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강우가 예거 파티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현재 예거 파티의 세력은 너무나 약해져있었다. 이는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몬스터보호협회는 사라졌고, 예거 파티는 약해졌다. 즉, 에스카의 시대가 온 것이다.
현재 에스카의 전력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
강우는 최후의 10인에 지원을 할 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예거 파티의 움직임만 읽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강우는 예거 파티와 에스카의 마찰이 있을 때, 그 틈을 노려 필요한 정보들을 가질 생각이었다. 강우 역시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안, 힘의 근원, 버블 존에 관심이 있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 법한 곳이기도 했지만, 강우에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강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곳을 파헤쳐야 된다고 생각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보면 알게 되겠지. 그곳은 다른 명분들도 충분하고.’
강우가 세운 계획의 차질, 예거 파티의 약화. 이것은 강우가 에스카와 대립해야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놈들의 전력은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단체겠지.’
강우는 예거 파티 뉴욕지부를 벗어났다. 옆에는 핫도그가, 뒤로는 미츠하시와 안나가 따랐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알리사, 린첸, 제임스가 따라오고 있었다.
도날드는 분노에 가득 차 트레이닝 룸을 마구 때려 부수고 있었다. 존슨은 도날드를 말리는데 여념이 없었다.
존슨이 소리쳤다.
“진정해-! 이미 돌이킬 수 없어-! 자네는 새로운 적을 두게 된 거야. 하지만 먼저 생각해야 될 게 있지 않나? 버블 존을 떠올리라고! 에스카가 마음대로 하게 놔둘 건가?”
도날드는 에스카를 떠올리자 하던 것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 그놈들도…….’
도날드는 딸과 의절하게 된 것을 슬퍼할 틈도 없었다. 강우에게 분노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현재 예거 파티의 입장에서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슨이 말했다.
“지금 우리 전력은 너무 약해졌어. 보강해야 돼.”
도날드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보강이……. 보강이 필요하겠어.”
“그래, 하지만 어떻게…….”
도날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헬러에게 연락을 해야겠지.”
존슨은 화들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헬러에게? 하지만 우리와는 너무…….”
도날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택권이 없어. 그게 유일한 길이야.”
도날드는 이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택했다.
이 시각, 쿠라마는 전신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어디론가 내달리고 있었다. 굵은 불꽃이 하늘에 길게 이어졌다. 쿠라마는 한참을 달렸다. 두 눈에서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렀다. 자신이 뿜어내는 불꽃 때문에 곧바로 증발했지만.
쿠라마는 한참을 달리고 난 뒤, 아주 구석진 곳, 후미진 곳에 다다라서야 멈췄다. 쿠라마는 멈춰 서서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쿠라마가 눈물을 그치고, 두 눈을 떴을 때, 두 눈에는 굳은 결심이 깃들어있었다.
‘알리사, 그 년을 죽일 거야.’
여자는 질투심이 매우 강하다. 사람은 맹목적이라고도 하는데, 질투야말로 맹목적이라고도 한다. 여자의 질투는 무서운 것이다. 질투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고도 한다.
또한 여자의 질투심은 남자의 것과 다르다고 한다. 남자들이 질투하는 대상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가진, ‘나보다 잘난 남’을 질투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의 질투 대상은 ‘내가 아닌 모두’라고들 한다.
여자의 질투에 상대가 나보다 얼마나 더 잘났는지, 얼마나 더 못났는지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부러움에서 파생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소외감으로부터 생기는 감정이라고 한다.
쿠라마는 깊고 짙은 소외감을 느꼈다. 누구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쿠라마 자신은 그렇게 느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여자의 마음은 그만큼 강하고 독하다.
사랑이 변해 생긴 증오처럼 맹렬한 것은 하늘 아래 없으며, 경멸당한 여자의 분노처럼 격렬한 것은 지옥에서조차 없다.
쿠라마를 경멸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쿠라마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느꼈느냐가 중요했다.
쿠라마의 결론, 강우는 알리사를 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경멸한 것이다. 쿠라마가 품은 분노의 화살은 알리사뿐만 아니라, 강우에게도 향해있었다.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다. 이러한 경우는 주변에서도 쉽게들 보인다. 백 번, 천 번을 넘게 사랑한다고 애정을 표하다가도 헤어지잔 말 한마디에 깨지기도 한다. 어제까지 사랑을 속삭이다가 오늘은 부모님의 원수처럼 증오하기도 한다.
쿠라마는 자신이 뿜어내는 불꽃처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쿠라마는 휴대폰 하나를 구입해 무표정하게 화면을 들여다봤다. 쿠라마가 검색한 것은 자신이 과거에 속해있던 무투 클랜 홈페이지였다.
무투 클랜은 일부 나라에서 소규모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들을 빼면, 사실상 전부 해체됐다고 볼 수 있었다. 홈페이지의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오래였다.
쿠라마는 무투 클랜 한국지부를 확인한 뒤,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쿠라마가 전화를 건 것은 무투 클랜 한국지부장이었던 이태민이었다. 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가래가 낀 듯한 걸걸한 목소리가 쿠라마의 귓가에 들려왔다.
“여보세요…….”
쿠라마의 전화 한 통,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됐다.
강우 일행은 예거 파티 뉴욕지부에서 빠져나온 뒤,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강우 일행은 이미 뉴욕에서 벗어나 보스턴의 한적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의 앞에는 햄버거, 감자튀김, 핫케이크, 햄버그 스테이크, 스크램블 에그 등 다양한 음식들과 음료가 놓여있었다. 핫도그의 앞에는 강우가 따로 등갈비를 10kg을 시켜뒀다.
다들 식사를 하며 딱히 말이 없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알리사였다.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해.”
알리사의 시선은 강우에게 향해있었다. 강우는 여전히 눈 밑으로는 검은색 힘을 감싼 채 햄버거를 베어 먹고 있었다. 입을 벌리면 복면이 위아래로 벌어지고, 삐죽한 이빨 모양이 드러났는데, 괴물처럼 보였다.
강우는 콜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그래,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니까…….”
강우는 알리사를 보며 콜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분홍빛이라……. 분명히 우리 클랜의 최고 전력이 될 거다. 몬스터의 심장으로 능력을 얻은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십성급이야.’
강우는 이전에 몬스터보호협회 중국지부장 진진과 붙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녀석도 회색이었지. 등급은 칠성급이었지만, 상당히 까다로웠다. 오히려 얼마 전에 붙었던 구성급보다 놈이 더 까다로웠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은 현재 실제로 그래 보였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을 제외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거나, 두 가지 이상의 빛을 가진 자들은 일반적인 능력자들보다 더 강했다. 물론, 고유의 색을 가지고도 센 능력자들도 많았다. 단지 희소성이 있는 능력자들은 약한 경우가 없었다.
강우는 린첸과 제임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너희들은 여기서 뭐하는 거야?”
제임스는 오른손에 포크를, 왼손에 나이프를 든 채 입안의 음식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아가씨를 따라간다.”
린첸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너희 클랜에 들어간다고 했잖아.”
강우는 몸을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내가 너희를 뭘 믿고 받아들이지?”
린첸이 살짝 발끈한 듯이 말했다.
“우리를 못 믿겠다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뭘 보고 믿겠어?”
알리사가 부탁의 어조로 말했다.
“린첸과 제임스는 믿을 수 있어. 린첸은 예거 파티의 십성급 예거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어. 기본 성향 자체가 선해. 제임스는 내 말이면 무엇이든 해줄 거야. 둘 다 나를 어릴 때부터 지켜봐준 사람이기도 해. 날 믿을 수 있다면, 이 둘도 믿을 수 있어.”
강우는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듯이 팔짱을 낀 채 린첸과 제임스를 쳐다봤다. 알리사는 강우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그리고 쿠라마라는 여자가 빠져나간 전력을 보충할 수도 있잖아. 뭐, 쿠라마 대신으로는 나 하나로 충분하겠지만……. 린첸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제임스도 구성급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건 내 경호원 노릇만 해서 그래. 제대로 활동했다면 십성급이야.”
눈 밑으로는 검은색 힘이 둘러져있어 드러나지 않았지만, 강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맞아. 앞으로 우리 클랜은 버블 존에 관해서 알아볼 거야. 예거 파티는 물론, 에스카와도 맞서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 그 외에 어떤 아군이나 적이 늘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지. 그렇기 때문에 전력보강이 필요한 상황이다.”
알리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강우는 제임스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완전히 신용할 수 없어.”
제임스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어째서 날 신용할 수 없다는 거냐?”
“네가 우리 클랜에 들어오는 이유는 알리사를 따라서 온다는 거 아니냐?”
제임스는 매서운 눈으로 강우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인 뒤 대답했다.
“그렇다. 아가씨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것이다.”
강우는 양손 깍지를 껴 테이블에 올리며 제임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너는 그땐 어디 있었지? 우리가 몬스터보호협회와 싸울 때 말이야.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알리사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 보디가드인 너는 뭐하고 있던 거야?”
“그건…….”
강우가 제임스의 말허리를 잘랐다.
“최후의 10인에 도전하는 사람만 있을 수 있었다느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
강우는 핫도그와 안나, 미츠하시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리 클랜원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달려올 수 있도록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너 정도라면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서 대기할 수 있었어. 예거 파티에서 주최하는 시험이라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고도 하지 마. 지금 이 순간에도 5분 뒤 여기 있는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는 거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못한다면, 너는 우리 클랜에 들어올 수 없다. 네가 도날드의 스파이일지 뭘지 내가 어떻게 아냔 말이야…….”
알리사가 말했다.
“제임스는 절대…….”
제임스가 알리사에게 그만 말하라는 듯이 손을 보였다.
“괜찮습니다. 아가씨.”
제임스는 강우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너의 말뜻은 알겠다. 일리가 있어. 너의 질문에 대답해야겠지?”
“뜸들이지 말고.”
제임스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는 나보다 강하다. 아가씨가 힘을 얻고 나서 1개월도 되지 않았던 시점부터 이미 나는 보디가드라 할 수 없었지.”
강우는 일부러 제임스를 자극하는 말을 꺼냈다.
“그래서, 너는 보디가드가 아니라, 충실한 심부름꾼에 가깝다 이건가?”
제임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렇다. 그리고 아가씨의 총알받이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할 것이다. 또한, 내가 아가씨보다 약하다는 거지, 나 자체가 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강우와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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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저의 신작 '소시오패스 : 두 개의 삶'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소시오패스도 금일 중 업데이트 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