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쩌적.
응고된 마그마가 부서지고, 들썩였다.
퍼어어억!
거대한 손이 응고된 마그마를 뚫고 튀어나왔다. 강우 일행은 전투태세를 갖추며 경계했다. 거대한 손은 굳은 마그마들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히로는 거대한 손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런…….”
거대한 손이 바닥을 짚었고, 머리부터 불쑥 튀어나왔다. 지상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삼성 하급인 몬스터 ‘게미누스’였다.
하지만 강우 일행은 눈앞에 있는 몬스터가 게미누스가 아닌 많은 골렘 종류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골렘들은 어디서 나타나는지에 따라 외형이 달라져 종류가 다양했다. 골렘들은 주로 흙이나 바위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간혹 누더기, 나무 심지어는 불이나 얼음으로 이뤄진 골렘들도 있었다.
골렘의 힘, 등급은 크기와 비례했다. 일성 하급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발견된 골렘들 중 가장 등급이 높게 측정됐던 것은 사성 하급까지 있었다.
강우 일행 앞에 나타난 게미누스는 골렘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몬스터였다. 게미누스는 삼성 중급으로 처음 모습이 골렘과 비슷하게 보일 뿐이었다.
강우 일행은 눈앞의 게미누스를 응고된 마그마 골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강우 일행 앞에 나타난 게미누스는 마그마를 두른 골렘과 같은 모습이었고, 키는 약 10m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여러 가지 색이 섞여 마그마가 엉겨 붙어있는 게미누스의 몸은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얼굴마저 마그마로 뒤덮여 눈, 코, 입조차 없었다.
쿵.
게미누스가 강우 일행에게로 한 걸음 내딛어다. 쿠라마는 게미누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삼성 하급은 되겠는데?”
히로가 말했다.
“제가 묶어둘 테니 마무리하세요.”
히로가 전신에서 보라색 빛을 뿜어냈다.
쿠구구구구구.
히로의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기 시작했다. 나무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흙과 돌덩어리들 또한 공중에 둥둥 떴다. 공중에 뜬 것들은 모두 보라색 빛이 둘러져있었다. 히로는 “하앗!”하고 소리치며 게미누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흙과 돌덩어리, 나무들이 게미누스를 향해 날아갔다.
텅, 쾅!
게미누스는 가장 먼저 날아오는 나무를 손바닥으로 후려쳐냈다.
이태민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
“무슨 골렘이 저렇게 빨라?”
게미누스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나무들과 돌덩어리들을 손으로 쳐내며 방어했다. 하지만 모두 막아내기에는 날아오는 것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쾅! 텅! 퍼퍼퍼퍽! 터텅! 쿵! 후드득!
히로의 능력으로 날아간 것들이 게미누스를 덮쳤다. 게미누스는 약간 뒤로 밀려나긴 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쿠웅!
게미누스는 오히려 한 걸음 내딛으며 히로를 노렸다. 히로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손바닥을 위로 향했다. 게미누스에게 붙어있던 것들이 전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히로는 “하앗!”하고 소리치며 손바닥을 뒤집어 아래로 내렸다. 그 순간 공중에 뜬 것들이 소나기처럼 게미누스를 향해 쏟아졌다.
쿵, 쿵, 쿵, 쿠쿵, 쿵!
게미누스는 양팔을 들어 쏟아지는 것들을 막았지만, 이내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히로는 게미누스를 완전히 엎드리게 할 심산으로 더욱 짓누르며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이태민이 전신에서 주황색 빛을 뿜어냈다.
“간다!”
이태민이 게미누스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이태민이 뛰어올라 오른쪽 무릎을 굽혔다. 이태민의 발끝으로 주황색 빛이 발광하며 모여들었다.
“죽어라!”
이태민이 게미누스를 향해 오른발을 뻗었다. 이태민의 오른발 끝에는 주황빛 용의 머리 형상이 생겨났고, 등 뒤로는 주황빛이 길게 이어져 용의 몸통과 꼬리처럼 보였다. 게미누스는 고개를 들어 안면이 이태민 쪽으로 향해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이태민의 발차기는 게미누스의 목에 직격했다. 게미누스는 목을 중심으로 부서지며 머리가 떨어져나갔고, 몸통에 균열이 갔다. 이태민은 뒤로 빙그르 돌아 바닥에 착지했다. 머리가 떨어져나간 게미누스는 그대로 쓰러졌다.
히로도 나무, 흙, 돌들을 더 이상 조종하지 않았다. 쿠라마는 쓰러진 게미누스를 보며 싱겁다는 듯 말했다.
“난 할 것도 없었네.”
이태민이 말했다.
“죽일 작정이긴 했지만, 진짜 한 방에 끝나버릴 줄이야.”
강우가 말했다.
“이 녀석이 원래 시그라보다 약한가? 삼성 하급은 될 거라고 하지 않았어?”
히로가 말했다.
“개체마다 차이가 있죠. 한 번에 잡을 수 있던 건 제가 잡아둬서 비교적 약한 부위인 목을 노릴 수 있기도 했고….”
히로는 이태민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태민 씨가 생각보다도 더 강하신 덕분이기도 하죠.”
이태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골렘을 삼성급 골렘을 한 방에 잡아본 건 처음이라…. 마그마라 그런가? 오히려 다른 골렘들보다 내구력이 약한 것 같아.”
강우는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강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저걸 한 방에 죽일 정도로 센 것 같지는 않았는데….’
쿠라마가 말했다.
“그나저나 골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이태민이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보석으로 이루어진 골렘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히로가 말했다.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태민이 두 눈을 크게 뜨며 히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진짜요?”
“네, 아프리카 다이아몬드 광산 쪽에서 나타났었다고 합니다. 당시 능력자들이 놓치고, 그 후로는 모습을 감췄다고 하지만요. 측정 등급은 사성 하급, 전신이 다이아몬드로 이뤄져있었다고 합니다. 크기도 15m 이상으로 추정됐고요.”
이태민은 쓰러져있는 게미누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잡은 녀석이 다이아몬드 골렘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쿠라마가 말했다.
“다이아몬드였으면 잡지도 못했을 걸.”
강우는 쓰러져있는 게미누스에게로 시선이 고정돼있었다. 강우의 착각이었을까. 강우는 일순간 게미누스가 움찔거리며 움직인 것으로 보였다. 강우는 쓰러져있는 게미누스를 가리킨 채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저거…. 움직인 거 같은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머리가 떨어져나갔잖아. 잘못 봤겠지.”
“그런가?”
그 순간이었다. 게미누스의 몸이 들썩거렸다. 강우 일행은 경악하며 다시 전투태세를 갖췄다. 쿠라마는 게미누스를 보며 소리쳤다.
“저거 대체 뭐야?”
히로는 몸에서 보라색 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런 경우는 처음…….”
불현듯 하나의 생각이 히로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히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이런…. 설마…….”
이태민은 양 주먹을 꽉 쥐고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쩌적!
게미누스의 몸 전체에 균열이 일어났다.
쩌적, 쩌저저적!
균열은 더욱 심해져 조각 하나하나가 손톱 크기와 비슷했다.
파앙!
게미누스의 몸이 폭발하며 응고된 마그마 조각이 사방으로 흩날렸고, 그 모습이 마치 형형색색의 벚꽃처럼 보였다.
응고된 마그마 조각들과 먼지 뒤로 무언가 서있었다. 키는 약 5m에 덩치가 좋은 남자처럼 보였다.
히로가 말했다.
“이런…. 골렘이 아니었어요.”
쿠라마가 말했다.
“저건…. 게미누스?”
게미누스가 강우 일행 앞으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게미누스의 전신은 황금빛이었고,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어깨나 무릎 같은 관절 부분들이 뿔처럼 삐죽하게 솟아있었다. 머리는 뿔이 솟은 투구를 쓴 것처럼 보였고, 얼굴도 두 눈을 제외하곤 마스크를 쓴 것처럼 가려져있었다. 두 눈은 검은색으로 칠해놓은 듯 눈동자의 구분 없이 시커멨다.
히로는 긴장을 잔뜩 한 채 말했다.
“게미누스라니….”
이태민은 양 주먹을 꽉 쥐고 전신에서 주황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제길…. 이 인원으론….”
쿠라마가 말했다.
“그런데 다른 한 놈은 어디 있지?”
쿠라마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유는 게미누스였기 때문이다. 게미누스는 언제나 둘이서 짝을 지어 다녔다. 개체 하나가 지닌 힘은 삼성 중급이었고, 항상 둘이서 다녔기에 사냥이 까다로웠다.
강우 일행은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눈앞에 있는 하나만 보였다. 주변에 다른 게미누스는 없었다.
히로가 말했다.
“아무래도 게미누스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쿠라마는 몸에서 활활 타오르는 주황빛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하나라면 해볼 만하지.”
이태민이 발을 바닥에 쿵 찍었다.
“그럼 가보자고.”
이태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주황빛이 작은 용의 형상을 띠며 몸을 휘감았다.
게미누스가 강우 일행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히로는 전신에서 보라색 빛을 뿜어냈다. 히로는 게미누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아까처럼 가죠! 제가 묶어두겠습니다!”
히로의 주변 나무들과 돌덩어리들이 보랏빛을 두른 채 공중에 떠올랐다. 히로가 양손을 게미누스를 향해 뻗었고, 나무들과 돌덩어리들이 날아갔다.
쾅, 터텅, 빠직, 쾅, 쿵, 텅, 텅, 텅, 텅!
게미누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나무와 돌덩어리들을 모조리 부숴버렸다. 게미누스는 전신에 응고된 마그마를 두르고 있을 때보다 훨씬 빠른 몸놀림이었다.
히로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히로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잘게 부숴진 마그마 조각들이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히로가 양손을 사선으로 크게 휘둘렀고, 마그마 조각들이 게미누스를 향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게미누스는 작은 마그마 조각들을 모두 쳐낼 수는 없었다.
파파파파파팍.
쿵, 쿵, 쿵, 쿵, 쿵, 쿵.
게미누스는 날아드는 마그마 조각들을 맞으며 히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히로는 게미누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히로가 손을 위로 까딱였다.
콰아아아앙!
게미누스의 정면으로 땅이 솟아올라 벽이 세워졌다.
쿠우우웅!
게미누스는 솟아오른 땅을 주먹으로 후려쳐 한 방에 부숴버렸다. 게미누스는 히로에게로 달려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퍼엉!
쿠라마가 날아올랐다. 등 뒤에서 타오르는 주황빛 날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랬다. 쿠라마는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고 게미누스의 머리를 노렸다.
게미누스가 갑작스레 쿠라마를 향해 돌아봤다. 게미누스가 쿠라마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크윽!”
게미누스가 쿠라마의 몸통을 움켜쥐었다.
쿠구구구구.
게미누스는 쿠라마를 그대로 으스러트릴 것처럼 움켜쥐었다.
화르륵!
쿠라마의 뒤에서 타오르던 날개는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쿠라마의 전신이 주황빛 화염이 활활 타올랐다.
“이야아아아아아아!”
쿠라마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게미누스의 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쿠라마는 사지를 이용해 게미누스의 손가락들을 밀어냈다. 게미누스의 손이 차츰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미누스는 오른손을 쿠라마 쪽으로 옮겼다. 양손으로 쿠라마를 완전히 으스러트릴 생각이었다.
콰앙!
히로가 날린 돌덩어리가 게미누스의 옆머리에 직격했다. 게미누스가 히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또다시 날아온 돌덩어리가 안면에 꽂혔다.
게미누스가 살짝 중심을 잃었고, 쿠라마는 그 틈을 타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간다!”
이태민이 게미누스를 향해 날아올랐다. 용의 형상을 띤 주황빛이 이태민의 오른쪽 다리를 휘감았다. 이태민은 그대로 게미누스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터어어어엉!
게미누스가 왼손을 들어 이태민의 발차기를 막아냈다. 게미누스는 약간 기우뚱하긴 했지만,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이태민이 바닥에 착지하기 전이었다.
터엉! 콰아앙!
게미누스는 오른손으로 공중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때려잡듯 이태민을 후려쳤다. 이태민은 양팔을 들고, 몸을 웅크려 데미지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충격이었고, 이태민은 바닥에 처박혔다. 이태민의 몸은 땅을 부수며 1m 이상 파고들어있었다. 이태민은
“끄으으….”하고 신음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태민의 위로 검은색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태민이 고개를 들었다. 게미누스가 이태민을 밟아 죽이려고 발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이태민은 자신의 위에 있는 발을 보며 “이런 젠장….”하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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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