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73화 (173/195)

173화

도날드는 강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사실 에스카 쪽으로는 아직 많이 알아봐야 되는 상황일세. 그쪽에서도 하얀 늑대가 혼자서 탐사를 한 번 다녀온 것 말고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 우리 쪽에서 파견나간 예거 말로는 ‘거품이 올라오는 곳’ 주변으로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고 하네.”

빛을 담은 거품이 올라오는 곳은 ‘버블 존’이라고 명칭이 붙은 상태였다.

도날드가 말했다.

“에스카의 동태는 살펴봐야 하는 것이고……. 그보다 앞으로 더 큰 문제가 있다.”

“뭐죠?”

큰 문제는 새로운 적이었다. 강우의 이전에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몬스터의 심장을 먹고, 부작용이 일어난 이들이었다.

인간도, 몬스터도 아닌 존재들.

몬스터의 심장을 먹고, 몬스터화가 진행된 이들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우선 다른 몬스터들처럼 지능이 떨어지고, 본능에 충실한 이들을 ‘헝거’라고 불렀다.

헝거들은 인간일 때의 기억이 사라지고, 다른 몬스터들과 다를 바 없었다. 문제라면, 헝거들은 대부분 강했다. 예를 들어 능력자가 몬스터의 심장을 먹고 헝거가 되면, 이전에 갖고 있던 능력을 가진 몬스터가 됐다. 게다가 그 힘은 인간의 모습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몬스터의 심장을 먹고, 몬스터화가 진행된 이들 중 ‘하터’는 인간일 때의 의식과 기억이 그대로였다. 다만, 겉모습은 인간이라 부를 수 없었고, 성격 또한 굉장히 흉폭해졌다.

도날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헝거는 새로운 몬스터들이 또 생겨난 격이다. 골치야 아프지만, 진짜 문제는 하터다. 몬스터 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것들이 있긴 했지만, 하터는 인간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때문에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갖는다.”

강우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러니까 헝거와 하터는 죽여야 할 대상으로 보는 거죠?”

“당연한 거 아니겠나?”

“뭐, 헝거야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능력자가 흉악범죄를 저지르면, 그 자리에서 죽여도 되니까요. 하지만 하터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겉모습만 그럴 뿐이지, 인간의 의식을 그대로 갖고 있잖아요?”

도날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다르네. 하터들이 인간의 모습일 때 의식을 가지고 있다곤 해도, 그 성격이 변해. 매우 흉폭해지고, 자신이 생전에 가장 원했던 그 목적만을 위해 움직여.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모든 인류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괴물들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도날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뭔가?”

강우는 얼굴색을 싹 바꾸며 말했다.

“당신, 최후의 10인에 내걸었던 조건, 지킬 생각 없지?”

도날드는 표정을 굳힌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강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럴 것 같더라고. 사실상 최후의 10인이라는 게 없으니, 지키지 않아도 될 명분이 있는 거니까. 기자회견 때 우리의 존재를 완전히 지운 것도 그렇고, 지금 얘기하는 걸로 봐서는 더 이상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 없는 거 같아. 당신, 내가 블랙마켓 출신이라 마음에 들지도 않잖아?”

도날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렇다. 자네들에게 더 알려줄 정보는 없다.”

쿠라마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이려 할 때였다. 안나가 도날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건가요?”

도날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안 될 건 뭔가? 클랜장이 말했듯이 최후의 10인이라는 게 아예 뽑히질 않았어. 몬스터보호협회와 전면전을 벌이지 않았지. 우리 예거 파티에서 자네들에게 에스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는 없지.”

“하지만 몬스터보호협회를 무너트린 건 우리가…….”

도날드가 안나의 말허리를 잘랐다.

“아, 그 불의의 사고는 안타깝게 생각해. 죽은 사람들도 많고. 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야.”

쿠라마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그 따위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그곳에 있던 사람들 중 돈이 아쉬워서 참여한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 다 알면서 왜 이래?”

강우가 쿠라마와 안나를 진정시켰다. 미츠하시는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봤다. 강우는 도날드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은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정보도 없는 거잖아?”

“그렇다.”

“나중에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알아보면 되는 거니까. 애초에 몬스터보호협회와 싸운 것도 예거 파티를 돕자고 한 게 아니니까.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었지.”

도날드가 물었다.

“그럼 할 말은 다 했나?”

“그런 것 같네.”

“너도 보통은 아니야.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가 변하니…….”

강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도날드는 열이 잔뜩 받았는지 강우를 노려봤다. 강우는 클랜원들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가자.”

강우 일행이 몸을 돌려 나서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

강우를 불러 세운 것은 알리사였다. 강우 일행의 시선이 알리사에게로 옮겨졌다. 알리사는 강우와 잠시 눈을 마주치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갈래.”

강우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지?”

“널 따라가겠다고. 나도 너희 클랜에 넣어줘.”

도날드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알리사,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알리사는 도날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내 뜻은 확고해. 집행자를 따라갈 거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네가 큰 힘을 얻은 건 알고 있다. 정 그 힘을 쓰고 싶다면 예거로 등록하는 게 순서다! 예거 파티 소속으로 활동하는 게 정상 아니겠어?”

알리사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안해, 아빠.”

알리사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받아줄 수 있어?”

쿠라마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말도 안 돼. 저 여자는 도날드의 딸이잖아. 이번에 느꼈잖아. 예거 파티 쪽하고 엮여서 좋을 게 없어.”

안나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도 예거 파티 출신이야.”

안나는 도날드를 한 번 노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저 사람만 그런 거지. 모든 예거 파티 소속이 그런 건 아니야. 그리고 알리사는 예거로 등록조차 안 된 상태고.”

미츠하시가 말했다.

“솔직히 나는 알리사가 들어오는 거에 찬성이야. 아까 싸우는 거 봤잖아? 우리 전력에 큰 보탬이 될 거라고.”

강우가 말했다.

“나는 생각 좀 해봐야겠어. 따로 얘기 좀 하지?”

알리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날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내 딸을 너희 클랜으로 넣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만약 너희 클랜이 내 딸을 받아들이는 순간! 클랜 엑시큐션(집행)은 예거 파티를 적으로 돌리는 거라 생각하겠다!”

알리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 대체 무슨…….”

강우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도날드를 조롱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알리사를 꼭 우리 클랜에 넣고 싶어지는데?”

도날드는 당장이라도 싸움을 일으킬 듯이 이를 갈았다.

쿠라마가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말했다.

“난 반대야! 저런 여자를 대체 왜…….”

강우가 말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난 알리사랑 얘기를 좀 해보고 결정할 테니까.”

강우는 도날드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우리 클랜원들이 잠깐 여기 있어도 될까?”

“내가 한 말은 진심이다. 명심해라.”

“된다는 걸로 들을게.”

강우는 도날드의 사무실을 나서며 알리사에게 눈짓을 했다. 알리사가 강우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제임스도 따라 움직였다. 강우가 제임스에게 물러가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이봐, 넌 여기서 기다리라고.”

제임스가 말했다.

“난 아가씨의 경호원이다. 어디든 따라간다.”

강우는 알리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알리사는 제임스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제임스, 괜찮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와 알리사는 사무실을 빠져나와 사람이 없는 복도에 다다라서야 걸음을 멈췄다. 알리사가 물었다.

“할 얘기라는 게 뭐야?”

“너는 왜 우리 클랜에 들어오려는 거지?”

“난 너와 항상 함께하고 싶어.”

강우는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거야?”

“너와 함께하는 것이 목적이야.

강우는 말없이 알리사와 두 눈을 마주쳤다. 알리사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강우는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그럼 질문을 바꾸지. 왜 내가 그렇게 좋은 거지?”

“좋아하는 게 아니야. 사랑해.”

강우는 순간 당황스러움에 기침까지 했다. 강우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물었다.

“대체 그 이유가 뭔데? 넌 날 이제 막 봤잖아. 내 입장에서는 납득하기가 힘들지 않겠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잖아.”

“넌 내가 살아갈 수 있게 했으니까.”

알리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늘어놨다.

알리사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않았다. 갓 태어났을 때의 몸무게는 고작 2.1kg. 엄마는 알리사를 출산하는 순간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제법 잘 자라는 듯했다. 도날드는 모든 애정을 알리사에게 쏟아 부으며, 하나뿐인 딸을 위해 살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알리사가 일곱 살일 때였다. 걸음걸이가 조금씩 이상해졌다. 컵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근력도 떨어졌다. 검사 결과, 알리사는 근육위축증을 판정 받았다.

그 후로 알리사는 누워서만 지내야 했다. 일상생활은 불가능했다. 알리사는 매일을 눈물로 적시며 보냈다. 그러던 중 알리사에게 활력소가 되어준 것은 게임이었다. 애초에 누워서 하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으니 선택권도 없었지만.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 서핑, 게임, 독서, 기본적인 학습을 위한 과외. 그것들이 알리사의 삶에 전부였다.

알리사가 가장 좋아하던 게임은 ‘엑시큐셔너’였다. 과거, 강우가 가장 좋아하던 것과 같은 게임이었다. 그리고 알리사의 관심을 확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집행자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강우였다. ‘엑시큐셔너’의 주인공이 현실로 나와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알리사는 강우에 관한 기사는 모조리 찾아보고, 영상을 보며 팬이 됐다.

알리사가 20살이 되던 해, 세상이 대변혁을 맞이하고, 능력자들과 몬스터들은 오성급에서 십성급까지 단계가 생겼다.

도날드는 두 가지 일 때문에 좌절하고 잇었다. 하나는 간절히 바라던 것, 알리사의 능력 발현이었다. 도날드는 알리사가 예거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면, 근육위축증과 같은 병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알리사는 예거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또 다른 하나는 뒤쳐짐이었다. 도날드는 십성급까지 단계가 생긴 이후 십성에 다다르지 못했다. 도날드가 달성한 등급은 칠성 상급.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도날드는 나노슈트와도 궁합이 맞지 않았다. 도날드가 좌절하고 있을 때, 시선이 돌아간 곳은 바로 몬스터의 심장이었다.

주위에서는 도날드를 말렸다. 죽음에 이르거나 몬스터화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날드는 손에서 빠져나간 명예의 맛을 잊지 못했다.

도날드를 유일하게 반대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건 알리사였다. 알리사는 도날드와 함께 몬스터의 심장을 먹길 원했다. 도날드는 알리사가 먹는 것을 반대했다. 알리사는 도날드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빠도 목숨을 거는 거잖아. 나도 그럴 거야. 만약에 아빠 혼자 잘못된다고 생각해봐. 그렇게 되면 어차피 이런 몸으론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도날드는 결국 알리사와 함께 몬스터의 심장을 먹는다.

알리사는 몬스터의 심장을 먹고, 몬스터화가 된다고 해도 괜찮았다. 의식만 가진 상태라면 아무 상관없었다. 알리사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었다. 그리고 도전을 했다.

알리사가 이와 같이 삶에 집착을 하게 된 것은 강우의 영향이 컸다. 강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언젠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

알리사는 몬스터의 심장을 먹으며 생각했다.

‘형태만 인간과 흡사하게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대충 분장인 척하면 되지 않을까? 집행자도 겉모습만 대충 보면 몬스터랑 비슷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도날드는 십성급까지 올라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예거가 될 수 있었고, 알리사는 건강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강인한 힘까지 손에 넣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어제 연재하지 못한 분량은

금일 오후 중으로 채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