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안석훈이 목소리를 높였다.
“식사들은 맛있게 하셨습니까? 고작 샌드위치 하나지만, 고생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동시에
“맛있었어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네-!”
“힘이 나요!”
등 목소리를 높였다.
안석훈은 살짝 미소를 지은 뒤, 말을 이었다.
“네! 여러분이 더 힘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켜주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몬스터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안석훈은 마치 락 밴드 보컬처럼 마이크를 잡고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안석훈이 말을 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꺄아아아아악!”
“괜찮아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사람들 틈에서 다급한 비명이 퍼졌다. 한 남자가 눈과 코, 귀, 입, 항문에서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안석훈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거기 무슨 일이죠? 무슨 일입니까? 괜찮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있을 때였다.
“억!”
다른 한 남자가 또 쓰러졌다.
“끄으으…….”
사람들은 혼란과 공포에 빠졌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예거 파티 측의 예거들 또한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강우와 이소아 등 안전요원 역할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몸을 돌렸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사했고, 곧바로 죽지 않은 이들도 고통을 호소하다 금세 숨이 끊어졌다.
강우는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쿠쿵, 쿠쿠쿵.
강우의 뱃속에서 느껴진 것이었다.
‘뭐지?’
별다른 고통은 없었다. 능력을 얻은 뒤로 처음 느껴보는 장의 불편함이었다. 아니, 다른 점이 있었다. 마치 몸속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 같았다. 귓속에서도 폭발음이 울렸다. 미세하게나마 전신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강우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강우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였다.
“커헉!”
강우의 두 눈이 커졌다. 강우의 시선은 이소아에게 옮겨져 있었다. 이소아는 오른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었다. 이소아의 코와 입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이소아의 왼손은 자신의 복부에 얹어져있었다.
이소아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크윽…….”
이소아의 양쪽 귀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강우는 쪼그려 앉아 이소아의 양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그래? 괜찮아? 아니, 이게 무슨…….”
이소아의 몸이 일순 진동했다. 그 진동이 강우의 양손을 타고 전해졌다. 입과 코를 가린 손, 손가락 틈 사이사이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강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소아야! 소아야!”
이소아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이소아가 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강우가 팔로 받쳤다. 이소아는 몸을 축 늘어트렸다. 강우가 소리쳤다.
“정신 차려! 금방 병원에 데려다줄게! 괜찮을 거야!”
이소아의 시선은 강우에게 잠시 머물다가 어디론가 옮겨졌다. 이소아는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었다. 이소아는 자꾸만 어딘가에 시선을 두려 애쓰며 중얼거렸다.
“대체…. 왜…….”
“말하지 마. 가만히 있어. 조금만 기다려.”
강우는 이소아를 안아 올렸다. 이소아는 여전히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다. 강우가 말했다.
“자꾸 어디를 보는 거야? 나 좀 봐봐.”
이소아는 피를 다시 한 번 토해내고, 작게 중얼거렸다.
“왜……. 나를…….”
이소아는 근육이 모두 끊어진 것처럼 팔을 툭 떨어트렸다. 이소아의 두 눈에는 초점이 사라져있었고, 코와 입에서는 더 이상 숨결이 나오지 않았다.
강우는 이소아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소아야! 소아야!”
강우가 아무리 불러보아도 이소아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이소아의 전신이 잠깐 들썩거렸다. 이소아의 입에서 핏방울과 함께 짧은 호흡이 나왔다. 강우는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소아야! 소아야!”
사후경직이었다. 이소아의 생명은 완전히 끊어져있었다.
주위는 더욱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이소아와 똑같은 증세로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한 남자가 급히 안석훈의 옆으로 끼어들었다. 남자는 안석훈의 마이크를 뺏어 든 뒤 소리쳤다.
“예거 파티 측에서! 예거 파티 측에서 아까 먹었던 샌드위치에 농간을 부린 것입니다!”
안석훈이 마이크를 다시 뺏어 들었다.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예거 파티 측에서 우리를 독살하려 했습니다!”
안석훈이 말을 뱉기도 전, 이미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분노의 화살은 예거 파티로 겨냥돼있었다.
예거 파티 측에서 한 여자가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나섰다.
“시위대분들에게 알립니다. 예거 파티 측에서 독살을 시도했다는 것은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동요치 마시고, 전후 사정을 정확히 파악…….”
펑!
예거 파티 측의 사람이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몬스터보호협회 측의 능력자 하나가 보라색 빛의 에너지 덩어리를 쐈다. 보라색 빛의 에너지 덩어리는 파인애플 껍데기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보라색 빛의 에너지 덩어리는 예거 파티 측에서 말을 하던 사람의 안면에 직격했다. 직격을 하는 순간 폭발을 일으켰고, 삐죽한 겉면이 사방으로 튀었다.
보라색 빛의 에너지 덩어리를 직격으로 맞은 여자의 안면은 갈기갈기 찢겨 피가 얼룩진 걸레조각처럼 됐다. 여자는 그대로 픽 쓰러졌다.
“진압해! 대부분 능력자들이니 인명피해가 나와도 관계없다!”
“쓸어버려!”
예거 파티 측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용서 못해!”
“다 죽여!”
몬스터보호협회 측에서 나온 말이었다.
몬스터보호협회 측, 능력자 인원 약 6,000여 명.
예거 파티 측의 예거 인원 약 500여 명.
숫자로는 예거 파티 측의 열세였다. 하지만 전력상으론 비등했다.
몬스터보호협회 측의 능력자들은 일성급만 5,000여 명, 나머지는 대부분 이성급이었다. 삼성급 이상의 능력자들은 강우를 포함해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에 예거 파티 측의 예거들은 일성급은 50여 명, 이성급이 400여 명, 삼성급이 50여 명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명분은 시위였지만, 사실상 전쟁이 벌어졌다. 능력자들이 나타난 이래로 역사에 남을 만큼 능력자들 간의 대규모 전투였다.
강우는 여전히 이소아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우가 아무리 불러도 이소아에게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강우의 주변으론 전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세 피 냄새와 살이 타는 냄새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강우는 손으로 이소아의 눈을 감겨줬다. 강우는 손을 옮겨 아직 벌리고 있는 입도 닫아줬다. 이소아의 시신은 여전히 온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한 남자가 강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남자는 그대로 강우의 안면에 발길질을 했다.
떵!
“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것은 강우의 안면을 걷어찬 남자였다. 남자는 일성 하급의 예거, 분노로 가득 차오른 강우의 몸을 공격하기엔 너무도 연약했다.
남자는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강우는 이소아의 시신을 안아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우는 쓰러진 남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터엉!
강우가 남자의 다리를 걷어찼다. 남자는 강우가 걷어찬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며 바닥을 쓸고 20m 이상 날아갔다.
강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분노로 가득한 함성과 고통에 가득 찬 절규가 가득했다.
뿌직!
한 남자의 안면이 날아가는 소리였다. 남자의 콧잔등 위로 머리통이 통째로 뜯겨나가 강우의 옆으로 지나갔다. 강우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퀴오오오옹!
푸른빛의 칼날이 강우를 향해 날아왔다.
텅!
강우는 옆으로 뛰어 푸른빛의 칼날을 피해냈다. 푸른빛의 칼날은 그대로 날아가 뒤에 있던 몬스터보호협회 사람들 셋의 목과 몸통을 잘라냈다.
강우는 한 번의 점프로 약 40m를 날아올라 한 건물의 벽면에 양발을 박아 넣었다. 강우는 그대로 건물의 벽면을 타고 올라 옥상까지 올랐다. 강우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사람은 몬스터보호협회 측에서도, 예거 파티 측에서도, 단 한 명도 없었다. 계속해서 눈앞에는 다른 적들이 나타났으니까.
강우는 이소아의 시신을 곱게 눕혔다. 강우는 이소아의 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이렇게 허무하게….”
강우의 감정은 많은 것들이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그 중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것은 슬픔과 허무함이었다.
“아까…. 하려던 말은 대체 뭐야? 뭘 그렇게 보고 있던 거야?”
강우는 알고 있었다. 이소아의 시선이 가던 방향, 그것은 최전방, 안석훈이 서있던 곳이라는 것을.
이소아는 자신의 죽음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죽어가면서도, 두려움이나 슬픔, 원망, 고통스러움, 공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소아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품은 것은 의문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그게 맞는 건가…….’
강우의 안에서 휘몰아치는 모든 감정들을 앞지르고, 집어삼킨 뒤, 강우의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 있었다.
분노.
강우는 오른손을 T.C.C로 가져갔다. 강우의 마음만큼이나 어두운 검은색 홀로그램이 전신을 집어삼켰다.
강우는 집행자로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강우는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강우가 찾는 것은 안석훈이었다.
강우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몸 안쪽에서 일어난 폭발, 그것은 어떠한 독약이나 화학물질, 폭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능력자로부터 발현된 것이었다. 강우는 그것이 어떻게 몸 안쪽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폭발을 일으킨 것은 안석훈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폭발로부터 느껴지는, 화약 냄새가 자욱해야 할, 폭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 폭발, 그 느낌은 김현태 회장의 일을 도왔을 때와 비슷했다. 그때 빌딩에서 일어난 폭발, 그때 받았던 느낌과 비슷했다. 찰나의 기억이고, 느낌이었지만, 강우는 그렇다고 확정했다.
경쟁업체에 폭발을 일으켰던 것, 안석훈은 당시 어떠한 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폭발을 일으켰다. 능력자들 중에 폭탄이 폭발한 것과 같은 능력을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모두 연결고리가 이어졌다.
빌딩 폭발, 그리고 비행기 추락사고.
당시 김현태 회장과 안석훈, 김민지 등이 타고 있던 비행기는 폭발한 후 추락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비행기 폭발의 원인은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단지 비행기 자체 결함으로 단정 지었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어야 할 안석훈은 살아있었다. 살아있는 것도 모자라 몬스터보호협회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샌드위치로 인해 이소아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내부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나 사망에 이르렀다.
안석훈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잡고 나면 불게 만들 수 있는 일.
강우는 나름대로의 추리를 했다.
‘비행기를 폭파시킨 건…. 아마 그때 자금들을 모두 챙겼겠지. 김현태 회장의 최측근이었으니, 내부사정은 꿰고 있었을 테고…. 아마 그때도 몬스터보호협회장을 하고 있었을 거야. 이만한 단체를 굴리기 위해선 돈이 꽤나 필요했을 테고…. 몬스터보호협회장이니 몬스터 사냥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건 무리가 있었겠지. 아직도 왜 이딴 식으로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잡아서 족치면 알게 되겠지.’
강우의 두 눈은 분노가 잔뜩 서린 채 안석훈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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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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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언제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