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70화 (170/195)

170화

남자가 말했다.

“대체 무슨……. 큭.”

남자의 시선이 자신의 복부로 향했다. 린첸이 손바닥으로 때린 부분이었다. 그곳은 린첸의 주황빛이 머물러있었다.

그것은 린첸이 남자를 과녁판으로 삼은 것이었다.

뻐벅, 쩡, 떡-!

도끼와 언월도, 봉이 남자를 후려쳤다. 남자는 어떠한 방어도 취할 수 없었다. 그것은 린첸의 비기였는데, 주황빛 표시는 린첸과 연결이 됐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린첸의 등 뒤로 솟아있는 무기들은 남자에게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의 몸에 있는 주황빛에서 솟아나 바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남자가 린첸의 공격에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던 것.

남자의 복부에 있던 주황빛이 수백 개로 쪼개졌다. 작아진 빛들은 남자의 전신의 급소를 포함한 이곳저곳에 위치했다.

남자는 린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소리쳤다.

“그, 그만-! 그만둬-!”

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채챙-!

수백 개의 검들이 남자의 주변에 생겨나있었다. 검끝은 전부 남자를 향했다.

째재재재재재재재재재재재쟁-!

검들은 남자의 몸을 뚫지 못했다. 남자는 헛웃음을 치며 자신의 몸을 확인한 뒤, 린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핫, 하핫! 네 공격은 나에게 먹히지 않아! 이 병신 같은 년아! 너 따위는…….”

다시 수백 개의 검들이 남자의 주변에 생겨났다. 린첸은 양손을 모은 채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먹힐 때까지 하면 돼. 그뿐이다.”

다시 검들이 남자를 덮치며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들이 튕겨나간 뒤, 사라졌다. 남자는 린첸을 보며 소리쳤다.

“소용없다고-!”

남자의 몸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겼다.

린첸은 양손 가운데 주황빛을 모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주 소용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또다시 수백 개의 검들이 남자를 덮쳤다.

쩍.

남자의 몸 여기저기에 금이 갔다. 린첸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다음 공격으로 끝이다.”

다급해진 남자는 “이, 이……. 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남자의 주변으로 수백 개의 검들이 생겨났다.

급기야 남자는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린첸은 한쪽 눈을 감은 채 다른 한쪽 눈으로 남자를 쫓았다.

“소용없어.”

수백 개의 검들은 남자의 주변에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떠있었다. 린첸이 두 눈을 부릅뜨며 양손을 뻗었다.

“커허…….”

수백 개의 검들이 남자의 몸을 관통했다. 남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지지 못했다. 수백 개의 검들이 남자의 몸을 꿰뚫고, 서로가 서로의 지지대가 되었으니까.

남자는 주황빛 검이라는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 조형물이 된 것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핫도그와 불꽃 남자의 전투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서로에게 별다른 타격을 줄 수 없었다. 불꽃 남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전신을 더욱 활활 태웠다.

“이놈의 개새끼……. 대체 어떻게 해야…….”

핫도그는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며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양쪽 입꼬리는 길게 올라가있었다.

남자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핫도그의 꼬리가 좌우로 거세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핫도그는 현재 전혀 진지하게 싸우고 있지 않았다. 남자와의 전투가 마치 놀이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 개새끼-! 죽여버리겠다-!”

“그건 너무 심하지 않아? 너 몬스터가드 아니었어?”

망자의 손.

터터터터터터터턱.

바닥에서 수십 개의 분홍빛 손들이 튀어나와 남자의 몸을 잡았다. 남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시선을 옮겼다. 알리사가 차가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말했다.

“이까짓 손으로 나를 잡아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남자는 망자의 손을 전부 태워버릴 기세로 화염을 일으켰다.

“너부터 죽여주…….”

망자의 손은 여전히 남자를 붙들고 있었다. 알리사는 남자를 조롱하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 지옥불에 타고 있는 망자들의 손이 너의 불장난에 당할 것 같아?”

알리사는 핫도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핫도그, 이제 장난 그만쳐야지.”

핫도그는 알리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때 강우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핫도그-! 이제 그만 끝내-!”

핫도그는 강우의 말을 듣자마자 표정부터 달라졌다. 핫도그의 오른쪽 앞발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불을 다루기에 핫도그의 앞발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알 수 있었다.

“뭐, 뭐야 그건……. 말도 안 돼…….”

핫도그는 남자를 향해 뛰어갔다. 핫도그의 오른쪽 앞발이 닿은 지면은 완전히 녹아내렸고, 용암 같은 것이 잠깐 동안 찰랑거렸다. 핫도그는 그대로 남자를 오른쪽 앞발로 밟았다.

펑!

핫도그의 발아래로 불꽃이 올라왔다. 핫도그가 발을 들었고,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강우 일행은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쿠라마가 말했다.

“다 끝난 건가?”

존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것 같네.”

린첸은 이브라힘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이브라힘은 팔 하나와 다리가 잘려나간 채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안나는 이브라힘의 상처 부위가 상하지 않도록 잠시 얼리려고 했다. 이브라힘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이미 응급처치는 스스로 다 했습니다.”

알리사가 말했다.

“이제 어쩌죠?”

린첸이 말했다.

“일단 부상을 입은 몬스터가드들부터 데리고 뉴욕지부로 가야 될 것 같아. 예거들의 시신이랑 죽은 몬스터가드들은 나중에 수습하고.”

존슨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얼른 하자고.”

알리사는 이브라힘 곁에 남아 돌보려 했다. 이브라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당신들이 싸우는 동안에도 혼자 있었는 걸요. 이 정도 부상으로 죽지 않습니다.”

“금방이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강우 일행은 흩어져서 살아있는 몬스터가드들을 옮기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브라힘은 자리에 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잘린 팔과 다리를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 그 어떤 의수, 의족보다 편한 것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강우 일행이 아직 숨이 붙어있는 몬스터가드를 옮기는 중이었다. 강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분명히 여기 있어야 되는데?’

이정우가 보이지 않았다. 이정우는 분명히 죽었을 것이 분명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뭐지? 설마…….’

강우는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조심해-! 한 곳으로 모여-!”

일행들은 강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이정우가 사라졌다! 놈은 아직 살아있다!”

일행들은 일제히 주변을 둘러봤다. 이정우의 모습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턱.

이정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걸로 하나…….”

이정우는 바닥에 누워있는 이브라힘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정우의 하반신은 바닥에 묻혀있었다. 이브라힘의 이마에 얹어진 손은 초록빛이 둘러져있었다.

강우 일행은 두 눈이 커진 채 이정우에게로 향해있었다. 이정우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머금어져있었다.

펑-!

이브라힘의 피부와 이마뼈, 그 안쪽까지 터져버렸다. 살갗과 뼛조각, 피, 뇌수로 이뤄진 불꽃놀이.

이정우는 땅속에서 나와 자리에 선 채 강우 일행을 보며 씩 웃었다.

“이제 일곱 명에 한 마리 남았군.”

강우 일행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이정우를 쳐다봤다. 가장 놀란 것은 강우였다.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아니, 살아있다고 해도 저렇게 땅속으로 움직였는데 왜 모른 거지?’

이정우, 세계 제일의 초록빛 능력자, 그가 십성급까지 오를 수 있던 것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재생력’이었다.

이정우는 강우의 공격을 받고, 엄청난 부상을 입었다. 일반적인 능력자라면 이미 숨이 끊어졌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강우가 마지막에 던진 검은색 구체에 몸이 완전히 갈리지 않은 것 또한 뛰어난 내구력과 재생력 덕분이었다.

강우의 공격을 받은 직후, 이정우는 곧바로 재생하지 않았다. 몸이 다 망가진 상태에서 천천히 땅으로 스며들었고, 재생을 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이브라힘의 숨을 끊으며 재생을 마친 것이었다.

이정우는 전신에서 초록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다 죽여주마.”

린첸과 존슨이 전신에서 강렬하게 빛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강우가 앞장서며 말했다.

“내가 맡지.”

린첸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웃기지 마. 이브라힘의 원수는 우리가…….”

강우가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날카로운 눈으로 린첸과 존슨을 쳐다봤다. 린첸과 존슨은 순간 움찔하며 강우의 기세에 압도됐다.

강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너희도 빨리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냐?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는다. 이미 지칠 만큼 지친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거지?”

린첸과 존슨은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이미 전투 중 너무나 많은 힘을 쓴 상태였다. 제 힘을 발휘하려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반면에 이정우는 전투를 치른 적이 없는 것처럼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힘도 여전했다. 평소의 린첸과 존슨이라면, 2대1로는 이정우를 이길 수 있었다. 1대1이라 해도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를 만큼 비등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아니었다.

쿠라마와 안나, 미츠하시가 린첸과 존슨의 주변으로 다가갔다. 쿠라마가 말했다.

“분하더라도 지금은 저 녀석……. 아니, 우리 클랜장에게 맡겨.”

미츠하시가 쿠라마의 말에 힘을 실었다.

“힘이 빠진 상태로 다 같이 덤벼드는 건 오히려 서로의 발목만 잡을 뿐이야.”

존슨이 말했다.

“난 지치지 않았어. 저런 놈쯤은 지금이라도…….”

안나가 존슨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강한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최대치로 힘을 낼 수 있을 때에요. 이미 당신들은 십성급과 전투를 거치면서 너무 지쳤어요.”

린첸이 강우를 보며 말했다.

“그건 저 녀석도 마찬가지잖아. 우리 측 배신자야. 우리가 싸워야 돼.”

린첸은 곧바로 이정우를 향해 튀어나갈 기세였다. 알리사가 린첸의 앞을 막아섰다. 린첸은 알리사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알리사, 비켜…….”

알리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집행자에게 맡겨.”

“너까지 그런 소리야?”

“지금 이정우에게 덤벼들 생각이라면, 내가 막겠어.”

존슨과 린첸은 다소 당황스러움과 함께 알리사를 쳐다봤다. 알리사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린첸은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저 남자를 어떻게 믿지? 이제 막 알게 된 사이잖아.”

알리사는 고개를 뒤로 돌려 강우의 뒷모습을 쳐다본 뒤, 다시 린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니. 누구보다도 잘 알아.”

일행들은 강우의 뒤로 시선을 옮겼다.

강우는 전신에 검은색 힘을 감쌌다. 밤보다 어두운 검은색 힘.

이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네놈부터 죽여주지.”

강우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조롱하듯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주마.”

이정우는 전신에서 초록빛을 뿜어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도 그런……. 너희가 무슨 짓을 해도 날 죽일 수 없다. 나하고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 자라고 해봐야……. 이 세상에 다섯 명도 안 되겠지. 하지만 넌 그 중 하나가 아니다.”

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보자고.”

“뭐?”

강우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해있었다. 이정우는 강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차례 지내고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행복한 설 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신작 '소시오패스 : 두 개의 삶'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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