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이동 중 강우와 쿠라마의 눈이 마주쳤다. 강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다시 둘의 눈이 마주쳤다.
“왜 그렇게 쳐다봐?”
쿠라마는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강우는 미소를 머금은 채 드러난 얼굴 부분을 가리켰다.
“이거 때문에 그래?”
쿠라마는 다시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쿠라마는 잠시 강우와 눈을 마주치다가 퉁명스레 말했다.
“알면서 뭘 물어보고 그래?”
미츠하시가 물었다.
“형님, 눈뿐이긴 합니다만, 얼굴은 갑자기 왜 드러내신 겁니까?”
쿠라마가 미츠하시의 말을 거들었다.
“나도 그게 궁금했어. 넌 처음부터 얼굴을 가리고 활동했었잖아.”
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좀 답답해서 말이지. 뭐, 얼굴을 다 드러낸 것도 아니잖아?”
강우는 이동 속도를 높였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가자.”
강우가 앞서나갔고, 나머지 일행들이 뒤를 따랐다.
강우는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몬스터가 되는 거품……. 검은색. 내 힘도 검은색……. 나는 몬스터가 아니다. 내가 처음부터 강한 힘을 얻은 건 아마……. 뭐, 상관없지.’
강우 일행은 공항으로 향했다.
강우 일행은 쿠라마의 비행기에 올랐다. 안나는 쿠라마의 전용기에 놀란 눈치를 감추지 못했다. 안나는 칠성급 예거로서 받는 연봉이 120억에 수당이 붙는다고 했다. 하지만 수당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300억을 넘기기는 힘들었다.
사실상 예거 파티에서 활동하면, 예거 클랜이나 프리랜서로 혹은 블랙마켓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돈은 많이 벌 수 없었다. 예거 파티는 일종의 봉사정신이 필요했다. 대신 장점도 있었다. 여러 가지 복지혜택이 여느 대기업 클랜보다도 뛰어났고, 능력 위주로만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츠하시가 물었다.
“그래도 나라면 예거 파티에 안 있을 거 같은데…….”
안나가 말했다.
“지금 네가 이렇게 활동하는 것도 꼭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니잖아. 이미 나도 평생 놀고먹을 돈 정도는 있다고.”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돈이 없으면 괴로운데, 막상 또 너무 많으니까 어디에 쓸지 모르겠네. 원래 비행기를 사려고 했는데, 쿠라마가 이미 갖고 있어서…….”
쿠라마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너희 모두에게 유류비나 주차비, 점검비 같은 건 모두 받아낼 거야. 아, 렌트비도 계산해서 받을 거야.”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원래 챙겨주려고 했어.”
안나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럼 이제부터 어디로 갈 거야?”
강우는 휴대폰을 꺼내들며 대답했다.
“일단…….”
미츠하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모두의 시선이 미츠하시에게로 옮겨졌다. 미츠하시는 강우에게 손날을 세워 자신의 얼굴 앞으로 가져간 뒤, 고개를 꾸벅거렸다.
“말 끊어서 죄송합니다.”
강우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미츠하시는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말할 게 있습니다.”
쿠라마가 눈썹을 찡그리며 툴툴거렸다.
“뭔데?”
미츠하시는 검지를 세워 안나를 가리켰다.
“너!”
안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답했다.
“어? 나? 왜?”
미츠하시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너도 형님이나 누님한테 존댓말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너보다 클랜에 먼저 왔어. 너와 나는 서로 반말을 쓰지. 그리고 난 형님과 누님한테는 경어체를 쓴다. 그런데 넌 모두에게 반말을 써! 족보가 꼬인다고!”
안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굳이 그래야 돼? 무슨 그런 걸로…….”
미츠하시가 안나의 말허리를 끊었다.
“그래야 돼!”
안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모두의 눈치만을 살폈다.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강우가 미츠하시를 보며 말했다.
“그럼 너도 반말해. 그러면 되잖아.”
미츠하시는 오른쪽 주먹 밑동으로 왼쪽 손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아, 그러면 되겠…….”
미츠하시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 뭐라고요?”
쿠라마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들었잖아. 너도 반말해. 우린 아무도 너한테 존댓말을 하라고 한 적 없어.”
미츠하시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강우는 미츠하시가 웃기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말 편하게 해. 우리끼리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잖아. 편하게 지내는 게 좋지.”
미츠하시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되…. 나?”
쿠라마가 말했다.
“사내새끼가 왜 그래? 그냥 편하게 해!”
미츠하시는 쿠라마와 두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알았어! 그럴게! 누님.”
미츠하시는 강우와 쿠라마와 얘기할 때 호칭은 그대로 붙인다고 했다. 모두들 미츠하시가 별거 아닌 일로 어려워하는 모습에 그저 웃음을 흘렸다.
안나가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쿠라마가 말했다.
“미국으로 가면 되나?”
강우는 잠시 기다리라는 듯이 손바닥을 보였다.
“아, 그거. 잠시만.”
강우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미츠하시가 물었다.
“뭡니까?”
강우는 휴대폰을 보이며 말했다.
“다음 주, 네바다 사막에서 벌어지는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의 전면전에 대한 내용이 나왔어. 그런데 생각보다 더 인원이 적은데? 아무래도 두 단체 모두 에스카가 신경 쓰이긴 한 모양이야.”
안나가 물었다.
“몇 명이야?”
강우는 휴대폰을 주머니로 넣으며 말했다.
“10대10. 전투에 참여하는 인원은 열 명밖에 안 돼.”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는 강우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합의점을 찾았다.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 각각 열 명씩, 1대1 대결을 순서대로 펼치는 것이었다. 룰은 간단했다. 상대가 항복을 선언하거나 죽음에 이르면 승리.
만약 5대5로 동일한 승수가 나왔을 시엔 각각 대표를 뽑아 결정전을 치르기로 했다. 대전 순서는 서로가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졌다.
강우가 말했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예상 못한 부분이야. 열 명이라니…….”
미츠하시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될 까요? 아니, 될까?”
쿠라마가 말했다.
“뭐, 일단 예거 파티를 만나보면 알겠지.”
비행기는 미국으로 향했다.
현재 예거 파티 미국지부에 몇몇 예거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몬스터보호협회와의 전투 때문이었다. 몇몇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뿌리를 뽑을 수 있을 때 뽑아야 한다는 것, 에스카는 그 다음이라 했다.
하지만 다수가 현재의 결정에 만족했고, 그대로 진행됐다.
예거 파티 미국지부에는 몇몇 대규모 클랜의 클랜장들과 블랙마켓 측 능력자들이 모여들었다. 몬스터보호협회와 맞붙기 위해서였다.
몬스터보호협회 측에 앙심을 품고 있기 때문인 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단은 최후의 10인에 선정되면 혜택이 많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단 한 번의 전투로 200억 겔드란 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앞으로 예거 파티의 일에 참여할 때 특별한 과정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앞으로 몬스터보호협회와 에스카에 대한 예거 파티의 입장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두 번째 조건과도 맞물리는 것으로 필요에 의해 많은 정보들, 그 이상으로 일에 대해 어떠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단, 예거 파티에서 먼저 공개하기 전에는 이 같은 사실들에 대해 어떠한 문서나 온라인, 구두(口頭) 등 누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추후에 예거 파티의 일에 대해 참여는 물론, 깊이 파고들거나, 간섭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기존의 예거 파티 소속 예거나 일종의 동맹 관계인 클랜과는 다르게 자유로웠다.
강우는 이 같은 사실을 알자마자 피식 웃었다.
“자신들 소속의 예거들은 거의 안 쓰겠다는 거나 다름없구만.”
예거 파티는 일종의 명예회원을 받아들이는 셈이었다. 딱히 손해 보는 것 또한 없었다. 명당 200억 겔드란 투자가 있지만, 예거 파티 소속들이 전투를 하지 않고, 그들만큼 강한 이들이 전투를 치러준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앞으로 이들 중 일부는 앞으로 진행될 일에 참여를 한다면, 그 또한 남는 장사였다.
강우는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로 넣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빡세겠는데. 아무튼 열 명 중 한두 명은 예거 파티에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겠구만. 그런 멍청한 놈들이 꼭 하나씩 있으니까.’
강우 일행이 탄 비행기는 뉴욕을 향하고 있었다.
예거 파티 미국지부는 미국 내에만 다섯 개였다. 단지 이번 최후의 10인에 뽑히길 원하는 이들은 뉴욕지부에 방문해야 했다.
강우 일행도 뉴욕지부로 향했다.
뉴욕 거리의 많은 사람들은 핫도그를 알아봤다. 핫도그는 온순한 모습을 보였고, 큰 호감을 샀다.
뉴욕지부에 거의 다 왔을 즈음이었다.
“아아아아악! 도와줘요!”
“살려주세요!”
“후퇴해야 돼!”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콰아아아앙-!
세 명의 능력자가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세 능력자의 등급은 오성 상급, 예거 파티 소속이었다.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는 육성 하급으로 분류되는 ‘라뚜’였다. 라뚜는 쥐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크기는 코끼리 이상이었다.
몇 톤이나 나가는 무게에 네 개의 앞다리, 강한 도약력을 가진 두 뒷다리는 개구리의 것과 같았다. 진한 회색빛 털은 하나하나가 가시처럼 뾰족했고, 머리는 두 개가 달려있었다. 네 개의 눈은 주황빛으로 빛났다. 모든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솟아있었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입에서 주황빛 에너지파를 뿜어냈는데, 폭발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강렬한 타격을 가했다. 정통으로 맞는다면, 육성 중급의 능력자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한 남자 예거가 소리쳤다.
“우리로는 안 돼!”
다른 여자 예거가 말했다.
“이미 지원요청을 했어! 뉴욕지부가 바로 코앞이니 금방 도착할 거야! 조금만 더 버텨!”
또 다른 남자 예거가 전신에서 남색 빛을 뿜어냈다. 남자가 라뚜를 향해 양손을 뻗자 커다란 남색 빛의 사슬이 튀어나갔다. 고리 하나하나는 웬만한 성인남자의 몸통만큼 커다랬다.
쇠사슬은 남자의 손짓에 따라 허공을 가르는 뱀처럼 움직여 라뚜를 휘감았다.
터어엉-!
“키이이익-!”
라뚜는 단번에 남색 빛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사슬을 만들어냈던 남자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아아!
라뚜의 왼쪽 머리에 달린 입에서 주황빛 에너지파가 남자를 향해 뻗어나갔다. 남자는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방어할 수도 없었다.
남자에겐 주황빛의 에너지파가 죽음의 사신처럼 보였다.
“컹!”
터텅!
핫도그가 남자의 앞으로 튀어나갔다. 핫도그의 가슴 중앙은 털과 가죽, 피부 안쪽에서부터 주황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핫도그가 입을 쩍 벌려 주황빛 에너지파를 향해 거대한 화염을 뿜어냈다. 핫도그가 뿜어낸 화염과 라뚜의 주황빛 에너지파가 맞부딪치며 퍼졌고, 화염 장막과 주황빛 장막이 되어 뒤섞이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원래는 삼성 하급인 헬하운드, 핫도그가 육성 하급인 라뚜와의 힘 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핫도그는 황급히 튀어나가 받아내느라 힘을 전부 끌어내지도 못한 상태였다.
강우는 핫도그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 녀석 은근히 사람을 엄청 좋아한다니까…….”
라뚜의 오른쪽 머리가 후속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터텅!
강우가 라뚜를 향해 뛰어올랐다.
강우는 눈 깜짝할 사이 라뚜의 오른쪽 머리 위에 떠있었다. 그 순간 강우의 얼굴은 다시 검은색 힘으로 둘러싸여 ‘집행자’의 모습이었다. 강우의 오른쪽 주먹 역시 검은색 힘으로 휘감겨있었다. 강우는 오른쪽 주먹을 라뚜의 중앙을 향해 휘둘렀고,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검은색 잔상이 생겼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강우의 오른쪽 주먹이 라뚜의 오른쪽 머리 중앙을 내리치는 순간이었다.
터어어어어어어엉-!
누군가 오른발 뒤꿈치로 라뚜의 왼쪽 머리 중앙을 내리쳤다.
쿠우우우우우웅-!
라뚜는 두 머리 모두 박살이 나며 턱부터 바닥에 처박혀 즉사했다. 라뚜의 머리를 내리친 두 사람이 바닥에 착지했다.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강우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피부가 새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백인 여자였다. 가슴까지 내려오며 구불구불한 밝은 분홍색 머리는 숱이 많다 못해 풍성했고, 두 눈썹은 아주 밝아 금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서양인 특유의 움푹 들어가고 커다란 두 눈에 두꺼운 쌍꺼풀을 가지고 있었다. 속눈썹도 매우 길었고, 진한 분홍색으로 눈화장을 하고 있었다.
높은 콧대에 도톰한 입술은 장미꽃이 약간 시든 듯 보랏빛이 도는 색깔을 칠했다. 키는 170cm 내외로 보였고, 위아래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상의는 목이 파여 가슴골이 보이는 검은색 시스루에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코트를, 하의는 검은색 짧은 반바지에 검은색 가터벨트 망사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신발은 굽이 있는 검은색 구두였다.
검은색 망사 소재로 된 초크 목걸이, 가슴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목걸이, 여러 개의 팔찌, 휘황찬란한 귀걸이 등 겉모습이 유난히 튀었다.
범상치 않으면서도, 마치 할리우드 스타 혹은 유명 모델 같은, 출중한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강우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있던 검은색 힘이 살짝 녹아내려 눈을 드러냈다.
강우와 여자는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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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