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거-176화 (176/195)

176화

도날드는 강우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알리사는 그런 도날드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강우는 도날드의 눈빛 따위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어. 이상하더라고. 최후의 10인에 신청하는 자격이 너무나 넓었어. 아마 10대10 전면전에서 나와 같이 예거 파티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적어도 예거 파티와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 클랜이 아니라면, 버리는 카드에 속하게 하려고 무슨 짓이든 했을 거다. 어때, 내 말이 틀려? 완벽하지는 않아도 당신의 시나리오를 절반쯤은 맞췄을 걸?”

도날드는 이를 갈며 강우를 노려봤다.

“입은 잘 놀리는구나. 이 범죄자 놈…….”

강우가 도날드의 말허리를 잘랐다.

“속이 뒤틀리지? 당신의 계획대로 이뤄진 게 뭐 하나 없을 테니까. 이렇게 계속 말싸움하고 있을 필요도 없지. 난 이제 갈 거다.”

도날드가 두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누가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했나?”

알리사가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만약 지금 여기서 집행자를 공격하면, 무조건 그 첫 번째 공격은 내가 받아낼 거야. 방어도 하지 않을 거야. 반드시 맨몸으로 공격을 받아서 죽을 거야.”

도날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알리사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그런…….”

제임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말씀을 나누시는 도중 죄송한데…….”

모두의 시선이 제임스에게로 쏠렸다. 제임스는 도날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임스는 정중히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여태까지 감사했습니다. 저도 아가씨를 따라가겠습니다.”

도날드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너는 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제임스는 도날드의 호통에도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기억하실 텐데요. 저는 예거 파티 소속이 아닙니다. 예거 클랜 소속도 아니고, 블랙마켓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아니죠. 저는 그저 아가씨의 보디가드 겸 병수발을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아가씨가 다른 곳으로 간다면, 저도 당연히 따라가야죠.”

“널 고용한 건 나다-!”

“지금은 돈도 있을 만큼 있고…….”

제임스는 알리사를 힐끗 쳐다본 뒤, 도날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도 아가씨를 딸처럼 생각하거든요. 뭐,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는 않지만.”

도날드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제임스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대화에 끼어든 것은 린첸이었다. 린첸은 품에서 카드 같은 것 한 장을 꺼내 도날드에게 내밀었다. 도날드는 영문을 모른 채 린첸이 내민 것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린첸의 예거 등록증이었다.

“저도 오늘부로 예거 파티를 탈퇴합니다.”

“너는 또 무슨…….”

“저는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저보다 등급이 낮을 때, 당신이 칠성급에 머무를 때도 존경했습니다. 다시 십성급으로 올라오고, 예거 파티 서열 1위를 차지할 땐 더욱 그랬죠. 항상 유쾌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직한 예거의 표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린첸은 눈썹을 찡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이용하는 쓰레기일 줄은 몰랐어-!”

도날드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이, 이 년이…….”

“아까 집행자에게 범죄자라고, 생명을 운운하며 그랬었지? 당신이야말로 최악 아닌가?”

“블랙마켓은 쓰레기통이다! 범죄자들은 쓰레기야. 최후의 10인은 모두 블랙마켓 내지는 그에 상응하는 클랜에 속한 녀석들로 뽑을 것이었다! 그게 뭐가 문제지? 오히려 예거 파티에 반(反)하는 놈들도 줄이고, 전력도 지킬 수 있는 명안이었다!”

린첸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까지 꼬이고, 썩은 사람일 줄이야. 얘기를 나눌 가치도 없어.”

도날드는 전신에서 푸른빛과 노란빛을 동시에 뿜어냈다.

“됐다. 이렇게 얘기를 나눌 필요도 없지. 전부 죽여주마.”

알리사는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소리쳤다.

“아빠-!”

도날드는 도깨비 같은 눈으로 알리사를 쳐다봤다.

“너도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 몸이 아픈 것을! 평생을 보살펴줬더니! 고작 하겠다는 것이……. 인류를 위협할 것이 된다면 차라리 내 손으로 못하게 만다는 것이 낫다.”

제임스와 린첸, 안나, 미츠하시, 핫도그는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강우가 도날드를 조롱하듯이 말했다.

“이 인원을 상대하려고? 괜찮겠어?”

도날드는 강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반드시 내가 죽여주지.”

도날드는 존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머지는 네가 맡아라. 아니, 잠깐 시간만 벌어둬.”

존슨의 반응은 의외였다.

“도날드, 그만두게.”

모두들 존슨의 말에 동작을 멈췄다. 도날드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존슨을 바라봤다.

“뭐야? 너마저 나를 배신하는 건가?”

존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게 아니야. 여기 있는 하나하나가 강해. 내가 쉽게 시간을 벌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라고. 그리고…….”

존슨의 시선은 강우에게로 향했다.

“저 집행자라는 남자는 정말로 강해. 여태까지 십성급으로 올라와있지 않던 게 이상할 정도야. 이정우를 죽인 남자다. 우연이나 그런 게 아니었어.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

존슨은 도날드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저들이 그냥 물러가준다고 할 때, 그만둬야 해. 안 그러면 이 자리에서 개죽음을 당할 뿐이야.”

알리사가 말했다.

“아빠, 우릴 그냥 보내줘요.”

도날드는 알리사를 향해 소리쳤다.

“아빠라고 하지 마! 너 따위 딸을 둔 적은 없으니까!”

알리사는 아무 말도 않은 채 도날드를 쳐다봤다.

도날드는 분노에 가득 찬 두 눈으로 강우에게 시선을 옮겼다.

“다음에,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 아니, 네놈을 반드시 죽여주마.”

강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정신나간 거 아니야?”

“뭐?”

“나를 죽이겠다고 하는 놈을 그냥 두고 갈 리 없잖아? 유리할 때 덮쳐서 죽여버려야지."

도날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기어이 해보겠다는 거냐? 조금 더 살아갈 기회를 주겠다는데?”

“센 척은……. 후달리니까 보내주겠다고 하는 거 아니었어?”

“여기가 어딘지 잊은 건가? 이곳은 예거 파티 뉴욕지부 건물이야. 내가 말 한마디만 하면…….”

강우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처음부터 앞뒤가 맞는 게 하나도 없네. 방금 저기 존슨하고 한 말 기억 안 나? 지금 당신은 아주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는 거라고.”

강우는 존슨을 힐끗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

“저 아저씨도 개죽음 당하기 싫으면, 당신이 싸운다고 해도 끼어들지 않을 테고. 지금 이 상황에서 당신이 죽으면, 저 아저씨는 가만히 앉아서 예거 파티의 서열 1위가 되는 거잖아? 더더욱 끼어들 이유가 없겠지. 다른 예거들을 부른다고? 불러봐야 도움이 될 거 같아? 사상자만 늘어날 뿐이다.”

도날드는 강우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 채 노려볼 뿐이었다. 강우는 안나와 미츠하시, 핫도그에게 눈짓을 했다. 미츠하시는 보랏빛을, 안나는 푸른빛을 전신에서 뿜어냈다. 핫도그 역시 이빨을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강우의 두 눈 아래까지만 가리고 있던 검은색 힘이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강우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그럼 얌전히 죽어.”

“안 돼-!”

강우를 막아선 것은 알리사였다. 알리사는 간절하게 부탁했다.

“부탁이니까, 아빠를 공격하지 마.”

“뭐?”

“아빠가 화나는 것도 당연해.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너하고 이렇게 대립할 일도 없었을 테지. 모든 원인은 나잖아.”

강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인이 너인데, 그게 뭐? 어쩌라는 거야?”

“이 상황을 해결하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다만, 한 번만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거잖아. 마음을 바꿀 수도 있어. 우리와 다시는 마주칠 일조차 없을 수도 있어.”

“이젠 네가 자기 딸도 아니라고 하는 놈인데, 왜 그러는 거야?”

안나는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날 평생 키워준 분에게 등을 돌리는 거잖아.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거야.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여태까지의 보답.”

“보답?”

알리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여태까지 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왔어. 마지막 한 번은 내가 지켜주고 싶어. 나중에 정말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간다면, 그게 더 좋은 거잖아. 응?”

강우는 알리사와 눈을 마주치다가 도날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도날드는 어느새 빛을 뿜지 않고 있었다. 그저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않았다.

강우는 알리사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지금 그냥 가자고?”

“응, 부탁이야. 이번 한 번만…….”

강우는 도날드를 힐끗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알리사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말해봐.”

“만약 다음에도 저 놈이 적의를 드러내면……. 그때는 전력을 다해서 죽인다.”

도날드는 강우가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특별히 어떠한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존슨의 말대로 지금은 무리다. 재정비를 하고, 나중에……. 나중에 놈을 쳐야한다. 놈과 일대일로 붙을 수 있는 상황만 만들면 된다. 그때 내 손으로 저놈을 반드시 죽인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

알리사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강우와 두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때는 말리지 않을게. 아니, 그때의 나는 네 옆에서 함께 싸울 거야.”

강우는 아무 말도 않은 채 알리사의 두 눈을 들여다봤다. 알리사의 두 눈에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엿볼 수 없었다.

강우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가자.”

핫도그는 곧바로 강우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미츠하시가 강우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형님,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분명히 적이 될 텐데…….”

“알고 있다.”

미츠하시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안나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강우의 뒤를 따랐다. 안나는 전 세계 예거 파티 서열 1위라는 도날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거 파티에 있었던 내가 한심해지는 기분이야. 어쨌든……. 진작 나오길 잘했네. 예거 파티나 클랜이나 블랙마켓이나……. 다 거기서 거기라면, 최대한 목적이 같고, 행동이 편한 게 제일 낫지.’

강우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역시 그냥 죽였어야 됐나?’

알리사의 맑은 두 눈이 강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상하게 말려든단 말이야…….’

강우는 다시 알리사를 떠올렸다.

‘뭐, 그럴 만도 한가…….’

강우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검은색 힘이 눈 밑으로 녹아내렸다. 강우는 걸음을 옮기며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적이 둘 늘었네. 쿠라마야 그렇다 쳐도 도날드의 경우에는 예거 파티 전체가 적이 돼버린 건가? 뭐, 그래봐야 예거 파티에 십성급은 도날드랑 존슨밖에 남지 않았지. 다른 구성 최상위급을 십성급으로 올린다고, 녀석들이 갑자기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어차피 예거 파티는 적어도 당분간 못 움직일 거고……. 쿠라마는…….’

강우는 도날드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예거 파티는 십성급 예거들을 대부분 잃은 상태였다.

하얀 늑대는 에스카 쪽으로 돌아선지 오래였다.

이정우와 브래드는 몬스터보호협회로 배신,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다.

이브라힘도 죽었다.

린첸은 예거 파티에서 등을 돌렸다.

공식적으로 예거 파티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도날드의 딸인 알리사, 그녀는 충분히 십성급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강우를 따라나섰다.

십성급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남자 제임스는 알리사를 따랐다.

강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예거 파티는 이빨 빠진 호랑이니 큰 걱정은 없겠어. 그래도 방심은 안 한다. 도날드와 대립하게 된다면, 그때는 반드시 죽인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다음 편에서, 다음 챕터로 넘어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저의 신작 '소시오패스 : 두 개의 삶'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