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72화 (172/195)

172화

지옥 아귀 뱀들은 이정우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 뒤, 사라졌다.

일행들은 모두 강우에게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강우에게 달려든 것은 핫도그와 알리사였다. 핫도그는 침 한 방울 없는 부드러운 혓바닥으로 뺨을 핥았고, 알리사는 뒷목을 끌어안았다.

알리사가 말했다.

“정말 대단해.”

핫도그는 알리사의 말을 뒷받침하듯이 “컹!”하고 짖었다.

미츠하시가 말했다.

“역시 형을 따라오길 잘했어.”

린첸이 말했다.

“설마 혼자서 이정우를 잡아낼 줄이야…….”

강우는 아무 대답도 않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존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생각 이상이야. 이정우와 비등하게 싸울 사람은 전 세계에 얼마 안 될 거야. 넌 여지없이 십성급이다.”

강우가 말했다.

“이걸로 몬스터보호협회는 끝이네요. 그나저나 사상자가 있어서……. 특히 이브라힘 씨에게는 미안하네요. 저는 이정우를 잡은 줄 알았거든요.”

존슨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우리 중에서도 그걸 아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녀석의 재생력이 엄청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있었어.”

린첸이 말했다.

“어쨌든……. 고생했어요. 이브라힘뿐만 아니라, 모두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이쪽 일을 하는 자체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거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린첸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두 눈은 촉촉해져있었다.

안나가 말했다.

“돌아가죠. 예거 파티 측에도 말해야 되고, 시신들도 수습해야 되니까요.”

강우 일행은 예거 파티 뉴욕지부를 향해 이동했다.

강우는 린첸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었다.

언제나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

강우는 자신의 강함을 알고 있었다. 그 힘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었다. 지옥 아귀 뱀과 같은 비기 또한 타고난 힘에 노력을 더해 발휘할 수 있었다. 강우는 지옥 아귀 뱀을 터득했을 때, 이 비기를 사용할 날이 올 거라 생각지 않았다. 검은색 힘을 두른 것만으로도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정우는 지옥 아귀 뱀이 아니었다면 끝장을 낼 수 없었다. 다른 십성급 또한 만만치 않았다. 린첸과 존슨은 같은 편에 서서 싸우기는 했지만, 만약 적이 된다면 골치가 아플 상대였다.

강우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알리사 또한 강했다. 강우는 알리사 역시 십성급이라고 확신했다. 능력 또한 능숙하게 사용했고,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 여겼다.

강우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더 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강우에게는 지켜주고 싶은 존재들이 생겨있었다. 강우는 핫도그, 쿠라마, 미츠하시, 안나를 둘러봤다.

‘핫도그는 물론, 클랜원들을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다. 날 믿고 따르는 녀석들…….’

강우는 알리사를 힐끗 쳐다봤다. 알리사는 강우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었다. 강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내 광팬인 아가씨도 그냥 죽게 둘 수는 없지. 뭐, 모두들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쉽게 죽지는 않겠지만……. 특히 핫도그나 알리사 같은 경우는 전 세계를 뒤져도 손에 꼽을 거고.’

강우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갑자기 이런 걱정을 하는 거지?’

강우는 자기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작스레 떠오른 이 불안감과 걱정은 뇌 주름 사이로 스며든 접착제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한 기우(杞憂)라고만 치부할 수 없었다.

‘예전과는 다르다. 모든 상대들이 여유를 갖고 싸울 만큼 약하지도 않고,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다.’

만약 오늘 맞붙은 몬스터가드들보다 더 많은 숫자가, 더 강한 적들과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강우가 전부를 한 번에 지키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었다.

‘애초에 이런 것들 때문에 훈련을 하게 했지만……. 아직 멀었다. 더 많은 클랜원들이 필요해. 그리고 다들 더 강해져야 된다. 나 역시.’

강우는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모닥불처럼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억눌렀다. 강우는 여태까지 겪어왔던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강우는 실소를 흘렸다.

‘내가 항상 하던 말이잖아. 항상 목숨을 내놓는 거라고.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을 맡아 죽게 된다면 자기 탓이라고…….’

강우는 두 눈을 부릅뜨고,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차피 이 일이 사신하고 친구 먹고 하는 일 아니겠어?’

강우의 그러한 감정변화에 생각까지 전부 캐치해내고 있는 것은 핫도그가 유일했다. 핫도그는 강우에게 마음의 안정을 조금이라도 얹고 싶었다. 핫도그는 이동하면서도 강우의 옆에 유난히 들러붙었다. 강우는 씩 웃으며 핫도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우의 생각까지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표정변화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알리사였다. 알리사는 일반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우에게 푹 빠져있었다. 알리사의 시선은 언제나 강우를 향해있었다. 그리고 그런 알리사를 쿠라마는 질투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강우 일행이 뉴욕지부에 도착하고, 몬스터보호협회와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도날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도 잠시, 도날드는 평정심을 되찾고 곧장 기자회견을 가졌다.

몬스터보호협회의 붕괴가 알려졌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세간의 관심은 앞으로 예거 파티의 행보 그리고 에스카에게로 몰렸다.

도날드는 여기서 강수를 뒀다.

“에스카 측에서 능력자들과 몬스터들이 발생하는 곳, 그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곳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안에서 발견했다고 들었습니다. 에스카 측에서 발표한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근거들이 있었고,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저희 예거 파티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안 탐사에 나설 것입니다.”

기자들은 이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지만, 도날드는 더 이상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브래드까지 예거 파티를 배신하고, 몬스터보호협회로 넘어간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예거 파티 내의 사기를 꺾지 않기 위함도 있었고, 예거 파티가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또한 전 예거 파티 십성급이자 몬스터보호협회장이었던 이정우를 잡은 것이 강우라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았다. 도날드가 이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언급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강우 일행과 존슨, 린첸, 알리사 그리고 제임스는 도날드의 방에 모여 있었다.

쿠라마와 미츠하시, 안나는 보도된 기사에 대해 반발했다. 도날드는 강우 일행에 대해서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라마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우리가 그 녀석들을 없앴다고!”

미츠하시 역시 화를 누르지 못했다.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야.”

제일 차분한 성격인 안나 역시 도날드에게 따지고 들었다.

“저도 얼마 전까지 예거 파티 소속이었습니다. 항상 이런 식이죠. 그래서 제가 예거 파티를 나온 겁니다.”

도날드는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다.

“몬스터보호협회라는 큰 단체를 무너트린 건 고맙게 생각하네. 하지만 아직 에스카가 남아있어. 에스카는 몬스터보호협회보다 더 위험한 놈들일지도 몰라. 이 세상에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놈들이야. 이런 상황에서 예거 파티의 세력이 약해졌다고 알릴 수는 없어.”

린첸이 말했다.

“지부장님,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저 역시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이들은 최후의 10인에 지원을 했던 자들이고, 예거 파티를 도운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이정우와 브래드가 배신하고, 이브라힘을 잃은 상황에서 이들처럼 강한 사람들이 예거 파티 측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되는데…….”

도날드가 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이들은 예거가 아니야. 그냥 능력자들이지. 그건 큰 차이가 있어. 오히려 우리의 힘이 부족한 상태라 다른 곳에서 힘을 빌린다고 생각하겠지. 게다가…….”

도날드는 강우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클랜 엑시큐션(집행)……. 클랜장 집행자는 블랙마켓 출신이야. 그가 스스로 클랜을 없애고, 예거 파티로 들어오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안 돼.”

강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예거 파티로 들어갈 일은 없을 겁니다. 남 밑으로 들어가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아서 말이죠.”

쿠라마가 도날드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우리가 당신의 뜻대로 조용히 있어야 되지? 지금이라도 기자들을 불러서 사실을 폭로하면 되는데.”

도날드는 쿠라마의 말에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도날드는 이내 웃음기를 싹 빼고, 살기가 가득한 두 눈으로 쿠라마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랬다간 자네들은 모두 내 손에 죽을 테니까.”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쿠라마는 순간적으로 몸에서 미세하게 주황빛을 뿜어냈다. 도날드는 다시 껄껄 웃었다.

“농담일세! 내가 여론에는 예거 파티의 사정 때문에 거짓말을 했지만, 자네들은 우리의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그렇게 하겠나? 게다가 이 늙은이 혼자서 자네들 같은 젊은이들을 무슨 수로 당해내겠어?”

미츠하시는 쿠라마와 안나의 가운데서 작게 중얼거렸다.

“농담이 아니었어.”

안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곤거렸다.

“알고 있어.”

쿠라마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도날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우가 도날드에게 물었다.

“뭐, 그런 건 별로 상관없어.”

쿠라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상관없다니? 이번에 몬스터보호협회장을 이긴 건 너야. 이 사실이 알려지면 너는 물론이고, 우리 클랜의 격이 달라져. 뛰어난 능력자들도 클랜에 지원할 거고. 여론 자체가 바뀐단 말이야.”

강우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런 건 상관없다니까. 몬스터보호협회를 무너트렸다는 것이 여론에 꼭 좋지만은 않으니까.”

도날드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저도 이렇게까지 예거 파티가 신뢰를 잃은 줄은 몰랐었습니다.”

도날드는 강우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린첸과 존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날드는 이미 강우가 어떤 말을 꺼낼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강우가 말했다.

“사실상 예거 파티와 몬스터보호협회만을 두고 봤을 때, 이 둘에 대한 호감도는 별로 높지 않더군요. 근래 호감도가 높은 단체는 에스카나 예거 클랜 협회였습니다. 에스카 역시 몬스터와 힘의 근원지라 부를 수 있는 곳을 찾아낸 뒤로 호감도가 높아진 상태고요.”

강우는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결국 생각해보니 이쪽에 연관돼서 좋을 게 없겠더라고요. 만약 지부장님이 우리가 몬스터보호협회를 무너트린 거라 말하려 했으면 말리려고 했습니다. 뭐,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요.”

미츠하시가 강우의 곁에 다가와 귓가에 대고 수군거렸다.

“형님, 우리는 호감도가 필요한 거 아니었어?”

쿠라마가 반대편에서 강우에게 속삭였다.

“그래, 매번 말하던 게 그거잖아. 그럼 우리가 여론의 지지를 받는 건 어디서…….”

강우가 말했다.

“처음부터 내 목적은 몬스터보호협회의 붕괴였어. 이제 그걸 이뤘지. 몇 가지 생각해둔 게 있긴 하다만…….”

도날드가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자네는 무엇을 할 건가?”

“그건 당신이 알 필요는 없죠. 어쨌든 당신이 내게 고마워해야 되는 상황 같은데……. 처음 내가 이쪽 일에 관여한 건 에스카에 관련된 정보들을 알고 싶어서였으니, 그 정보나 늘어놔보시죠.”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신작 '소시오패스 : 두 개의 삶'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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