 직전이었다.
콰, 콰, 콰, 콰, 콰, 콰, 콰, 콰, 콰, 콰.
강우가 오른쪽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태민과 쿠라마, 사카모토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쏠렸다. 강우는 사카모토를 향해 벽을 타고 달렸다.
쿵!
강우는 벽을 타고 달리다가 사카모토에게 뛰어들었다. 강우는 양팔을 사카모토에게 뻗었다. 사카모토가 오른쪽 주먹을 강우의 안면을 향해 휘둘렀다. 강우는 뻗고 있던 왼손으로 사카모토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잡았다.”
강우는 오른손을 사카모토의 목으로 뻗었다.
팡!
사카모토가 밑에서부터 강우의 안면을 발로 차올렸다. 강우의 턱이 확 들렸고, 후속타가 이어졌다.
퍽, 퍼퍽, 퍼퍼퍼퍼퍼퍽, 팡!
사카모토는 양발과 왼쪽 주먹으로 마구 쳤다. 마지막엔 오른발로 밀어 찼고, 강우는 왼손으로 잡고 있던 사카모토의 손목을 놓쳤다.
쿵! 턱.
강우는 벽에 부딪친 뒤, 바닥에 떨어졌다. 강우는 이태민과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소리쳤다.
“뭐하고 있어? 구경만 할 거야? 뭐라도 했어야지!”
이태민과 쿠라마는 그제야 사카모토에게로 뛰어들었다. 이태민은 “조금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어.”라며 튀어나갔다. 이태민의 몸에서 뿜어지는 빛이 뒤로 이어져 기다란 선이 생겼다. 이태민은 순식간에 사카모토의 코앞에 다가섰고, 양팔을 넓게 벌렸다.
후웅.
이태민은 사카모토의 하반신을 노리고 태클을 했다. 사카모토는 점프를 해 이태민의 태클을 피했다.
치이이익.
이태민은 멈춰서며 사카모토를 향해 돌아봤다.
“이런 제길….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
쿠라마가 사카모토를 향해 뛰었다. 강우는 쿠라마를 보며 “저건 그때 쿠마의 몸을 뚫었던….”이라고 중얼거렸다.
푸슝!
쿠라마는 마치 주황빛 유성처럼 사카모토를 향해 날아갔다. 쿠라마는 날아가면서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쿠라마는 사카모토에게 타격을 입히려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옆으로 지나가며 카씽을 잡아 빼려고 했다.
터어엉!
쿠라마가 바닥에 착지했다. 쿠라마의 주변 바닥에는 균열이 일어났다. 쿠라마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실패였다. 사카모토는 쿠라마가 손을 뻗는 순간 몸을 옆으로 튼 뒤, 손날로 손목을 쳐냈다. 사카모토가 발을 치켜들어 쪼그려 앉아있는 쿠라마를 노렸다.
콰아아앙!
쿠라마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날려 피해냈고, 사카모토의 내려찍기는 바닥을 내리찍었다. 이태민과 강우가 사카모토를 향해 달려드려는 순간이었다.
터엉!
이형철이 날아와 사카모토의 허리를 붙들며 같이 쓰러졌다. 이형철은 있는 힘껏 사카모토의 허리를 붙든 채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강우는 빠르게 뛰며 소리쳤다.
“좋았어!”
그 순간이었다. 사카모토의 목을 파고들던 카씽이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카씽이 완전히 사카모토의 몸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것을 본 이태민이 이형철을 향해 소리쳤다.
“떨어져!”
“네?”
푸욱.
사카모토가 손끝으로 이형철의 목 옆을 찔렀다. 중지 한마디, 검지와 약지는 손톱 길이가 이형철의 목을 뚫고 들어갔다. 이형철은 사카모토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양팔을 풀고, 몸을 뒤로 날렸다.
“크어억!”
이형철의 목에 난 구멍에서는 피가 꿀럭꿀럭 새어나왔다. 이태민은 곧바로 쓰러져있는 이형철에게로 달려갔다. 이형철은 양손으로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채 컥컥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이태민은 이형철의 양손 위로 손을 얹은 채 말했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네…. 컥. 크으으…….”
“말하지 말고!”
이태민은 강우와 쿠라마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상태가 안 좋아! 난 형철이를 올려놔야겠어! 사카모토는 어차피 늦었어! 네가…….”
쿠라마는 사카모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이태민을 향해 뒤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 내 부하니까…. 내가 마무리 짓고 복귀할게.”
이태민은 이형철을 둘러메며 말했다.
“부탁한다!”
이태민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부탁할게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태민은 이형철을 둘러멘 채 뛰기 시작했다. 이태민은 전신에서 빛을 강하게 뿜으며 빠르게 달렸다. 이태민은 뛰면서 계속 이형철에게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으면 돼.”라고 말을 걸었다.
사카모토는 가만히 선 채로 쿠라마와 강우를 쳐다봤다. 사카모토의 얼굴은 어느새 핏기가 사라지고 창백해져있었다. 목과 뺨, 이마에는 퍼런 실핏줄이 드러났다. 사카모토의 전신에는 타오르는 불처럼 붉은빛이 일었다.
강우는 사카모토를 보며 말했다.
“저거…. 분위기가 좀 달라졌는데?”
사카모토의 두 눈동자는 흐릿해져있었다. 각막 위로 하얀 막이 씌워진 것처럼 희뿌옇게 변해있었다. 검은색 두 눈동자는 이내 잿빛으로 변했다.
쿠라마는 분노인지 슬픔인지 표정을 일그러트렸고, 두 눈은 촉촉해져있었다. 쿠라마의 주먹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쿠라마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사카모토를 쳐다봤다.
“이미 끝났어.”
강우가 물었다.
“끝나다니?”
“이제 몬스터나 다름없다고. 영원히 구해줄 수 없어. ”
강우는 사카모토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렇다면….”
쿠라마는 사카모토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죽여야지. 내 부하였으니, 내가 보낼게. 넌 나서지 마.”
“혼자 괜찮겠어? 원래보다 더 강해졌다며. 아까도 카씽을 못 뺐잖아?”
“그건 사카모토가 다치지 않게 하려고 해서 그런 거고. 강해져봐야 삼성 하급 정도야. 그냥 가만히 있어.”
쿠라마가 주먹을 꽉 쥐었고, 가죽장갑의 마찰이 끼익, 소리를 냈다. 사카모토는 초점 없는 눈을 뜨고 있을 뿐, 어디를 보고 있는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쿠라마는 천천히 사카모토를 향해 걸어가며 “편하게 해줄게.”라고 말했다. 강우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쿠라마와 사카모토의 거리가 불과 1m 남짓할 때였다. 사카모토가 갑작스레 쿠라마에게 뛰어들었다.
터엉!
사카모토가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쿠라마는 예상하고 있었던 듯 왼팔을 들어 사카모토의 공격을 막아냈다. 사카모토의 왼쪽 주먹이 쿠라마의 옆구리를 노렸다. 쿠라마는 오른손을 휘둘러 사카모토의 손목을 쳐냈다.
파앙!
쿠라마의 묵직한 오른발 로우킥이 사카모토의 왼쪽 허벅지에 들어갔다. 사카모토의 균형이 살짝 무너졌다. 사카모토는 아랑곳 않고 그대로 쿠라마에게 접근했다.
사카모토가 빠르게 주먹을 퍼붓기 시작했다.
왼쪽 잽, 잽, 오른쪽 스트레이트.
쿠라마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주먹을 모두 피해냈다.
쉭, 파팡, 파팍, 텅, 팡!
사카모토의 속도가 올라갔다. 사카모토의 첫 번째 잽은 또다시 쿠라마가 고개를 숙여 피해냈다. 하지만 그 다음 잽과 스트레이트가 날아왔고, 쿠라마는 팔을 들어 막아냈다. 문제는 그 다음, 사카모토의 왼발 미들킥이 쿠라마의 옆구리에 꽂혔다. 쿠라마가 잠시 경직됐을 때 사카모토의 오른쪽 주먹이 위에서부터 날아들었다. 쿠라마는 양팔을 들어 방어했지만, 뒤로 쭉 밀려났다.
쿠라마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사카모토를 노려봤다.
“원래도 이렇게 강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사카모토는 곧바로 쿠라마에게 따라붙었다. 사카모토의 전신에서 일렁이던 붉은빛이 더욱 커졌다. 사카모토가 붉은빛을 품은 주먹을 쿠라마의 안면에 날렸다.
팡! 콰앙!
쿠라마는 양팔로 주먹을 가드하면서 로우킥을 날렸다. 쿠라마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사카모토는 맞은 방향으로 잠시 몸이 틀어졌지만,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사카모토는 오른발로 지면을 차 뛰어올랐다. 사카모토는 한 번에 쿠라마와의 거리를 좁혔고,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쿠라마가 양 주먹을 허리춤에 붙이며 “핫!”하고 소리쳤다. 쿠라마의 주변으로 주황빛이 강하게 발산되며 충격파가 나갔다. 사카모토는 뒤로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쿠라마는 곧장 사카모토에게 뛰어들었다. 사카모토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주먹을 치켜들었다.
파앙!
쿠라마가 오른쪽 주먹을 날렸고, 사카모토는 왼팔을 들어 방어했다. 쿠라마는 바닥에 착지하기 전에 왼발로 킥을 날렸다. 사카모토는 오른팔을 내려 옆구리를 방어했다.
파아앙!
쿠라마는 사카모토의 옆구리가 아닌, 오른쪽 허벅지를 걷어찼다. 사카모토는 아랑곳 않고, 쿠라마의 안면에 오른쪽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사카모토의 스피드는 더 빨라져있었다. 쿠라마는 고개를 돌렸지만, 사카모토의 주먹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사카모토의 후속타가 쿠라마에게 쏟아졌다.
퍽, 퍼퍽, 퍼퍼퍽!
사카모토의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쿠라마의 왼쪽 눈을 때렸다. 쿠라마가 얼굴을 일그러트릴 때 사카모토의 왼손 훅이 쿠라마의 오른쪽 턱을 때렸다. 쿠라마의 자세가 무너졌고, 사카모토의 양 주먹이 쿠라마의 복부와 안면을 두 방을 날렸다. 쿠라마는 충격에 고개가 뒤로 확 젖혀졌다.
파아앙!
쿠라마는 뒤로 날아가면서도 오른발 로우킥으로 사카모토의 왼쪽 허벅지를 때렸다. 사카모토는 순간 다리가 풀렸고, 왼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사카모토는 곧바로 다시 일어나 쿠라마에게 다가갔다.
뒤로 쓰러졌던 쿠라마는 눈을 번뜩이며 일어났다. 쿠라마의 안면은 약간 붉게 물들어있었지만,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쿠라마는 사카모토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끝내자.”
쿠라마가 전신에서 강렬한 주황색 빛을 뿜어냈다. 주황색 빛은 쿠라마의 뒤로 마치 거대한 날개 모양의 불꽃처럼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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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