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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83화 (83/195)

83화

쿠라마가 사카모토를 향해 뛰었다. 아니, 쿠라마가 뛰는 모습은 나는 것에 가까웠다. 쿠라마는 지면을 단 한 번 찼고, 뒤로 솟아난 주황빛의 날개는 화르륵, 타오르며 빛을 흩뿌렸다. 그 모습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주작과도 같았다.

사카모토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몸을 옆으로 날려 피하려 했다. 사카모토는 그제야 자신의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음을 알았다. 사카모토가 다른 방식으로 회피를 하려 할 땐 이미 쿠라마가 코앞에 와있었다. 사카모토는 급하게 양팔을 교차해 이마에 붙이며 몸을 숙이고 방어자세를 취했다.

쿠라마는 사카모토의 옆으로 빗겨나갔다. 쿠라마는 오른팔을 뻗어 손을 사카모토의 양팔 위에 얹었다.

콰아아아앙!

쿠라마는 사카모토를 그대로 바닥에 꽂아버렸다. 사카모토는 양팔을 들어 방어했던 자세 그대로 등부터 바닥에 내리꽂혔다. 쿠라마가 손을 치우자마자 사카모토는 손을 뻗어 반격을 하려 했다.

터엉!

쿠라마는 사카모토가 뻗는 손을 간단하게 쳐냈다.

콰앙! 우드드드득!

쿠라마는 다리를 길게 뻗어 사카모토의 오른쪽 허벅지를 밟아 부쉈다. 사카모토는 다리가 부서져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보고 있던 강우는 “고통이란 감각 자체가 없나….”라고 중얼거렸다.

사카모토는 왼발로 발차기를 하려 했지만, 로우킥에 인한 데미지로 인해 여전히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카모토는 양손을 뻗어 쿠라마의 발목을 잡았다. 쿠라마는 길을 걷다 발에 걸린 비닐봉지 따위를 털어내듯 사카모토를 간단하게 털어냈다.

콰앙!

사카모토는 바람에 날린 쓰레기처럼 날아가 벽에 부딪친 뒤, 바닥에 떨어졌다. 사카모토는 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사카모토는 뺨을 차가운 바닥에 붙인 채 엎드려있었다.

쿠라마는 몸에서 뿜어내던 빛을 거뒀다. 쿠라마의 몸 뒤로 솟아났던 주황빛의 날개는 차츰 잦아들었다.

쿠라마는 사카모토의 얼굴 앞에 멈춰 섰다. 쿠라마는 사카모토를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사카모토의 두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사카모토는 그저 조금이라도 움직여보려 하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쿠라마는 주먹을 치켜들었다. 쿠라마는 쓰러져있는 사카모토를 내려다보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쿠라마는 이내 주먹을 내리며 울상을 지었다.

“못하겠어. 할 수 없어….”

강우가 쿠라마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뭐야, 왜 그래?”

쿠라마는 강우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도저히 못하겠어. 내가 어떻게 내 손으로 부하를 죽이겠어.”

강우는 사카모토를 내려다보다가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이 녀석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카씽한테 당했을 때 이미 끝났어.”

강우는 사카모토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후에도 네가 다 부숴놔서 끝났지 뭐.”

쿠라마는 말없이 사카모토를 내려다봤다.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이 녀석도 이런 식으로 숨이 붙어있길 원하지는 않을 걸? 네가 마무리해줘.”

쿠라마가 주먹을 꽉 쥐었고, 뿌드득, 가죽 마찰 소리가 울렸다. 쿠라마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사카모토를 내려다봤다. 쿠라마가 오른쪽 주먹을 높게 치켜들었다.

후웅-

쿠라마의 주먹이 쓰러져있는 사카모토의 얼굴 옆면으로 향했다.

탁.

쿠라마는 휘두르던 주먹을 사카모토의 얼굴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쿠라마는 다시 몸을 세우며 돌아서버렸다.

“못하겠어.”

강우는 뒤돌아선 쿠라마를 쳐다봤다.

‘그렇게 강하고, 독한 사람처럼 굴더니…. 결국은 여린 여자구만.’

강우는 사카모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끝내지.”

쿠라마는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강우는 사카모토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턱.

강우가 양손을 뻗어 사카모토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왼손은 사카모토의 이마에, 오른손은 턱을 받쳤다.

쿠라마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뭐하려는 거야?”

“네가 못하니까 대신 해주려고.”

쿠라마가 강우를 저지하려 손을 뻗었다.

“안 돼! 잠깐만 기다…….”

쿠라마가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우득!

강우는 엎드려있던 사카모토의 머리를 뒤로 확 젖혀 목을 꺾어버렸다. 강우가 손을 떼자 사카모토의 머리는 힘없이 툭 떨어졌다.

쿠라마는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았다. 그저 이를 꽉 깨물며 사카모토를 내려다봤다.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더 들어가? 아니면 돌아갈까?”

쿠라마는 전방으로 몸을 틀며 말했다.

“더 들어간다.”

강우는 쿠라마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내가 너무 무신경한가? 괜찮겠어? 안 되겠으면 돌아가도 돼.”

쿠라마는 고개를 살짝 돌려 강우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너야말로 아무리 돈 때문이라지만, 목숨을 걸고 들어갈 필요가 있나? 어차피 지원은 계속 필요할 테니, 이태민과 다른 능력자들이 진입할 때 함께 해도 될 텐데.”

“성격상 끝을 보는 게 좋아서 말이지. 기왕 여기까지 온 거 해봐야지.”

강우는 쓰러져있는 사카모토의 시체를 슬쩍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

“사망자까지 나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쿠라마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어차피 너는 사카모토를 안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게다가 싫어했으니 잘 된 거 아니야? 그러니 그렇게 망설임 없이…….”

쿠라마가 말을 마치기 전, 강우는 팔짱을 끼며 코웃음을 쳤다.

“참나….”

“뭐?”

“애구만. 애야.”

쿠라마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라고?”

“자꾸 어린애처럼 굴 거야? 클랜장이라는 게 그렇게 해서 되겠어? 사카모토는 이미 죽은 상태였어. 넌 녀석이 좀비처럼 계속 움직이길 바란 거야? 사카모토는 카씽이 뇌를 지배한 순간 이미 인간이 아니었어. 좀비 따위보다 훨씬 위험한 몬스터였지. 네 가족은 모두 몬스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며. 사카모토가 그런 몬스터가 되어 사람들을 죽이길 바란 거냐?”

쿠라마는 강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쿠라마는 화가 난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강우를 노려봤다. 쿠라마의 눈썹과 눈썹 사이에는 세로로 깊은 주름이 생겼다.

강우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할 말 있으면 해. 그리고 계속 그 따위로 굴 거면 난 이만 빠지도록 하겠어. 그런 정신상태로 여길 계속 들어간다면, 넌 분명 짐만 될 테니까.”

쿠라마의 두 눈썹 사이에 있던 주름이 펴졌다. 쿠라마는 강우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이 맞아. 그냥 녀석이…. 내게 친동생 같은…. 그런 녀석이라 그랬어.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카모토에게 마지막 안식조차 주지 못했겠지.”

쿠라마는 다시 터널 안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가자. 이 빌어먹을 화산 안쪽은 너와 내가 끝내자. 사카모토의 시신은 이번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수습하겠어. 사카모토도 그걸 바랄 거야.”

강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쿠라마의 뒤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와 쿠라마는 터널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뿌득, 뚜두둑, 우둑, 우두둑!

뒤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강우와 쿠라마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카모토가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서있었다. 사카모토의 오른쪽 다리는 반대로 돌아가 발끝이 등 쪽을 향해있었다. 부러진 목은 사카모토의 몸이 흔들릴 때마다 이리저리 휙휙 넘어갔다. 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저건 죽지도 않냐….”라고 중얼거렸다.

쿠라마는 씁쓸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뇌에 타격이 가야 되는 것 같아.”

“그런 것 같네. 카씽이 뇌를 완전히 뒤덮은 거니까…. 진짜 좀비네….”

사카모토가 강우와 쿠라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사카모토는 왼발로 지면을 차 한 번에 이동했다. 날아오는 중 부러진 목은 완전히 젖혀져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우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오른쪽 주먹을 왼손 손바닥에 가져다 댔다.

“이번엔 확실히 끝낼게.”

쿠라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내가 할게.”

사카모토는 불과 2m 거리에 다가와 있었다.

터엉!

쿠라마가 앞으로 튀어나가 오른손 손바닥으로 사카모토의 안면을 잡았다.

콰아아아앙!

쿠라마는 그대로 사카모토를 뒤통수부터 바닥에 내리찍었다. 사카모토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쿠라마에게로 옮겼다. 쿠라마는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쿠라마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사카모토의 안면을 내리쳤다.

쿵! 털썩.

사카모토가 들어 올렸던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쿠라마는 사카모토의 안면에서 주먹을 떼내며 곧바로 일어섰다. 쿠라마는 주먹을 떼면서 눈을 떴지만, 사카모토를 내려다보지는 않았다. 쿠라마는 곧바로 몸을 돌려서 터널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가자.”라고 말했다. 강우는 얼굴이 완전히 함몰된 사카모토의 시체를 한 번 쳐다본 뒤, 쿠라마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터널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밝아졌다. 강우와 쿠라마는 한참을 터널을 따라 걸었지만, 몬스터가 나타나거나 무언가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한참을 걷던 중 강우가 불만을 토해냈다.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야? 얼마나 더 가야 되는 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제길…. 괜히 왔나….”

쿠라마는 싸늘하게 “그래서…. 돌아가게?”라고 말했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가 언제 돌아간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강우와 쿠라마는 걸음을 빨리했다. 일자로 이어진 터널이기에 몬스터가 나오더라도 정면에서 나올 것이기에 빠르게 움직여도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굳이 조심해야 될 것이라면, 땅속에서 살아 갑자기 벽면에서 튀어나올 수 있는 아퀴몰 정도였다. 아퀴몰은 몇 마리가 나오더라도 강우나 쿠라마에게 위협이 되지 않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우와 쿠라마는 한참을 아무 일도 없이 달리던 중이었다. 전방으로 더욱 강렬한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강우는 앞을 가리키며 “저기 뭔가 있는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쿠라마는 “속도를 늦추자.”라고 대답했다.

강우와 쿠라마는 빛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터널이 끝나고, 탁 트인 공간이 강우와 쿠라마를 맞이했다. 바닥의 노란빛은 여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길과는 달랐다. 황토색 빛, 갈색 빛, 푸른빛 등이 어우러져 바닥에서 뿜어져 나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변에는 나무와 풀이 자라나고 있었다.

강우와 쿠라마가 다다른 곳은 화산 속의 최하단이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식물이 자랄 수 있다는 사실에 강우와 쿠라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숲과 같은 광경, 다른 동물들마저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쿠라마는 주위를 둘러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도 안 돼….”라고 중얼거렸다.

멀리서 뽀얀 안개가 피어났다. 강우는 안개를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보자”라고 말했다. 강우와 쿠라마는 천천히 안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안개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은 숲이 우거졌다. 쿠라마는 나무와 풀을 보며 “대체 어떻게 여기서 자라는 거지?”라며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강우 역시 그 해답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곳은 약 1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강우와 쿠라마가 안개라 생각했던 것은 뜨거운 김이었다.

마그마가 응고돼 둥근 연못 형태를 띠고 있었고,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한 가운데는 에메랄드빛 하늘을 담아놓은 듯한 색이, 그 주변으론 황금을 녹인 듯한 색이, 그 겉으론 캐러멜을 녹여 커피와 어우러진 듯한 색이 펼쳐져있었다.

다른 곳은 모두 풀이 무성하고, 나무가 우거졌지만, 마그마가 응고된 주변만은 새카맣게 탄 자국이 섞인 회색빛 흙만이 남아있었다. 응고된 마그마는 아직도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말하는 듯 쉬지 않고 하얀 김을 만들어냈다. 마치 누군가 마그마 속에서 전봇대만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양새 같기도 했다.

쿠라마는 응고된 마그마에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혔다. 쿠라마는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강우 역시 한동안 응고된 마그마를 응시했다. 강우는 응고된 마그마를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응고된 마그마 말고, 강우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핏자국.

강우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어떤 곳은 피를 한 바가지 퍼부은 듯 잔뜩, 어떤 곳은 몇 방울만이.

핏자국이 남은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초록색이어야 할 나무는 단풍나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시뻘겋게 물들어있기도 했다.

쿠라마 역시 눈치를 챘다. 강우가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댔고, 쿠라마도 강우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살펴 핏자국을 발견했다.

강우와 쿠라마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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