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모두들 더 이상 게의 냄새도 맡기 싫어질 즈음이었다. 안나는 예거 파티 러시아지부에 연락을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러시아지부의 소식은 의외로 미츠하시가 가장 먼저 알게 됐다.
인터넷으로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예거 파티 러시아지부는 무너졌다.
충격적인 사실.
예거 파티 측에서 나온 배신자들이었다. 예거 파티 러시아지부를 무너트린 것은 십성급 예거, 초록빛의 예거, 한국 출신의 예거였다. 그는 몬스터보호협회 총회장이었다.
몬스터보호협회와 예거 파티는 서로에게 전쟁을 선포, 일주일 후,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대규모 전투, 아니, 전쟁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이날 전쟁에서 앞으로의 세계 판도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만약 정부 측, 예거 파티 측이 패배한다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됐다.
모두의 표정은 심각해져있었다. 한 사람, 강우만을 빼고.
미츠하시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형님은 아무 걱정도 안 되십니까?”
“뭐가?”
“지금 세상이 뒤바뀔 수 있는 전쟁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겁니다.”
쿠라마가 말했다.
“우리도 전쟁에 가야되는 거 아니야? 일단 목표는 몬스터보호협회니까.”
안나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목표가 몬스터보호협회라고?”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안나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째서? 너희는 예거 파티 소속도 아니잖아.”
“뭐,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서 말이야.”
미츠하시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형님, 질문이 있습니다.”
“무슨 질문? 몬스터보호협회를 왜 공격하려 하냐고 묻는 거라면 관둬.”
미츠하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뇨, 저도 몬스터보호협회를 무너트리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녀석들은 지금 테러단체나 다름없어요. 모든 인류의 적입니다.”
“그럼 뭐가 묻고 싶은 거야?”
미츠하시는 강우와 두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의 전쟁은 일주일 후입니다. 그때 무슨 결판이 나도 나겠죠. 그 다음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다음?”
쿠라마가 말했다.
“그래, 몬스터보호협회를 무너트리려고 클랜을 만들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 다음 목표는 뭐야?”
강우는 팔짱을 낀 채 오른손을 턱으로 가져갔다.
“목표라…….”
모두의 시선이 강우에게 모아져있었다. 강우는 턱을 어루만지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는데?”
미츠하시가 말했다.
“잘 모르겠다니요?”
쿠라마는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른다니?”
약간은 씁쓸한 듯한 미소가 강우의 입가에 묻어났다.
“내가 처음 예거 등록을 할 때만 해도, 그때는 목적 자체가 참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었지.”
미츠하시가 물었다.
“뭐 때문이었는데요?”
“그런 거 있잖아. 그냥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시덥잖은 것들.”
쿠라마가 물었다.
“지금은?”
“처음 목표는 이미 이룬 셈이지.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 정도는 벌어놨으니까.”
강우는 배가 불러서 사람마냥 누워서 퍼질러져있는 핫도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빛은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것과 비슷했고,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져있었다.
“뭐, 나름대로 목표가 있긴 하네.”
미츠하시가 물었다.
“뭡니까? 답답하게 하지 말고, 똑바로 좀 말해봐요.”
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흘겼고, 미츠하시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강우는 찡그렸던 인상을 피고, 씩 웃으며 말했다.
“나도 십성급이 돼야겠어.”
강우의 발언에 미츠하시와 쿠라마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음을 표정으로 보여줬다. 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몬스터보호협회만이 아니야. 블랙마켓의 능력자들도, 예거 파티나 클랜의 녀석들도 공격해왔어. 나에게 덤벼오는 것은 나름 재밌어서 괜찮지만, 핫도그가 다치는 걸 원하지는 않거든. 뭐, 핫도그를 잡을 수 있는 녀석도 드물겠지만…….”
미츠하시가 말했다.
“그 말의 뜻은…….”
강우는 기지개를 킨 뒤, 말했다.
“우선 아무나 덤벼들지 못할 만큼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겠지.”
미츠하시는 씩 웃으며 말했다.
“좋네요. 좋습니다.”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 세계최강이 되겠다, 그런 게 목표야? 그게 뭐야?”
미츠하시가 목소리를 높였다.
“누님! 누님은 모르시겠습니까? 이 얼마나 멋진 목표입니까? 정점에 서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모두를 지킬 수도 있는 겁니다!”
미츠하시는 커다란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오른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저도 목표가 생겼습니다. 저는 세계 최강의 남자와 함께 하는! 세계 최강의 클랜원이 될 겁니다!”
쿠라마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가……. 너희 머릿속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안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쨌든 지금 당장 목표는 몬스터보호협회라는 거지?”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일단 지구상에서 몬스터보호협회를 없앤다. 모두 쓸어버리면 나에 대한, 클랜에 대한 평가도 올라가있겠지.”
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안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나도 너희 클랜에 받아줬으면 좋겠어.”
“우리 클랜에?”
강우는 안나의 말에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이내 생각에 잠겼다.
쿠라마가 말했다.
“뭐? 뭐야? 지금 고민하는 거야? 이 여자는 방금 만난 사이야. 그런데 클랜에 받아들이는 걸 고민하는 거야?”
미츠하시는 검지를 세워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저도 만난지 얼마 안 돼서 클랜에 들어왔는데…….”
쿠라마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흘겼고, 미츠하시는 황급히 “전 조용히 있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쿠라마는 안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예거 파티 소속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우리 클랜에 들어오겠다는 거지?”
“예거 파티 소속이라고는 해도, 나는 러시아지부 소속이야. 그리고 지금 우리 지부는 일시적으로 사라진 상태라고 할 수 있지.”
강우가 말했다.
“그래서?”
“나 역시 일시적으로나마 너희 클랜과 함께 움직이겠다는 거야. 어차피 목적은 몬스터보호협회를 치는 거잖아? 다음 주에 있을 전면전에 참여하는 거고.”
강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나쁘지 않아. 목적도 같고. 전면전에 끼어들려면, 우리는 예거 파티 측에 합류하는 모양새가 나와야 되니까.”
안나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된 거지?”
쿠라마가 대화에 끼어들려고 할 때, 강우가 손을 들어 보여 멈추게 했다. 쿠라마는 열었던 입을 다물며 지켜봤다.
강우는 안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하지만…….”
안나는 강우를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하지만?”
“임시적으로 함께 하는 것은 원하지 않아. 내 조건은 예거 파티를 나와서, 완전히 우리 클랜원이 되는 거다.”
안나는 강우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안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내가 클랜에 들어가길 원하는 거지? 어차피 나는 너희가 전면전에 참가할 수 있게 연결만 해주면 되는 거 아니야? 오늘 몬스터보호협회 중국지부를 잡은 걸로 인해 등급도 올라갈 거고 말이야.”
“나와 붙었던 녀석 등급 알아?”
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칠성 중급 정도일 거야. 잿빛의 힘을 쓸 줄은 몰랐지만.”
“칠성 중급이라…….”
강우는 씩 웃으며 쿠라마와 미츠하시를 쳐다본 뒤 말했다.
“아마 우리 클랜원들도 그 정도는 싸울 거야. 아니, 그거보다 더 셀지도.”
강우의 말에 쿠라마와 미츠하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우와 진진의 싸움은 차원이 달랐다. 자신들의 수준보다 한참 위인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강우는 쿠라마와 미츠하시의 마음을 읽고 있는 듯이 말했다.
“아직 본인들은 모르는 거 같지만 말이지.”
강우는 안나와 두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너도 그 정도는 하잖아?”
안나는 두 눈을 빠르게 깜빡이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이지. 나도 칠성급이야. 그리고 곧 더 올라갈 거고.”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거야. 너도 보다시피 우린 인원이 부족해. 너처럼 강한 사람을 들여야 되는데,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이 정도 등급이 되면 돈 몇 푼에 움직이지도 않잖아. 자기의 신념에 따라 움직이니까.”
강우의 말에 모두 동감하는 듯했다. 보통 삼성급 이상만 돼도 대부분의 일반인은 손에 넣기 힘든 돈을 벌 수 있었다.
모든 능력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저 다 쓰지도 못할 돈인데도 모으는 자체에서, 쌓여가는 재미를 느끼거나, 특정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강우가 말했다.
“우리 클랜에 들어오는 게 어때?”
안나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결정됐네. 넌 이제부터 우리 클랜원이다.”
안나가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니까.”
“우리 클랜에 들어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단번에 거절했겠지. 생각을 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여지가 있다는 거잖아. 안 그래? 고민할 거 없어. 러시아 지부는 이미 무너졌어. 거기서 뭐가 더 볼 게 있겠어?”
“하지만 나는 예거 파티의…….”
강우가 안나의 말허리를 잘랐다.
“이번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의 전투는 결코 대규모로 이뤄지지 않을 거야.”
안나뿐만 아니라, 미츠하시와 쿠라마도 강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거 파티나 몬스터보호협회나 어차피 많은 사상자를 내고 싶어 하진 않겠지. 이번에 무너지더라도 그 다음을 기약해야 될 테니까. 어차피 상위급 몇 명의 대결로 판가름 날 것이 분명해. 오성급 수십 명도 육성급 한 명에게 당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으니까.”
강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안나와 쿠라마, 미츠하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몬스터보호협회 측에서 극단적으로 나오기는 했었지만, 예거 파티는 쓸데없는 피를 흘리고 싶지 않을 게 분명했고, 정예멤버들로 구성해 전투를 벌이자는 말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몬스터보호협회 측에서도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고마운 제안. 이번의 경우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보호협회에서 테러에 가까운, 급습을 했기에 여러 나라들의 예거 파티를 함락시킬 수 있었지만, 총력전이 된다면 분명히 숫자가 부족했다. 하지만 핵심멤버들끼리 붙어 승부를 판가름 짓는다면, 승산이 높아졌다. 그 후에 마찰이 생기더라도 이미 주력 멤버들이 없는 상태라면, 다수를 이길 수 있을 것이었다.
또한 정예멤버들끼리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예거 파티와 클랜에서 몬스터보호협회 측으로 넘어올 이들도 더욱 많아질 확률이 높았다.
미츠하시가 말했다.
“그럼 어쨌든 잘 된 거 아닙니까? 정말 세계 3차대전이 될 수도 있던 건데, 소수대소수의 대결로 끝날 수 있잖아요. 사막으로 장소를 잡을 때부터 일반인들이 피해를 입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요.”
강우가 말했다.
“뭐…. 우선적으로 예거 파티나 몬스터보호협회나 모두 윈윈(win-win)이긴 하지. 금방 한 쪽은 지옥을 맛보게 될 테지만.”
안나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왜 내가 너희 클랜에 들어가야 되지?”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너는 이번 전투가 한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날 거 같아?”
“그게 무슨 말이지?”
강우는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일단 쿠라마의 비행기가 있는 쪽으로 가면서 얘기하지.”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번 77페스티발에는 참가를 해볼 생각입니다.
예거나 마스터피스와는 전혀 다른 글입니다.
예거보다도 오래 전부터 생각을 해왔던 글인데, 꽤나 재밌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우선은 1인칭 소설인데, 조금은 하드코어(?)하기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끌어내기도 하는 소설이 되지 싶습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써봐야겠지요. 확정되면 다시 한 번 후기를 통해 말씀드려보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예거의 일일연재는 멈추지 않으니, 그 부분은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들 건강 잘 챙기시고요.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