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또 다른 한 사람은 몬스터보호협회 일본지부장 아오이였다. 전투가 벌어진 곳에 도착한 이후로 처음, 아오이가 입을 열었다.
“공격….”
옆에 있던 시위대에 속한 사내 중 하나가 되물었다.
“네? 뭐라고 하셨…….”
사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이었다. 아오이가 보이지 않는 활을 잡듯 자세를 취했다. 어느새 아오이의 왼손에는 노란빛의 활이, 오른손에는 화살이 집혀있었다. 아오이가 소리쳤다.
“공격해-!”
아오이가 소리친 순간이었다. 오카미가 모든 준비를 끝냈다. 오카미는 온힘을 다해 양쪽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 어어어어-!”
“물러나!”
“아악-!”
“이게 뭐야?”
시위진압대가 서있는, 수백 명이 올라서있는 땅이 5m가량 꺼지고, 그 주변으로 거대한 벽이 솟아났다. 거대한 벽은 시위대를 밀어내고, 올려쳐냈다.
강우는 땅이 꺼지고, 지하로 내려온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글렀군…….”
오카미가 선두로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오카미가 향하는 길은 터널처럼 구멍이 뚫렸다. 시위진압대 모두는 오카미의 뒤를 따랐다.
강우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두더지 같네…. 그것도 땅 파는 게 미치도록 빠른 두더지.”
오카미가 선두로 터널을 뚫으며 시위진압대들은 그 뒤를 따랐다. 단 두 사람, 쿠라마와 강우만 아직 처음에 서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쿠라마가 터널 쪽으로 발을 내딛으며 말했다.
“뭐해? 안 가?”
강우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걸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오카미는 안 그래도 달리기가 느린데, 땅을 파면서 뛰느라 그런가…….”
강우는 터널 안쪽을 살짝 확인하곤 말을 이었다.
“더 느려졌네.”
“뭐라도 해봐야 될 거 아니야? 저 사람들 다 죽게 내버려둘 거야?”
“살고 싶었으면 맞붙어 싸웠어야지.”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
“넌 위에 있던 녀석들을 상대로 싸웠으면 졌을 거 같아?”
쿠라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니, 난 안 져.”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봐봐?”
강우는 팔짱을 끼고, 터널 쪽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그쪽으로 가지 마! 돌아와! 거기로 가면 죽는다? 나랑 같이 여기서 싸우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우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몇몇은 강우를 향해
“미친놈 뭐라는 거야?”
“당신도 살고 싶으면 얼른 뛰어!”
“지랄하지 말고 어서와!”
“저 놈은 누구야?”
등 부정적인 말만 보내왔다.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봤지? 꼬리를 말고 튀는 개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내가 저걸 일일이 다 끌고 올 수도 없는 거잖아? 그냥 싸웠어야지…. 저 녀석들은 글렀어.”
“무슨 소리…….”
콰아아아아아아앙-! 와르르르르, 쿠드득. 콰쾅-!
“와아아아악-!”
“으아아악-!”
“꺄아악-!”
“여기 좀 도와줘요!”
“누가 좀…….”
터널의 천장으로 각양각색의 빛을 품은 에너지파가 뚫고 들어왔다. 터널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깔렸다. 몇몇 사람들은 에너지파를 맞아 그 자리에서 큰 부상을 입거나 즉사하기도 했다. 그나마 늦게 가던 사람들 그리고 빠르게 앞질러간 사람들은, 후퇴하거나 전진했다.
강우는 그 상황에서도 위로 뚫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적어도 2,500명 이상인데……. 전부 죽여야 되나? 죽일 수 있으려나? 너무 많긴 한데…….’
강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후퇴를 했던 사람들이 몰려왔다. 강우는 무너져서 막힌 터널로 시선을 옮겼다.
‘방금 공격으로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사람이 대략 100명…. 다시 돌아온 게 약 200명에서 300명 사이. 뭐, 그럭저럭 성공적인 탈출인가? 아니지, 땅을 뚫고 다니니 진동으로 추적을 당할 텐데…….’
쿠라마가 소리쳤다.
“어떻게 좀 해봐!”
강우는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뭘?”
“지금 이 상황! 뭐라도 해야 될 거 아냐?”
강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사람들보고 돌아오라고 했던 거 봤잖아. 도와주려고 해도,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순간, 누구의 말도 듣지 않지. 사람들은 전부 그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만 행동하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쿠라마는 강우의 말을 듣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높고 두꺼운 벽으로 둘러진 구덩이, 그곳은 지옥의 구렁텅이였다. 시위진압대의 대부분은 전의를 상실하고, 비명을 질렀다.
“여기요! 아래 몰려있습니다!”
한 남자가 벽 위에서 강우와 쿠라마, 시위진압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곧장 다시 모습을 감췄다.
콰콰앙-! 쿵, 쿠쿵.
밖에 있는 시위대가 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벽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대로 매장된다면, 구덩이 안에 있는 대부분의 능력자들은 큰 피해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무너지는 것 자체로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해도, 바깥으로 빠져나가면 기다리고 있던 시위대에게 무방비로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강우는 위를 올려다봤다.
‘일단 나가야겠군.’
터엉-!
강우는 벽에 발을 디뎌 쭉쭉 올라갔다. 쿠라마가 소리쳤다.
“비켜-!”
쿠라마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쿠라마는 불의 날개를 펼쳐내며 강우를 따라 벽을 타고 올랐다. 강우와 쿠라마의 뒤를 따르는 능력자는 없었다. 예거 클랜 소속들은 물론이고, 예거 파티 소속조차 그랬다. 이들은 모두 ‘지금 나가서 싸워봐야 승산이 없다. 저 남자는 몰라도, 여자는 굉장히 강했어.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줄 거야. 이틈에 땅을 파서라도 도망쳐야 된다. 그리고 현 상황을 알려야 해. 몬스터보호협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따위의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일리는 있었다. 필요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당장은 함께 싸워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이기심 그리고 합리화.
콰아앙-! 쾅!
벽은 거대한 쿠키처럼 너무도 쉽게 부서져나갔다. 미츠하시는 굳은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다케우치가 시위대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모두 물러나라. 이런 벽쯤은 내가 한 방에…….”
터텅! 탁.
다케우치의 앞에 강우와 쿠라마가 착지했다. 미츠하시는 두 눈을 크게 뜨며 강우와 쿠라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다케우치는 강우와 쿠라마를 보며 말했다.
“먼저 죽고 싶어서 제 발로 나온 건가?”
둥그렇게 벽을 둘러싸고 있던 시위대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있었다. 한 그룹은 아오이와 약 1,800명의 시위대들로, 다른 그룹은 다케우치와 미츠하시 그리고 약 800명의 시위대들로 이뤄져있었다.
강우는 여유롭게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별로 그럴 생각은 없는데….”
다케우치는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 아까부터 계속 까부는구나.”
“너도 만만치 않던데?”
미츠하시는 미간을 찡그린 채 강우를 쳐다봤다.
‘저 녀석…. 대체 어떻게 할 셈이지? 이 숫자를 상대로 무슨 배짱이야?’
다케우치는 강우와 쿠라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 놈은 죽이고, 여자는 포로로 잡아라!”
다케우치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키이이잉-!
강우와 쿠라마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아오이가 공중에서 노란빛의 화살을 당기고 있었다.
피유웅-!
화살의 굵기만 2리터들이 물병 크기였다. 커다란 화살이 강우와 쿠라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강우는 오른쪽 주먹을 위로 휘둘러 화살을 받아냈다.
파치잉-!
강우의 주먹과 화살이 맞부딪치며 사방으로 노란빛이 퍼졌다.
퍼엉-!
노란빛이 장막을 만들며 멀리 퍼졌고, 곧 사라졌다. 빛과 연기가 걷히고, 강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강우가 걸치고 있던 옷은 전부 넝마가 되어 천조각 몇 개만이 몸에 걸려있었다. 강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몸에서 천조각을 툭툭 털어냈다.
시위대 중 하나가 강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저거…! 집행자다! 저 새끼 집행자야!”
강우는 이미 몬스터보호협회의 최우선 제거대상이었다. 사실상 혼자서 몬스터보호협회 한국지부를 박살,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두 번이나 그랬으니까.
다케우치의 옆에 착지한 아오이가 소리쳤다.
“그럼 더 고민할 것도 없지! 쳐라-!”
아오이와 함께 있던 시위대들도 강우와 쿠라마가 있는 쪽으로 몰려왔다. 하지만 시위대는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눈앞에 있는 남자가 강우라는 사실을 알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불의 날개를 네 개나 펼치고 있는 쿠라마 역시 경계대상이었다. 몬스터보호협회 일본지부 서열 3위인 미츠하시와 비등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시위대는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숫자로 밀어붙여 강우와 쿠라마를 잡아낸다 하더라도, 먼저 달려드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다케우치가 시위대를 둘러보며 말했다.
“뭐야, 다들 겁먹은 거냐? 2,000명이 넘는 녀석들이! 고작 두 명한테 겁을 먹어?”
미츠하시가 말했다.
“두 명이 아니다.”
모두의 시선이 미츠하시에게로 쏠렸다. 미츠하시는 성큼성큼 강우와 쿠라마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팔짱을 낀 채 미츠하시를 지켜보고 있었다. 쿠라마는 경계를 취하다가도 ‘이 녀석이 뭐하는 거지?’라는 눈빛을 보냈다. 미츠하시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미츠하시는 강우와 쿠라마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미츠하시가 강우와 쿠라마 사이에서 몸을 뒤로 돌렸다. 미츠하시는 시위대를 보며 소리쳤다.
“나는 이제 이쪽에서 싸운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시위대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미츠하시를 바라봤다. 강우와 쿠라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우와 쿠라마는 가운데 서있는 미츠하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미츠하시는 오른쪽 주먹을 꽉 쥐고 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이 녀석들은 고작 두 명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너희들은…! 2,000명이 넘는 인원으로 이 녀석들을 덮치려고 했어! 그런 비겁한 짓은 용납 못한다-!”
다케우치가 말했다.
“지금 네가 뭐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나? 쓸데없는 장난치지 말고 어서 이리와.”
“잘 알고 있고, 난 너희들과 싸울 생각이다.”
미츠하시의 행동에 몬스터보호협회 측이 당황한 만큼, 강우와 쿠라마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쿠라마는 이러나저러나 지금 상항이 잘 됐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 도망을 쳤겠어.’
쿠라마는 미츠하시를 흘낏 쳐다봤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 녀석 덕분에 상황이 나아졌어.’
쿠라마는 시위대를 둘러봤다. 시위대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경계하고 있었다.
선수필승.
터텅-!
쿠라마가 아오이를 향해 튀어나갔다.
화르륵!
아오이는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쿠아아아앙-! 화륵, 화르륵!
쿠라마는 아오이의 방향으로 날개 하나를 전방으로 터트렸다. 커다란 화염이 아오이, 그리고 뒤의 시위대를 향했다.
멀티샷, 그리고 뇌전(雷電).
투투투투퉁!
아오이가 바닥을 향해 노란빛의 화살을 쐈다.
쿠르릉, 쿠쿵, 퍼어어어엉-!
아오이는 화살을 쏘자마자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들었다. 아오이의 손아귀에 노란빛의 번개가 모여들었다. 번개는 화살을 피뢰침삼아 날아갔다.
쿠라마의 화염과 아오이의 번개가 맞부딪치며 폭발이 일어났다.
아오이와 쿠라마는 서로를 노려봤다.
아오이는 쿠라마의 화염을 충분히 피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뒤에 있는 몬스터가드들을 지키기 위해 맞부딪친 것이었다.
아오이는 쿠라마를 노려보며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방해된다-! 이 여자는 내가 맡을 테니! 너희는 다케우치를 도와서 집행자와 배신자 미츠하시를 맡아라!”
쿠라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가 누굴 맡아?”
“자리를 조금 옮기지. 어차피 너도 나와 붙으려는 거 아니야?”
아오이의 뒤에 있던 시위대들은 모두 다케우치의 뒤로 다가섰다. 아오이는 천천히,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쿠라마를 유인했다.
쿠라마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속이 훤히 보이지만, 넘어가주지.”
쿠라마가 다시 불의 날개를 하나 다시 만들어냈다. 네 개의 주황빛 날개가 활활 타올랐다. 아오이의 양손에는 노란빛이 모여들어 지직거렸다.
미츠하시가 강우를 보며 말했다.
“어이, 내가 다케우치를 맡는다. 네가 나머지를 처리해라.”
강우는 눈썹을 찡그리며,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저 많은 걸 나보고 처리하라고? 그보다 넌 갑자기 뭐냐?”
미츠하시는 매서운 눈으로 강우를 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나머지를 맡는다. 네가 다케우치를 맡아라.”
미츠하시는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며 오른쪽 팔에 짙은 보라색 빛이 드리웠고, 마치 보랏빛 마그마를 뭉쳐놓은 듯한 커다란 팔이 자리 잡았다.
“옛정을 봐서 목숨은 뺏지 않으마.”
다케우치가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누가 누굴 처리한단 말이냐! 네놈들…….”
터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강우가 다케우치에게 날아들어 가슴팍에 무릎차기를 먹였다. 다케우치는 뒤로 날아가며 시위대 스무 명 이상을 치고 지나갔다. 다케우치는 시위대들을 치고, 깔아뭉개고, 겨우 다른 시위대들이 벽이 되어 멈출 수 있었다. 다케우치는 주저앉은 채 전방을 쳐다봤다.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내 마음대로.”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저의 다른 글, 마스터피스(Masterpiece)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직 많은 분량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예거보다 더 완성도 있고, 재밌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제 뜰에서 블로그를 통해 보실 수 있는 다른 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