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헝거맨이 구(毬) 형태의 장갑을 끼고 있는 오른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쿠우우우우웅-!
강우 일행이 있는 방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한동근과 마고혁은 일순 동작이 멈췄다. 호흡마저 멈출 정도의 압박감.
헝거맨의 기선제압은 전신의 근육마저 수축시킬 정도로 강렬했다. 한동근과 마고혁은 알 수 있었다. 헝거맨과의 정면승부는 절대로 무리, 그리고 저 주먹에 한 번이라도 잘못 맞았다간 끝이라는 것까지.
강우는 달랐다. 두 눈으로 헝거맨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헝거맨도 강우를 의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인간은 겁은커녕, 지금 당장이라도 싸울 준비가 돼있다는 것을.
헝거맨이 괴성을 질렀다.
“그오오오오옷-!”
헝거맨의 괴성이 끝나자마자, 헝거들이 일제히 “그아아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강우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고혁이 양손을 들었다.
츠, 츠, 츠, 츠, 츠, 츠, 츠, 펑!
마고혁의 몸 주변으로 보랏빛이 강하게 발산됐다. 이내 보랏빛은 마고혁의 키보다 두 배 이상 커다랗게 등 뒤로 솟아올랐다. 마고혁, 그의 비기(?技)였다.
독 개구리.
보랏빛은 순식간에 거대한 개구리의 모습으로 형태를 갖췄다. 일반 개구리와 다른 점이라면, 양 앞다리가 유난히 길었고, 두 앞발과 두 뒷발 역시 커다랬다.
마고혁은 독 개구리의 몸속 가운데 위치했다. 자기 자신이 독 개구리의 내장기관이 된 것처럼.
“으랴아-!”
마고혁이 정면의 헝거들을 향해 양손을 크게 휘둘렀다.
퍼엉, 퍼엉, 퍼엉, 퍼엉!
독 개구리가 양 앞다리를 휘둘러 헝거들을 쳐냈다. 한 방 한 방에 헝거들을 죽이거나, 전투불능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수의 헝거들을 상대하는 데는 충분히 훌륭했다.
한동근 역시 놀라고 있었다. 마고혁은 고작 삼성 중급 8단계, 그러나 그 기량은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저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한동근은 곧바로 자신의 신체변형 최종단계로 넘어갔다. 한동근이 전신의 안쪽에서부터 푸른빛을 뿜어냈다.
헝거들은 각설탕을 두고 달려드는 개미들처럼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펑!
한동근을 향해 달려들던 헝거들은 자기들끼리 부딪쳤다.
“그아악-?”
헝거들은 고개를 위로 들었다. 한동근이 공중에 떠있었다.
하피우로스 최종 단계.
한동근의 양팔은 마치 새의 날개 뼈처럼 길어져있었다. 한동근의 기다래진 양팔 아래로는 푸른빛의 깃털이 빼곡하게 돋아나있었다. 양손은 관절이 꺾여 날개 위쪽으로 삐죽하게 솟아있었다. 말의 것처럼 뻗은 두 다리의 끝은 푸른빛이 감긴 두 발톱이 사냥감을 노렸다. 한동근의 두 눈은 눈동자와 흰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푸른빛을 강렬하게 뿜어냈다.
한동근은 공중에 떠있었다. 비행까지 가능한 능력, 흔한 것이 아니었다.
헝거들이 한동근을 향해 뛰어올랐다.
“핫-!”
한동근이 소리치며 두 날개를 활짝 폈다.
퓨퓨퓨퓨퓨퓨퓨퓨퓨퓨퓨퓨퓨퓨퓨퓻.
푸른빛의 깃털들이 총알처럼 헝거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깃털들은 대부분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헝거들의 피부에 꽂히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간혹 뚫려있는 눈이나 코, 입 등에 깃털을 맞은 헝거는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헝거맨에게도 깃털이 닿았다. 하지만 깃털들은 헝거맨의 보호대를 뚫지 못함은 물론, 피부가 드러난 부위조차도 뚫지 못했다.
몇몇 헝거들은 몸에 깃털이 박힌 채 다시 한동근에게로 뛰어올랐다.
“핫-!”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한동근이 쐈던 깃털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이 역시 바깥쪽에서 맞는다면 큰 타격은 주지 못했다. 하지만 눈, 코, 입 등 안쪽에서부터 폭발한 깃털은 충분한 타격을 줬다.
“그아아악!”
헝거 하나가 한동근의 뒤에 매달렸다. 한동근의 몸이 기울어짐과 동시에 다른 헝거들이 달려들었다. 한동근은 이를 꽉 깨물었다.
‘제길…. 너무 많아.’
콰콰쾅-!
마고혁이 독 개구리의 앞발을 휘둘러 헝거들을 쳐냈다. 한동근과 마고혁은 가까스로 뭉쳤다. 주변에는 수많은 헝거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헝거의 숫자는 조금도 줄은 것 같지 않았다.
강우에게 수많은 헝거들이 달려들었다.
턱, 터턱, 터터터턱, 터터터터터턱.
헝거들은 강우에게 들러붙어 짓눌렀다. 약 30마리, 30마리의 헝거들이 서로가 서로의 몸을 포개 강우를 짓눌렀다.
“으아아아아아-!”
퍼엉-!
강우가 양팔을 휘두르며 헝거들을 모조리 튕겨냈다. 헝거들은 뒤로 나자빠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오옷-!”
쿵, 쿵, 쿵, 쿵, 쿵쿵쿵쿵.
헝거맨이 강우를 향해 뛰어왔다. 헝거들만으론 강우를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헝거맨이 오른쪽 주먹을 치켜들었다.
쿵-!
강우는 옆으로 몸을 날려 헝거맨의 주먹을 피해냈다. 몸을 날리며 공중에 떠있는데도 불구하고, 헝거맨이 휘두른 주먹의 묵직함이 전해졌다.
“그아아악-!”
강우가 옆으로 몸을 날린 곳에 있던 헝거들이 뛰어들었다.
빡, 퍼퍽, 텅, 빠각, 퉁퉁퉁!
강우는 곧바로 지면을 박차며 손바닥 아래쪽으로 달려드는 헝거의 턱을 올려쳤다. 강우는 곧바로 왼쪽 주먹을 옆에 있는 헝거의 안면에 날린 뒤, 오른발로 앞에 있는 헝거의 복부를 걷어찼다. 복부를 맞은 헝거가 뒤로 날아가며 다른 헝거들과 부딪치며 쓰러졌다.
다른 헝거가 옆에서 달려들었다. 강우는 곧바로 양손을 뻗어 헝거의 머리와 턱에 손을 얹었다. 강우가 양손을 거세게 휘리릭 돌렸고, 헝거의 얼굴이 그대로 두 바퀴 이상 빙그르 돌아갔다. 뒤에서 헝거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강우는 몸을 돌려 마치 발도술처럼 옆구리에 붙이고 있던 오른쪽 주먹을 빠르게 끊어 쳤다. 헝거들은 강우의 주먹을 맞고 뒤로 날아갔다.
“그오오오오옷-!”
어느새 헝거맨이 강우의 뒤로 다가와 있었다. 헝거맨은 왼손으로 강우를 잡으려 했다. 강우는 몸을 뒤로 젖혀 헝거맨의 손을 피해냈다.
그 다음이 진짜였다. 헝거맨의 오른쪽 주먹이 날아왔다. 강우는 자신의 몸집만큼 커다란 헝거맨의 주먹을 그대로 받아쳤다.
쩌어엉-!
강우의 오른쪽 주먹과 헝거맨의 오른쪽 주먹이 맞부딪쳤다.
“큭?”
주먹이 밀리면서 곧게 뻗었던 강우의 팔이 굽어졌다. 힘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헝거맨의 오른쪽 주먹은 그대로 강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강우는 그 사이에 왼팔을 들어 안면을 가렸다.
떠어어엉-! 쾅!
강우는 뒤로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헝거맨은 자신의 오른쪽 주먹을 들여다봤다. 헝거맨의 두꺼운 보호대가 찌그러져 강우의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헝거맨은 벽에 처박힌 강우를 슬쩍 쳐다본 뒤, 한동근과 마고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동근은 날아간 강우를 본 뒤, 마고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저 녀석은 글렀다! 어떻게든 우린 탈출을 최우선으로 한다!”
콰쾅!
마고혁은 독 개구리로 양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헝거들이 너무 많소! 살아남을 수 있을지나…….”
“그아악-!”
헝거 하나가 마고혁의 옆에서 뛰어들었다.
퓨퓨퓨퓨퓻, 퍼퍼퍼퍼펑!
한동근이 깃털을 날려 마고혁의 옆으로 뛰어드는 헝거를 날려버렸다. 마고혁이 말했다.
“고맙소!”
한동근이 소리쳤다.
“감사인사나 할 때가 아니야!”
헝거들이 한동근과 마고혁에게로 달려들었다. 한동근과 마고혁은 헝거들만을 상대하는 것도 벅찼다. 아니, 헝거들에게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엎친 데 덮친 격, 헝거맨이 한동근과 마고혁에게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벽에 처박힌 강우의 얼굴에는 어느새 입이 만들어져있었다. 양쪽 입꼬리는 길게 올라가 뺨까지 그어졌다.
‘아…. 재밌다.’
강우는 씩 웃으며 헝거맨을 쳐다봤다.
헝거맨은 섬뜩함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고, 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쿵, 쿠쿵, 쿵!
강우가 벽에서 몸을 빼냈고, 부서진 파편들이 부스스 떨어졌다. 강우는 자리에 서서 헝거맨을 쳐다봤다.
‘핫도그랑 붙여보고 싶은 걸…. 뭐, 당연히 핫도그가 이기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버틸 거 같은데…. 아…. 집으로 데려가보고 싶네.’
“그오오오오옷-!”
쿵, 쿵, 쿵, 쿵쿵쿵쿵쿵쿵!
헝거맨이 강우를 향해 뛰어왔다. 헝거맨은 오른쪽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강우는 가만히 선 채로 오른쪽 주먹을 꽉 쥐었다. 오른쪽 주먹에는 검은색 힘이 아주 얇게 둘러졌다.
“그오오오오오옷-!”
헝거맨이 오른쪽 주먹을 강우를 향해 휘둘렀다. 강우는 가만히 선 채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헝거맨의 오른쪽 주먹을 맞받아쳤다. 아주 짧게, 발도술처럼, 주먹을 끊어 쳤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헝거맨의 오른팔이 터져버렸다. 두꺼운 보호대는 걸레조각처럼 찢어지고, 안쪽의 질긴 가죽과 같은 피부는 풍선처럼 터졌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오른팔이 사라져버렸다.
헝거맨은 오른팔 대신 붉은 피를 콸콸 흘리고 있었다. 강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강우는 오른팔이 날아간 헝거맨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까 생각했던 거 취소…. 핫도그랑 붙기에는 너무 연약하네.”
헝거맨은 강우를 향해 “그오오오오오-!”하고 괴성을 질렀다. 강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시끄럽다….”
헝거맨은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강우는 헛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뭐야…. 도망치는 거야?”
헝거들은 자신들의 대장인 헝거맨의 모습을 보고 전의를 상실한 듯했다. 한동근은 오른팔이 사라진 헝거맨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무슨…. 말도 안 되는…….”
마고혁이 소리쳤다.
“지금이오! 빠져나가야 하…….”
계산착오.
쿵, 쿵, 쿵, 쿵쿵쿵쿵쿵쿵쿵쿵쿵!
헝거맨은 곧바로 몸을 틀어 한동근과 마고혁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헝거맨은 헝거들을 짓밟고, 쳐내면서 돌진했다.
콰직-!
헝거맨은 왼손으로 한동근의 몸을 짓눌렀다. 한동근의 내구력으로는 헝거맨의 공격을 견뎌낼 수 없었다.
헝거맨의 왼손, 정확히는 두 손가락이 한동근의 목을 가운데 두고, 양 어깨에 걸쳐졌다. 그대로 짓눌렀고, 한동근의 몸은 무너져버렸다.
일반적으로라면, 마고혁보다 훨씬 강한 한동근은, 삼성 중급 중 기동력으로만 따진다면 최고에 속하는 한동근은 방금의 공격은 피해낼 수 있었다.
집중력.
한동근은 강우가 상식 이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준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헝거맨의 공격을 피해내지 못했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곧바로 죽지는 않았다. 몸이 납작하게 찌부러진 한동근은 “아…. 으…….”하고 기괴한 신음을 냈다.
마고혁이 소리쳤다.
“중자아아아아앙-!”
사기 증진.
헝거들이 동시에 마고혁을 향해 뛰어들었다. 헝거맨도 왼손을 마고혁을 향해 뻗었다. 헝거맨은 알고 있었다. 강우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도망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헝거맨이 한 선택은 하나라도 더 죽이는 것이었다.
마고혁이 양손을 양옆으로 뻗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오오오오옹!
독 개구리의 폭발, 독을 품은 보랏빛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바로 근처에 있던 헝거들은 빛에 닿는 순간 몸이 녹아버렸다.
빛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마고혁은 힘이 다 빠진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고혁이 죽인 헝거들은 고작 열 마리 정도. 마고혁의 등급 수준에서는 굉장한 것이었다. 아니, 이 정도의 강함이라면, 마고혁은 삼성 중급 8단계가 아닌 최소 5단계까지는 올라간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마고혁에게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마고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아있었고, 헝거들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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