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강우가 물었다.
“총 얼마입니까?”
이태민은 가방에 손을 턱, 얹으며 대답했다.
“4억 겔드입니다.”
“네? 그렇게 많이요?”
“게미누스를 잡았을 때 1억 겔드도 포함시켰습니다. 제게는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까요. 괜찮으신가요?”
강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저야 좋지만…. 괜찮겠습니까?”
“저희 걱정은 하지 마세요. 보상금은 충분히 들어왔습니다. 제 몫을 조금 줄인 것뿐입니다. 생명의 은인에게 이 정도밖에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죄송은요. 저야 생각보다 많이 들어와서 감사할 따름이죠.”
이태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바쁘실 텐데 가보시죠. 다음에 또 함께 일했으면 좋겠네요.”
“아, 네. 또 함께 할 일이 있으면 연락주십쇼. 제가 일이 필요하면 또 연락을 드릴 수도 있고요.”
이태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죠.”
강우는 가방을 둘러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나오셔도 됩니다.”
“어떻게 그럽니까. 제 생명의 은인인데. 1층까지 나가겠습니다.”
“진짜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강우와 이태민은 클랜장실을 빠져나왔다. 강우와 이태민이 엘리베이터를 향하고 있을 때였다. 이현지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태민이 이현지를 보며 말했다.
“여긴 왜 올라왔어?”
“내일 경호업무 나가는 거 보고하려고요.”
“그런 걸 뭐 나한테까지 직접 와서 말해? 그냥 결재 올려놓으면 형철이가 확인할 텐데.”
이태민은 강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알지? 집행자님. 오늘 정산하러 오셨거든.”
이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조롱하듯 말했다.
“그때 다친 건 괜찮나? 벌써 일할 수 있겠어? 그때 배에 빵꾸 났잖아.”
“아무 문제도 없거든.”
이태민이 말했다.
“집행자님한테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해?”
강우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쟤랑 나랑 트러블이 좀 있어서 그래요.”
이태민은 이현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사에 불만이 많더니…. 야, 집행자님은 네 수준으로 개길 사람이 아니야.”
이현지는 눈썹을 찡그린 채 말했다.
“왜 안 됩니까? 같이 다녀봐서 아는데, 별 거 없어요.”
이태민이 표정을 굳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저 녀석이 나보다 약할 거라고요.”
“그럼…. 집행자님이 내 목숨을 구해줬는데, 네가 집행자님보다 강하면, 내가 너보다 약하단 말이냐? 그럼 네가 클랜장 해먹으면 되겠네?”
이현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어쨌든 너는 집행자님을 인정하지 못하겠다?”
이현지는 이태민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네, 못하겠어요. 얘기 다 들었습니다. 저 녀석한테 4억 겔드가 간다는 걸요. 클랜장님과 부클랜장님, 김동준 말고는 다들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강우는 이태민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이 정도 돈을 받는 게 문제가 되는 거 같은데요?”
“아닙니다. 해결하도록 하죠.”
이태민이 이현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붙어보든가.”
“네?”
“집행자님하고 대련을 해보라고. 그럼 그 격차를 알게 되겠지. 다른 클랜원들도 모두 수긍이 갈 거야. 왜 집행자님이 이 정도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아니, 이것도 부족한 것이라는 걸. 결국 모두들 집행자님이 그렇게까지 강하다는 걸 못 믿겠다는 거잖아?”
이현지는 이태민의 눈치를 살피다가 강우를 노려봤다. 이현지는 다시 이태민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좋아요! 붙여주세요!”
강우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저기…. 나한테 먼저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태민이 빌 듯이 양손을 모으며 말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이태민은 강우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속삭였다.
“가볍게…. 실력 차이만 좀 보여주세요. 그럼 5,000만 겔드 더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더 드리려고 했던 돈이지만요. 생각해보니 4억으론 부족한 거 같아서….”
“5,000만 겔드요?”
“네, 모든 클랜원들을 납득시켜야하는 문제도 있고, 이번 기회에 모두에게 좋은 자극을 좀 주고 싶어서요. 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하죠.”
이태민이 이현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4층 대련실로 모두들 모아.”
“네, 알겠습니다.”
이현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강우는 이태민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향했다.
강우와 이태민이 들어선 곳은 4층의 대련실이었다. 대련실은 강우가 최무훈에게 트레이닝을 받던 곳과 흡사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모포나 냉장고 따위는 없었고, 천장은 노란색으로, 벽은 주황색으로, 바닥은 빨간색으로 칠해져있었다.
강우와 이태민이 대련실에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클랜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대부분의 클랜원들이 대련실에 모여들었을 때였다.
이태민이 말했다.
“일을 나간 몇 명 빼고는 다 모였지?”
클랜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네!”
“이유는 다들 들어서 알 거야! 집행자님은 바쁘신 분이니까, 바로 시작한다! 이현지 나와!”
이현지가 대련실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태민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강우는 성큼성큼 이현지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태민이 말했다.
“규칙은 단 하나! 상대방이 정신을 잃거나, 항복을 외칠 경우에는 멈춘다! 그럼 시…….”
이태민이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이현지가 전신에서 노란빛을 뿜어내며 강우에게 달려들었다.
“하아앗!”
이현지가 뛰어올라 강우의 안면에 주먹을 휘둘렀다. 강우는 가볍게 고개를 젖혀 피해냈다. 이현지는 곧바로 몸을 돌리며 발차기를 했다.
턱, 타타탁.
강우는 오른손을 들어 이현지의 발차기를 가볍게 막아낸 뒤 밀어냈다. 이현지는 바닥을 구른 뒤, 곧바로 일어나 강우에게 달려들었다.
이현지가 전신에서 노란빛을 뿜어내며 연속으로 공격을 가했다. 오른손 정권지르기, 왼손 정권지르기 후 오른발 로우킥, 오른발 미들킥, 오른발 뒤돌려차기까지.
이현지의 공격은 단 한 번도 강우에게 닿지 않았다. 강우는 이현지를 보며 지루하다는 듯 말했다.
“이거 꼭 해야 돼? 이 정도면 실력의 차이를 알지 않겠어?”
“입 닥쳐!”
이현지의 전신에서 이글거리던 노란빛이 오른쪽 주먹으로 쏠렸다. 이현지는 정권지르기 자세를 잡았다.
이태민이 소리쳤다.
“이 바보야! 그만둬!”
이현지가 강우에게 오른쪽 주먹을 뻗었다.
퍼어어어어어엉!
강한 노란빛이 뿜어지며 폭발이 일어났다. 대련실 안에 있던 모두는 팔로 눈앞을 가렸다. 빛이 걷히고, 이현지와 강우가 있던 곳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강우는 멀쩡히 서서 이현지의 주먹을 왼손으로 잡고 있었다. 강우는 이현지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방금 거는 좀 짜증났어.”
후웅-
강우는 이현지의 오른쪽 주먹을 잡고 집어던졌다.
콰앙!
이현지는 벽에 처박혔다.
터엉!
강우는 순식간에 이현지의 앞으로 다가섰다. 강우가 오른쪽 손을 치켜들었다.
텅!
이태민이 양팔을 벌리며 강우의 앞을 막아섰다.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강우는 오른손을 천천히 내리며 말했다.
“나도 더 이상 공격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겁만 좀 주려고 했던 거죠.”
“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이태민은 이현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현지는 방어 쪽으로 특화된 능력자였다. 하지만 강우가 단 한 번, 집어던진 것에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이태민은 다른 클랜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얼른 싣고 나가!”
이태민의 말에 허겁지겁 클랜원 두 명이 이현지를 들것에 싣고 갔다. 이태민은 클랜원들을 향해 말했다.
“이래도…. 내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나?”
클랜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난 이번에 실망했다. 앞으로는 내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클랜원들 중 하나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저기…. 클랜장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뭔데?”
“저희 중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는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상황은 이랬다. 무투 클랜원들은 모두 강우의 활약을 인정했고, 이태민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이태민의 결정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만을 빼놓고.
이태민의 결정에 이의가 있고, 강우의 활약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현지 하나뿐이었다. 이현지는 이태민에게만이 아니라, 클랜원 전체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단지 강우와 있었던 트러블 때문에, 강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벌인 일이었다.
이태민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이태민은 클랜원들에게로 시선을 옮겨 말을 이었다.
“이현지에 대한 처분은 나중에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하여튼 날 믿어줘서 고맙다.”
클랜원들은 이태민을 향해 고개를 숙인 뒤, 크게 소리쳤다.
“저희는 항상 클랜장님을 믿습니다!”
이태민은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강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뭐…. 거의 종교구만.’
이태민은 강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해결됐네요.”
“감사는요. 돈 받자고 한 건데요. 이현지에 대한 처분은 어떻게 할 건가요?”
“심하게 벌을 주기는 뭐하고…. 당분간 근신 정도만 내리려고 합니다. 본인도 힘의 격차를 알았으니 뭔가 느끼는 게 있겠죠. 마음가짐부터 바뀌어야 되니까요.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고, 상대방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면 절대 발전할 수가 없죠.”
이태민은 클랜원 하나에게 손짓을 했다. 클랜원이 이태민에게로 후다닥 달려왔다. 이태민은 5,000만 겔드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태민이 심부름을 시킨 클랜원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돈을 가져왔다. 이태민은 강우에게 돈을 건네며 말했다.
“그럼 가시죠. 바쁘신 분을 제가 오래 잡아뒀네요.”
“아닙니다. 너무 쉽게 많은 돈을 받는 거 같아서 괜히 미안하네요.”
“제가 부탁드린 걸요.”
이태민은 1층까지 강우를 배웅했다. 강우는 그렇게 4억5천만 겔드를 챙겨 무투 클랜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강우가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평소 사용하는 휴대폰이 아닌 블랙마켓용 휴대폰이었다. 이근수에게서 온 전화였다.
‘이 아저씨가 웬일……. 아, 맞다. 김태호랑 붙기로 했지.’
강우가 전화를 받자 아니나 다를까, 이근수는 김태호와의 경기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경기는 내일 모레 오후 8시였다.
“어때,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그럼 그때 경기하는 걸로 하죠.”
이근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컨디션은 좀 어때? 몸은 좀 괜찮아? 일본 출장 갔다면서? 블랙마켓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다 봤어. 이제 삼성 하급이던데? 대단해.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아, 네. 감사합니다.”
강우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생각했다.
‘이 아저씨가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러지?’
이근수가 말했다.
“혹시 시간 되나? 오늘 좀 만날 수 있어? 나 지금 서울이거든.”
“왜 그러시죠?”
“그냥 여러 가지로 할 얘기가 좀 있어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강우는 ‘전화로 말해도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말꼬리를 잡지는 않았다.
“알겠어요. 어디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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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