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신노스케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믿기 힘들다는 듯 물었다.
“게미누스가 이렇게 압축된 것도 잘 믿기지 않지만…. 아니, 우선…. 그렇게 커다란 게미누스를 대체 어떻게 압축시킨 겁니까?”
강우는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제가 힘이 좀 세거든요.”
강우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언젠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보이게 된다면 보여야 할 능력이었지만 굳이 먼저 말을 해야 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쿠라마 역시 강우가 게미누스를 혼자 죽였다는 사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 뿐, 강우가 어떻게 게미누스를 죽인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않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힘이 세서 게미누스를 이렇게 압축시킬 수 있었다.’라는 강우의 말을 들은 신노스케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신노스케는 강우가 그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이런 생각, 이런 정도의 감정이 신노스케의 뇌 주름 사이사이로 퍼져나갔다. 신노스케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패였다. 미간 사이에 내 천(川)자가 잠시나마 또렷이 박혔다. 주름이 졌던 미간은 1초도 지나지 않아 평평하게 펴졌다. 강우와 쿠라마는 이미 본 상태였지만.
신노스케는 평정심을 찾은 뒤, 강우가 게미누스를 압축시켜 죽였다는 것보다는, 게미누스의 새로운 형태가 등장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
“더 믿기 힘든 것은 그런 형태의 게미누스가 나타났다는 거군요.”
그마저도 믿지는 않았지만.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며 신노스케를 노려보며 따지듯이 말했다.
“저희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요?”
“아니요. 그런 말은 아니지만, 직접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게 그 말 아닌가요?”
“아무래도 여태까지 그런 몬스터는 보고된 적이 없기에…. 아예 새로운 몬스터라면 모를까, 게미누스가 그렇게 됐다는 것은 조금….”
쿠라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진짜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제가 회수해서 분석 요청을 좀 해도 될까요? 물론 이게 게미누스가 맞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온전한 게미누스의 시체 가격, 시중 가격으로 말이죠. 하지만 방금까지 말씀하신…. 진화한 버전의 게미누스…. 그쪽은 크게 기대하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쿠라마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 진짜…….”
강우가 쿠라마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럼 어쨌든 그게 게미누스란 것만 밝혀지면 그에 맞게 돈을 쳐준다는 말씀이죠?”
신노스케가 고개를 그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시그라나 다른 몬스터들에 대한 건요?”
“원래라면 이 부분들은 예거 파티 측에서 보상의 의무를 가진 경우는 아닙니다. 다만, 경우가 경우인 만큼 웬만한 부분들은 모두 어느 정도 계산을 해드릴 겁니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나쁘지 않네요.”
쿠라마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의자에 기대있었다. 쿠라마가 툭 내뱉듯 그리고 따지듯이 말했다.
“듣자듣자 하니까 기분이 나빠서 그런데, 원래 이 일을 의뢰한 사람도 예거 파티 측과 연결된 사람 아니에요? 예거 파티 쪽에서 클랜에게 일을 의뢰하는 게 모양새가 빠지니까 저희한테 의뢰한 거 아니냐고요. 안 그러면 누가 후지산 쪽 일을 저희한테 맡겼겠어요? 익명으로 일을 맡길 때부터, 거금의 계약금을 걸 때부터 이상했어요. 저희도 대충 알면서 그냥 일을 진행한 겁니다.”
신노스케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강우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신노스케의 반응 그리고 정황상 예거 파티에서 무투 클랜에게 일을 맡긴 것이 맞았다.
쿠라마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아까도 예거 파티에서 보상할 경우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건 그럴 경우가 맞다고 보는데요. 제 말이 틀려요?”
신노스케는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여튼 전해드릴 말씀은 다 한 것 같네요.”
신노스케는 수건에 싼 압축된 게미누스의 시체를 챙기며 말을 이었다.
“이것에 대한 분석은 내일 오전 중이면 알려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 후에 보상금을 모두 지급해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정오 전까지는 정산까지 모두 마칠 수 있을 겁니다.”
신노스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도 따라 일어나 신노스케를 배웅했다. 신노스케는 문밖으로 나서며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한 뒤,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강우가 문을 닫고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쿠라마가 말했다.
“예거 파티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저래. 히로란 사람은 그나마 좀 괜찮아 보였는데….”
“전부 다 저렇다니? 무슨 말이야?”
“네가 게미누스를 저렇게 압축시킨 것도, 게미누스가 다른 형태로 나왔단 것도 안 믿잖아.”
강우는 팔짱을 끼며 자리에 앉아서 대답했다.
“뭐, 그거야 그럴 수도 있지. 직접 본 게 아니니까. 어쨌든 돈을 제대로 쳐주겠다고 하니까 상관없잖아?”
“아니, 그건…….”
쿠라마는 하던 말을 관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그거야 안 믿을 수도 있어. 하지만 예거 파티 쪽은 항상 그렇다는 거야. 몇 년 전만 해도 공개적으로 예거 파티에서 클랜 쪽이랑 협력하는 일들이 꽤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 몇몇 프리랜서들을 고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대놓고 클랜과 함께 일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
“왜 그런 건데?”
“예거 파티는 기본적으로 모든 능력자들을 자기들 휘하에 두고 싶어 해. 몬스터 관리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이미 몇몇 클랜들은 예거 파티에서 건들 수 없을 정도지. 예거 파티에서 블랙마켓을 건드리기 까다로운 것처럼 말이야.”
강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뭐가 문젠데?”
“예거 파티는 표면적으로 예거 클랜들은 인정하고, 블랙마켓도 표면적으로 하지 않을 뿐이지, 존재에 대해 인정은 하는 상태야. 하지만 정작 속으로는 언제든지 잡아먹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클랜이나 블랙마켓 쪽에서 강한 능력자가 있다거나 새로운 몬스터를 먼저 발견한다거나…. 그런 일이 절대 없기를 바라는 거지. 없게끔 만들려고 애쓰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짜증나 정말…. 하여튼 네가 지급 받을 돈은 내일 모두 받을 수 있을 거야. 이태민의 부상이 그리 심각한 건 아니니까, 내일 이태민이랑 어느 정도 협의한 후에 돈은 바로 줄게.”
쿠라마는 말을 마치고 짜증이 잔뜩 섞인 표정으로 구시렁거렸다. 강우는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쿠라마는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뭐하고 있어? 여기서 잘 거야?”
“어? 아니지. 돌아가서 자야지.”
“그래, 얼른 방으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 내일 정산해줄 테니까.”
“어? 어. 그래. 잘 자.”
쿠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 너도 잘 자.”
강우는 쿠라마의 방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강우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뒤, T.C.C를 해제했다.
‘뭐야…. 그냥 자는 건가? 괜한 기대를 한 건가?’
강우는 거울 속의 자신을 쳐다봤다.
‘T.C.C를 키지 않은 상태면 뭔가 좀 더 있었으려나?’
강우는 내일이면 정산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하긴, 나야 뭐 여기에 돈 벌려고 온 거니까…. 내일 바로 정산 받은 다음에 한국에 돌아가면 할 것도 많고…. 소아 씨도 만나고…….’
강우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 무렵 쿠라마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쿠라마는 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쿠라마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그나저나 가란다고 바로 가는 건 뭐야?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건 아니었지만…….’
쿠라마는 그날따라 오랜 시간 동안 샤워를 했다.
다음 날이었다. 강우는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쿠라마였다.
“아침 먹게 준비해. 그리고 이따가 예거 파티 쪽에서 사람이 오기로 했어.”
“알았어. 바로 나갈게.”
강우는 T.C.C를 키고 호텔방을 나섰다.
강우가 나간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쿠라마도 호텔방에서 나왔다. 쿠라마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가자.”
강우와 쿠라마는 많은 술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숙취는 조금도 없었다. 능력자의 튼튼한 신체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강우와 쿠라마는 호텔 조식으로 차려진 뷔페로 식사를 했다. 쿠라마는 식사를 하던 중 강우에게 핀잔을 줬다.
“넌 무슨…. 아침부터 뭘 그렇게 많이 먹냐?”
“너도 어제 잘 먹던데 뭘.”
쿠라마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눈썹을 찡그렸다.
“많이 먹던가 말던가….”
“그런데 넌 나한테 많이 먹는다고 뭐라 했잖아.”
“그래. 내가 괜한 시비를 걸었다. 많이 먹어.”
“그래, 너도 많이 먹어.”
강우와 쿠라마는 식사를 하면서도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겉으로는 서로 티격태격하는 듯 했지만, 실상 화기애애한 자리라고 볼 수 있었다.
강우와 쿠라마는 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시며 예거 파티 쪽 사람을 기다렸다. 강우와 쿠라마가 커피를 한 잔 더 마실 쯤, 신노스케가 도착했다.
신노스케는 자리에 앉으며 “많이 기다리셨습니까?”라고 말했다. 쿠라마는 표정을 굳히며 “네, 많이 기다렸네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신노스케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우선 어제 건네주신 것을 분석해본 결과 게미누스가 맞는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신노스케는 분석 결과부터 보상금에 대해 얘기를 늘어놨다.
강우가 압축시킨 게미누스의 시체는 게미누스가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것이 진화한 게미누스의 시체라는 증거는 없었다. 예거 파티 측에선 압축된 것을 온전하게 모두 펼칠 수 없었고, 원래 모습의 부피 또한 측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게미누스의 신체 일부분이 아닌 소량이라도 신체내외 전부가 포함된 걸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예거 파티에서 이번 사태에 관해 무투 클랜에 지급하겠다는 금액은 5억 겔드, 게미누스는 두 마리를 잡은 것으로 계산해 10억 겔드였다.
신노스케가 말했다.
“이번 일을 의뢰 받으면서 받으실 돈은 또 따로 있으니, 그다지 나쁜 대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신노스케는 답변을 기다리듯 강우와 쿠라마의 눈치를 살폈다. 강우는 잠시 쿠라마의 눈치를 살피다가 신노스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 금액 자체는 나쁘지 않네요.”
쿠라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쿠라마와 눈을 한 번 마주친 뒤, 신노스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물어보십시오.”
“만약 저희가 잡은 게미누스가 진화한…. 새로운 게미누스인 게 밝혀졌더라면 얼마나 받을 수 있었을까요?”
신노스케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만약 그랬을 경우 수십억은 받으셨을 겁니다. 아마 최소 25억…. 하지만 온전한 시체였어야 가능한 액수입니다. 시체의 상태에 따라 더 받으셨을 수도 있고요. 아무래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뭐든지 더 쳐주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하지만 건네주신 시체에선 세포 분석에 있어서는 일반 게미누스와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겉으로 분석은 더더욱 불가능했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겠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능력도 문제가 있구만….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이래서는…. 능력을 다듬을 필요가 있겠어.’
신노스케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아니요. 계산이나 빨리 끝내죠.”
“아,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신노스케는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남자가 양손에 하드케이스로 된 가방을 들고 왔다. 가방에는 10만 겔드권이 가득 차있었다.
신노스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저희 예거 파티 측과는 거래가 끝나신 겁니다.”
강우와 쿠라마는 양손에 돈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쪽과는 다 끝났네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완전히는 아니죠. 그쪽에서는 계속 아닌 척을 하지만, 저희한테 처음 의뢰한 돈을 입금해야 하니까요.”
신노스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네요. 착각을 하고 계신 겁니다.”
신노스케는 몸을 돌리며 “이 정도 일을 해결하신 분들이니, 아마 또 볼일이 있겠죠. 그럼.”이라고 말했다.
신노스케는 돈가방을 가져온 남자들과 함께 호텔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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