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01화 (101/195)

101화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뭐?”

“그래서 어쩌라고.”

이근수가 목에 핏발을 세웠다.

“지금 그게 할 소리야? 엉? 너 미쳤어? 무슨 말인지 몰라?”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인지 아는데….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 이…….”

이근수는 강우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네가 책임을 져야지!”

강우는 가만히 서서 이근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이성훈은 힘겹게 눈을 떴다. 이성훈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며 상황을 지켜봤다.

강우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

“내가 왜?”

“뭐?”

“내가 뭘 어쨌는데? 난 그냥 경기를 했고, 거기서 이겼어. 그게 뭐 문제가 되나?”

“너, 너 이 새끼야! 우리가 말했던…….”

강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설마 조작경기 같은 거에 대해서 말하는 건 아니겠지? F.N.C에서도 그런 걸 하나? 응?”

“네가 지기로 했잖아!”

강우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흠……. 그랬었나? 내가 그랬다고 치자. 그럼 어쩔 건데? F.N.C 프로모터께서 조작경기를 하려고 했는데, 선수가 자기 실력대로 싸워서 실패했다고 말할 거야? 어디다 하소연 할 곳은 있어? 그 사실을 알리고 싶은 거야? 그런 거라면 내가 소문내줄 수 있어.”

이근수는 양 주먹을 꽉 쥔 채 강우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너…….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냐?”

계속해서 이근수를 조롱하며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있던 강우가 얼굴을 굳혔다. 강우가 이근수에게 다가갔다. 이근수는 당황하며 방어하듯 팔을 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뭐, 뭐야….”

강우는 이근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는 너는 무사할 거 같냐?”

이근수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강우를 쳐다봤다. 강우는 이근수와 눈을 마주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 시끄러운 입부터 못 놀리게 해줄까…?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게 너 하나 정도 없애는 건 일도 아니야.”

이근수가 한쪽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강우는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웃어?”

“내가 아무 대책도 없이 이러겠냐?”

“뭐?”

벽을 등지고 있던 이근수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날렸다. 강우는 바닥에 슬라이딩을 한 이근수를 내려다봤다.

“뭐하는…….”

쩌어어엉!

두꺼운 철로 만들어진 대기실 문짝이 찌그러지며 강우를 덮쳤다. 무방비 상태에서 철문에 박은 강우는 뒤로 날아갔다.

떵, 떠덩.

강우는 철문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강우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있었다. 강우의 시선은 대기실 문이 있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두 남자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서있었다. 서양인 남자와 동양인 남자였다.

백인 남자는 키가 190cm 이상에 체중도 130kg 정도의 거구였다. 그 체구에 체지방은 10% 이하였다. 목이 얼굴 폭보다 더 두꺼웠다. 산처럼 솟은 승모근은 뒤통수에 닿을 것만 같았다. 백인 남자는 검은 정장차림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반면에 동양인 남자는 작은 체구였다. 키는 약 170cm, 체중은 60kg 내외였다. 남자 역시 정장 차림이었고, 옷이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근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음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을 처리해줄 사람들이다. 둘 다 삼성 중급이다! 네놈 같은 하급과는 격이 다르다 이거야! 게다가 인간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능력자들이지. 아, 물론 네놈을 바로 죽이진 않을 거야. 네놈의 재산을 싹 털어준 다음 시체는 시멘트에 묻어주마.”

이근수가 백인 남자와 동양인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예고르! 리치앙! 처리해!”

예고르가 강우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예고르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리치앙을 보며 말했다.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보고 있어.”

리치앙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며 말했다.

“나야 돈만 받으면 상관없으니 알아서 해.”

예고르는 양손에서 뿌득뿌득, 소리를 내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놀아보실까….”

예고르가 황소처럼 강우에게 돌진했다.

터엉!

예고르는 오른쪽 어깨를 내세워 강우에게 태클을 걸었다. 예고르의 양팔은 강우의 허벅지 뒤를 감싸고 있었다. 완벽한 태클이었다. 강우는 하반신을 뒤로 빼며 테이크 다운 디펜스(태클 방어)를 하지도 않았다.

“뭐, 뭐야?”

강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예고르가 아무리 힘을 써도 강우의 양발은 바닥에 들러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강우가 자신의 몸을 잡고 낑낑대는 예고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지금 기분 별로 안 좋거든?”

강우가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예고르는 머리를 강우의 오른쪽 옆구리에 대고 있어 볼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뒤통수에서 전해져오는 저릿할 정도의 섬뜩함.

예고르는 황급히 전신에서 붉은빛을 뿜어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예고르가 강우를 밀어붙였다.

끽, 끼긱.

약 3cm. 예고르가 강우를 밀어낸 거리였다. 강우는 여전히 오른쪽 주먹을 들고 있었다.

“다 했냐?”

팡!

리치앙의 발차기였다. 리치앙이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강우에게 발차기를 했다. 강우는 치켜들었던 오른쪽 주먹으로 방어했다. 리치앙은 공중에서 빙글 돌아 바닥에 착지했고, 그 틈에 예고르는 강우를 놓으며 뒤로 몸을 날렸다.

예고르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냥 삼성 하급이 아니야.”

리치앙은 강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삼성 하급 자체가 아닐 수도….”

예고르가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며 강우에게 뛰어들었다.

“협공한다!”

리치앙도 옆으로 이동해 강우에게 다가갔다. 강우는 무덤덤하게 다가오는 둘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 참…. 오늘은 시간도 별로 없고 하니까….”

강우가 양 주먹을 들며 자세를 취했다. 예고르가 강우에게 오른쪽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후웅-

강우의 양 주먹에는 검은색 힘이 아주 얇게 씌워져있었다. 강우는 오른쪽 주먹을 가볍게 뻗었다.

터어어어엉!

강우의 오른쪽 주먹과 예고르의 오른쪽 주먹이 맞부딪쳤다.

우드드드득! 우득, 뿌드득, 뿌득, 빠각.

예고르의 주먹이 뭉개졌다. 주먹부터 시작해 붕괴가 이뤄졌다. 예고르의 손가락들은 이리저리 꺾이며 부러져 살갗을 뚫고 튀어나오기도 했다. 손등뼈는 반토막 나 손등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다. 전완 부분의 뼈가 부러지고, 팔꿈치 관절이 으스러졌다. 상완의 뼈 또한 부러지며 어깨 관절이 어긋났다. 그 충격은 팔에서 그치지 않았다. 오른쪽 가슴뼈에 금이 갔고, 오른쪽 쇄골도 부러졌으며, 경추손상, 오른쪽 턱관절과 안와에 골절이 일어났다.

“커허…….”

예고르는 쌓아놓은 흙이 무너지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예고르는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침을 질질 흘렸다. 강우의 시선은 리치앙에게로 가있었다.

‘얘는 한 방에 죽겠는데?’

리치앙은 발을 올리며 뛰어올랐고, 강우는 왼손 잽을 준비했다.

쩌정, 쩌저저정, 쿠국, 쿠구국!

리치앙이 몸에서 보라색 빛을 뿜어냈고, 바닥에 있던 철문이 움직여 강우를 향해 날아왔다. 강우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오른손을 뻗어 철문을 막으려 했다. 철문은 궤도를 달리해 강우의 몸을 휘감았다.

끼이이이이익!

강우는 양손으로 철문을 움켜쥐어 찢어버렸다.

“이런 씨…….”

리치앙의 오른발이 강우의 코앞에 와있었다.

빡!

강우의 머리는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리치앙은 마치 티타늄 덩어리를 걷어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리치앙은 뒤로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절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리치앙은 재빨리 몸을 돌려 대기실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강우는 양손에 찢어버린 철문을 쥔 채 중얼거렸다.

“그냥은 안 보낸다.”

후웅- 콰앙!

철문 한쪽이 리치앙의 두 다리 뒤로 날아갔다. 철문은 리치앙의 두 다리를 찍었다.

“아아아아아아악!”

리치앙의 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철문은 리치앙의 두 다리를 절단하며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리치앙은 양팔로 엉금엉금 기며 뒤를 돌아봤다. 강우가 철문을 손에 든 채 걸어왔다. 강우가 철문을 높이 치켜들었다. 리치앙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이 엉켜있었다.

빠앙!

강우는 노트를 내리쳐 벌레를 때려잡듯 철문으로 리치앙을 내리쳤다. 철문 주변으로 붉은 피가 퍼졌다.

“짜증나게 하고 있어….”

이근수는 공포로 가득 찬 두 눈으로 강우를 바라봤다. 강우는 천천히 이근수에게 다가갔다. 이근수는 무릎을 꿇고 양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

“내, 내가 잠깐 미쳤었나봐. 제발 살려줘. 응? 살려줘!”

강우는 말없이 왼손으로 이근수의 멱살을 잡아들었다. 강우는 이근수를 벽에다 밀어붙인 채 눈높이를 맞췄다. 이근수는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살려줘…….”

강우는 말없이 이근수와 두 눈을 마주쳤다. 강우가 이성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야, 귀 막고 소리 질러.”

이성훈이 당황하며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네?”

“귀 막고 소리 지르라고. 쉬지 말고 계속.”

이성훈은 영문을 모른 채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와아아아아아아!”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강우가 이근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시끄럽지?”

“어?”

“시끄럽지?”

“아니, 뭐…. 그냥 제발…. 살려줘….”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물은 거에 대답해. 시끄럽지?”

이근수는 이성훈을 힐끗 한 번 쳐다보곤 다시 강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 어…. 시끄러워…. 이제 그만 내려줘…. 살려줘….”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너 시끄러운 거 싫어해?”

“어? 어….”

“그럼 더 시끄럽게 해줄게.”

“뭐?”

강우가 이근수의 귓가에 대고 “와악!”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커헉!”

이근수의 양쪽 귀와 두 눈,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강우가 손을 놓자 이근수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근수는 “쿠우우욱….”하고 바람이 새는 듯 앓는 소리를 냈다. 이근수는 옆으로 쓰러진 채 계속 쿠우우욱, 쿠우우욱, 숨소리를 냈다. 이근수는 이따금씩 전신을 부르를 떨며 발작을 일으켰다.

강우는 이근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지랄하네….”

강우는 이성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괜찮냐?”

이성훈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여전히 귀를 틀어막고 소리를 질러댔다. 강우가 이성훈을 흔들었다.

“야, 일어나.”

이성훈이 눈을 번쩍 떴다. 이성훈은 천천히 귀에서 손을 떼며 소리 지르는 것을 멈췄다.

“다…. 됐나요?”

“응, 끝났어.”

강우는 이성훈을 일으켜줬다. 이성훈은 이근수를 슬쩍 쳐다본 뒤, 강우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아까 잠간 동안 엄청난 소리가 울렸는데….”

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런 게 있어. 별로 중요한 건 아니고. 어쨌든…. 괜찮냐?”

이성훈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이 정도론 끄떡없습니다. 보세요…….”

이성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성훈의 시선은 대기실의 열린 문으로 향해있었다. 이성훈의 시선이 이근수에게로 옮겨졌다.

빠각!

뭔가 부서지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강우는 뒤로 시선을 돌렸다. 이근수의 관자놀이 쪽이 송곳으로 후벼 판 듯 움푹 들어가 있었다. 이근수는의 쿠우우욱, 바람이 새는 듯, 앓는 듯했던 숨소리는 끊어져있었다. 이근수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끊어져있었다.

이근수의 머리 옆으로는 광이 반짝거리는 빨간 하이힐이 보였다. 강우는 하이힐에서 시선을 올렸다. 대기실 안에는 세 명의 여자가 들어서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사정이 있어 많이 늦었습니다.

내일도 오후쯤에나 업로드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월요일부터는 다시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연재가 가능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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