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그때 강우의 눈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었다. 쿠라마였다. 쿠라마는 혼자서 수십 명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쿠라마의 등 뒤로 활활 타오르는 커다란 주황빛 날개가 뻗어 나왔다. 쿠라마에게 공격이 쏟아졌다. 푸른빛의 얼음 결정, 붉은빛의 불덩어리, 주황빛의 화살들, 노란빛의 창, 보라색 빛의 철퇴.
파차차창, 퍼어엉, 퓨퓨퓨퓻, 콰앙!
쿠라마는 주황빛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감싸 모든 공격을 아무런 타격없이 막아냈다. 쿠라마가 소리쳤다.
“이건 미친 싸움이야! 원인이 뭔지 제대로 진상파악부터 해야지! 이런 건 아무런 의미도….”
쿠라마가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터어어엉!
몬스터보호협회 쪽의 한 남자가 전신에서 남색 빛을 뿜어내며 쿠라마에게 무릎차기를 날렸다. 쿠라마는 양팔로 남자의 무릎차기를 막아냈다.
“이 자식….”
퍼억, 우두둑!
전신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는 여자가 쿠라마의 옆구리에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쿠라마의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다.
쿠라마가 “으아아아아!”하고 소리치며 주황빛의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파아아앙!
주변의 능력자들이 모두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가만…….”
퍼퍼퍼퍼퍼퍼퍼퍼펑!
폭발이었다. 연쇄적으로 터진 폭발은 쿠라마의 전신을 타격했다. 쿠라마의 몸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났다.
쿠라마는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예상치 못한 타격에 쿠라마는 큰 타격과 동시에 흐트러졌고, 주황빛 날개는 사라져있었다.
남색 빛을 뿜어내는 남자가 소리쳤다.
“지금이다!”
쿠라마를 둘러싼 능력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쿠라마는 헛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이런 것들에게…….”
수십 명의 능력자들은 전신에서 저마다의 빛을 뿜어내며, 저마다의 능력을 발현시켰다. 쿠라마는 아랫입술 질끈 깨물었다.
“젠장…….”
쿠라마를 도울 사람은 없었다. 다른 예거들도 고군분투 중이었기에. 쿠라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포기한 상태였다.
‘왜 이런 상황에 그 녀석이 떠오를까…….’
쿠라마는 모든 걸 포기한 심정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시커먼 것이 쿠라마의 앞에 떨어졌다. 검은 운석과 같은 것이 지면에 떨어지는 동시에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했다. 강우가 착지한 주변을 중심으로 10m 이상, 모든 땅들이 부서지고고 들렸다.
쿠라마에게 달려들던 능력자들은 넘어지고, 튕겨나가고, 쓰러졌다. 삼성 하급 정도의 힘을 가진 남색 빛의 남자와 붉은빛의 여자만이 겨우 밀려나지 않고 버텼다.
쿠라마는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쿠라마의 앞에 보이는 것은 강우의 뒷모습이었다. 쿠라마는 안도와 함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너……. 여긴 어떻게…….”
강우는 고개를 살짝 돌려 쿠라마와 눈을 마주쳤다.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뭐? 아니, 그보다…….”
쿠라마가 말을 마치기 전,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쉬고 있어.”
강우가 착지하며 밀려나갔던 능력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개중에는 강우가 착지하는 순간 받은 충격으로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한 이들도 있었다.
남색 빛의 남자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집행자……?”
붉은빛의 여자가 강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왜 끼어드는 거지? 넌 블랙마켓에서 활동하는 녀석이잖아. 그런데 왜 예거 파티 쪽 예거를 감싸는 거야?”
강우는 목을 좌우로 까딱인 뒤,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예거 파티를 감싸는 게 아니다.”
“그럼 뭔데? 저 년은 예거 파티 쪽…….”
강우가 여자의 말허리를 끊었다.
“이 녀석은 내 친구다. 어느 쪽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지. 뭐, 얘도 딱히 예거 파티 소속은 아니고 말이야.”
강우는 말을 하면서도 시선을 여기저기 옮기고 있었다.
‘아까 쿠라마 주변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분명히…….’
강우의 시선은 안석훈을 쫓고 있었다.
안석훈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한 건물의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석훈의 시선은 강우에게 고정돼있었다.
‘뭐지? 저 녀석이 어떻게……. 샌드위치를 안 먹었던 건가? 저 녀석의 것엔 분명히…….’
한 남자가 안석훈에게 다가왔다. 예거 파티 쪽의 예거였다. 남자는 눈썹을 찡그리며 안석훈에게 말했다.
“몬스터보호협회장 맞지? 같이 좀 가줘야겠다.”
안석훈은 남자를 무시한 채 여전히 강우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남자는 안석훈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딴청 피워도 소용없어. 아마 너한테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게…….”
남자가 말을 마치기 전이었다.
콰앙!
안석훈은 남자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고 얼굴을 벽에 처박아버렸다. 남자의 부러진 치아 몇 조각과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남자의 안면은 완전히 뭉개졌고, 이따금씩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강우의 시선이 안석훈에게로 향했다. 강우와 안석훈의 눈이 마주쳤다. 안석훈은 남자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걸음을 옮겼다.
강우가 쿠라마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여긴 내가 빠르게 정리할 테니까, 피해있어. 다른 곳에도 볼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남색 빛의 남자가 강우에게 뛰어들었다.
“우리 앞을 막겠다면, 죽이는 수밖에!”
강우는 남색 빛의 남자에게로 뛰어들며 말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살고 싶으면 피해있어!”
남색 빛의 남자가 양손을 모아 강우를 향해 뻗었다. 남자의 양손에서는 남색 빛이 둥그렇게 모여들었다.
퍼어어엉!
남색 빛의 에너지파가 강우를 덮쳤다. 남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 머금어져있었다.
턱.
“어?”
강우는 에너지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돌진해왔다. 강우의 오른손이 남자의 안면에 얹어졌다.
쿠웅-!
강우는 그대로 남자의 뒤통수부터 바닥에 내리찍었다. 남자의 두 눈은 뒤집어져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붉은빛의 여자와 다른 능력자들이 강우에게 달려들었다. 한 남자가 양손에 주황빛 검을 들고 강우에게 뛰어들었다.
“흐아앗!”
남자는 주황빛 쌍검을 강우에게 휘둘렀다.
터엉-!
검은색 힘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주먹질, 단순한 오른손 스트레이트.
강우의 주먹은 쌍검을 깨트리며 남자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남자는 뒤로 날아가 다른 남자들과 부딪쳤다.
쿵-!
강우의 오른손 스트레이트에 맞은 남자는 볼링공이 되어 다른 능력자들을 볼링핀처럼 쳐내버렸다.
오른손 스트레이트 한 방이 다섯 명의 남자를 쓰러트렸다.
쿠라마는 강우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 여긴 이 녀석에게 맡기자. 지금 나는 발목만 잡을 뿐이야.’
쿠라마는 서둘러 걸음을 옮겨 피신했다.
붉은빛의 여자가 강우에게 뛰어들었다. 여자의 두 다리는 붉은빛이 진하게 둘러져있었다.
“죽어!”
여자가 강우에게 오른발 하이킥을 날렸다. 강우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 여자의 발차기를 피했다. 여자는 그대로 몸을 돌려 왼발로 뒤돌려차기를 했다.
턱.
강우는 너무도 간단하게 여자의 발목을 잡아냈다.
후웅-
강우는 그대로 여자의 발목을 잡아들었다. 여자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콰앙-!
“커허어…….”
강우는 여자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여자는 양손으로 몸을 감싼 채 고통에 신음했다. 여자는 의식은 또렷했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능력자들은 강우에게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강우가 쓰러트린 남색 빛의 남자와 붉은 빛의 여자 두 명이 주변의 능력자들 모두를 합친 힘보다도 강했다. 달걀로 바위를 깨트리는 것이 차라리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퍼어어엉!
등 뒤에서의 공격이었다. 보라색 빛의 원반이 강우에게 직격했다. 강우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몬스터보호협회 측의 능력자가 아니었다. 예거 파티 소속인 남자의 공격이었다. 강우에게 보라색 빛의 원반을 던진 남자는 자신이 공격을 하고서도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강우가 예거 파티 측에서 나온 예거가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대치하고 있는 것은 몬스터보호협회 측의 능력자들이었기에.
평소의 강우라면, 공격을 받았더라도 빠르게 전후사정을 설명하며, 적어도 자신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강우에게 그런 여유와 관대함은 없었다.
터엉!
강우가 순식간에 남자의 코앞으로 다가섰다. 남자는 다가오는 강우를 보며 느꼈다. 자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실수했다는 것을 그리고 압도적인 힘을.
파앙-!
강우는 손바닥으로 예거의 몸통을 밀어 쳤다. 남자는 이성 중급이었다. 단순히 손바닥으로 밀어 친 것이었지만, 남자의 가슴뼈가 모두 으스러졌다. 남자는 뒤로 날아가 쓰러져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어느새 강우는 둘러싸여있었다. 왼쪽으론 몬스터보호협회 측의 사람들, 오른쪽으론 예거 파티 측의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강우가 서있었다.
양쪽의 단체 모두 강우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두 단체는 같은 생각을 했다.
‘저 녀석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강우를 둘러싼 인원, 몬스터보호협회 측 4,000여 명, 예거 파티 측 400여 명. 그리고 예거 파티 측에 이성급으로만 편성된 보충 인원 1,000여 명이 더해졌다.
강우를 가운데 두고 몬스터보호협회와 예거 파티가 맞부딪쳤다. 이들의 공통된 최우선 목표는 강우였다.
각양각색의 빛들이 거리를 수놓았다. 그 가운데는 검은 점이 있었다.
정면충돌 직전, 가운데 서있던 강우가 오른쪽 주먹에 검은색 힘을 모았다. 탁구공 보다 미세하게 조금 큰 사이즈, 그것을 주먹에 입혔다. 강우는 오른쪽 주먹을 위로 치켜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우를 중심으로 거리가 완전히 부서졌다. 수저로 마구 들쑤신 순두부마냥 콘크리트 바닥이 으깨져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넘어지고, 갈라진 틈새로 빠지지 않기 위해 몸을 추스르는데 급급했다. 이성 상급 이상인 능력자들만이 균형을 잡으며 서있었다.
강우의 주먹 한 방에 모든 동작이 멈췄다. 모든 능력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강우를 쳐다봤다.
조용했다. 바람의 한숨소리마저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적막이 흘렀다. 강우는 지면에 내리꽂았던 주먹을 뽑아들고, 몸을 일으켰다. 강우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능력자들은 움찔거리며 긴장했다. 강우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20초…. 준다. 20초가 지났을 때도 여기 남아있는 녀석은…. 반드시…. 반드시 조진다.”
곧바로 움직이는 능력자들은 없었다. 강우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 자리에서 못 조져도…. 전부 기억해낼 거야. 반드시 찾아낸다. 너희가 밥을 먹고 있을 때도, 잠을 자고 있을 때도, 화장실에 있을 때도,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도…. 그때가 언제라도…. 반드시 찾아낸다. 아무것도 못하게 될 거야. 언제나 불안에 떨면서 지내야 될 거야.”
강우의 말에 몇몇 능력자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강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20…. 19…. 18….”
몇몇 능력자들이 몸을 완전히 돌려 뛰기 시작했다. 몇몇 능력자들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디서 개가 짖나…. 저 새끼가 무슨 소리를….”
강우는 아랑곳 않고 카운트를 셌다.
“14…. 13….”
강우는 카운트를 멈추지 않았다. 한 능력자가 목청껏 소리쳤다.
“개지랄하지 마! 여기 있는 능력자들이 몇인 줄 알아?”
다른 능력자가 소리쳤다.
“다 같이 저 녀석부터 조지자! 놈은 하나라고!”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얼마 안 남았다…. 10…. 9….”
대부분의 능력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남아서 싸우자고 한 능력자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왜 겁먹는 거야? 왜 도망치는 거야? 놈은 겨우 하나…….”
뒤돌아서 도망치던 능력자가 소리쳤다.
“네가 먼저 덤벼들 거야? 적어도 수십…. 수백은 죽을 거야! 아니, 저런 괴물은 못 이겨! 정신 차려 미친놈아! 삼성 하급의 능력자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전투불능이 됐다고!”
강우는 카운트를 셌다.
“5…. 4…. 3….”
남아서 싸우자고 했던 능력자들도 대부분 도망쳤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2014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시고,
연말 모임에서는 과음하지 마시길...^^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