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11화 (111/195)

111화

예거 파티 측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철수했다. 애초에 이들의 목적은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 자신들이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굳이 더 이상 피해를 입을 이유는 없었다.

강우가 중얼거렸다.

“2…. 1…. 끝이다.”

강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전투불능 혹은 죽어서 쓰러진 사람들 외에는 대부분 도망쳤다. 강우의 앞에 남아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몬스터보호협회 측의 능력자들이었다. 두 남자는 살기등등하게 각각 전신에서 주황색 빛과 파란색 빛을 뿜어냈다.

파란색 빛을 뿜어내는 남자가 말했다.

“어차피 다 필요 없어. 전부 쓰레기다. 나는 곧 삼성 중급에 다다를 몸이다. 삼성 하급에서도 방금과 같은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어. 난 그런 놈들을 수도 없이 이겨봤다. 고작 네놈 같은…….”

콰지직-!

총알과도 같은 속도, 바주카포와 같은 파괴력.

1분 동안 정상적인 심장박동의 평균은 60회에서 80회 정도. 심장이 한 번 뛰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강우가 순식간에 파란색 빛을 뿜어내는 남자의 앞에 다가섰다.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이었다. 남자는 말을 하던 중, 상황을 파악했을 땐 이미 강우의 손이 얼굴에 닿아있었다. 남자는 무언가 방어를 해보려 했지만, 그건 상상속의 일이었다. 이미 남자의 얼굴은 바닥에 처박혔다. 남자의 왼쪽 안면이 모두 으스러졌다. 남자는 그대로 입에 피가 섞인 거품을 물며 정신을 잃었다.

강우는 주황색 빛을 뿜어내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주황색 빛의 남자에게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

‘내가 왜…. 아까 도망치지 않았을까….’

강우는 남자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남자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저기…. 지금이라도 그냥 가면 안 될까? 내가 미안해. 응? 잘못했어…. 난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미 늦었어.”

남자는 필사적으로 전신에서 주황색 빛을 뿜어냈다.

“이런 씨-팔-!”

남자의 전신에서 주황빛의 삐죽한 가시가 솟아났다. 강우는 아랑곳 않고 손바닥으로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뿌드득!

삐죽한 가시들은 유리조각처럼 깨져버렸고, 남자의 왼쪽 안면의 뼈도 조각조각 부서지며 뒤로 멀리 날아갔다. 쓰러진 남자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강우의 주변에 서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 눈은 안석훈을 찾기 위해 혈안이 돼있었다. 강우는 마지막으로 안석훈과 눈을 마주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 저쪽에 있었지….’

파앙-!

강우는 50m 이상 떨어진 거리를 한 걸음에 다가섰다. 그곳에는 안석훈이 죽인 예거 파티 측의 남자 하나가 얼굴이 완전히 뭉개진 채 쓰러져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삶은 토마토처럼 완전히 퍼져있었다.

‘어디로 갔지…?’

강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퍼엉-!

폭발소리가 울렸다. 한 건물의 옥상이었다. 강우는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곳은…….’

강우가 이소아의 시신을 눕혀놨던 곳이었다.

터엉, 쿵, 쿵, 쿵, 텅!

강우는 빌딩 벽을 타고 뛰어 옥상에 올랐다. 강우는 전신의 혈관이 꼬여버린 것만 같았다.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잠시 흐려졌다.

이소아의 시체 옆에는 안석훈이 서있었다. 이소아의 시체는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돼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분리되기 직전이었다. 왼쪽 옆구리 살만이 살짝 이어져있었고, 척추와 갈비뼈 아래쪽이 드러나 있었다. 분홍색의 기다란 대장은 오랜 시간 삶은 순대마냥 여기저기가 터진 채 늘어져있었다.

현실감이 떨어졌다. 강우는 왠지 이소아의 시체가 그저 고깃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이소아가 메인 디시처럼 보이고, 주변에 흩뿌려진 피는 곁들이는 소스로 보일 정도로.

강우가 사이코패스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만큼, 잔혹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우는 멍하니 이소아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퍼엉!

이소아 시체의 오른손이 폭발했다. 손가락들 중 미처 터지지 않은 마디조각들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빌어먹을 년 때문에 일을 망쳤어….”

강우의 시선이 안석훈에게로 옮겨졌다. 안석훈은 이소아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석훈이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네놈이 이 정도 수준까지 올랐던 걸 알았으면…. 진작 죽여 놓는 건데…. 병신 쓰레기 새기라고 생각해서 놔뒀더니…. 일을 이 따위로 망쳐놔?”

강우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표정도 없이 안석훈을 쳐다봤다.

퍼엉!

이소아 시체의 왼쪽 정강이가 폭발했다. 무릎 아래로는 다리가 뜯겨나가 공중에 붕 떴다.

툭, 투툭.

공중에 뜬 이소아의 왼쪽 다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 개갈보 년 때문에….”

강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안석훈은 강우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낌새를 알아차렸다. 안석훈이 말했다.

“넌 지금 나한테 못 덤벼들어. 왜냐고? 내 얘기가 끝까지 듣고 싶을 거거든. 안 그래?”

꾸구구국, 뚜둑, 뚜둑.

강우는 주먹을 꽉 쥐며 안석훈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안석훈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네 애인이었는데 말이 너무 심했나? 그렇게 사랑한다고 했는데…….”

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안석훈은 조롱하듯 말했다.

“이 년…. 내 좆집이었어. 내가 벌집을 만들었던 년이었지. 처음엔 꽤나 쓸 만한 거 같아서 좀 놀아줬지. 그런데 가능하면 안 죽여도 좋지만, 어쩔 수 없이 죽여야 되는 몬스터도 있다느니…. 뭐, 그런 개소리를 하더라고?”

안석훈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버렸지. 잠자리도 한두 번이나 즐겁지, 금방 질리더라고?”

안석훈은 이소아의 시체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년이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새로운 남자를 만나겠다더군. 그래서 만난 게 너였어.”

강우는 치밀어 오르는 화에 양 주먹을 꽉 쥐고,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T.C.C 홀로그램이 강우의 감정에 반응, 정확히는 혈압과 맥, 뇌파 등을 읽어 형상화했다. 강우의 전신은 굵은 핏줄이 올라와 밋밋한 면적이 보이지 않았다.

안석훈은 강우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구만…? 너 지금 내 말을 전부는 못 믿겠지? 이소아는 분명히 너랑 모든 게 처음이라고 했는데….”

안석훈은 고개를 숙였다. 강우는 안석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석훈은 고개를 확 쳐들고 웃음을 터트렸다. 안석훈은 이소아의 시체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 년이 글쎄! 처녀막 재생수술이랑 이쁜이 수술까지 받았지 뭐야? 다시 만나는 남자에게 처음이고 싶다나? 첫사랑인 것처럼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고! 여자에겐 마지막 사랑이 첫사랑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말이지!”

강우의 전신에 올라왔던 굵은 핏줄처럼 보이는 홀로그램은 어느새 가라앉았다. 강우는 무표정하게 안석훈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석훈은 얼굴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하……. 맞아. 사실 전혀 재미없었어. 게다가 새로 만난 남자가 너라는 걸 알았을 땐 진짜 어이가 없더라고.”

안석훈은 이소아의 시체를 한 번 내려다본 뒤, 다시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게다가 이 미친년이 질투라도 유발해보고 싶었는지, 내가 한 번 던진 말 덥석 물어서 저녁을 같이 먹자더라? 너도 기억나지? 내가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어서…….”

안석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오늘……. 이 개 같은 년이 달고 온 네놈 때문에…. 일이 모두 틀어졌어. 하아…. 이렇게 되고도 믿기지가 않네….”

퍼엉-! 펑, 펑, 펑!

이소아 시체의 오른쪽 다리, 왼팔, 오른팔이 터졌다.

퍼퍼퍼퍼펑!

여기저기 흩어진 이소아의 사지가 전부 폭발해 자그마한 피부 조각, 뼛조각들만을 남겼다. 안석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하나만 묻자. 너 샌드위치 안 먹었냐? 그걸 먹었으면 살아있을 리가 없는데…. 내 시나리오대로면 너랑 이소아, 협회원 중 쓸모없는 놈들 약 100명은 시위 중 예거 파티가 수작을 부린 샌드위치를 먹고 죽는다…. 그거거든.”

안석훈의 능력은 빛을 폭파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아주 자그마한 빛, 사람의 눈으로는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빛을 만들어 폭파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안석훈은 샌드위치에 자신의 능력으로 빛을 심어뒀고, 시간에 맞춰 폭파시킨 것이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먹은 사람들은 내장이 터지며 죽음을 맞이했다. 단 한 사람, 강우만이 살아남았다. 아니,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잠깐의 불쾌감, 그것이 전부였다.

안석훈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강우를 쳐다봤다.

“그런데 너는 안 죽었단 말이야…. 이상하게…. 방금 물어봤는데, 네가 대답을 안 했거든? 너 샌드위치 안 먹었어?”

안석훈은 이소아의 시체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저 년 때문에 진짜……. 그냥 필요 없어졌을 때 빨리빨리 처리해놨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건데 말이야….”

안석훈은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퍼어어어엉-!

이소아 시체의 몸통이 폭발하고, 머리가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딱, 퍼엉!

안석훈이 손가락을 튕기자 이소아의 머리가 공중분해 됐다. 안석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불꽃놀이 같지?”

안석훈은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일이 꼬인 건 좀 아쉽지만, 교훈을 얻었으니까 괜찮아.”

안석훈이 검지와 중지를 붙여 강우에게로 향했다.

“쓰레기는 바로바로 치워야 된다는 걸.”

퍼퍼퍼퍼퍼퍼퍼퍼퍼-엉-!

강우의 안면 주위로 폭발이 일어났다. 이때까지의 폭발과는 달랐다. 강렬한 보라색 빛이 퍼졌다.

“너한텐 좀 특별한 걸로 선물했어.”

강우를 가리키고 있는 안석훈의 검지와 중지 끝은 보라색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툭.

강우가 목에 두르고 있던 T.C.C가 끊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안석훈이 바닥에 떨어진 T.C.C를 보며 말했다.

“이런…. 김 회장한테 받았던 장난감이 고장나버렸네? 어차피 이제 목이 없어서 찰 수도 없을 테…….”

안석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뭐야…?”

보라색 빛이 걷히고, 강우의 몸이 드러났다.

T.C.C가 없어 원래 모습이 드러났어야 할 강우의 전신은 시커먼 무언가로 둘러싸여있었다. 그것은 강우가 T.C.C를 입기 전의 옷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색깔만이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강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강우의 얼굴 역시 시커먼 무언가로 감싸져있었다. 얼굴은 완전히 시커멓게 가려져있었고, 머리카락은 바깥으로 드러나 있었다. 머리카락 위로도 시커먼 무언가가 덧씌워져있었다. 머리카락은 검은 불꽃 그리고 검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전신이 시커먼 가운데, 두 눈만이 빛나고 있었다. 강우의 두 눈은 프리즘에 비친 것처럼 다채로운 빛깔이 드리웠다.

강우의 검은 불꽃 혹은 검은 연기와 같던 머리카락의 움직임이 멈췄다. 평상시 강우의 머리스타일과 흡사한 모양새였다.

강우의 모습은 검은색 옷에 검은색 신발 그리고 검은색 마스크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안석훈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야…. 안쪽에도 코스프레야? 그런데 어떻게 멀쩡한 거지?”

강우는 안석훈에게 오른쪽 손등을 보인 채 검지 위로 중지를 포갰다. 안석훈이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손 전체에 보라색 빛이 강렬하게 번쩍거렸다.

“그럼 이거나…….”

퉁!

“어?”

안석훈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으아아아아아악!”

안석훈의 손이 통째로 사라져있었다. 손바닥 아랫부분이 조금 남아있는 게 전부였다. 손은 너무나 깔끔하게 사라져있었다. 그 때문일까, 조금 시간차를 두고, 안석훈이 비명을 지르는 중에 피가 콸콸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우가 다시 오른쪽 중지를 검지 위에 얹었다. 강우가 중지 아래 있던 검지를 튕겼다.

퉁! 쿵!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안석훈의 왼발이 사라져있었다. 안석훈의 왼발이 디디고 있던 바닥은 움푹 패여 부서져있었다. 금세 안석훈의 발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움푹 파인 바닥을 채웠다.

강우가 안석훈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시체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거든? 그런데 네가 그렇게 해주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하더라. 엄청 좋았는데……. 속기도 했고, 이용당한 거 같기도 해서…. 기분이 복잡하더라고. 슬프고, 화나고….”

안석훈은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거리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고작 저런 새끼한테……. 난 삼성 중급에서도 최상위……. 몬스터보호협회 한국지부장이라고….”

강우가 검지 위로 중지를 포개며 말했다.

“그냥……. 모르겠다. 솔직히 너 덕분에 좀 다행인 거 같기도 하고. 더 빠져들기 전에, 네 덕분에 이것저것 알게 됐으니까.”

강우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이소아의 손톱조각을 본 뒤, 다시 안석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화장……. 하곤 좀 다르겠다만, 어쨌든 마지막 처리도 비슷하게 했고….”

강우는 다소 힘이 빠져보이던, 허무한 표정에서, 두 눈을 부릅떴다. 검은색 힘을 전신에 둘러싼 강우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와 세상을 집행하러 온 악마의 모습처럼 보였다.

“나도 널 처리해야겠지.”

퉁!

안석훈의 왼쪽 무릎이 사라졌다. 안석훈의 왼쪽 무릎 아래와 무릎 위가 분리됐다. 안석훈은 떨어져나간 자신의 다리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절단을 한 꼴이 돼버려서...

그래도 이번 편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강우의 새로운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연참을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습니다만, 어제도 잠을 그리 오래 자지는 못해서 이제는 안 되겠네요! 자야겠습니다! ^^;

현재 다른 일도 하고 있는지라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ㅠㅠ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