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여자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자는 다시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강우 역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여자는 강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집행자?”
여자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강우와 여자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여자가 천천히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강우는 여자를 경계했다.
‘라뚜를 한 방에 보냈다. 보통 여자가 아니야.’
여자가 강우에게 확 다가섰다. 순간 주변 사람들 모두가 긴장했고, 강우가 움찔하는 순간이었다.
“설마 진짜 집행자일 줄이야! 꼭 만나고 싶었어!”
여자가 양손으로 강우의 오른손을 잡았다.
강우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자는 강우를 생이별을 했다가 10년 만에 만난 듯이 반가워했다.
“정말 반가워! 난 알리사야!”
강우는 얼떨결에 악수를 하며 말했다.
“아, 그래. 반가워. 그런데 넌 왜 나를…….”
알리사는 처음에 사나웠던 인상과는 달리, 밝게 웃으며 말했다.
“난 오래 전부터 네 팬이었어.”
알리사는 강우가 처음 활동할 때부터, 아주 작은 기사까지 모두 찾아봤었다. 알리사는 웹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강우가 F.N.C에서 활동한 것을 보게 됐고, 그 후로 일일이 행보를 지켜봤었다.
강우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랬구만…. 그나저나 손 좀…….”
알리사는 아직까지도 양손으로 강우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었다. 알리사는 얼굴이 빨개지며 황급히 강우에게서 손을 뗐다.
“아, 미안. 너무 반가워서.”
강우는 검지로 눈썹 위쪽을 긁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한테 관심이 있었지? 난 등급이 그리 높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것은 바로 엑시큐셔너(사형 집행자) 때문이었다. 그것은 강우의 닉네임이자 능력자로 활동하기 전, 가장 좋아했던 게임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알리사도 그 게임을 좋아했고, 그 이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전신을 검은색으로 감싼 모습이 똑같지는 않지만, 닮아있었다.
알리사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빅 팬이야!”
“그래, 뭐, 고맙네.”
알리사는 쿠라마와 미츠하시, 안나를 쳐다본 뒤,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얼마 전에 몬스터보호협회 일본지부를 박살낸 것도 봤어. 최고였어!”
알리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 여자들은 그렇다 쳐도, 저 녀석이랑은 왜 같이 다니는 거야? 몬스터보호협회 일본지부에 있던 남자잖아.”
알리사는 미츠하시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 이제 같은 클랜이거든.”
“클랜?”
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클랜을 만들었어. 엑시큐션(집행)이란 이름으로.”
알리사의 두 눈이 커지고, 반짝반짝 빛났다.
“클랜? 정말? 그럼 네가 클랜장이야?”
“뭐, 그렇지.”
알리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정말이야? 그럼 나도 꼭 그 클랜에 들어가야겠다! 꼭! 넣어줄 거지?”
강우는 난처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저기, 그게…….”
알리사는 강우와 두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은 왜 드러낸 거야? 평상시에는 이러고 다니나? 아까 라뚜를 잡을 때는 가리더니.”
“뭐, 그냥.”
“응, 보기 좋네. 눈 예쁘다.”
강우는 알리사의 정신없는 질문과 말에 휘둘리고 있었다. 알리사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 클랜에 넣어주는 거지?”
알리사는 알통을 자랑하듯 왼손을 자신의 오른팔 이두에 얹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봤겠지만, 나 세다고.”
“누구 마음대로.”
강우와 알리사의 시선이 옆으로 옮겨졌다. 쿠라마가 알리사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알리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마치 커다란 곰 인형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밝은 표정이었다. 알리사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쿠라마는 당황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알리사가 직행한 곳은 핫도그에게로였다. 알리사는 핫도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얼굴을 마구 부볐다.
“핫도그! 너무 귀여워-!”
핫도그는 조금 당황한 듯 고개를 빳빳이 든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쿠라마가 알리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봐, 지금 뭐하는 거야? 우린 바쁘다고. 이제 가봐야 돼. 너 때문에 자꾸 시간이…….”
알리사가 쿠라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무서운 표정이었다. 얼음이 낀 듯한 두 눈동자, 오드아이, 왼쪽은 초록빛이 낀 회색이었고, 오른쪽은 에메랄드빛을 가지고 있었다.
알리사는 서리가 내린 듯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내 몸에서 손 떼. 죽여버리기 전에.”
쿠라마는 순간 흠칫하며 기세에 밀려 손을 뗐다. 알리사는 쿠라마를 조롱하듯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다시 핫도그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안나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알리사를 쳐다봤다.
“저 여자는 대체 뭐야?”
미츠하시는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형님의 팬인가 본데…….”
미츠하시는 쿠라마를 보며 말을 이었다.
“왠지 누님은 질투를 하는 거 같고.”
쿠라마는 알리사에게 말했다.
“지금 뭐하자는 건데?”
알리사는 쿠라마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쿠라마는 핫도그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핫도그도 꼬리를 치고, 헥헥거리며 웃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쿠라마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강우가 알리사에게 다가가 타이르듯이 말했다.
“아, 저기. 반갑기도 하고, 다 좋은데, 우리가 이제 가봐야 되거든.”
알리사가 강우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래? 어디 가는데?”
“예거 파티 뉴욕지부.”
“그래? 나도 거기로 가는데. 같이 갈까?”
그때 한 남자가 강우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190cm가 조금 안 될 것 같은 큰 키, 넓은 어깨에 얼굴은 동양인과 백인의 혼혈로 보였다. 검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특히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기다란 흉터와 오른쪽 턱선에서 뺨까지 올라오는 흉터가 눈에 띄었다.
남자는 알리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가셔야 될 시간입니다.”
알리사는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며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맞다. 안 가면 안 돼? 귀찮은데.”
“먼저 만나셔서 의사를 전달해야 되니까요.”
알리사는 입을 삐죽 내밀며 투정을 부렸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리사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할 수 없지. 그럼 이따 봐.”
“이따가?”
“응, 나도 예거 파티 뉴욕지부에 볼 일이 있거든.”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리사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따가 연락할게.”
“뭐? 어떻게 연락을…….”
알리사는 강우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강우는 “그냥 말해.”라고 했지만, 알리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우는 천천히 알리사에게 얼굴을 가져갔다. 알리사는 강우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번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어. 아니, 안에서 보게 되려나? 어쨌든 난 이만 가볼게. 강우.”
자신의 이름을 불린 강우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게 알리사의 입술과 강우의 뺨이 닿았다.
알리사는 천천히 강우의 뺨에서 입술을 뗐다. 강우는 놀란 눈으로 알리사를 쳐다봤다.
“너 어떻게…….”
알리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따 봐.”
알리사는 남자와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강우는 멍하니 멀어져가는 알리사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알리사는 살짝 고개를 돌렸고, 강우와 눈이 마주쳤다. 알리사는 강우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쿠라마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알리사가 강우의 뺨에 뽀뽀를 한 것이 못마땅했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츠하시가 웃는 얼굴로 강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형님, 좋았어? 완전 스타네, 스타! 근데 마지막엔 뭐라고 한 거야?”
쿠라마는 괜히 미츠하시를 향해 소리쳤다.
“시끄러워! 이상한 여자 하나 나타난 걸로 왜 호들갑이야? 빨리 예거 파티로나 가자.”
안나도 왠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한 듯이 강우를 쳐다봤다. 강우는 여전히 알리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안나가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거야?”
강우가 안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되물었다.
“뭐?”
“아까 사람들을 구했잖아. 아직도 저기서 어물쩡거리는 놈들.”
안나가 라뚜와 싸우고 있던 능력자 셋을 가리켰다. 강우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아….”하고 반응했다.
미츠하시가 말했다.
“나도 사실 좀 의외였어. 형님은 별로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생판 모르는 남을……. 그것도 능력자를 구해주다니 말이지.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어?”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긴 바로 예거 파티 뉴욕지부 근처잖아. 아무래도 그쪽이랑 일을 하려면, 혹시 모르니 이런 모습도 남겨두는 거지.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쿠라마가 말했다.
“맞다면?”
강우는 자신과 핫도그가 목숨을 구해준 예거들에게로 몸을 돌려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요! 얘기 좀 하죠!”
예거 셋은 금세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감사인사를 전하기 위해 강우 일행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곧바로 자신들이 예거 파티 미국지부 소속임을 밝히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강우의 예상대로였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죠?”
남자 하나가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거들이 강우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을 때, 두 남자가 다가왔다. 두 남자 역시 예거 파티 소속이었다. 두 남자는 지원요청을 받고 라뚜를 처리하기 위해 온 육성 상급과 칠성 하급의 예거들이었다.
칠성 하급 예거인 남자가 말했다.
“이번 최후의 10인 중 하나가 되기 위해 오셨다구요?”
남자의 눈빛에는 ‘너희 같은 것들이 낄 곳이 아니야.’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남자는 강우와 알리사가 라뚜를 처리했다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정체 모를 다른 능력자, 알리사가 혼자서 쓰러트린 걸로 단정 짓고 있었다.
강우가 말했다.
“네, 어차피 예거 파티로 가실 거 아닙니까? 같이 가시죠.”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흠……. 뭐, 가시는 건 괜찮은데…….”
안나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봐요, 예거 셋의 목숨을 살린 사람한테 태도가 왜 그 따위입니까? 미국지부에선 일처리를 이딴 식으로 하나보죠?”
남자는 안나의 말에 발끈하며 대답했다.
“뭐라고? 네가 뭔데 말을 그 따위로 하지?”
안나는 품에서 자신의 예거 등록증을 꺼내 들이밀었다.
“러시아지부 안나 스미르노바입니다.”
남자는 흠칫 놀라더니, 그럴 리가 없다는 듯 휴대폰을 통해 안나를 조회했다. 그리고 안나의 신분은 남자보다 높았다. 다른 지부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남자는 안나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강우 일행은 예거들의 뒤를 따라갔다.
칠성 하급인 남자는 가면서 다른 예거들과 수군수군 대화를 했다. 그들에게도 집행자란 이름은 유명했다. 강우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몬스터보호협회 일본지부를 무너트리기는 했지만, 그저 두고 보자는 정도, 그래봐야 사성 상급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강우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핫도그 덕분이었다. 하얀 늑대 이외에 몬스터를 키우는 사람은 강우가 유일했기에.
다른 세 명의 예거들은 강우가 라뚜의 한쪽 머리를 한 방에 뭉개버린 것에 대해 설명했다. 덧붙여 핫도그가 라뚜의 에너지파를 막아낸 것도 말했다. 칠성 하급인 남자는 이들의 말을 믿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칠성 하급 예거가 강우 일행을 향해 돌아섰다.
“여기가 뉴욕지부 건물입니다. 최후의 10인에 도전하시려면 1층 접수처로 가시면 됩니다.”
============================ 작품 후기 ============================
조금 늦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