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안석훈, 김현태 회장 밑에 있던, 그때 그 비서실장, 안 실장이었다. 강우는 안석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무리 다시 봐도 동일인물인 것이 확실했다.
‘뭐지? 이 새끼가 왜 여기 있지? 그때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을 텐데…?’
쿠구구구구구.
안석훈이 강우의 손을 꽉 잡았다. 강우도 손에 힘을 줘 맞잡았다. 안석훈은 입에 미소를 머금으며 손에 더 힘을 가했다.
‘이 개새끼가…. 여기서 그냥 확….’
강우가 안석훈의 손을 완전히 으스러트릴지 고민하는 찰나였다. 이소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자들끼리 너무 애정이 넘치는 거 아니에요? 언제까지 손을 잡고 있을 생각이에요?”
이소아의 말에 강우와 안석훈을 맞잡았던 손을 놓았다. 강우와 안석훈의 손에는 손가락 지문까지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안석훈이 말했다.
“그럼 저녁식사 맛있게 하세요.”
이소아가 말했다.
“협회장님도 같이 하시죠.”
강우는 두 눈을 부릅뜨고 안석훈을 노려봤다. 안석훈은 강우와 눈을 한 번 마주친 뒤, 이소아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럴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소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요.”
강우의 인상이 구겨졌다. 안석훈은 그 상황을 즐기듯 입가에는 미소가 잔뜩 머금어져있었다. 이소아가 해맑게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괜찮지?”
강우는 곧바로 인상을 피며 말했다.
“어? 그럼, 괜찮지.”
“그럼 가자.”
이소아는 안석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가시죠. 저희 패밀리 레스토랑 갈 건데 괜찮아요?”
“그럼요. 저는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습니다.”
안석훈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두 분 데이트하는데 제가 눈치 없이 끼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강우는 떫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진짜에요? 불편한 거 같은데….”
강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 개새끼가 진짜 장난하나…….’
강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진짜로…. 괜찮습니다.”
“그래요? 불편하게 하기 싫어서, 안 괜찮으면 그냥 가려고 했죠. 그럼 가시죠. 저녁은 제가 사죠.”
이소아가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초대했는데, 제가 사야죠.”
안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이래봬도 협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는데, 저녁식사 정도는 사야죠.”
강우 일행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한 레스토랑이었다. 안석훈이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스테이크를 썰면서 말했다.
“내일 안전요원으로 일을 도와주신다고요?”
강우는 스테이크를 우물우물 씹으며 대답했다.
“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별일이야 없겠습니다만….”
안석훈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또 모르는 거니까요….”
“그러게 말이죠….”
강우와 안석훈이 눈을 마주쳤고,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소아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다. 이소아가 미소를 지으며 와인잔을 들고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야죠. 자, 건배해요.”
강우와 안석훈은 와인잔을 들었다. 셋은 잔을 부딪쳐 건배하고, 와인을 한 모금씩 마셨다. 와인으로 입안을 적시는 그 순간에고 강우와 안석훈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이소아는 강우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불편한 거 나도 알아. 조금만 참아. 같이 밥 먹으러 오자고 해서 미안해.”
강우는 이소아를 보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소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안석훈을 보며 말했다.
“잠시 실례 좀 할게요.”
“아, 네.”
“얘기 나누고 계세요.”
이소아가 자리를 뜨고, 강우와 안석훈만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강우는 곧바로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 뭐야?”
안석훈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팔짱을 끼고 되물었다.
“뭐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어떻게 살아있지?”
안석훈은 피식 코웃음을 쳤다.
“참나…. 내가 살아있어서는 안 될 이유라도 있어?”
강우는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나한테 감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잖아?”
안석훈은 능청스럽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거야 다 지난 일이잖아?”
강우는 의심이 가득찬 눈으로 안석훈을 노려봤다. 안석훈은 흔들림 없이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강우가 침묵을 깼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몬스터보호협회장이지? 몬스터보호협회도 꽤 된 거 아닌가? 협회장을 하기엔 좀 젊지 않아? 그리고 그전엔 김 회장 아래 있었잖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내가 너한테 일일이 설명해야 될 이유라도 있어?”
“아니, 네가…….”
그때 이소아가 돌아오고 있었다. 강우는 하던 말을 그만두고, 안석훈을 노려봤다. 안석훈은 그저 이런 상황이 재밌다는 듯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소아가 자리에 앉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재밌는 얘기라도 했어요?”
안석훈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남자친구분한테 물어보세요. 정말 재밌는 분이네.”
이소아는 눈을 반짝이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무슨 얘기 했는데? 응?”
“아니, 그냥…. 우리 만나게 된 얘기 좀 해드렸는데, 그걸 그렇게 재밌어하시네….”
이소아는 협회장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손을 뺨에 가져가며 말했다.
“우리가 좀 갑작스레 푹 빠지긴 했죠. 첫 남자친구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강우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뭐? 처음? 내가 첫 남자친구라고?”
이소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몰랐어? 그래서 키스도 너랑 처음…….”
이소아는 말을 하다가 안석훈을 쳐다봤다. 이소아는 고개를 꾸벅였다.
“어머, 죄송합니다.”
안석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연애하면 다 그렇죠.”
이소아는 화제를 전환하려는 듯 말했다.
“협회장님은 애인 없으세요?”
“아쉽게도 인연이 닿는 사람이 없네요. 소아 씨 같은 사람이 딱인데….”
안석훈의 느끼한 눈빛이 이소아에게 향하고 있었다. 강우는 테이블 아래로 양 주먹을 꽉 쥐며 안석훈을 노려봤다. 안석훈은 강우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안석훈의 입가에는 미소가 잔뜩 머금어져있었다.
이소아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제법 유연하게 대처했다.
“그럼 저랑 닮은 친구랑 소개해드리면 좋아하시려나?”
안석훈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주변에 좋은 분 있으면 나중에 소개해주세요. 가능하다면요.”
“협회장님 좋은 사람인 거 다 아는데 꼭 해드려야죠.”
강우는 안석훈을 노려보며 입모양으로 “한 번만 더 껄떡거렸으면, 넌 이 자리에서 뒈졌다.”라고 중얼거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세 사람은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안석훈이 말했다.
“저는 여기서 가보겠습니다. 내일 봬요.”
이소아가 고개를 꾸벅였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내일 뵐게요.”
“네, 그래요.”
안석훈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일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네. 들어가시죠.”
안석훈이 자리를 뜨고, 강우와 이소아 둘만이 남았다.
강우와 이소아는 손을 꼭 잡고 걸음을 옮겼다. 이소아의 집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이소아는 걸음을 옮기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기분 안 좋아?”
“아니, 전혀.”
“우리 협회장님이 조금 별나지? 원래 좀 그래. 신경 쓰지 마.”
“응, 괜찮아. 특별히 모나게 군 것도 아니었잖아.”
이소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강우와 이소아는 손을 꼭 잡은 채 말없이 걸었다. 어느덧 이소아의 집 앞에 다다랐다. 둘은 마주보고 섰다. 강우는 이소아를 꼭 안아준 뒤, 다시 약간의 틈을 줬다. 강우와 이소아는 서로를 마주봤다. 이소아의 뺨은 와인 때문인지 발그스름하게 물들어있었다.
어김없이 둘은 입을 맞췄다. 평소보다 조금은 더 진하고 긴 키스였다. 떨어질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소아가 강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들렀다 갈래?”
“응?”
이소아는 시선을 피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집에 가자고….”
“아, 응. 그래, 그러자.”
이소아는 빌라에 살고 있었다. 이소아가 빌라 입구에 있는 스캐너에 손목을 가져다 댔다. 혈관을 스캔해 문이 열리는 방식이었다.
이소아의 집은 3층이었다. 이소아가 현관문을 열었고, 천천히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은은한 향기가 콧속에 스며들었다. 이소아가 먼저 집에 들어서서 불을 킨 뒤, 강우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와.”
강우는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섰다. 집안은 인테리어, 벽지 모두 말끔했다. 방은 두 칸에 작은 주방이 있었다. 여기저기 장식을 하고 있는 인형들은 이소아에게 아직 소녀의 감성이 남아있음을 드러냈다.
강우는 그런 부분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강우는 이소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의 두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이소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예뻐서.”
강우는 이소아를 꼭 끌어안았다. 강우는 이소아의 머리카락 쪽에 얼굴을 묻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냄새 좋다.”
강우는 고개를 들고 집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집안이 이소아로 꽉 찼네.”
이소아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야….”
“그냥 집에 들어서자마자 네 냄새가 가득해서.”
“내 냄새? 나 냄새나?”
강우는 이소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대답했다.
“좋은 냄새.”
강우는 집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혼자 살았던 거야?”
이소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꽤 됐어.”
“부모님은? 지방?”
이소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소아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고, 어머니도 수년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소아가 예거로서의 자질을 갖춘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소아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우리 엄마 나 키우느라고 고생만 했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내가 호강시켜줬을 텐데….”
강우는 이소아를 꼭 끌어안고 토닥여줬다. 강우는 “이제 내가 있잖아.”라고 내뱉으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이소아는 한참을 강우에게 안겨 있다가 몸을 떼어내며 말했다.
“미안,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러네.”
“아니야, 괜찮아.”
이소아는 냉장고 문을 열며 말했다.
“뭐 먹을래?”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밥 먹고 왔잖아.”
“아, 참. 그럼 뭐라도 좀 마실래?”
강우는 냉장고 문을 닫고, 이소아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강우는 이소아를 꽉 끌어안으며 키스를 했다.
이소아는 갑작스런 키스에 잠깐 놀란 듯했지만, 눈을 지그시 감으며 양팔로 강우를 끌어안았다. 둘은 격정적인 키스를 했다.
강우가 딱히 밀어붙인 것도, 이소아가 끌어당긴 것도 아니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키스를 멈추지 않은 채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가 손을 뻗어 불을 키려고 했다. 이소아가 강우의 팔을 잡았다. 강우가 입술을 떼고, 이소아를 내려다봤다. 이소아는 부끄러운 듯 강우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그냥…. 불은 키지 마.”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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