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21화 (121/195)

121화

강우는 고민에 빠지고, 침묵이 흘렀다. 이따금씩 하운드가 흔드는 꼬리가 바닥을 쳐 탁, 탁, 소리가 날 뿐이었다.

침묵을 깬 것은 한소영이었다.

“왠지…. 무슨 생각하고 계신지 알 거 같은데요….”

“뭐?”

한소영은 강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굳이 그리 급하게 해외로 나가지 않으셔도 되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마 지금 국내에서 당신에게 덤빌 수 있는 능력자는 몇 안 될 거예요. 하나도 없을지도 모르고요. 삼성급이 넘어가면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가니까요.”

강우는 팔짱을 끼며 한소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한소영이 말했다.

“전용기를 원하시는 이유가….”

한소영이 핫도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헬하운드와 함께 하기 위해서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당신의 힘으로 한국에 있는 건 좀 아깝겠지만, 조금 시간을 천천히 가져도 되지 않겠어요? 전용기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을 때까지 말이죠….”

한소영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저 몬스터랑 함께 나가려고 하는 건지…. 아니, 애초에 한국에서 나갈 필요가 있는지…….’

한소영의 입장에서는 강우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소영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지는 않았다.

서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른 법.

한소영은 그런 이치는 깨닫고 있었다.

‘저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뭔가 더 있겠지. 더 넓게 보는 것이…….’

한소영이 말했다.

“그래도 되지 않아요?”

“4,000억 겔드라며. 내가 하루에 2억씩 벌어들여도 2,000일이야. 5년이 넘게 걸린다고.”

“단기적인 출장을 자주 나가신다면 보다 빠르게 모으실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한소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근에…. 일거리가 많은 곳이 있어요.”

“어딘데?”

“북한…….”

“북한?”

한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재 한국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은 이래저래 많아진 상태죠. 북한의 태도도 통치자가 김한솔로 바뀐 이후로 유연해진 편이고요.”

강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와는 휴전 중이잖아. 거긴 지금도 징병제를 시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요.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부 여행지 말고는 돌아다닐 수도 없고요. 그래도 들어가는 것 자체는 가능해요.”

강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도 그런 건 다 알고 있다고. 북한에 가려면 모든 게 통제 하에 이뤄질 거 아니야? 그런 건 나랑 안 맞는다고. 그리고 그쪽에서 하는 일이 돈이 되겠어?”

“제가 누구에요?”

“누구긴 누구야. 한소영이지.”

한소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말했다.

“블랙마켓 상인이잖아요. 북한에 들어가는 모든 절차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요. 중국 블랙마켓을 통해서 가면 말이죠…. 그리고 보수는 충분히 좋은 편이에요.”

한소영은 강우가 북한에 가게 되면 할 일에 대해 설명을 늘어놨다.

북한은 김한솔이 정권을 잡은 뒤로 많이 유연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지속돼왔던 것들을 손바닥 뒤집듯 한 번에 뒤집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징병제가 시행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려 하지만, 굵은 뼈대는 아직 공산주의였다. 한국과도 여전히 휴전 중인 상태였다.

북한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유연해졌고, 한국과 긍정적인 방향의 교류도 활발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래도 제한은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북한을 방문해 여행이 가능했지만, 정해진 지역만이 가능했다. 그리고 입국 시 절차가 굉장히 까다로운 편에 속했다.

간단한 일례로 북한이 감당하기 힘든 몬스터가 등장했을 때, 한국과 그 외 몇몇 나라의 예거들이 투입됐었다. 투입된 인력들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북한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도와주러 왔는데도 불구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에 남겨야 했고,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아니, 대놓고 안내자란 명분하에 감시자가 따라다녔다.

이는 북한 스스로의 목을 죄는 일이 됐다. 북한에는 비교적 상급 몬스터들이 자주 출몰하는 편이었고, 피해가 막심했다. 하지만 북한의 태도 때문에 예거들과 능력자들은 모두 출장을 꺼려했다.

이에 내놓은 해결방안은 암묵.

그리고 중국을 통해 밀입국을 하는 것.

이것은 북한 정부 측에서 내놓은 방안이었다. 북한 측에서는 해외의 능력자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능력자들은 북한에 가길 원치 않았다. 이에 중국을 통해 밀입국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것이었다. 단, 반드시 미리 약속이 돼야 했다.

현재 북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은 두 군데였다. 한 곳은 아오지 탄광, 또 다른 곳은 백두산이었다. 아오지 탄광에서는 다수의 몬스터들이 발견된 상황이었다. 북한 측에서는 아오지 탄광의 토벌을 원했다.

백두산은 정확치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몬스터들을 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어떤 몬스터가 등장했는지, 정말로 등장한 것인지 등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백두산을 수색한 이들은 전부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소영이 말했다.

“그래서 별로 번거로우실 거 없어요.”

“난 북한 억양도 별로 안 좋아해서….”

“요즘은 북한 사람들도 우리랑 말 거의 비슷하게 해요. 시대가 어느 땐데….”

“그래?”

한소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어때요? 이런 식으로 단기 출장을 자주 다니면 예상하신 기간보다는 훨씬 빠르게 돈을 모을 수 있을 거예요.”

“며칠 동안 가는 건데?”

“총 30시간 이내에 끝날 거예요. 아마 잠도 못자고, 굉장히 고단하고, 험난할 거예요. 아오지 탄광과 백두산 둘 모두 어떤 몬스터들이 나오는지조차 제대로 밝혀진 게 없어요. 그나마 아오지 탄광은 입구 쪽에 몇몇 삼성 하급의 몬스터들이 발견됐고요. 안쪽에는 어떤 게 있을지 모르는 거죠. 그 만큼 보수는 높아요.”

“얼만데.”

“20억 겔드요. 전리품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거고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고민했다.

‘20억 겔드라…. 그럼 1년 정도만 해도 돈을 모으는 게 가능하다.’

강우는 핫도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이를 꽉 깨물며 한소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가 말했다.

“좋아. 하지.”

“잘 생각하셨어요. 정확히는 약 25억 겔드, 원래는 제가 수수료를 20% 떼야 하는데, 아까 저에게 건네주신 전리품들하고, 저는 당신한테는 10%만 떼잖아요? 그럼 약 23억 5천만 겔드는 챙기게 되실 거예요.”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언제부터지?”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이 가능해요.”

“지금 당장?”

한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까요.”

강우는 핫도그를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한소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두 시간 정도 뒤에 출발해도 되나?”

“그럼요.”

“준비해야 될 거 있나? 여권이라던가….”

한소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없어도 돼? 아, 맞다. 밀입국이지. 나도 참…. 지금 생각할 게 많아서 그렇다.”

한소영은 당연한 걸 왜 물었냐는 듯, 여권 이야기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여권은 대체 왜…. 당신은…….”

한소영은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아…. 그래서 그렇구나…. 맞다, 맞다.”라고 중얼거렸다. 한소영이 말했다.

“예전에 무투 클랜하고 일할 때 일본으로 출장 간 거 때메 그러시죠? 그건 예거 클랜하고 함께 이동하느라 그랬던 거죠. 블랙마켓 능력자들 중, 특히 이성 중급 이상만 돼도 정식적으로 입국절차를 밟는 사람들은 없어요. 뭐, 이번 일의 경우 밀입국이니 더더욱 필요 없고요. 비용은 이래저래 꽤 들지만요.”

“그래?”

한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과거에 활동하던 블랙마켓의 상인들과 능력자들이 일궈놓은 것들이죠.”

강우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갔다오도록 하지.”

“네, 다녀오세요.”

강우는 핫도그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강우와 핫도그는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강우는 이동하면서 고기를 잔뜩 주문했다. 강우와 핫도그는 평소보다도 훨씬 빠르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다다른 강우는 미소를 지으며 핫도그를 쳐다봤다.

“제법인데? 이렇게까지 빨라지다니.”

핫도그는 즐거운 산책을 다녀온 것처럼 헥헥거리며 꼬리를 쳐댔다. 강우는 핫도그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출장을 좀 다녀와야 돼.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니까, 잘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핫도그는 아쉽다는 듯 낑낑거렸다. 사실 남들이 볼 땐 낑낑거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강우에게는 핫도그의 그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 감정표현 하나하나가 전부 느껴졌다.

강우는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안 돼.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땅굴을 파고 들어가 있어. 알았지?”

핫도그는 알았다는 듯 “컹!”하고 짖었다. 강우는 씩 웃으며 핫도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가 도착했다. 강우는 구덩이로 고기를 잔뜩 넣어줬다. 핫도그는 고기를 내려다보며 벌써 입맛을 다셨다. 강우는 핫도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금방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야 된다?”

핫도그는 알아들었다는 듯 “컹!”하고 짖었다. 강우는 한 번 더 핫도그를 쓰다듬어준 뒤, 걸음을 옮겼다. 핫도그는 강우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봤다. 핫도그는 강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구덩이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강우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한소영에게 전화했다. 한소영은 연결음이 두 번도 울리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안 그래도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너네 가게로 가면 돼?”

“아니요, 인천으로 오시면 돼요. 좌표는 제가 보내드릴게요.”

“인천?”

“네. 그쪽에 가시면 사람이 마중을 나올 거예요.”

“알았어, 지금 간다.”

“벌써요?”

“응, 가고 있어.”

“어쩐지…. 바람소리가……. 알겠어요. 그럼 그쪽 사람한테 얘기해놓을게요.”

강우는 더욱 속도를 높여 달렸다. 강우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마치 검은색 유성이 지상 위를 돌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소영이 알려준 좌표는 인천항구에 있는 한 선박이었다. 선박은 여기저기 칠이 벗겨지고, 물때가 끼어있는 등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강우는 선박의 앞에 멈춰 섰다. 강우는 좌표를 확인한 뒤, 선박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이걸 타고 가는 건가? 이걸로 이동했다가는 30시간 안에 모든 걸 마칠 수 없을 텐데…. 차라리 내가 수영해서 가는 게 빠르겠네….”

“에이, 설마요.”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강우가 몸을 돌렸다. 40대 초중반, 170cm 내외의 키에 단정치 못한 복장, 숱이 없는 머리에 까만 피부의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는 씩 웃으며 말했다.

“집행자 씨 정도 되면 진짜 그러려나요?”

강우가 물었다.

“연락받고 오신 분?”

“네, 그렇습니다.”

남자는 강우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두식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강우는 악수를 한 다음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빨리 움직이죠.”

한두식은 씩 웃으며 말했다.

“성격도 급하시네. 그만큼 화끈하게 일처리를 해주시겠죠?”

강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루한 행색에 배슬거리는 한두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한두식은 여전히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럼 우선 배에 오르시죠.”

한두식은 좌표에 나타난 선박을 가리켰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이건 저의 기우라 생각됩니다만, 혹시나 해서 명시해 놓습니다.

이것은 소설이고, 허구이며, 현실 내지는 실제 인물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저는 정치색을 가지지도 않고, 정치에 관해서 잘 아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명시해둡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작은 소재 중 하나이지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실 수 있어 이렇게 적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