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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89화 (89/195)

89화

강우는 손바닥 위로 검은색 구를 만들어낸 뒤 바라봤다. 검은색 구는 강우의 생각에 따라 휘몰아치기도, 아무런 움직임 없이 구슬처럼 완전한 구 형태를 띠기도 했다. 검은색 구는 반대편 손으로 옮길 수도 있었고, 손바닥 위에 띄워놓을 뿐만 아니라, 만질 수도 있었다. 감촉 또한 강우의 생각을 따라 변화했다.

‘단단해지기도…. 물렁해지기도 하네?’

강우는 검은색 구를 기다랗게 늘려 작대기처럼 잡아들었다. 강우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검은색 구의 크기는 탁구공 사이즈가 한계였다. 그것을 늘려서 만든 작대기는 약 1m 길이의 가느다란 회초리 같았다. 능력으로 만들어낸 막대기는 가느다랬지만, 그 단단함은 티타늄과도 같았다. 또한 강우의 생각에 따라 버들가지처럼 휘어지기도 했다.

‘신기한데?’

강우는 자신의 능력을 거둔 뒤, 동그랗게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조심스레 엄지와 검지로 게미누스의 시체를 집어 들었다. 작은 크기에 비해서는 제법 무게가 나갔다.

‘이건 어떻게 해야 되나…. 시체가 이렇게 돼버려서야…. 단순히 죽이는 데는 최고겠지만, 포획이나 시체를 회수해야 될 땐 쓰지도 못하겠군.’

“으….”

쿠라마의 짧은 신음이었다. 강우는 “아, 참.”하고 쿠라마를 향해 달려갔다.

쿠라마는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강우는 쿠라마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괜찮아? 정신 좀 들어?”

강우는 쿠라마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쿠라마는 강우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아…. 죽는 줄 알았어.”

쿠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머리에 가져다 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놈은?”

쿠라마의 시선이 강우의 왼손으로 옮겨졌다. 강우는 왼손에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들고 있었다. 강우는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

“뭐? 무슨 소리야.”

“이게 게미누스야.”

쿠라마는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놈은 어디 갔는데?”

“이거라니까.”

“뭐?”

강우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설명을 들은 쿠라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네 능력으로 게미누스를 이렇게 압축시켰다고?”

“응, 그렇다니까.”

“그런 능력은 듣도 보도 못했어.”

쿠라마는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어떻게 이게…….”

강우에게서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뺏어든 쿠라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는 부피에 비해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손에 묻은 노란색 피 또한 게미누스의 시체임을 증명했다.

쿠라마는 손에 들고 있는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이게 진짜 게미누스라고?”

“그렇다니까.”

“그 크기가 이렇게 압축됐다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

“통째로 압축됐으면 무게가 똑같아야 되는 거 아니야?”

“글쎄…. 일부분 좀 사라졌나보지. 피도 많이 흘렀고.”

쿠라마는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홱 돌렸다.

“아, 이럴 때가 아니야.”

쿠라마는 황급히 히로와 이태민이 쓰러져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우도 쿠라마를 따라 움직였다. 히로와 이태민 둘 모두 살아있었다. 이태민과 히로 둘 모두 중상이었지만, 생명에 위협을 가할 정도는 아니었다.

쿠라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그렇다고 봐야겠지?”

쿠라마는 이태민을 업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 여기서 나가자.”

쿠라마는 손에 들고 있던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강우에게 건넸다. 강우는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손에 쥔 채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가 물었다.

“어디가?”

“잠깐만.”

강우가 걸음을 옮긴 곳은 게미누스가 튀어나왔던 곳이었다. 응고된 마그마가 부서져 푹 꺼져있었다. 여전히 하얀 김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강우는 주변으로 다가가 무너져 내린 곳을 들여다봤다. 주변의 응고된 마그마들이 부서져 움푹 파인 구덩이가 생겼을 뿐, 깊이 파여 있진 않았다.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 없네.”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도 부상자거든? 빨리 좀 가자.”

“부상 입은 게 벼슬이냐….”

“힘드니까 가자고 한 것뿐이야.”

강우는 “알았다. 알았어.”라고 하며 히로를 업었다. 강우와 쿠라마는 서둘러 걸음을 옮겨 후지산 최하단부를 빠져나갔다.

터널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쿠라마가 걸음을 멈췄다. 쿠라마가 걸음을 멈춘 곳에는 사카모토의 시체가 있었다. 강우가 쿠라마의 옆으로 다가갔다. 강우는 사카모토의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업고 있던 히로를 오른쪽 어깨에 둘러멨다. 강우는 사카모토의 시체 멱살을 잡아 왼쪽 어깨에 둘러멨다.

“가자.”

쿠라마는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쿠라마의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기던 중 쿠라마가 나지막이 말했다.

“고마워.”

“뭐라고?”

쿠라마는 좀 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고맙다고.”

“고맙기는 뭘, 그런 거…….”

쿠라마가 강우의 말허리를 잘랐다.

“알았으니까 얼른 가자.”

쿠라마의 뒤를 따르고 있는 강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쑥스러워하는 건가?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

강우와 쿠라마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터널의 어두운 구간에서는 쿠라마가 주황빛을 뿜어냈다. 쿠라마가 뿜어내는 빛은 많이 약해져있었다.

강우와 쿠라마는 무사히 후지산 정상까지 이르렀다. 화산구 안쪽으론 이미 많은 능력자들이 와있었고, 조명등을 설치해 밝은 상태였다.

후지산 정상에는 더욱 많은 능력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히로와 이태민은 곧바로 의료팀들이 이송했고, 사카모토의 시신도 수습해갔다.

쿠라마는 예거 파티 측에서 나온 간부 한 명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예거 파티 측 간부는 강우와 쿠라마를 위해 안내원 하나를 붙였다.

안내원이 붙은 이유는 상황 파악이 모두 끝난 후 강우와 쿠라마에게 지급할 보상금 계산 및 상황을 전달해줄 때까지 대기할 장소로 안내하기 위함이었다.

강우와 쿠라마는 예거 파티 측의 안내원을 따라 근처의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강우와 쿠라마는 각각 스위트룸을 하나씩 배정받았다. 쿠라마는 호텔 내에서 치료 능력이 있는 예거와 의사가 함께 방문해 치료를 해줬다.

강우는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수건에 싼 뒤, 화장대 앞에 올려놓았다. 강우는 기다리는 동안 T.C.C를 해제하고, 샤워를 한 다음 욕조에 몸을 담그며 휴식을 즐겼다. 강우는 가운을 걸친 채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는 각종 음료와 술 그리고 과일이 들어있었다. 냉장고 옆의 선반에는 각종 양주와 와인, 초코바, 과자, 견과류 등이 구비돼있었다.

‘먹어도 되나? 먹어도 되겠지 뭐. 먹으라고 있는 거 아니겠어?’

강우가 고민한 시간은 약 3초 내외였다. 강우는 음료와 과자, 초코바, 견과류, 과일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먹기 시작했다. 오랜 전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허기졌다.

‘뭔가 제대로 먹고 싶은데.’

강우가 아몬드를 입에 던지듯 넣어 우물거리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쿠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강우는 급하게 가운을 벗고, 옷을 입으며 문 쪽을 향해 크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강우는 옷을 입은 뒤, 문으로 향했다. 강우가 문을 열기 직전이었다. 강우는 현관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깜빡할 뻔했네.’

강우는 T.C.C를 킨 다음 문을 열었다.

쿠라마는 테이블 위에 강우가 펼쳐놓은 먹을 것들을 보며 말했다.

“이것들을 그냥 먹는 거야?”

“먹으라고 있는 거잖아.”

“호텔에 있는 것들은 엄청 비쌀 텐데….”

강우는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들이킨 뒤 말했다.

“어차피 예거 파티 쪽에서 계산하지 않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너도 먹어.”

쿠라마는 잠시 머뭇거렸다. 강우는 바나나 하나를 집어 쿠라마에게 던졌다. 쿠라마는 바나나를 받아들고는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강우는 감자칩 하나를 으적으적 씹어 먹으며 말했다.

“먹으라니까?”

쿠라마는 그제야 바나나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물었다. 쿠라마는 강우의 옆에 앉아 음료수 하나를 마신 뒤 말했다.

“이런 거 말고, 밥이나 먹으러 나갈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어?”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예거 파티 쪽에서 사람이 오면 볼 수 있게 연락처를 남기면 되지.”

강우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그러면 되려나?”

“그럼.”

“몸은 좀 괜찮아?”

쿠라마는 어깨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아직 여기저기 쑤시긴 하지만, 몸은 괜찮은데…….”

쿠라마는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진 채 말끝을 흐렸다. 강우는 달달한 초코바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뭐, 안 좋은 일도 좀 있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돌이킬 수도 없어.”

쿠라마는 초코바를 받아들고, 한입 크게 베어 문 뒤 우물거리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안타깝지만….”

쿠라마는 무언가 결심하듯, 마음을 다잡듯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이 바닥에 발을 들일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거야.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난 아직 해야 될 일도 많으니까….”

쿠라마는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스스로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았어. 예거로서 활동한지 벌써 10년인데…. 아직도 혼자서는 삼성 중급 몬스터 하나 못 잡아.”

“넌 충분히 강하잖아. 한 클랜의 클랜장이기도 하고.”

쿠라마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넌 정말 굉장하군. 그렇게 강했던 녀석을 혼자서…. 최소 삼성 상급 랭커는 되겠어.”

“그래?”

“그래. 사성 하급까지 갈지도 모르지…. 그런데 아직도 한국에서는 네가 이성 상급으로 활동을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강우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뭐…. 나야 별로 상관없어.”

“이제 많은 것들이 바뀔 걸?”

“뭐가?”

쿠라마는 초코바를 한입 더 베어 문 뒤 말했다.

“너는 삼성 중급인 게미누스를 혼자서 잡았어. 네 측정 등급은 한참 올라가게 될 거야. 방금 말했듯이 최소 삼성 상급…. 높게는 사성 하급까지도 올라가겠지. 아마 이제 맡게 되는 일들 자체가 달라질 거야.”

“그렇다니까.”

쿠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나가서 밥이나 먹자. 먹으면서 얘기하자.”

강우는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그러자. 배고파 죽겠네.”

강우와 쿠라마는 호텔방을 빠져나갔다.

강우와 쿠라마는 호텔 데스크에 연락처를 남긴 뒤, 밖으로 나섰다. 어둑어둑해진 저녁시간, 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강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디로 갈 거야?”

“일본음식 뭐 좋아하는 거 있어?”

“글쎄…. 난 아무거나 괜찮아.”

쿠라마는 방향을 틀며 말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간다?”

“마음대로 해. 난 아무거나 다 잘 먹으니까.”

강우는 쿠라마를 따라 식사를 하러 갔다. 강우가 쿠라마를 따라 간 곳은 조그만 레스토랑이었다. 격식을 갖춘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었고, 경양식부터 일식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 곳이었다.

강우와 쿠라마는 메뉴를 펼치고 음식을 골랐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지난 번 글이 최근 업로드했던 회차들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 같네요.

많은 댓글들 굉장히 기분 좋게,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강우의 능력에 관해선 저의 의도와 흡사했던 것도 있었고, 제가 따로 준비 중인 글과 연관성이 있는 댓글도 보았습니다.

그 외에 저도 생각해봤던 내용... 재밌는 상상까지 저도 읽는 재미를 많이 느끼기도 했고요.

여러 가지로 참 기분 좋았습니다. ^^아, 강우의 능력에 관해서는 또 다른 추측들이 생기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앞으로도 쭉 지켜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목도 아프고, 몸 여기저기도 쑤시면서 으슬으슬한 것이 감기 기운이 있네요.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 잘 챙기세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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