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안나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째서 1층 접수처로 가라는 거죠? 저는 현재 예거 파티 소속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것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양손을 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 소관이 아니라서요.”
강우가 구해줬던 예거들은 미안한 기색을 보였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예거들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쿠라마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예거 파티 뉴욕지부는 싸가지가 없네.”
미츠하시가 말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미안해하던데, 뭐. 어쨌든 접수처로 가자.”
쿠라마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데 라뚜는 돈이 안 되나?”
강우가 되물었다.
“핫도그가 먹었어?”
쿠라마와 미츠하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돈이 안 되는 거야. 핫도그가 먹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돈이 되더라고. 적어도 짐승의 모습을 한 것들은 말이지.”
안나가 말했다.
“맞아. 라뚜는 전혀 돈이 안 돼. 겉모습이 저래서 먹는 사람도 없고, 심장조차도 거래가 잘 안 돼.”
안나는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안에 들어가서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다른 능력자들과 똑같이 접수해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돼.”
강우 일행은 예거 파티 뉴욕지부 건물에 들어섰다.
핫도그 때문에 입구에서 약간의 저지가 있었지만, 아주 작은 마찰일 뿐이었다. 어렵지 않게 들어설 수 있었다.
건물 안은 그 어느 때보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다수가 최후의 10인이 되기 위해 시험을 치러 온 사람들과 그를 따라온 사람들이었다.
강우 일행은 곧장 1층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처에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마치 연말정산 기간에 관공서를 찾은 모양새였다. 대기번호만 100이 넘어갔다.
강우 일행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렸다. 핫도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핫도그는 강우 옆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기다리던 도중 안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 되겠어.”
강우가 물었다.
“뭐가…….”
강우가 말을 제대로 마치기도 전에 안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나는 곧장 접수처로 걸음을 옮겼다.
안나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좀 더 높은 직책의 예거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러시아지부에서 손꼽히는, 두 번째로 높은 직책이나 다름없었기에 안나는 더 높은 직책의 예거와 만나는 것이 허락됐다.
안나는 얼굴이 밝아진 채 강우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됐어.”
강우 일행은 접수증을 버리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매우 커서 핫도그도 함께 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10층에서 멈췄다. 안나가 만날 사람은 예거 파티 뉴욕지부에서 서열로 따지면, 20위쯤 되는 남자였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남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투명강화유리로 된 문과 벽 때문에 안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김치를 쪽 찢어놓은 듯 5대5로 나눠서 양 옆으로 빗어 넘긴 금발머리였다. 숱이 빽빽하고 양끝이 꼬부라질 만큼 기다라며 시커먼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체구는 마른 편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남자는 이미 강우 일행이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문을 열어줬다.
“러시아지부에서 오셨다고 하셨죠? 반갑습니다. 가이 리치라고 합니다. 편하게 가이라고 불러주세요.”
가이가 안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나는 가이와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네, 반갑습니다. 안나입니다.”
가이는 사무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일단 앉으시죠.”
강우 일행이 의자에 둘러앉고, 가이는 강우의 건너편에 앉았다. 핫도그는 강우의 옆에 앉아서 얌전히 있었다.
가이는 핫도그를 보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인간이 아닌 생물이 제 사무실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네요.”
가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가이는 서랍을 뒤적거리다가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커다란 지퍼백에 들어있는 개껌이었다. 닭고기, 양고기, 칠면조, 오리고기, 연어 등을 말려서 우유껌에 말아놓은 개껌.
“이런 것도 먹나요?”
강우가 말했다.
“글쎄요. 개껌을 줘본 적은 없어서.”
가이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일반 개 취급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뭐라도 좀 주고 싶어서요. 저도 하운드를 키우거든요. 하운드들은 먹던데…….”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번 줘보시죠.”
가이는 조심스레 지퍼백에서 개껌 하나를 꺼내 핫도그에게 내밀었다. 가이는 개껌을 내밀면서도 강우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무는 건 아니겠죠?”
“안 물어요.”
가이는 이내 다소 안심한 듯이 개껌을 더 들이밀었다. 핫도그는 가이와 눈을 마주치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강우는 핫도그를 보며 나지막이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제야 핫도그는 킁킁거리며 개껌의 냄새를 맡았다.
핫도그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을 벌려 개껌 끝을 입에 걸치듯 가져갔다. 가이가 개껌에서 손을 떼자 핫도그는 순식간에 개껌을 삼켜버렸다. 가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잘 먹네요.”
“덕분에 식비가 장난이 아닙니다.”
가이는 지퍼백을 뜯어 핫도그 앞에 개껌을 모두 쏟아 부으며 말했다.
“너 다 먹어라.”
핫도그는 개껌을 모두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가이는 다시 강우의 건너편에 앉으며 흥미로운 듯이 말했다.
“당신이 집행자죠? 언론에서 본 모습과는 다르네요.”
“뭐, 싸울 땐 똑같습니다.”
“그렇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죠. 최후의 10인이 되기 위해 오셨다는데, 맞나요?”
가이의 시선은 안나에게로 옮겨져있었다. 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거 파티에서 탈퇴를 선언합니다.”
가이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더 이상 예거로서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안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예거 파티에서만 나오겠다는 거죠.”
가이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러시아지부에서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어째서…….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클랜 엑시큐션(집행)에 들어가게 됐으니까요. 원래는 러시아지부에 보고해야 되는 일이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미국지부 측에 내용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제가 당분간 러시아에 갈 일도 없을 것 같고, 현재 러시아 예거 파티는 저의 탈퇴 같은 것보다 처리해야 될 일들이 많을 테니까요.”
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비서를 시켜서 서류를 가져오라 하겠습니다. 그거 하나만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가이는 비서에게 연락을 취했다. 가이의 비서는 금세 예거 파티 탈퇴 서류를 가져와 안나에게 건넸다. 안나는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며 작성하기 시작했다.
가이는 강우 일행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최후의 10인에 지원하기 위해 오신 걸로 아는데……. 맞나요?”
강우가 몸을 앞으로 내밀고, 양팔을 무릎에 얹은 채 말했다.
“네, 맞습니다.”
“접수를 원하신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가이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뒷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흠…….”
가이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강우는 가이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뭐, 문제 있습니까?”
“아니요, 아니요.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최후의 10인 지원 자격을 명시하지 않아서 지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거든요. 이건 저희 측 실수죠. 일단 이렇게 된 이상, 계속 진행이 되기는 할 건데…….”
듣고 있던 쿠라마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요?”
가이는 결심했다는 듯이 양손 깍지를 끼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지금 여러분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강우와 미츠하시는 현재 사성 상급, 쿠라마는 오성 하급, 안나는 칠성급이었다.
강우 일행의 등급을 들은 가이는 다시 어두운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여러분의 실력으로 최후의 10인에 드는 것은 무리입니다. 지원자들 중 팔성급 이상만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아래의 사람들은 더 많지만, 아마 1차 시험 시작도 전에 대부분 떨어져나가겠죠. 팔성급과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니까요.”
안나가 탈퇴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저는 스스로 칠성급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나는 강우와 미츠하시, 쿠라마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분들도 모두 그렇고요. 실제로 클랜장 집행자는 몬스터보호협회 중국지부 서열 1위 진진에게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서열 2위와 3위도 미츠하시와 쿠라마가 잡았구요.”
가이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오, 그게 정말입니까?”
가이의 시선은 강우에게로 옮겨져 있었다.
안나가 말했다.
“최후의 10인에 도전할 자격은 충분히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이곳에 온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예거 파티를 탈퇴하고, 클랜 엑시큐션(집행)으로 옮긴 것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몬스터보호협회 중국지부를 무너트린 것을 알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최후의 10인에 속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접수는 해놓겠습니다. 아직 세부적인 사항이 모두 나오지는 않았지만, 시험은 총 3단계 정도로 이뤄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거 등록시험과는 다를 겁니다. 목숨을 내놓고 해야 되는…….”
미츠하시가 말했다.
“저희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가이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험은 며칠 뒤에 치러질 예정입니다. 서류를 작성해주시면, 기입된 연락처로 연락이 갈 겁니다. 아니면, 뉴욕지부 측에서 제공되는 숙소를 이용하시면서 기다리셔도 되고요. 유료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최후의 10인 접수서류 네 장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가이가 다시 비서를 부르려 할 때, 강우가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한 장.”
가이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네?”
“접수는 나만 하겠습니다. 서류는 한 장만 주십시오.”
쿠라마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왜 너만 접수를 하는데?”
안나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째서? 만약 혼자만 접수를 한다면, 내가 해야지. 등급도 내가 제일 높잖아?”
미츠하시는 아무 말도 않았다. 잠자코 강우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뭐, 우리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핫도그를 돌볼 사람도 좀 필요하고…….”
안나와 쿠라마는 여전히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쿠라마가 말했다.
“시험을 몇 년 치르는 것도 아니잖아. 핫도그는 충분히 혼자서 기다릴 수 있어.”
강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핫도그를 굉장히 신뢰하는구나?”
쿠라마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 얘기의 포인트는 그게 아니잖아.”
강우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너희는 따로 해야 될 일이 있어. 그러니까 나 혼자 접수할게.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지원하는 사람들 중 팔성급 이상은 물론, 구성, 아마 십성급도 있을 거다. 거기에 우리 전부가 들어가진 못할 거야. 굳이 시간낭비를 할 필요는 없지. 너희들은 그동안 단련을 하고 있어.”
강우는 핫도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아마 이 녀석이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줄 거야.”
안나가 말했다.
“지금 나랑 장난해? 쟤는 헬하운드야. 나랑 붙었다간 죽어. 가볍게 해도 꽁꽁 얼어붙을 거라고.”
미츠하시가 안나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렇진 않을 걸?”
“뭐?”
“핫도그는 원래 삼성 하급인 헬하운드긴 하지만, 이미 겉모습부터 다른 헬하운드하곤 달라. 그 힘은 말할 것도 없고. 아까 라뚜의 에너지파를 간단하게 막아내는 거 못 봤어? 웬만한 육성급 이상의 능력자들도 라뚜의 에너지파를 그런 식으로 정면에서 받아내진 못해.”
안나는 할 말을 잃은 듯이 애꿎은 아랫입술만 질끈 깨물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는 개인적으로 급한 사정이 생겨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병문안 때문이었는데요.
일반 병원은 아니고, 요양원이었습니다.
작년에도 평생 갈 병원을 전부 다니고, 요양병원과 호스피스를 다녔었는데...
앞으로는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항상 모두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