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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125화 (125/195)

125화

첫 번째 갈림길은 여태까지 지나온 길보다 어두웠다. 김린경이 몸에서 더욱 강하게 빛을 발산했다. 길을 따라 걸은지 5분, 강우 일행은 첫 번째 길의 끝에 가까워졌다.

막다른 길.

김린경이 말했다.

“이쪽은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데요?”

한동근이 말했다.

“돌아가지.”

돌아가는 길은 속도를 높여 빠르게 움직였다.

마고혁은 강우 일행이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한동근이 물었다.

“별일 없었나?”

“그렇소. 아무 일도 없었소이다.”

한동근은 두 번째 갈림길을 향해 몸을 틀며 말했다.

“그럼 금방 갔다 오지.”

마고혁을 제외한 강우 일행은 두 번째 갈림길로 들어섰다.

강우 일행은 두 번째 길로 들어서자마자 첫 번째 길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축축하고 끈적한 느낌.

공기부터가 달랐다. 굳이 얘기를 하지 않아도 강우 일행은 모두 뭔가가 있을 거란 확신을 가졌다.

그저 예감이었던 것일까. 강우 일행이 갈림길의 끝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막다른 지점에 다다른 강우 일행은 주변을 샅샅이 살펴봤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바닥에 진흙처럼 질척거렸다.

김린경이 말했다.

“여기도 특별할 건 없네요. 습기가 조금 많은 것 빼고는…….”

주변을 살피던 강우가 입을 열었다.

“여기…. 좀 이상한데?

강우는 바닥뿐만 아니라, 벽, 천장까지 모두 흘러내릴 듯 물컹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탄광 내부의 다른 곳들과는 색도 달랐다. 두 번째 길 끝 지점의 바닥, 벽, 천장은 유난히 붉었다. 한동근이 말했다.

“그렇군…. 이건 좀 이상한데…….”

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 땅을 이렇게 변질시키는 몬스터도 있나요?”

“글쎄…. 몬스터들 종류가 워낙 많으니…. 몬스터에 대한 생각은 항상 하고 있지만, 전부 바로바로 생각나지는 않으니까….”

김린경은 쪼그려 앉아 검지 끝을 바닥에 살짝 가져다 댔다.

“앗!”

강우와 한동근의 시선이 김린경에게로 모아졌다. 김린경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바닥에 가져다 댄 검지를 다른 손으로 쥐고 있었다. 한동근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김린경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닥을 가리켰다.

“이상합니다. 손이 닿으니까 쓰라린 통증이……. 마치 강한 산(酸)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한동근은 자신이 서있는 땅을 유심히 내려다봤다.

‘대체…….’

강우가 소리쳤다.

“앞에!”

한동근과 김린경은 일직선상으로 약 2m 간격을 두고 있었다.

퍼어억-!

한동근과 김린경의 앞으로 커다란 상아색 뿔이 튀어나왔다.

한동근은 곧바로 반응했다. 한동근의 양손은 삐죽하게 변형돼있었다. 한동근은 자신의 몸통을 향해 사선으로 튀어나온 뿔을 양손으로 잡아냈다.

“크윽!”

한동근은 양손으로 뿔을 잡고 몸을 지탱했고, 두 발은 공중에 떠있었다.

김린경 역시 뿔에 대비해 방어했다. 김린경은 양팔을 붙이고, 팔찌를 통해 주황빛 직사각형 방패를 만들었다.

파앙-!

뿔은 방패를 그대로 깨트렸다. 0.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김린경은 곧바로 손을 목걸이로 옮겼다. 김린경은 목걸이를 내세워 강렬한 주황빛 레이저를 발사했다. 목걸이 크기의 넓이밖에 안 되는 가느다란 빛, 자르기 위한 빛이었다.

치이잉.

김린경이 뿜어낸 주황빛 레이저는 뿔을 잘라내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김린경은 오른손에 칼자루를 들려 했다.

푸욱-!

“허어어……. 아…….”

커다란 뿔이 김린경의 몸을 관통했다. 뿔은 김린경의 몸통만큼이나 굵었다. 김린경은 칼자루를 떨어트리고, 양손을 뿔에 얹은 채 신음했다.

뿔을 잡아낸 한동근이 김린경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안 돼-!”

강우는 김린경을 향해 뛰어갔다.

쿠쿵-! 퍼어어엉-!

바닥의 진흙이 위로 치솟았다. 강우는 위로 떠오른 검붉은 진흙을 보고 깨달았다.

‘이건 진흙이 아니야….’

끈적하고 검붉은 액체, 점성이 강한, 물풀 정도의 검붉은 액체였다.

‘대체…….’

한동근은 뿔을 손에서 놓고, 바닥에 착지했다.

위로 치솟은 진흙이 바닥에 다시 떨어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뿔을 가진 몬스터 ‘카르메’였다. 카르메는 삼성 중급 몬스터로, 가장 큰 특징은 거대한 뿔이었다. 카르메는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뿔을 갖고 있었다. 머리에 난 두 뿔은 버팔로의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고, 전방을 향해 뻗어있었다.

카르메의 기본적인 외형은 뿔이 있는 것만 빼면, 코모도왕도마뱀과 흡사했다. 다만, 덩치는 두 배 이상 큰데다가 전신은 붉은색이었다. 카르메는 겉으로도 위협적임을 나타냈다. 눈동자가 없는 노란색 두 눈은 붉은 가죽과 대비돼 더욱 눈에 띄었다.

뿔에 꿰뚫려있는 김린경은 이미 숨이 끊어진 듯 몸이 축 늘어져있었다. 한동근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제기랄….”

방 전체에 있는 검붉고 끈적한 액체는 카르메의 위액이었다. 카르메는 자신의 영역이 분명한 몬스터였다. 카르메는 자신의 영역에 위액을 토해내 표시했고, 위액에 닿은 대상을 사냥감으로 삼았다. 카르메는 이따금씩 사냥감을 바로 잡아먹지 않고, 토해놓은 위액에 녹인 다음, 위액과 함께 삼키기도 했다.

한동근이 신체변형을 했다. 두 다리는 말의 것처럼, 두 발은 독수리의 것처럼, 양손은 삐죽해져 그 자체로 무기가 됐다.

팡!

먼저 달려든 것은 강우였다. 강우는 카르메의 뒤로 뛰어들었다.

터엉-!

카르메가 강우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강우는 다리를 들어 무릎과 정강이로 꼬리를 받아냈다. 공중에 떠있던 강우는 뒤로 날아갔다. 벽에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터텅!

강우는 몸을 돌려 벽에 발을 디뎠다.

“젠장!”

강우의 양다리가 무릎 바로 아래까지 카르메의 위액으로 이뤄진 벽에 박혔다.

쩌정-!

한동근의 양손이 카르메의 뿔에 막혔다. 카르메가 머리를 흔들어 뿔을 휘두를 때마다 몸이 꿰뚫려있는 김린경의 시체가 흔들거렸다.

한동근은 김린경의 시체를 한 번 쳐다보곤, 이를 악 물었다.

투퉁!

한동근의 기동력은 삼성 중급에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다. 카르메의 위액에 발이 파묻히기 전, 한동근은 발을 굴렀다. 한동근은 수면 위를 달리듯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카르메를 교란시켰다.

카르메는 “크아악!”거리며 뿔을 이리저리 휘둘렀고, 뿔에 꽂혀있던 김린경의 시체가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카르메의 뿔은 단 한 번도 한동근에게 닿지 못했다. 성질이 날대로 난 카르메가 뿔과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지금이다.’

카르메의 옆구리가 텅 비었다. 한동근은 양손을 앞세워 뛰어들었다.

퍼엉-!

양다리가 벽에 박혀있던 강우 역시 카르메에게로 뛰어들었다. 강우는 일시적으로 양발에 검은색 힘을 사용한 것이었다. 강우가 검은색 힘을 이용해 도약했고, 두 다리를 둘러싸고 있던 위액이 사방으로 퍼졌다.

푸욱-!

한동근의 양손이 카르메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키에에에에엑-!”

카르메는 입을 쩍 벌린 채 한동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꼬리 역시 한동근에게 향했다. 한동근은 이미 카르메의 공격에 대비했고, 뒤로 빠지는 찰나였다.

우지지지지지직-!

강우가 위에서부터 카르메의 옆구리 쪽을 밟았다. 강우의 발은 바닥까지 닿았다. 발에 밟힌 카르메의 옆구리는 일부분이 완전히 뜯겨나가 사라져있었다. 뜯겨나간 가죽과 살점은 걸레짝이 되어 강우의 발아래 깔려있었다.

“크아아아아악-! 키엑-! 키에엑-!”

카르메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카르메는 강우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딱!

강우가 옆으로 몸을 피해냈고, 카르메의 위턱과 아래턱이 맞물렸다.

딱, 딱, 딱, 딱-!

카르메는 자신의 위액이 잔뜩 있는 바닥에 아래턱을 걸친 채 강우를 향했다. 카르메는 연속적으로 입질을 했지만, 강우를 물 수는 없었다.

카르메의 이빨은 매번 위액을 토해내고, 다시 먹는 습관 때문에 강한 산(酸)이 서려있었다. 카르메에게 물어뜯기면, 이빨에 서려있는 강한 산(酸) 때문에 피부가 녹아들어갔다.

카르메는 계속 강우를 쫓았다. 하지만 카르메의 입과 뿔, 꼬리는 단 한 번도 강우에게 닿지 않았다.

“날 이렇게 내버려두면 섭하지.”

한동근이 카르메의 옆구리로 향했다. 강우가 뜯어놓은 부분이었다.

찌이이익-!

한동근이 카르메의 옆구리에 난 상처를 넓게 찢어서 벌렸다.

“크에에엑!”

텅!

한동근이 카르메의 꼬리에 맞아 벽에 처박혔다. 하지만 큰 타격은 없었다. 카르메의 찢어진 옆구리에서는 내장이 흘러나왔다. 한동근은 벽에서 몸을 빼내며 크게 소리쳤다.

“끝내!”

강우가 카르메의 내장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탁.

“끼에에에에에엑-!”

카르메의 내장이 강우를 따라 길게 늘어졌다. 강우는 카르메의 내장을 뽑을 수 있는 만큼 뽑아내며 달렸다.

뚝, 카르메의 내장이 끊어졌다. 카르메는 옆구리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으며 강우와 한동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르메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크악-! 크아악-!”거리며 위협했다. 강우는 카르메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한동근은 김린경의 시체로 걸음을 옮겼다.

카르메는 괴성만 지를 뿐, 움직이지 못했다.

“크악-. 크아…….”

카르메의 괴성은 점점 잦아들었고, 이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카르메는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힘을 잃은 김린경의 시신은 카르메의 위액에 손상을 입었다. 살갗 여기저기가 터져 핏물이 흘렀다. 한동근은 김린경의 시신을 안아 올리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가지.”

한동근은 곧바로 나가는 길을 향해 몸을 틀었다. 한동근은 몇 걸음 옮기지 않아 멈춰선 뒤,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도 운이 참 없구만. 카르메도 돈이 안 되거든.”

카르메의 시체 앞에 서있던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강우 일행은 두 번째 갈림길에서 빠져나왔다. 마고혁은 한동근을 보고 반가워하다 김린경의 시신을 보곤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모습은 마치 얼굴이 무너지는 듯했다.

마고혁이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이오…?”

한동근은 굳은 표정으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마고혁은 두 눈을 부릅뜨고,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 애썼다. 눈을 깜빡였다간 가득 차오른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아서였다.

강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강우의 시선은 김린경의 시신에 고정돼있었다.

‘그대로 속행인가? 아니면 지원군을 부르나? 마땅한 인원이 없다고 했던 거 같은데….’

마고혁이 말했다.

“일단 중단해야…….”

한동근은 김린경의 시신을 내려놨다. 마고혁을 하려던 말을 멈추고, 한동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의 시선 역시 김린경의 시신에서 한동근에게로 옮겨져있었다.

한동근은 여전히 신체변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동근은 날카롭게 선, 삐죽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까득, 까드득, 소리가 울렸다.

한동근이 두 눈을 번뜩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임무는 속행한다.”

마고혁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 린경이가 죽었소! 임무를 계속 속행하더라도, 시신은 거둬줘야 할 것이 아니오.”

“김린경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우린 멈추지 않는다. 시신은 당(黨)에 연락을 취해놓겠네. 우리가 일을 마치고 나올 즈음이면….”

한동근은 김린경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지 않아도 될 거야….”

한동근은 자신의 상의를 벗어 김린경의 위로 살포시 덮었다. 마고혁이 두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알겠소. 내….”

마고혁은 양손에 보랏빛을 잔뜩 머금은 채 내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손으로…. 내가 이 손으로 몬스터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오!”

마고혁은 갈림길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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