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시그라의 몸 가운데로 굵은 선이 생겨났다.
텅. 쩌어억, 쿠쿵.
시그라의 몸은 장작이 쪼개지듯 완전히 절반으로 갈라져 양옆으로 쓰러졌다. 강우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말했다.
“빌어먹을 썩은 나무가 더럽게 귀찮게 하네.”
쿠라마는 반으로 쪼개진 시그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화염 때문에 좀 약해져있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쿠라마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너…. 뭐야?”
“뭐가?”
“이성 상급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시그라를 한 방에 쪼개버린 거야?”
강우는 허리 뒤쪽으로 손을 가져가 스트레칭을 하며 대답했다.
“여태까지 활동한 걸론 그렇다던데?”
“넌 최소 삼성 하급이야. 아니, 힘만큼은 삼성 중급에 가까워….”
쿠라마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넌 왜 능력을 안 쓰지?”
“뭐, 아직 쓸 줄 모른다고나 할까….”
쿠라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쓸 줄을 모른다고.”
“고유 능력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는 훈련이 필요하지만, 쓰는 것 자체는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당연히 알고 있는 거라고.”
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말 그대로 쓸 줄 모른다니까? 나도 좀 쓰고 싶다.”
쿠라마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아직 이성 상급 정도밖에 안 되는 거군…. 그래도 힘 하나는 경이로워.”
“아마 능력이 이쪽으로 쏠렸나보지 뭐.”
강우는 자신의 검은색을 띠는 능력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쉽사리 믿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고, 믿는다 해도 증명할 길이 없었으며, 굳이 얘기를 늘어놓을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강우는 시그라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이놈한테선 얻을 게 없나?”
“살펴볼게.”
쿠라마는 걸음을 옮겨 시그라의 몸을 샅샅이 살폈다. 강우는 쿠라마를 쫓아다니며 물었다.
“뭘 찾는 건데?”
“수액.”
“수액?”
“그래. 없을 수도 있긴 한데, 이 정도 크기라면 분명히 있을 거야.”
쿠라마가 무언가를 주워들며 말했다.
“찾았다!”
쿠라마는 손바닥을 펴 주워든 것을 강우에게 보여줬다.
“이게 시그라의 수액이 굳은 거야.”
강우의 시선은 쿠라마의 손바닥 위에 있는 시그라의 수액으로 고정됐다.
쿠라마의 손바닥 위에 있는 시그라의 수액은 물방울 크기로 투명했다. 시그라의 수액은 쉽게 굳고, 강도와 경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었다. 시그라의 수액은 가공을 거쳐 보석으로써 인기가 있었다.
쿠라마는 시그라의 수액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며 말했다.
“이 정도 크기면 700만 겔드는 할 거야.”
“그래? 이 조그만 게?”
“이 정도면 꽤 큰 편이야.”
쿠라마는 시그라의 수액을 강우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자. 잘 챙겨.”
강우는 시그라의 수액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냥 나 주는 거야?”
“네가 잡았잖아.”
“너도 같이 싸웠잖아.”
“나는 그런 거 없어도 괜찮아. 그저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방금 같은 경우 네가 가질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강우는 시그라의 수액을 꽉 쥔 다음 주머니로 넣으며 말했다.
“뭐, 나야 고맙지.”
강우는 시그라의 시체로 시선을 옮겼다.
“쿠마가 도망친 것도, 아까 죽어있던 하이퍼타우로스도 다 이 녀석의 짓인가?”
“글쎄…. 쿠마는 이해가 돼. 시그라는 가리는 것 없이 자신보다 약하다면 모두 먹어버리니까. 하지만….”
“하지만?”
쿠라마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하이퍼타우로스의 경우에는 이해가 안 돼.”
쿠라마는 시그라의 시체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우리와 싸운 시그라는 크기도 엄청나고, 강하긴 했어. 하지만 하이퍼타우로스도 굉장히 강한 몬스터야. 이 시그라가 간단하게 먹어치울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라고.”
“그러면 어떻게 된 거지?”
“그러니까 나도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어. 우리와 싸운 시그라는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상태였어. 다른 몬스터의 피만 뒤집어쓰고 있었을 뿐이지….”
강우와 쿠라마가 시그라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생각 중일 때였다.
멀리서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박이네. 어떻게 화산 속에 이런 공간이 생겼지?”
“그렇네요.”
이태민의 목소리 그리고 어떤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강우와 쿠라마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이태민과 한 남자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태민과 남자는 강우와 쿠라마 쪽으로 다가왔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 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어…?”하고 소리를 냈다.
이태민과 함께 오고 있는 남자는 강우가 아는 사람이었다. 강우가 예거 등록을 할 때 특별참관인으로 있던 히로였다.
쿠라마가 이태민을 보며 말했다.
“벌써 왔어?”
“일단 지원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빨리 왔지.”
“이형철은 어때?”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있지는 않아. 조금만 치료를 받으면 돼.”
이태민은 표정이 어두워진 채 조심스레 말했다.
“사카모토 일은…. 안 됐어.”
“그래. 어쩔 수 없지….”
잠시 적막이 흘렀다.
먼저 입을 뗀 것은 이태민이었다.
“참, 이쪽은 히로 씨. 예거 파티 소속이신데, 이렇게 함께 하시게 됐네.”
히로는 강우와 쿠라마를 향해 고개를 꾸벅인 뒤 말했다.
“안녕하세요. 히로라고 합니다. 클랜들 쪽으로 넘어간 일이었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급한 대로 제가 이렇게 지원을 오게 됐습니다. ”
쿠라마는 고개를 꾸벅인 뒤 말했다.
“반갑습니다.”
히로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옮겨졌다.
“아까 저를 알아보시는 것 같던데….”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잘못 봤습니다.”
히로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일을 시작해볼까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히로는 시그라의 시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상황이 끝난 것 같네요.”
쿠라마가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같이 주변을 수색해보죠.”
이태민이 말했다.
“그럼 빠른 수색을 위해 각자…?”
쿠라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다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 다 같이 수색을 해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지.”
히로가 쿠라마의 의견에 동조했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네요.”
히로는 시그라의 시체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혼자 다니다가 시그라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나오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태민이 말했다.
“그럼 가시죠.”
히로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괜찮으시죠?”
“아, 네. 그럼요. 가시죠.”
강우 일행은 몸을 돌려 화산의 최하단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강우 일행은 화산의 최하단을 샅샅이 수색했다. 응고된 마그마 주위를 조금만 벗어나자 황량한 땅이 드러났다. 흙과 먼지, 드문드문 솟은 나무들만이 강우 일행을 반겼다.
히로가 말했다.
“응고된 마그마 주변으로는 시그라가 있어서 나무가 자랐던 것 같네요.”
이태민이 말했다.
“시그라 덕분에 나무가 자라는 건가요?”
“지금으로써는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되네요. 오히려 마그마 주변이면 나무가 더 안 자라야 할 텐데, 나무나 다른 식물들이 많았던 걸 보면요.”
강우가 말했다.
“몬스터에게도 좋은 점이 있었네요.”
히로가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황량한 곳도 녹지화가 가능할 줄은….”
쿠라마가 날카롭게 말했다.
“도움이 되는 몬스터 따위는 없어요. 모두 다른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 환경을 구성할 뿐이죠. 몬스터는 모든 생물체의 적입니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이태민은 히로에게 무언가 소곤소곤 말을 건넸다. 히로는 이태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는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우리 핫도그처럼 착한 몬스터도 있는데….’
히로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말했다.
“뭐, 이쪽으로는 수색을 더 해도 나올 게 없을 것 같으니….”
히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응고된 마그마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쪽으로 가서 숲을 좀 더 알아보죠. 뭐가 더 없으면 다시 복귀하는 걸로 하죠.”
쿠라마가 말했다.
“그러죠.”
이태민이 말했다.
“내가 볼 땐 아까 그 시그라 하나가 끝이었던 것 같은데….”
강우 일행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응고된 마그마 주위는 여전했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주변에는 숲이 우거져있었다. 강우 일행은 숲을 다시 한 번 샅샅이 살피고, 나무를 하나하나 체크해봤지만, 또다시 시그라가 나타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쿠라마가 허리에 양손을 짚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네요.”
이태민은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러게. 확인할 건 다 했는데. 없네….”
히로가 말했다.
“아쉬워하실 건 없죠. 몬스터가 더 나타나지 않는 게 좋은 거니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쿠라마가 말했다.
“그럼 돌아갈까요?”
히로가 대답했다.
“그러죠. 산에 남은 몬스터들은 예거 파티 측에서 이성 중급 예거들이 팀을 짜서 더 샅샅이 수색하고 있으니, 저희도 그쪽을 좀 도와주면 될 것 같아요.”
쿠라마가 물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한데, 그럼 이번 일의 몬스터 수거는 어떻게 되죠?”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우가 경우인 만큼 몬스터에 관한 권한은 모두 클랜 쪽에 드릴 겁니다.”
쿠라마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래요? 웬일이래요?”
“아무래도 사유지가 아닌 곳에서, 상당히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해주셨으니 당연한 거죠.”
이태민이 말했다.
“그럼 올라갑시다.”
강우 일행이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빠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주의 깊게 들은 것은 강우밖에 없었다. 일행들은 나뭇가지를 밟아서 난 소리 정도로 생각했다.
빠직, 빠지지직.
소리가 좀 더 크게 들려왔다. 그제야 일행들도 그 소리를 이상하게 여겼다. 강우 일행은 모두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응고된 마그마가 있는 곳이었다.
응고된 마그마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처음 봤을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뿜어져 나오는 뽀얀 김의 양 역시 변화가 없었다.
쿠라마가 응고된 마그마를 응시하며 말했다.
“분명히…. 저기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히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들었어요.”
이태민은 응고된 마그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강우는 말없이 응고된 마그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뿌득, 빠지직, 빠직.
소리가 좀 더 크게 울렸다. 강우 일행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빠지지지지직.
바닥에 떨어트린 삶은 달걀의 겉면처럼 응고된 마그마에 균열이 일어났다. 균열이 일어난 틈으로는 더욱 많은 양의 뽀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히로가 말했다.
“도망쳐야 될지도 몰라요.”
쿠라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산이 다시 활동하는 거라면…….”
이태민이 말했다.
“끔찍한 소리하지 마.”
강우가 말했다.
“화산활동이 다시 시작하는 거라면 벌써 용암이 흘러나오지 않았을까요?
강우 일행은 응고된 마그마와 거리를 벌린 채 눈을 떼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이번 편의 경우 조금 결정적인 순간에 끝맺음을 하게 됐는데요.
저는 절단신공을 펼치고 싶지 않고, 정말 연참을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너무나도 감사드리고요.
이곳에 저의 가정사를 다 쓸 수는 없지만, 현재 한정상속승인 절차를 밟는 중이고,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들이 끼어 있어 연재는 물론이고, 회사 일까지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조금만 양해 부탁드리고요.
일일연재는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12월부터는 종종 연참도 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항상 웃는 일과 건강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