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이소아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강우와 이소아의 눈이 마주쳤다. 강우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이소아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소아는 자연스럽게 강우에게 팔짱을 꼈다. 둘의 얼굴에는 행복이 묻어나는 미소가 번졌다.
여느 연인과 다를 바 없는 데이트였다. 영화를 보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는 자연스럽게 커피숍으로 향했다. 강우는 이소아와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제대로 된 연애라곤 해본 적이 없었고, 일회성 만남, 잠자리만을 목적으로 여자를 만나왔었다.
강우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이소아를 바라봤다.
‘어쩌다 이렇게 끌린 걸까…. 뭐, 예쁘기도 하지만…. 뭔가 다른 게 있는 거 같아.’
이소아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네?”
“웃으시면서 저를 보길래요.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 같기도 하고….”
강우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소아 씨가 예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계산된 멘트였다. 약간은 유치하고 느끼한 멘트였다. 하지만 이소아가 강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
칭찬을 싫어할 리는 없었다. 특히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외모로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강우의 이런 당연한 예상은 들어맞았다.
이소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미소를 지었다. 이소아는 부끄러움에 눈을 자꾸만 피하며 별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강우는 그런 이소아가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다.
둘 모두 커피를 거의 다 비워갈 즈음이었다. 이소아가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 저번에 부탁드렸던 거 있잖아요.”
“집회요?”
이소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정이 잡혔어요. 3주일 뒤에요.”
“시간은요?”
“오후 두 시부터 여섯 시까지 예정이에요.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고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절대로 잊지 않고 있을게요.”
“그래요. 몬스터 보호를 위한 집회라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그날은 강우 씨랑 함께 일하는 거라서 즐거울 것 같아요.”
강우는 웃으며 말했다.
“뭐든 즐거우면 좋죠.”
이소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갈까요?
“그러죠.”
강우는 이소아를 바래다주려 했다. 이소아는 지난번처럼 사양했다. 강우는 중간지점까지만 바래다주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강우와 이소아는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 사이에는 단순히 온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담긴 애정이 느껴졌다.
아쉬운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둘은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마주봤다. 이소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볼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요. 조만간 또 봐요. 가면서 연락하고요. 조심히 들어가요.”
이소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래 봬도 몬스터가드에요.”
이소아는 팔을 들어 이두에 힘을 주는 포즈를 취하며 말을 이었다.
“꽤 강하다구요.”
강우는 이소아의 행동이 귀여워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소아는 강우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며 함께 웃었다.
강우와 이소아의 두 눈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다가갔다. 둘의 얼굴이 가까워졌고, 서로의 숨결이 서로의 얼굴에 닿을 거리가 됐을 때 잠시 다가가기를 멈추며, 눈을 마주쳐 서로를 확인했다.
강우와 이소아의 입술이 포개졌다. 입술로 체온을 확인하듯, 입술만으로 대화를 하듯, 입술로 보듬어주듯, 입술로 진한 포옹을 나누듯 가볍게 오물거렸다. 입술 사이로 나온 촉촉한 혀는 따뜻함을 몸에 품고 뱀처럼 뻗어나갔다. 두 마리의 촉촉한 분홍색 뱀은 이 행위가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꾸물텅거리며 서로를 탐닉했다.
길었다. 둘 모두 키스를 처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현재 키스를 하는 대상만이 처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첫키스 때의 설렘을 간직한 채 오랜 시간 입을 맞췄다.
누가 먼저였을까, 천천히 혀를 거두고, 천천히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빨아줬다. 쪽, 가벼운 뽀뽀로 긴 키스는 끝이 났다.
입맞춤이 끝나고, 둘은 다시 눈을 맞췄다. 약간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얼굴, 두 사람의 주변으로 온기가 흘렀다. 두 눈은 서로의 타액으로 적셔진 입술보다 더 촉촉해져있었다.
이소아는 아직 여운과 부끄럼이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가…. 가볼게요….”
강우는 이소아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고,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도장 대신 찍었다. 가벼운 입맞춤 ‘너는 이제 내 거야.’라는 말이 담겨있었다. 강우는 입꼬리를 길게 올려 밝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데려다줄게.”
“네? 아…. 응?”
강우가 이소아를 안아 올렸다. 왼손은 무릎 뒤를, 오른손은 허리를 받쳤다. 강우는 이소아를 안은 채 뛰어올랐다. 강우는 건물 벽을 타고 올랐다. 이소아는 강우에게 폭 안겨있었다. 강우가 한 건물의 옥상에서 뛰어올라 다른 건물의 옥상을 향해 뛰었다.
둘에게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 야경이 눈에 확 들어왔고, 유난히 달이 낮게 떠있는 날, 달빛은 두 사람을 위한 것 같았다.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상황을 음미했다. 강우가 빠르게 뛰고 있어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서로의 심장소리마저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우의 품에 안겨있던 이소아가 입을 열었다.
“저기…….”
“응?”
이소아는 조심스레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야 되는데…….”
“아, 그래?”
강우는 방향을 틀었다. 둘은 밤바람을 맞으며, 밤하늘에 물들었다. 이따금씩 이소아가 집 쪽으로 손을 가리키며 길을 알려주는 것 외에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딱히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덧 이소아의 집 근처에 다다랐다. 강우는 건물 옥상에서 내려가 속도를 줄였다. 강우는 천천히 걷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이제…. 내려줘도 돼….”
“아, 응.”
둘 사이는 더 가까워져있었다. 서로에게 설렘과 동시에 편안함도 느꼈다. 강우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이소아를 내려놨다. 이소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고맙기는….”
이소아가 강우에게 확 다가섰다. 이소아가 가벼운 키스를 했다. 아까 긴 키스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강우는 다시금 심장이 뛰는 것이 빨라짐을 느꼈다. 이소아가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 집에 가서 연락해.”
“응…. 들어가서 푹 쉬어. 연락할게.”
강우와 이소아는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손을 잡은 채 천천히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끝만이 닿아있을 때,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마주쳤다.
손을 놓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뒤로 걸음을 옮겼다. 뭐가 그리도 애틋한지, 바로 연락해도 되는 것을, 그리 먼 곳에 살지도 않는데, 만난지 오래된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랬다. 둘은 서로에게 푹 빠져있었다. 강우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연락할게.”
이소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둘은 서로가 가야 할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강우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다. 강우 자신도 발이 깃털이 된 듯 가볍게 느껴졌다. 강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밤하늘, 강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밤하늘보다 어두운 검은색 잔상이 남았다.
강우는 어느새 집에 다다랐다. 핫도그는 언제나처럼 강우를 반겼다. 강우는 핫도그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줬다.
‘진짜 사람들이 개를 왜 키우는지 이해가 돼…. 가족이구만…. 가족이야.’
핫도그는 눈을 감고 강우에게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강우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강우는 집으로 들어서며 이소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소아는 문자를 받자마자 강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방금 만났었는데도, 전화통화를 통해 듣는 서로의 목소리가 반갑게만 느껴졌다. 경어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의 부끄러움도 사그라지고, 오랜 연인처럼 얘기를 했다. 제 3자가 듣는다면 별 의미도 없는 통화였지만, 강우와 이소아에게는 그보다 달달한 것은 없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소아는 의외였다는 듯, 놀랐다는 듯 그리고 멋졌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빠르더라. 알고 보니 엄청 상위 예거고 그런 거 아니야?”
“어? 상위는 무슨…. 그냥 이쪽으로 특화돼서….”
강우는 대충 얼버무렸고, 이소아도 딱히 그에 대해 더 묻지는 않았다. 둘의 대화는 다시금 자연스레 애정이 피어나는 말들로 가득했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귓속에는 서로의 목소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전화를 끊은 강우의 얼굴은 펜으로 그린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가있었다.
강우는 여자 하나와 이제 연애의 시작단계에 발 하나를 담갔을 뿐인데,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느꼈다. 가족으로 느껴지는 반려몬스터인 핫도그의 역할 또한 컸다. 경제적인 걱정 또한 없었다. 일반사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튼튼한 몸, 건강에 대한 염려도 없었다. 이상적이었다.
강우는 핫도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핫도그를 쓰다듬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강우는 행복감에 젖은 채 시간을 보냈다.
강우는 핫도그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다시 들어섰다. 강우의 블랙마켓용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와있었다. 쿠라마에게서 온 것이었다.
-잠깐 시간이 나서 볼까 했더니 연락이 안 되네.--아, 어차피 지금 다시 일 들어가게 됐네. 나중에 보자!-강우는 쿠라마의 문자메시지에 답장을 했다.
-잠깐 뭐 좀 하느라고 몰랐네. 연락해. 수고하고.-강우는 휴대폰을 놓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이었다. 특별한 일도, 약속도 없었다. 강우는 핫도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겨 함께 식사를 했다. 핫도그는 생고기를 뜯어먹기도, 자신의 화염으로 고기를 익혀 먹기도 했다. 강우도 옆에서 핫도그가 화염으로 익힌 고기에 양념만 더했다. 강우는 고기를 뜯어먹다가 미소를 머금은 채 핫도그를 쳐다봤다.
“너도 구워서 먹냐? 참…. 오래 살고 볼일이야.”
핫도그는 “컹!”하고 짖은 뒤, 불을 뿜어 다른 고기를 더 구워냈다. 핫도그가 커다란 고깃덩어리 하나를 강우의 앞에 물어다놨다. 겜칵의 고기였다.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야…. 난 몬스터를 먹긴 좀 그렇다….”
핫도그는 섭섭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겜칵은 식용으로 가능하긴 했다. 겜칵뿐만 아니라, 매니아 층에서는 많은 몬스터들의 고기가 고급 식재료로 쓰이기도 했다. 겜칵은 고급 식재료로 쓰이진 않았다. 이유는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다소 혐오스럽기도 했고, 공급이 비교적 많은 몬스터이기 때문이었다.
몬스터들 중 비교적 식용으로 인기가 많은 경우는 동물들과 비교했을 때 겉모습이 그 괴리감이 거의 없는 경우, 특히 초식동물에 가까운 모습일 때였다. 실제로 이런 몬스터들은 모르고 먹는다면, 누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강우는 겜칵의 고깃덩어리를 핫도그에게 밀어준 뒤, 손에 든 소고기를 들어 보였다.
“난 이거면 돼. 너 많이 먹어. 하여튼 고맙다. 겜칵은 좀 무리지만…. 나중에 좀 먹을 만한 몬스터는 같이 먹어보지 뭐….”
핫도그는 꼭 그래야 한다는 듯, 대답을 하듯 “컹!”하고 짖었다. 강우는 씩 웃으며 핫도그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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