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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100화 (100/195)

100화

김태호는 주먹을 맞부딪치자는 듯 강우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강우 역시 주먹을 내민 채 걸음을 옮겼다. 김태호와 강우의 주먹이 맞닿았다. 강우는 김태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김태호는 여느 F.N.C 선수와는 달리, 과거의 격투기선수처럼 트렁크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김태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작게 속삭였다.

“잘 부탁해.”

퍼억!

김태호의 오른발 로우킥이 강우의 왼쪽 허벅지에 꽂혔다. 김태호는 씩 웃으며 “돈값은 해야지?”라고 말했다.

후웅-

김태호의 오른쪽 훅이 강우의 안면에 날아들었다.

터엉!

강우는 왼팔을 들어 김태호의 오른쪽 훅을 막아냈다. 강우가 오른쪽 주먹을 쥐며 반격을 준비할 때였다. 붉은빛이 번쩍였다.

어느새 김태호가 강우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번 거는 막지 않았으면 좋겠어.”

퍼억!

김태호의 오른쪽 니킥이 강우의 복부에 꽂혔다. 강우의 등이 새우처럼 굽어졌다.

“크윽.”

빠악!

김태호의 왼쪽 훅이 강우의 안면에 들어갔다. 강우의 고개가 크게 돌아가며 균형이 무너졌다. 김태호는 이미 후속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뻑!

김태호의 오른쪽 어퍼컷이 작렬했다. 강우의 턱이 들리고, 시선은 완전히 천장을 향했다. 김태호의 시선은 강우의 두 다리에 가있었다. 강우는 정통으로 몇 번이나 공격을 받았지만, 두 다리는 전혀 풀려있지 않았다. 강우는 두 눈을 부릅뜨며 김태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김태호의 전신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튼튼하네.”

김태호가 발을 일자로 들었다.

콰아아앙!

김태호는 발뒤꿈치로 강우의 안면을 내리찍었다. 김태호의 발은 강우의 뒤통수를 짓밟고 있었다. 강우는 바닥에 얼굴을 처박힌 채 엎드려있었다.

쿠구구구구.

강우는 김태호의 발을 머리에 얹은 채 몸을 일으켰다. 김태호는 강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찍 끝내도 되는데…. 샌드백 역할을 더 해주겠다면 나야 고맙지만.”

후웅- 팡!

강우가 오른쪽 주먹을 옆으로 크게 저었다. 김태호는 강우의 머리를 지지대삼아 뒤로 몸을 날렸다. 김태호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돈 뒤, 깃털처럼 사뿐하게 착지했다.

“이거 제법…….”

김태호가 말을 끝마치기 전이었다.

터엉!

강우가 김태호를 향해 튀어나갔다. 김태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너무 일방적이면 재미없지.”

강우가 오른쪽 주먹을 김태호를 향해 휘둘렀다.

팡!

김태호가 강우의 주먹을 바깥쪽으로 튕겨냈다. 강우는 아랑곳 않고 왼손 잽을 연속으로 날렸다.

팡, 턱, 탁, 팡, 팡, 파파파팍.

김태호는 왼손 잽을 모조리 막고, 쳐냈다. 강우가 잽 속도를 올렸지만, 김태호는 이마저도 모두 위빙과 스웨이로 피해냈다.

김태호가 양 주먹을 모아 동시에 내질렀다.

퍼엉!

붉은빛을 품은 김태호의 두 주먹이 강우의 명치 위에 꽂혔다. 강우는 뒤로 멀리 날아갔다.

끼이익.

강우는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섰다. 김태호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단하군. 진짜 제대로 붙었어도 몰랐겠는데?”

강우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인 뒤, 주위를 둘러봤다. 강우가 시선을 옮긴 곳은 경기장으로 들어섰던 출입구였다. 출입구에는 이성훈이 서있었다. 이성훈은 양 주먹을 꽉 쥐고 강우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강우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성훈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어이, 어디를 보는 거야?

강우는 이성훈을 무시한 채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다. 강우의 시선이 멈췄다. 강우와 관중석 앞쪽에 앉아있는 쿠라마와 눈이 마주쳤다. 쿠라마는 강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그 따위로밖에 못해? 제대로 좀 해봐!”

김태호가 강우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뭐하고 있는 거야? 얼른 흥을 돋궈보자고.”

김태호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강우가 김태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그때까지도 망설이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질 것인지, 이길 것인지.

김태호는 강우를 계속 살살 긁어댔고,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강우가 더 이상 져줄 생각이 없어지게 만들었으니까.

이성훈과 쿠라마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들은 강우에게 기대를 하고 있었고, 강우는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강우는 그저 지는 것이 싫었다. 힘을 손에 넣은 이후로 강우는 져본 적이 없었다. 몬스터와의 싸움도, 사람과의 싸움도.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까부터 실실 쪼개는 거…. 좆나게 거슬리네….”

“뭐?”

“들었으면서 뭘 못 들은 척해?”

김태호는 보란 듯이 입꼬리를 더욱 길게 올리며 말했다.

“그럼 못 웃게 만들어 보던가!”

퍼엉!

김태호가 강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김태호의 뒤로는 붉은빛이 꼬리처럼 길게 이어졌다. 김태호는 순식간에 강우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김태호는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며 말했다.

“어차피 넌 져야 되잖아?”

콰아아아앙!

김태호가 붉은빛이 타오르는 오른쪽 주먹을 강우에게 날렸다. 붉은빛이 발광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김태호는 주먹을 내지른 채 가만히 서있었다. 붉은빛이 걷히고, 강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강우는 너무도 간단히 왼손으로 김태호의 주먹을 잡고 서있었다. 김태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김태호 눈가에는 경련이 일어나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제야 좀 안 웃는구만.”

강우는 김태호의 주먹을 쥔 채로 팔을 강하게 털었다. 김태호는 주먹을 붙잡힌 채 마치 수건처럼 몸이 공중에 붕 떴다.

후웅-

강우가 김태호를 그대로 던져버렸다. 김태호는 투명케이지 벽으로 날아갔다.

터엉, 탁.

김태호는 몸을 돌려 투명케이지 벽에 발을 디딘 뒤 바닥에 착지했다. 김태호는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풀고, 다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뭐야, 설마 마음이 바뀐 거야? 응? 챙길 건 챙기고, 이겨보시겠다?”

강우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김태호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근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양 선수! 경기 내내 대화를 하고 있는데요! 잘 들리지는 않습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이근수는 이를 악 물고 강우를 노려봤다.

‘저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야? 6억이나 처먹어놓고…….’

이근수는 김태호를 쳐다봤다.

‘저 녀석도 왜 계속 입을 나불거리고 있는 거야? 빨리 끝낼 것이지…….’

김태호가 전신에서 붉은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이제 끝낼 때가 된 것 같아.”

퍼엉!

김태호가 강우를 향해 돌진했다.

쉭-

김태호가 오른쪽 주먹을 날렸지만 강우는 고개를 살짝 틀어 피해냈다. 김태호는 곧바로 오른발 하이킥을 날렸다. 강우는 왼손을 들어 가볍게 막아냈다. 김태호는 하이킥을 한 방향의 반대로 몸을 돌렸다.

턱!

김태호가 오른발 뒷차기를 날렸다. 강우는 왼쪽 손바닥으로 발을 막았다.

탁, 터억, 후웅, 후웅, 팍, 쉭, 쉬쉭, 쉭.

김태호의 왼손 잽, 오른발 미들킥, 왼손 훅, 오른손 훅, 오른발 하이킥, 왼손 잽, 2연속 오른손 스트레이트, 오른발 로우킥까지.

강우는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은 채 김태호의 공격을 모두 무력화시켰다. 김태호의 오른쪽 주먹에 붉은빛이 모여들었다.

“이 새끼가……!”

퍼엉!

강우의 오른발 로우킥이었다. 로우킥은 김태호의 왼쪽 허벅지에 정확히 꽂혔다. 살갗이 터지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태호의 허벅지 옆면의 살은 안에서부터 무언가 폭발한 듯 터져있었다. 선홍색의 속살과 하얀 뼈가 겉으로 드러났다. 김태호는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다보면서도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뭐, 뭐야? 뭐지?”

강우는 오른쪽 주먹을 왼쪽 손바닥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뭐긴…. 네 다리가 터져버린 거지. 그것도 봐준 거다.”

강우가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터어어엉!

강우의 오른손 스트레이트는 김태호의 가슴에 꽂혔다. 김태호는 그대로 투명케이지 벽까지 날아갔다.

쿵!

김태호는 벽에 기대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김태호는 이해가 불가한 상황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핫…. 하하……. 하하하핫!”

김태호의 가슴에는 강우의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강우는 어깨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봐준 거야. 안 죽게.”

콰아앙!

이근수가 마이크를 내리쳐 울린 소리였다. 이근수는 분노에 가득찬 눈으로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이근수를 무신하고, 김태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강우의 그림자가 김태호의 위로 드리웠다. 김태호는 강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넌…. 대체 뭐지? 뭐야…. 이건 삼성 하급이 아니잖아. 응? 뭐냐고 이게?”

김태호는 공포로 미쳐버린 것인지,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인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하…. 이래도 되는 거야? 너…. 져주기로 했잖….”

빡!

강우는 손바닥을 쫙 핀 채 김태호의 머리를 내리쳤다. 김태호는 쌍코피를 내뿜으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김태호를 내려다봤다.

“마지막까지 처웃다니…. 기분 나쁜 새끼.”

김태호의 코에서는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입술 위로흐르는 코피가 이따금씩 호흡에 밀려 앞으로 튀었다. 강우는 김태호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죽이진 않았다. 재활하면 해외무대도 나갈 수 있겠지. 그 실력으로 해외에 진출해봐야 별 볼 일 없겠지만…….”

강우는 고개를 돌려 이성훈과 쿠라마를 한 번씩 쳐다봤다. 이성훈과 쿠라마 둘 모두 얼굴에 미소가 번져있었다.

이근수의 승리선언은 나오지 않았다. 이근수는 이를 꽉 물고,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와아아아아아!”

“집행자! 집행자!”

“새로운 챔피언이다!”

관중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강우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성훈은 반짝이는 눈으로 강우를 바라봤다. 이성훈은 평소보다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강우는 이성훈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로 향했다.

강우는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앉아 블랙마켓용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쿠라마에게 문자메시지가 와있었다.

-경기 잘 봤어! 급하게 일 때문에 인사도 못하고 간다. 당분간 한국에 머무를 거니까 곧 보자고!-강우는 씩 웃었다.

이성훈은 대기실 안에서 선망의 대상을 바라보듯 강우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강우는 휴대폰을 주머니로 넣으며 말했다.

“왜?”

이성훈은 90도가 넘도록 몸을 확 숙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멋졌습니다!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강우는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얹으며 비꼬듯 말했다.

“왜, 실망이라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강우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용서는 무슨…….”

콰앙!

“억!”

대기실 문이 거세게 열리며 이성훈을 옆머리를 쳤다. 이성훈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이마까지 핏발이 선 이근수였다. 이근수는 씩씩거리며 강우를 노려봤다. 이근수는 강우와 두 눈을 마주치다가 쓰러져있는 이성훈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퍽, 팍, 퍼억, 퍽, 퍽, 빡, 퍼억, 퍽, 퍽, 빡!

이근수는 쓰러져있는 이성훈에게 마구 발길질을 해댔다.

“이 개새끼야! 너 아까 웃더라? 응? 좋았어? 내가! 니 새끼! 사장인데! 사장! 일이! 망쳐지니까! 좋았냐! 엉!”

이성훈은 무기력하게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걷어차이고, 짓밟혔다. 강우는 싸늘한 눈으로 이근수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만하지…?”

이근수가 목청껏 소리쳤다.

“닥쳐-! 네놈 때문에-!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너에게 준 6억이 문제가 아니야-! 이 경기에 얼마가 걸려있던 줄은 알아? 김태호는 재활에만 6개월 이상 걸려-! 그로 인한 피해가 얼마인 줄은 아냐고-! 해외에서 들어왔던 오퍼들도 철회됐어! 계약했던 곳에는 손해배상을 해야 돼-! 김태호가 다시 해외무대를 노리려면 시간이…….”

강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이근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항상 보내주시는 응원,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느덧 100화까지 왔네요.

원래는 99화가 100화가 됐어야 하는데, 이전에 실수로 한 화를 삭제하는 바람에 분량을 합치느라...^^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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