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강우와 이소아는 진한 키스를 이어나갔다. 주방 쪽에서 비춰오는 불빛이 은은한 조명 역할을 했다. 아주 미세하게, 그림자가 잔뜩 드리웠지만, 서로의 윤곽을 살필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밝기였다.
풀썩, 이소아가 침대에 눕고, 강우가 그 위를 덮었다. 강우는 진한 키스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이소아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옷을 벗었다.
이소아의 몸은 새하얗고, 부드러웠다. 강우는 손으로, 입으로 이소아의 몸 전체를 훑었다. 둘이 하나가 되기까지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꽂히는 순간처럼 금방이었다. 이소아의 몸 안쪽은 축축하게 젖어 준비가 돼있었다. 그렇게 둘은 하나가 됐다.
이소아는 눈을 질끈 감으며 “흐읍.”하고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강우는 천천히, 세심하게 움직였다. 이소아는 눈을 감은 채 양손으로는 강우의 뒷목을 감쌌다. 강우는 키스를 하며, 몸 구석구석을 애무하며 천천히 관계를 맺었다.
이소아도 처음은 힘들어했지만, 금세 적응을 하고 느껴갔다. 느리고 긴 관계가 오랫동안 두 사람을 적시고, 뜨겁게 만들었다.
그날 밤 둘은 몇 번이나 사랑을 확인했다. 문자 그대로 하나가 되어, 살을 섞고, 체온을 나누고, 말하지 않아도 감정이 전해질 만큼, 온몸의 뼈가 물렁해진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깊은 애정을 나눴다.
이소아는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이소아를 바라보는 강우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머금어져있었다.
행복한 시간이 지나가고, 강우의 머릿속에는 새삼스레 안석훈이 스쳐 지나갔다.
‘재수 없는 새끼….’
강우는 안석훈에 대한 생각을 뒤로 미뤘다. 지금, 행복한 이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좀 더 이 기분에 푹 젖고 싶었기에.
강우는 이소아를 끌어안으며 잠을 청했다.
강우와 이소아는 다음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일어났다. 먼저 일어난 것은 이소아였다. 이소아는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고, 강우는 통, 통, 통,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소아가 밝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어났어?”
강우는 팬티만 걸친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에는 핏자국이 작게 남아있었다. 강우는 이소아의 뒤로 다가갔다. 강우는 이소아를 뒤에서 가볍게 안고, 어깨 위로 턱을 올리며 말했다.
“뭐해?”
“그냥 간단하게 식사준비…. 거의 다 됐으니까 씻고, 앉아있어.”
강우는 이소아의 뺨에 뽀뽀를 한 뒤 말했다.
“알았어.”
강우는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샤워를 하고, 다시 팬티바람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이소아가 웃으며 말했다.
“옷 좀 입어, 바보야.”
강우는 옷을 입은 뒤, 식탁 앞에 앉았다. 달걀말이, 불고기, 김치찌개 그리고 각종 밑반찬까지. 신경 쓴 흔적이 짙게 남아있었다. 강우는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뭐 이렇게 많이 했어?”
“맛있을지 모르겠네…. 얼른 먹어봐.”
강우가 수저를 들었다. 이소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강우를 바라봤다.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매콤, 칼칼한 것이 맛있었다. 불고기 역시 너무 달지 않고, 부드러우니 맛있었다. 다른 밑반찬들도 모두 괜찮았고, 잡곡을 섞은 밥 역시 너무 되지도, 질지도 않았다.
강우는 밥과 반찬을 입안에 우물거리며 말했다.
“진짜 맛있다.”
“정말?”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진짜로.”
강우는 지금의 아침식사가 너무나 즐거웠다. 강우는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아침을 이렇게 차려준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강우가 일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식탁 위에는 항상 아침식사 대신 밥을 사먹을 수 있는 돈 몇 푼이 올려져있었다. 이소아가 차린 식사가 실제로 맛있기도 했지만, 더 맛있게 느껴진 이유였다.
강우와 이소아는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서 서로를 한참 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몸의 대화로 넘어갔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미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레몬을 쥐어짜듯 서로를 쥐어짜냈다.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집회에 가야 될 시간이었다. 이소아가 옷을 입으며 말했다.
“나가자.”
강우는 침대에 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다. 이소아는 강우의 엉덩이를 가볍게 찰싹 때리며 말했다.
“옷 입어야지.”
“안 나가면 안 되나? 귀찮네….”
“그래도 가야지. 얼른 준비해.”
강우는 구시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이소아는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강우를 바라봤다. 강우가 물었다.
“왜?”
“아기 같아서.”
“아기는 무슨….”
강우와 이소아는 준비를 마치고, 예거 파티 중앙지점 앞으로 향했다.
예거 파티 중앙지점 앞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숫자만 대략 1만여 명에 가까웠다. 몬스터가드들과 강우처럼 고용된 능력자들은 테두리를 둘러싸 안전요원 역할을 했고, 가운데는 대부분 일반인들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일성 하급의 몬스터들을 키우고 있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다.
강우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신없네.”
“그렇지?”
강우와 이소아는 최전방에 배치됐다. 건너편에는 과격 시위로 번질 경우에 대비해 예거 파티 소속의 예거들이 서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였다. 안석훈이 사람들 앞에 나섰다. 안석훈이 마이크에 대고 크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안석훈이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이곳에 모이신 분들의 목적은 같을 것입니다. 몬스터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일각에서는 그럽니다. 몬스터를 어떻게 보호하냐고, 몬스터를 왜 보호하냐고. 하지만 몬스터 역시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이들은 동물과 같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살아야 할 터전을 잡지 못한, 길 잃은 어린 양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안석훈은 모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려 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커다랗고, 위험한 몬스터를 어떻게 길 잃은 어린 양과 비교를 하냐고 말이죠. 덩치가 크고,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빼면 다를 건 뭡니까?”
강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궤변이구만…. 지랄하네….”
안석훈이 말했다.
“길 잃은 어린 양에 비교한 것은 그 만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뜻에서 말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육식동물과도 같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도심 한복판에 사자나 호랑이가 돌아다니고 있다고요. 분명히 사람을 공격합니다. 그들은 맹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그러는 일은 없습니다.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이죠. 그곳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곳이고요.”
안석훈은 목에 핏발을 올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줘야 됩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무자비하게 죽어가고 있는지 아십니까? 위험하다는 명분을 두고, 사실 목적은 그들의 가죽, 뿔, 이빨, 고기를 원하며,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습니다! 인간을 위해! 인간의 목적을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고 있습니다!”
안석훈은 눈을 부릅뜨고, 다시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다른 생명을 그렇게 마구 뺏을 수 없습니다. 몬스터는 보호 받아야 합니다. 잔인한 인간의 목적을 위해 죽임을 당하는 몬스터들을 구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몬스터는 인간과 공생할 수 있다는 것을요. 비교적 약한 몬스터들 중에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석훈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해외에서 유명한 예거가 있죠! 하얀 늑대! 그는 흉폭하다고 소문난 다이어 울프와 함께 사냥을 다닙니다. 예거 파티는 모든 몬스터들을 죽일 대상으로 보고 있죠. 그런데 하얀 늑대는 몬스터와 다닙니다. 그 사람만 특별 케이스인가요? 예외를 두는 건가요? 이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입니까!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거 파티는 몬스터들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생명을 죽이면서 말이죠!”
안석훈은 강우를 한 번 슬쩍 쳐다본 뒤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근래에는 국내에서도 흉폭함으로는 최고라는 몬스터! 헬하운드와 함께 지내는 능력자도 나타났습니다!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안석훈이 옆으로 손짓을 했다. 한 남자가 안석훈에게 생수를 건넸다. 안석훈은 생수를 한 모금 머금은 뒤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처럼! 인간과 몬스터는! 분명히! 공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거 파티가!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몬스터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안석훈의 연설에 사람들이 함성을 터트렸다. 강우는 옆에 있는 이소아를 슬쩍 쳐다봤다. 이소아는 가볍게 박수만을 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안전요원들과 건너편에 있는 예거 파티 소속 예거들만이 서있었다.
강우가 물었다.
“이러고 있으면 되는 거야?”
이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태까지 실제로 부딪치거나 했던 적은 거의 없어. 그것도 소수의 인원들끼리 약간 다툼이 있었던 게 전부야.”
“이게 도움이 되나?”
“이렇게 우리의 뜻을 알리는 거지. 이렇게 함으로써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관심을 갖게 될 테니까.”
“그렇구나.”
지루한 시간이었다.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따금씩 안석훈이 연설을 해댔고,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호응을 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예거 파티 측에서 나온 예거들은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강우가 지루해하고 있을 때였다. 강우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강우의 두 눈이 커졌다. 강우가 보고 있는 곳은 예거 파티 측에서 나온 예거들이 서있는 곳이었다.
강우가 응시하고 있는 사람은 쿠라마였다. 쿠라마가 한국에서 하는 일이란 예거 파티 측의 안전요원이었다.
이소아가 물었다.
“왜 그래?”
“응? 뭐가?”
“아는 사람 있어?”
“아니. 없어.”
쿠라마가 강우 쪽을 쳐다봤다. 강우와 쿠라마의 두 눈이 마주쳤다. T.C.C를 끈 강우의 모습을 모르는 쿠라마는 고개를 돌렸다.
강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끼리 맞부딪치게 되면…. 전쟁이겠구만…. 대부분 능력자들일 텐데….’
강우는 이소아를 쳐다봤다.
‘소아는 내가 지켜주면 되지만….’
강우는 쿠라마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녀석은….’
강우는 피식 웃었다.
‘저 녀석 무투 클랜 일본지점장이지…. 나도 참…. 별 걱정을 다 한다.’
이소아가 물었다.
“뭐가 재밌어서 웃는 거야?”
“어? 그냥…. 멍하니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돈을 받으니까….”
“그래도 이건 중요한 일이야.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돼.”
“알았어.”
강우는 가만히 서서 연설이나 듣고 있는 것이 지루하기만 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안 해야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몇 시간 뒤였다. 몇몇 사람들이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나눠줬다. 강우와 이소아에게도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건넸다.
“이것 좀 드세요.”
누가 봐도 수제, 꽤나 좋은 재료들이 잔뜩 들어간 고급이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만한, 두툼한 고기와 채소, 식욕을 자극하는 소스가 들어가 있었다.
이소아는 곧바로 샌드위치 포장을 벗기며 말했다.
“맛있겠다.”
강우는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진짜 맛있네.”
그때는 마침 저녁시간이 가까워질 즈음이었고,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집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샌드위치를 우물거렸다. 모든 사람들이 샌드위치를 다 먹었을 즈음이었다. 안석훈이 또다시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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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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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