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90화 (90/195)

90화

강우는 메뉴판을 보다가도 주변을 둘러봤다. 식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강우를 힐끔거리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일본사람들이 날 알 리는 없을 텐데…. 생각보다 별 반응이 없네?”

쿠라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너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즐기고 그러는 거야?”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보통은 그러니까.”

쿠라마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예거 파티 쪽에서 미리 여기저기 공지를 해뒀겠지.”

쿠라마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너 같은 녀석이 돌아다닐 거니까 시민 여러분은 놀라지 마시라고. 그리고 이곳은 너처럼 특이한 복장을 한 채 활동하는 녀석들이 꽤 되거든.”

“그래? 나처럼?”

“뭐, 너 같은 건 아니고…. 옛날에 유행하던 히어로 캐릭터 코스튬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녀석들이 있어. 그런 녀석들은 여기랑 미국에 제일 많지.”

“그렇구만….”

쿠라마는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빨리 좀 골라. 안 그러면 내가 알아서 시킨다?”

“그래, 네가 여러 가지 좀 골라봐.”

쿠라마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음식들을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우와 쿠라마의 앞에 음식이 차려졌다. 반숙으로 한 달걀프라이가 올려진 햄버거 스테이크, 비프 카레, 해산물 샐러드, 고로케, 오믈렛 등이 차려졌다. 강우는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뭘 이렇게 많이 시켰어?”

쿠라마는 젓가락으로 고로케 하나를 집으며 대답했다.

“장시간 동안 제대로 먹은 게 없잖아. 둘이서 이 정도는 먹어줘야지.”

쿠라마는 손을 들었고, 가게 직원이 다가왔다. 쿠라마는 사케를 하나 시켰다. 쿠라마는 강우의 잔과 자신의 잔을 채웠다. 강우는 술잔을 내려다보다가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술도 먹게?”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아니야. 먹자. 일본술은 처음 먹어보네.”

쿠라마는 사케 한 잔을 들이킨 뒤 말했다.

“촌스럽긴…. 같이 먹을 음식들이 술에 어울리진 않지만, 사케는 그 자체로 맛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강우는 사케를 들이킨 뒤 말했다.

“그냥 정종 같네.”

“나쁘지 않지?”

“뭐, 그럭저럭.”

강우와 쿠라마는 금세 식사를 마치고, 술잔을 기울였다. 강우와 쿠라마는 대화가 제법 잘 통화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날아가는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강우와 쿠라마 둘 모두 제법 취기가 올라있었다. 쿠라마는 잔을 완전히 꺾어 입에 털어 넣듯 사케를 들이켰다.

“그런데…. 넌 먹을 때도 꼭 그걸 뒤집어쓰고 있어야 되냐?”

강우 역시 술을 입에 털어 넣은 뒤,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뒤집어쓰고 있다고 해야 되나…?”

“대인기피증…. 뭐, 그런 건가? 그걸 안 쓰면 히키코모리처럼 집에만 있는다던가….”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능력자로서 활동할 때는 이게 좋더라고.”

쿠라마는 술이 잔뜩 오른 듯 풀린 눈으로 의자에 기대며 강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쿠라마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보다보니까 익숙해져서 그런가…. 그렇게 나쁜 거 같지는 않기도…….”

“뭐라고?”

쿠라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쿠라마는 텅 빈 사케병과 사케팩을 확인하며 말했다.

“다 마셨네….”

“더 시킬까?”

“아니, 자리 옮기자.”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강우와 쿠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는 더치페이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쿠라마는 한사코 자신이 계산을 하겠다고 했다. 쿠라마는 강우를 밀어젖히며 휴대폰에 결합된 카드로 계산을 했다. 쿠라마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대신 2차는 네가 사. 아주 비싼 곳에서 먹을 거니까.”

“좋아, 가자!”

강우와 쿠라마는 식당을 빠져나왔다.

쿠라마가 강우를 이끌고 향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쿠라마는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캔맥주와 안주거리들을 집었다.

강우가 물었다.

“비싼 곳 갈 거라며? 왜 편의점에서 술을 사?”

쿠라마는 풀린 눈으로 강우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비싼 곳이라는 게, 술값이 비싼 게 아니야.”

쿠라마는 카운터에 맥주와 안주들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얼른 계산해.”

강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계산을 했다. 그 와중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강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우는 맥주와 안주거리들이 든 봉지를 들고 쿠라마의 뒤를 따랐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정면에는 경사가 진 산책로가 있었다. 쿠라마가 강우를 향해 뒤돌아보며 말했다.

“지름길로 가자. 따라와.”

쿠라마는 산책로 옆의 경사진 벽을 타고 올랐다. 강우 역시 쿠라마의 뒤를 따랐다. 산책로를 통하면 일반사람의 걸음걸이로 30분 가까이 걸릴 거리를 강우와 쿠라마는 경사진 곳을 그대로 타고 올라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강우와 쿠라마가 다다른 곳은 벤치가 있는 쉼터 같은 곳이었다. 쿠라마는 방금 타고 올라온 쪽을 가리켰다.

“어때, 죽이지?”

강우는 쿠라마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우와 쿠라마가 있는 곳에서는 도시의 야경이 그대로 보였다. 강우는 야경을 보며 말했다.

“그렇네. 네 말대로 진짜 비싼 곳이네.”

쿠라마는 씩 웃으며 캔맥주 두 개를 꺼내들었다. 쿠라마는 캔맥주 하나를 강우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긴 내가 기분이 좋을 때도,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올라와서 야경을 바라보고 했던 곳이야. 평소엔 음료수를 가지고 와서 마셨지만….”

쿠라마는 캔맥주를 딴 뒤,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술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네.”

강우도 캔맥주를 들어 보였다. 강우와 쿠라마는 나란히 서서 말없이 야경을 바라봤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였다.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비웠다. 쿠라마가 벤치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그나저나 힘든 하루였어.”

“그러게….”

강우도 쿠라마를 따라 벤치에 몸을 기댔다. 강우는 몸을 젖히며 손을 양 옆으로 놨다. 강우의 오른손 새끼손가락과 쿠라마의 왼손 새끼손가락이 포개졌다.

강우는 처음에 쿠라마의 손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그제야 자신의 손과 쿠라마의 손이 닿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쿠라마 역시 자신과 강우의 손이 포개진 것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강우와 쿠라마는 고개를 들다가 눈이 마주쳤다. 둘의 손은 여전히 포개져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강우와 쿠라마는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강우의 쿠라마의 입이 포개지기 직전이었다.

쿠라마는 강우 자체에 끌렸다. T.C.C로 흉악한 모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끌렸다. 술기운도 조금은 영향을 끼쳤다. 쿠라마에게 겉모습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쿠라마는 키스까지 하고 싶을 정도로 강우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것이 첫 키스임에도 불구하고.

강우와 쿠라마의 입술이 아주 가볍게, 깃털끼리 맞부딪치듯 닿았다.

음악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라마는 강우와 입술이 닿는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역시 겉은 홀로그램일 뿐이구나. 입술 감촉은 똑같아. 따뜻해. 첫 키스를 하면 종소리가 들린다느니, 초콜렛 맛이 난다느니, 어쩌고 하더니…. 진짜 음악소리가 들리네….’

쿠라마는 눈을 번쩍 뜨며 강우에게서 입을 떼어냈다. 음악소리는 쿠라마의 휴대폰 벨소리였다.

강우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쿠라마를 바라봤다. 쿠라마는 강우의 눈치를 살피곤, 고개를 돌려버리며 전화를 받았다.

예거 파티 측에서 온 전화였다. 예거 파티에서 나온 사람이 호텔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쿠라마는 “바로 갈게요.”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쿠라마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가자.”

쿠라마는 곧바로 몸을 돌려 올라왔던 길을 내려갔다. 강우는 쿠라마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게 뭐야….’

강우는 문득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긴, 이 모습을 하고 뭘 바라기는 좀 그런가? 그나저나 쟤가 갑자기 왜 그랬지? 내가 그랬나?’

강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안 갈 거야? 빨리 내려와!”

아래서 쿠라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우는 쿠라마의 재촉에 올라왔던 길을 내려갔다. 호텔로 향하는 길, 강우와 쿠라마 사이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강우와 쿠라마는 호텔에 금세 다다랐다. 강우와 쿠라마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강우는 걷는 도중 쿠라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며 “뭘 쳐다봐?”라고 말했다. 강우는 “그냥 본 거야.”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강우와 쿠라마는 예거 파티 측에서 나온 사람과 만났다. 30대 중반에 마른 체형, 뿔테안경을 쓴 남자였다.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신노스케입니다.”

강우와 쿠라마도 신노스케에게 인사를 했다. 신노스케는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방으로 좀 이동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쿠라마가 말했다.

“그럼 제 방으로 가시죠.”

강우와 쿠라마, 신노스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셋은 쿠라마가 머무는 방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신노스케가 말했다.

“우선 이번 후지산에서 일어난 일은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저희 예거 파티와 무투 클랜이 힘을 합쳐 남은 이성 하급에서 중급 사이의 몬스터 몇 마리를 더 발견했었습니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고요.”

쿠라마가 물었다.

“화산 속 최하단부까지 모두 수색한 겁니까?”

신노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 말고는 없더군요. 시그라의 시체가 있긴 했지만, 굳이 회수할 필요까진 없어서 그대로 놔뒀습니다. 아, 조금 이상한 점이 있긴 했습니다.”

쿠라마가 물었다.

“뭐가 이상했습니까?”

“게미누스의 혈흔이 남아있었는데, 시체는 보이지 않더군요.”

강우가 말했다.

“아, 그거라면 저한테 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강우는 방을 빠져나갔다. 강우는 자신의 방으로 가 수건에 싸두었던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챙겨 다시 쿠라마의 방으로 갔다.

강우는 신노스케의 앞에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싸맨 수건을 내려놨다. 신노스케는 수건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강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게미누스의 시체요.”

“네?”

신노스케는 수건에 손을 가져가다 멈춘 뒤 물었다.

“좀 들쳐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말려있는 수건을 풀어내자 군데군데 게미누스의 피가 묻어있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곧 탁구공과 비슷한 크기의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가 드러났다.

신노스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들여다보다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게 대체…?”

“말씀드렸다시피 게미누스의 시체입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강우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태민과 히로, 쿠라마와 자신이 게미누스와 전투를 벌인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게미누스가 압축된 것까지.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