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54화 (154/195)

154화

안나가 말했다.

“내가 왜 그쪽으로 가?”

강우가 물었다.

“너 중국에 뭐 타고 왔는데?”

“비행기.”

“그럼 어차피 공항으로 가야 되잖아. 일단 같이 가자고.”

안나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며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는 아직 안나에게 신뢰가 없기에 꺼림칙했지만, 함께 하게 된다면 큰 힘이 될 거란 것은 확신했다.

미츠하시는 안나가 이미 말려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상황이 그저 재밌기도 하고, 새로운 클랜원이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설렘으로 다가와 있었다. 미츠하시는 안나가 다른 예거들을 걱정하던 모습, 함께 싸웠던 모습에서, 근거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일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안나의 출중한 외모도 한몫하고 있었지만.

안나가 물었다.

“한쪽이 승리하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란 말은 대체 뭐야?”

“종말론자들 알지? 에스카토스.”

안나는 웬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에스카를 말하는 거지? 당연히 알고 있지. 종말론을 내세우는 종교 같은 거잖아.”

“그 단체가 생각보다 큰 거 알아?”

“그래? 커봐야 얼마나 크다고……. 그리고 그것들은 왜?”

강우는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안나뿐만 아니라, 미츠하시와 쿠라마도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모았다.

휴대폰 화면에는 에스카의 공식 홈페이지가 떠있었다.

쿠라마가 물었다.

“이건 왜 보여주는 거야?”

강우가 화면 오른쪽 하단을 가리켰다. 방문자를 실시간으로 카운트하고 있었다. 그 숫자는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중복되는 방문자 숫자도 포함된 것이긴 했지만, 이미 수십억을 넘어서고 있었다.

강우가 말했다.

“에스카는 더 이상 소규모 단체가 아니야. 원래도 그 숫자가 늘고 있었는데, 이번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의 전면전 소식에 더욱 사람이 몰려들고 있지. 예거 파티 측에서는 몬스터보호협회를 신경 쓰느라 전혀 견제를 못하고 있던 것 같고 말이야.”

미츠하시가 말했다.

“형님이 보시기엔 에스카가 문제가 될 것 같습니까?”

강우는 확신에 찬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기본 사상 자체가 종말에 입각한 놈들이야. 뭔 문제를 일으켜도 분명히 일으킨다. 아마 그 시점은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의 전면전 직후쯤이 되겠지. 뭐,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들도 있지만.”

안나는 강우의 가설들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게 뭔데?”

강우는 휴대폰 화면을 넘기며 설명을 곁들였다.

현재 에스카에서는 예거 파티나 몬스터보호협회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세상에 다가가고 있었다.

우선 예거 파티는 능력자들에게 주어진 힘의 근원에 대해서 알아보기 보다는, 그 힘을 운용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힘의 근원에 대해서 연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고, 그저 몇몇 사람들의 ‘진화’ 혹은 ‘신이 내린 힘’ 정도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들의 최우선 목적은 힘과 함께 등장한 몬스터들을 막는 것에 있었다.

몬스터보호협회는 능력자들의 힘은, 새로운 종의 동물, 몬스터들과 교감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몬스터들은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겼다. 그저 좀 더 큰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종이라 생각했다.

에스카는 달랐다. 기본적으로 주어진 힘도, 갑자기 생겨난 몬스터도, 모두 이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에스카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지만, 구원 받을 방법 또한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간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힘과 몬스터들을 함께 보낸 미지의 존재, 절대자가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에스카가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힘의 근원, 몬스터의 근원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의 전면전이 발표됐을 시점, 그 연구가 결실을 맺었다.

능력자들의 힘도, 몬스터들도 이 세상에 그냥 갑작스레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에스카 측의 연구와 추정이었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왜냐하면 증거가 발견됐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 결과는 예거 파티에서 탈퇴를 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하얀 늑대가 가세했기에 가능했다.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 수심 12,000m 이상.

하얀 늑대는 맨몸으로 심해를 탐험했다. 수심 5,000m 이상부터는 최하 7성급 몬스터들이 득실거렸다. 잠수함 같은 장비로 내려가는 것은 불가능.

깊어질수록 더 많은 몬스터들이 출몰, 그리고 하얀 늑대는 수심 12,000m까지 다다랐다. 하얀 늑대가 잠수를 한 지점, 크고 작은 거품들이 올라왔다. 그 거품은 수심 12,000m보다 더 아래서부터 올라왔는데, 하얀 늑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그리고 카메라에 담긴 것.

거품 속에는 각양각색의 빛이 담겨있었다.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능력자들이 가진 힘이었다. 하얀 늑대는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면 위로 올라온 거품들은 공기와 맞닿자마자 톡 터졌다. 거품 안에 들어있던 아주 자그마한 빛들은 마하 속도로 퍼져나갔다.

하얀 늑대는 푸른빛 하나를 쫓아 수면 위를 달렸다. 푸른빛은 그대로 중국을 향해 날아갔다. 푸른빛은 한 10대 소년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하얀 늑대는 다시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안으로 향했다. 그 지점은 여전했다. 거품들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빛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얀 늑대는 이번엔 붉은빛을 쫓았다.

모든 빛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미성년자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빛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능력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얀 늑대는 다른 거품들을 쫓았다. 바로 검은색이었다. 검은색을 담고 있는 거품들 역시 다른 색들과 같았다. 공기와 만나자마자 터진 뒤,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리고 다른 점은 미성년자인 사람들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 불길한 검은색은 나무 위, 땅 위, 물 위와 속, 가끔은 동물의 위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몬스터가 됐다.

거품 안에 있던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빛은 무조건 1세부터 20세 생일을 맞이하기 전인 사람들을 향해 날아갔고, 예거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했다. 에스카 측에서는 빛을 받아들였고, 아직 생일을 맞이하지 않은 20세 남녀 세 명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생일날 자정이 되는 순간 어김없이 능력을 얻었다.

한 가지 더.

하얀 늑대는 실험을 해봤다. 만약 거품 안에 들어있는 빛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힘을 더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검은색 역시 그럴 것인지.

하지만 바닷속에서 올라오는 거품은 터트릴 수 없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해도 터지지 않았다. 수면에 올라오는 순간 터지기에 산소 탱크를 이용해 공기와 맞닿게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빛이나 검은색을 담은 거품은 수면 위로 솟아나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터지지 않았다.

수면 위로 거품이 올라와 사방으로 퍼지는 빛 역시 마찬가지였다. 빛과 검은색은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었고, 몸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미성년자나 다른 생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처음부터 갈 곳이 정해진 것처럼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모든 해안을 1mm도 놓치지 않고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바는 빛의 거품이 일어나는 곳은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뿐이었다. 그리고 에스카에서는 이곳이 유일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에스카는 조만간 하얀 늑대를 필두로 거품이 일어나는 지점, 수심 12,000m 이상을 탐사할 계획이었다. 에스카는 그곳에 모든 힘과 몬스터의 근원지라 확신했고, 그곳에 창조를 하는, 신과 같은 어떠한 존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강우가 말했다.

“이로써 에스카는 더 이상 단순한 종말론자들이 아니야. 일종의 종교 같기도 하지만,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단체지. 예거 파티보다, 클랜보다, 몬스터보호협회보다, 블랙마켓보다도 앞서갔어.”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게 된 거야?”

강우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힘이 일부분 녹아내렸다. 검은색 힘은 커다란 마스크처럼 눈 아래까지만 가리고, 강우의 두 눈과 콧대, 머리를 드러나게 했다.

안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미츠하시와 쿠라마는 흠칫 놀랐다. 특히 오랜 기간 알고지낸 쿠라마는 더욱 그랬다. 강우가 얼굴의 일부분이라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기에.

강우는 휴대폰을 주머니로 넣으며 말했다.

“난 에스카라는 단체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사이트를 자주 드나들었거든. 여러 가지 가설들을 세우는데, 그게 재밌었어. 그런데 이번에 진짜로 결실을 거둔 거지. 사실 재미로 드나들었지, 녀석들이 이런 결과를 낼 줄은 몰랐어.”

안나가 말했다.

“그런데 방문 횟수가 수십억이나 되는 곳에서, 그런 사실이 밝혀졌는데 왜 아무도…….”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아무래도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의 전면전에 맞춰져있으니까. 그리고 이 내용은 지금 막 발표됐어. 당연히 내가 말해서 알 수밖에.”

미츠하시가 물었다.

“그런데 형님은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거예요?”

미츠하시와 쿠라마, 안나는 순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우가 에스카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강우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 사이트에 들어간 지 꽤나 오래 됐거든. 그래서 회원 등급도 높아. 웬만한 에스카의 일원보다도 높을 정도지. 그래서 어떤 특별한 소식이 있으면 먼저 연락이 오거든. 사실 예전에 날아오는 것들은 대부분 새로운 가설, 음모론에 가까운 것들이었어. 그런데 얼마 전에 하얀 늑대가 합류하고, 결실을 맺은 거지.”

안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될 거 같은데?”

“글쎄……. 뭐가 일어나도 일어나지 않을까? 분명한 건 예거 파티, 클랜, 블랙마켓, 몬스터보호협회만큼, 혹은 그보다 큰 신흥세력이 될 거야. 이놈들이 생각보다 가진 힘도 엄청나거든.”

미츠하시가 물었다.

“그렇게 많은 능력자들이 그곳으로 간 겁니까?”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녀석들은 능력자들을 만들어내고 있어.”

쿠라마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모두가 알고 있는 거야. 몬스터의 심장을 먹는 거지.”

미츠하시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죽을 수도 있잖습니까. 제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전 다시는 몬스터의 심장을 먹지 않을 거예요.”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죽는 녀석들도 많지. 에스카에서는 죽는 녀석들이 추앙을 받아. 살아남아서 강한 녀석들만큼이나. 게다가 목숨을 잃게 되면, 그 가족들의 평생을 책임져주니, 잃을 것이 없던 녀석들은 전부 시도하는 거지.”

쿠라마가 말했다.

“녀석들의 목적은 뭐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마 극소수의 윗대가리 놈들만 알고 있겠지. 뭐, 이제 단순한 종말론자들에서 희망의 빛을 본 단체로 바뀌었으니, 그 거품이 나오는 곳을 막으려고 하지 않을까? 잘은 모르지만.”

안나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이와 같은 정보들을 들여다보다 말했다.

“이건 정말……. 잘하면 정말 영원히 몬스터들이 출몰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그거대로 쉽지 않을 걸?”

“그게 무슨 말이지?”

“검은색이 담긴 그 거품이 나오지 않게 막는 건, 아마 빛이 담긴 거품 또한 나오지 않게 되는 걸 거야. 아마 그에 대한 반발이 있을 거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항상 응원과 조언을 보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쭉 지켜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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