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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147화 (147/195)

147화

미츠하시는 창문을 완전히 떼어버렸다. 창문을 한쪽 구석에 놓으니, 그늘이 진 부분이라 보이지 않았다.

창문이 있던 자리는 언뜻 보면 곧바로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츠하시는 두 남자를 보며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강우와 쿠라마가 먼저 올라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사성 상급…….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두 놈을 소리 없이 처리하는 건 불가능해.’

미츠하시는 두 남자를 살펴보다가 몸을 살짝 들어 강우 일행을 향해 올라오라는 듯이 손을 위로 저었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하시는 핫도그를 가리킨 다음 팔을 교차시켜 ‘X’자 표시를 만들어 보였다.

강우는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츠하시는 몸을 낮추고, 숨을 죽이며 두 남자를 살피고 있었다. 미츠하시는 그늘진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박스들 옆으로 몸을 뉘였다.

바깥에서는 강우와 쿠라마가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우는 핫도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서 잘 기다리고 있어야 돼. 알았지? 만약 누군가와 마주치면 싸우지 말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핫도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우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을 걱정하며 이것저것 챙겨주는 엄마처럼 굴었다.

“내가 불러도 오고, 누구와 마주쳐도 오는 거야. 어쨌든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항상,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핫도그는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우는 핫도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강우와 쿠라마는 미츠하시가 구멍을 낸 벽에 손가락을 끼워 타고 올랐다. 강우 일행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2층으로 들어섰다.

2층에 있는 몬스터가드는 미츠하시가 본 두 명뿐이었다. 그들은 포로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 지겨워 소위 말하는 땡땡이를 치러 올라왔던 것이다.

강우 일행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강우는 손짓만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강우는 뒤로 돌아서있는 남자를 미츠하시와 쿠라마에게 죽이라고, 그와 마주보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했다.

강우 일행은 벽에 바짝 붙어 천천히 움직였다. 두 남자는 몬스터가드들 중 누가 예쁘더라, 걔는 몸매가 좋더라, 걘 얼굴이 아니다 등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남자는 얘기를 하느라 강우 일행이 다가서는 것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강우가 손을 가볍게 저었다. 신호였다.

강우 일행이 두 남자를 향해 빠르게 다가섰다.

강우는 왼팔로 남자의 목을 감고, 오른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남자가 전신에서 빛을 뿜어낼 때, 뒤로 질질 끌고 가 벽에 붙었다.

미츠하시는 다른 남자를 넘어트리고, 양손으로 입을 짓누르듯 틀어막았다. 미츠하시의 양손은 악마의 것으로 변해 남자의 얼굴을 거의 다 뒤덮고 있었다. 쿠라마는 그대로 기왓장 깨기를 하듯이 남자의 복부를 내리쳤다. 남자는 몸을 비틀며 양 주먹으로 미츠하시를 마구 때렸다.

강우는 남자의 양발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까치발을 들고 있었다. 남자는 전신에서 빛을 뿜어내며 양발을 버둥거렸다. 남자는 자신의 능력을 쓰기에는 너무도 급박하고, 당황하고,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남자의 몸은 금세 힘이 빠져나갔고, 빛도 줄어들었다. 남자가 전신에서 뿜어내는 빛이 완전히 사그라지고, 몸이 축 쳐졌다.

미츠하시는 얻어맞으면서도 남자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미츠하시의 능력, 악마의 손은 남자의 입뿐만 아니라, 코까지 막아 호흡을 방해하고 있었다. 남자는 온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남자가 양발을 치켜들었다. 두 발로 바닥을 내리칠 생각이었다.

턱.

쿠라마가 양손으로 남자의 발목 뒤를 받쳤다. 남자는 잠시 몸부림치다가 이내 정신을 잃었다.

강우는 정신을 잃은 두 남자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어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자신이 들어온, 창문이 있던 곳으로 두 남자를 집어던졌다.

강우는 핫도그를 내려다보며 소곤거렸다.

“잘 받아.”

핫도그는 등으로 두 남자를 받아냈다.

강우가 다시 소곤거렸다.

“잘 보고 있어. 만약 깨어나서 공격하려고 하면 죽여도 돼.”

핫도그는 꼬리를 흔들며 강우를 올려다봤다. 강우는 “잘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한 뒤, 쿠라마와 미츠하시가 있는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핫도그는 등에 얹어진 두 남자를 바닥에 떨어트린 뒤, 앉은 자세로 내려다보며 헥헥거렸다. 꼬리는 아직도 살랑거리고 있었다.

강우 일행은 몸을 납작하게 엎드려 난간 쪽으로 다가가 1층을 내려다봤다. 1층 중앙에는 포로들이 결박된 채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백 명은 될 것 같았다. 그 주위로는 어림잡아 오십 명이 넘는 몬스터가드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정문 쪽으로 다른 몬스터가드들이 열 명 이상 포진해있었다. 강우 일행의 아래쪽은 시야가 닿지 않았다.

강우 일행은 반대로 이동해 확인했다.

척 보기에도 남다른 분위기를 가진 몬스터가드들이 있었다. 다른 몬스터가드들과 차이를 느끼기는 쉬웠다. 그들은 모두 소파 같은 곳에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다.

카드 게임을 하는 두 남자, 사탕을 빨고 있는 여자, 누워서 낮잠을 자는 남자,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는 덩치 큰 남자, 담배를 피고 있는 여자, 술을 마시고 있는 두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움직임 하나 없이, 마치 마네킹처럼 묵묵히 앉아있는 한 남자까지.

강우는 숨소리가 섞여있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들이 서열 1위부터 10위인가…….”

강우는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가 서열 1위일 것임을 확신했다.

‘저 녀석이겠지. 보통 저렇게 무게 잡는 놈이…….’

미츠하시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쿠라마는 1층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쳐야지.”

미츠하시가 말했다.

“너무 많지 않아요?”

“왜? 겁나?”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교섭이 우리 때메 틀어지면 안 돼. 그건 곤란하다.”

강우 일행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밖에서였다. 핫도그 앞에 기절해있던 남자가 눈을 떴다. 남자는 정신이 들자마자 눈이 마주친 건 핫도그였다. 놀란 남자는 소리를 지르려 했다.

“으아…….”

쿵!

남자가 소리를 지르기 전, 핫도그가 앞발로 남자의 안면을 찍어 눌렀다. 남자는 그대로 다시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문제는 핫도그가 찍어 누르며 낸 소리가 건물 안쪽까지 전해진 것이었다. 이 소리는 강우 일행에게도 들렸다.

강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런 젠장. 핫도그가…….’

1층에 있는 몬스터가드들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포로로 잡힌 예거들도 상황을 궁금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여자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여자가 다른 몬스터가드들을 향해 말했다.

“야, 몇 명 나가서 밖에 살펴보고 와.”

몬스터가드 몇 명이 “네!”하고 대답한 뒤,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몬스터가드들의 동태를 살피며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일단 내가 내려가야 되나? 지금이면 저 놈들에게 안 들키고 핫도그와 함께 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미츠하시가 말했다.

“나가야 되는 거 아닐까요?”

쿠라마가 말했다.

“차라리 지금 선수를 쳐버리는 건 어때? 어차피 몬스터보호협회 측은 우리 적이야. 이쪽이 교섭을 실패하는 게 뭐 어때? 여기 쓸어버리고, 러시아 쪽도 쓸어버리면 되지.”

미츠하시가 말했다.

“그건 아니죠. 그전에 저희가 다른 클랜이나 예거 파티의 표적이 될 수도 있어요. 일단 지금은…….”

강우 일행이 고민하는 찰나, 몬스터가드 몇 명이 입구로 향했다. 강우는 일단 지금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나가려고 했다.

덜컹, 하고 문이 열렸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몬스터가드들이 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들어선 것은 한 여자였다. 그 여자는 러시아 측에서 보내온 예거였다. 오늘의 교섭을 위해 온 여자의 이름은 안나.

안나는 금발과 갈색에 중간 정도 되는 머리를 모아 묶어 말총머리를 하고 있었다. 옷은 검은색 정장바지에 구두, 재킷을 입고 있어 하얀 피부가 더 도드라졌다. 체구는 날씬한 편이었지만, 옷 위로도 탄탄함이 느껴졌고, 이목구비는 뚜렷하다 못해 강렬할 정도였다. 두 눈은 푸른 에메랄드빛이었고, 입술은 아무것도 칠하지 않았는데도 밝은 분홍색이었다. 구두는 굽이 거의 없었는데, 180cm에 육박하는, 상당히 큰 키였다.

안나는 러시아 측 예거 파티 소속으로, 공식적인 등급은 칠성이었는데, 하급인지, 중급인지, 상급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안나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승급을 한, 소위 말하는 천재였다. 큰 성장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재원으로, 러시아에서 많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안나가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걸음을 안나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서열 10위 이상의 몬스터가드들을 제외하곤, 모두 긴장을 한 채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안나가 그 타이밍에 온 것은 강우 일행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덕분에 쭉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또한 교섭이 끝난 뒤, 전투를 벌일 수도 있었다.

강우는 정확히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교섭이 끝나고, 포로들이 풀려나면, 그때, 덮치는 것이었다.

남자가 안나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5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키는 170cm 내외에 뚱뚱한 체형이었다. 시꺼먼 얼굴은 두꺼비처럼 생겼는데, 호감을 주는 인상은 아니었다. 반팔 남방은 다 풀어헤쳐 맹꽁이 같은 배가 툭 튀어나와 있었고, 헐렁한 바지는 구김이 많았다.

남자가 안나에게 말했다.

“네가 러시아 쪽에서 보낸 사람인가?”

안나는 남자의 말투가 불편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안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제가 교섭인으로 왔습니다.”

남자는 입을 쩝쩝거리며 안나를 위아래로 훑다가 말했다.

“좀 더 차려입고 와야 되는 거 아니겠어? 중요한 자린데 말이야.”

“나름 신경 써서 입고 왔는데 말이죠.”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말했다.

“아니지. 미인계라도 쓰려면 응? 좀 파이고, 짧고, 그런 걸로 말이야.”

안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수다 떨러온 자리가 아니니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저희 러시아 측에서는 포로들의 전면석방을 요구합니다.”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고,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턱을 어루만졌지만, 그 모습은 마치 두터운 턱살이 늘어지지 않게 손으로 받치는 모양이었다.

“그냥은 곤란하지.”

“그냥이 아닙니다. 저희 측에서도 몬스터가드들을 전면석방을 하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걸 어떻게 확인하지?”

안나는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모르실 수가 없잖습니까. 그쪽에서 연락이 올 텐데요. 지금 포로들을 풀어주시면, 저희 측에서도 곧바로 포로들을 풀어줄 겁니다.”

남자는 느끼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다른 몬스터가드들에게로 시선을 옮겨 고갯짓을 했다. 몬스터가드들은 포로들의 결박을 풀기 시작했다.

미츠하시가 강우에게 물었다.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죠? 어차피 서로 다시 싸우게 되지 않을까요? 왜 저렇게…….”

“몬스터보호협회 입장에서도, 예거 파티와 클랜 측에서도 서로 입장이 같잖아. 원하는 것도 맞아떨어지고. 일단은 서로 다시 전력을 보충하는 거지. 타국이라도 같은 소속인데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고. 지금 다른 나라들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을 거다. 이제 곧 더 큰 전쟁으로 이어지겠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안나는 휴대폰을 들어 러시아 측에 연락을 취했다.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 그것으로 됐다는 사인이 떨어진 것이다.

안나가 연락을 취하자마자 남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자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남자는 그저 응, 그래 등과 같은 대답만을 하며 통화를 했다. 남자는 전화를 끊은 뒤, 안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됐어. 우리 쪽도 풀려나고 있으니…….”

안나가 남자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럼 일은 다 본 거 같으니, 포로들과 함께 나가겠습니다.”

안나는 포로들을 향해 입구 쪽으로 손짓을 했다.

“얼른 나가시죠.”

결박이 풀린 포로들은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몬스터가드들은 언제든 다시 덮칠 기세였다. 남자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보였다.

포로들이 모두 건물에서 빠져나가고, 안나만이 남아있었다. 안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저도 이만 가도록 하죠.”

남자가 느끼한 눈으로 안나를 쳐다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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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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